소설리스트

현대에 나만이 유일한 마법사가 되었다-302화 (302/812)

〈 302화 〉 302화 희생양

* * *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러갔는지 모른다.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며 한 잔이 두잔 되고, 두 잔이 석 잔이 되며, 석 잔이 곧 한 병이 되는 것이다.

두 시간 정도 시간이 흐른 지금 양주와 맥주를 돌아가며 마시던 민우의 두 눈은 충혈이 되어 있었고 뺨은 알 콜로 인해 달아올라 있었다.

“내가 지나를 그동안 어떻게 돌봐왔는데...”

“그 소리 벌써 열 번도 넘었다.”

“백번해도 부족하다... 잔 한잔 따라봐.”

양주병을 집어든 이만석이 잔에 가득 따라주었다.

그러자 민우가 그대로 입으로 가져가더니 벌컥이며 얼음이 띄어져 있는 양주를 한 번에 원샷으로 비워버렸다.

“캬아~! 죽인다!”

기분 좋게 한 소리 내뱉은 그가 ‘탁!’소리가 나게 탁자에 잔을 내려놓고는 손으로 딸기를 집어 먹었다.

그러고는 이만석을 바라보며 비웃음을 지었다.

“넌 나한테 안 돼. 그때 내가 쫌 빨리 취했다고 깔보는 모양인데 나 정민우야. 거래처 사장들과 술내기를 벌일 때 한 번도 져본 적이 없는 사람이 바로 나라고.”

회사 내에서 애주가, 또는 은연중에 술고래로 불리는 사람이 바로 그였다.

학창시절부터 지금까지 한 번도 술내기를 하여 져본 적이 없다는 것도 사실이었다.

한데 그 신화가 저번에 이만석을 통해서 깨지고 말았던 것이다.

“자, 마셔.”

양주병을 쥔 민우가 잔이 비워져 있는 이만석의 잔에 가득 따라주었다.

“나도 원샷했으니, 너도 원샷해. 못 하겠으면 나한 테 안 된다는 거 인정하든지.”

그 말에 이만석은 별 표정 없이 잔에 가득 따라져 있는 양주를 단 번에 비워버렸다.

“끈질긴 자식.”

그 모습에 작게 욕설을 내뱉은 민우가 품에서 담배를 꺼내 들어 입에 한 개비를 물고 라이터로 불을 붙였다.

“후우­”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담배를 물고 있는 민우의 모습은 제법 술이 오른 듯 보였다.

“네가 그렇게 싸움 잘한다며.”

“잘 하긴 하지.”

이만석에게 들려오는 자화자찬에 민우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런데 그 소린 왜 하는 거지?”

“나도 싸움이라면 자신 있거든. 학생 때 아마추어 대회도 나간 적이 있고 KO전적도 있으니까.”

“격투기를 배웠나?”

“합기도하고 복싱을 했지. 그래서 주먹이라면 나도 좀 쓸 줄 알아.”

“다친다.”

담배를 꺼내 들어 불을 붙이고 있는 이만석을 향해 민우가 말을 이었다.

“해보지 않곤 모르는 일이지.”

“해보나 마나다.”

“개 같은 놈.”

단호한 그 말에 민우의 입에서 절로 욕 짓거리가 터져 나왔다.

사실 그도 이만석과 붙으면 상대가 되지 않는 다는 걸 체감하고 있었다.

룰을 가지고 경기를 하는 것과 실전은 엄연히 다른 법이다.

물론 막 싸움을 하는 이와 무술을 배운 이가 붙는다면 그건 또 얘기가 달라지겠지만 이만석은 그런 분류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민우도 그 정도도 모를 정도로 바보가 아니었다.

만약 정말로 모르고 있었다면 아버지의 뒤를 이을 생각도 버려야 할 것이다.

“만약 지나가 그러겠다고 하면 진짜로 데려 갈 거냐.”

“그래.”

이만석은 민우에게 지나가 원한다면 다신의 집으로 들어오게 하겠다는 말을 했었다.

이미 하란이도 와 있는 마당에 지나라고 그러지 말라는 법은 없으니까.

그리고 이미 하란이도 그렇고 차이링에게 말을 해놓았다.

“완전히 여동생을 빼앗기게 생겼군.”

“질투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질투하는 것처럼 보이는 게 아니라 질투하는 거야.”

그렇게 말한 민우가 양주병을 집으려 했다.

“내가 따라주지.”

하지만 그보다 이만석이 한 발 더 빨랐다.

역시나 이번에도 이만석은 적정한 양을 넘어 넘쳐흐를 정도로 잔 가득 채워주었다.

‘무서운 놈...’

어느 정도 술이 오른 상황에서 가득 차오르는 잔을 보니 속이 조금 니글거리는 게 더 심해지는 것 같았다.

“너도 한 잔 받아라.”

병을 내려놓자마자 집어든 민우가 이만석의 잔에 넘칠 만큼 가득 따라주었다.

아니, 실제로 조금 넘쳐서 테이블에 흘렀다.

“장판 깔지마라.”

이만석에게 당차게 말한 민우가 단 번에 벌 컥이며 잔을 비워버렸다.

그리곤 이만석을 바라보는데 어느새 물마시듯 가볍게 잔을 비워버리곤 테이블에 내려놓는 모습을 볼 수가 있었다.

속으로 혀를 찬 민우였지만 겉으로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 과일 안주를 집어 먹었다.

“네가 왜 그렇게 여동생인 지나씨를 그렇게 아끼는지 전부 이해 할 수는 없다. 다만... 어머니를 놓고 생각하면 그럴 수는 있겠다는 생각은 들더군.”

“어머니? 네 어머니를 말하는 거냐?”

“그래.”

쓴웃음을 지은 이만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머니를 많이 사랑했나 보군?”

이만석에 대해서 알아볼 때 일성회 전의 일에 대한 정보가 하나도 없었다.

그래서 그의 가족이 누가 있는지, 무얼 하며 지내는지 하나도 알 수가 없는 일이었다.

그에 대해서 듣게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자 민우는 말에 집중했다.

“많이 사랑했지... 누구보다 더.”

“지방에 계신가?”

“돌아가셨다.”

“......”

민우는 더 이상 이만석에게 어머니에 대한 얘기를 물어보지 않았다.

“미안하다.”

그렇게 잠시간 흐른 후 민우가 사과를 해왔다.

“미안해 할 것도 없다. 내가 먼저 꺼냈으니까.”

사랑하는 가족을 잃는다는 아픔이 어떠한지 지나를 통해서 뼈저리게 느낀 민우였다.

그래서 괜히 아픈 기억을 건드린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자, 한 잔 받아라.”

병을 집어든 이만석이 비어 있는 민우의 잔을 다시 넘치도록 가득 따랐다.

‘먹기 힘든데...’

조금 전에 잔을 비우면서 이미 민우의 속은 말이 아니었다.

이만석에게 지지 않기 위해 아무렇지도 않은 척했지만 상당히 좋지가 않은 상황이었다.

“왜 그러지?”

양주가 따라져 있는 잔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는 민우의 시선에 이만석이 의아하다는 듯 바라보았다.

“아무것도 아니다.”

그 말에 민우가 고개를 들어 병을 들고는 이만석의 잔에 따라주었다.

“이런... 다 떨어졌네.”

반도 채워지기 전에 비워지자 발렌타인 한 병을 따서는 나머지를 채워주었다.

“섞어서 먹어도 먹을 만해.”

양주 종류가 다르니 이만석이 뭐라 말하기 전에 서둘러 말했다.

“양주끼리 섞어 먹긴 처음인데.”

피식 웃음을 지은 이만석이 잔을 들어 그대로 한 번에 비워버렸다.

가만히 그 모습을 바라보던 민우가 자신의 앞에 놓여 있는 영롱한 빛깔을 내고 있는 액체를 담고 있는 잔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괴물 같은 놈.’

아무래도 속이 상당히 좋지가 않았다.

이걸 먹으면 그대로 저번처럼 바닥에 전을 붙일 것 같은데 그것만은 면해야 했다.

“먹기 힘든가?”

허나 다음으로 이어진 이만석의 말에 민우의 자존심이 상했고 아무렇지도 않은 듯 웃음을 지었다.

“그럴 리가. 내가 맡고 있는 프로젝트에 대해서 잠시 생각 좀 하고 있었을 뿐이다.”

그러고는 당당히 잔을 들어 이만석이 그랬던 것처럼 목울대를 움직이며 비워버렸다.

테이블에 내려놓은 민우가 입 고리를 말아 올리며 웃음을 지었다.

“좋군... 역시 양주는 먹을수록......”

말을 하다말고 순간 손으로 입을 틀어막더니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나 룸 안에 마련되어 있는 화장실로 서둘러 달려갔다.

서둘러 들어간다고 반쯤 열러 있는 화장실 문 안에서 들려오는 구토 소리에 잠시 동안 바라보던 이만석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저놈도 종잡을 수 없는 놈이야.”

“이대로 떠나시다니요!”

“절대 안 됩니다!”

“다시 생각해주십시오!”

소식을 들었는지 부국장실로 몰려온 이들이 성토를 내뱉으며 있을 수 없는 처사라며 항의를 했다.

하나하나 자신의 손때가 묻어 있는 짐들을 박스에 담고 있던 카일러가 입가에 쓴웃음을 지었다.

“이미 사직서를 제출했네. 더 이상 물릴 수도 없어.”

“도대체 왜 그러십니까?!”

“부국장님이 없으면 우리는 어떻게 하라는 말입니까!”

“막을 수 있겠나.”

“예?”

“위에서 하는 일을 막을 수 있느냐는 말이야.”

순간 성토를 내뱉던 이들에게서 침묵이 감돌았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여기에 있는 이들도 왜 카일러 부국장이 사표를 제출 할 수밖에 없었는지 완전히 내막을 아는 건 아니었지만, 전에 전화 받는 것을 보아서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라고 내 일생을 바친 CIA를 떠나고 싶은 생각은 없어. 하지만... 상황이 나를 받아들이지 않는데 어떻게 하겠나.”

“부국장님...”

비록 그들을 위해서 일해 왔다고 하지만 여기에 있는 이들 중에 카일러 부국장의 도움을 받지 않은 이들이 없었다.

그리고 그가 얼마나 CIA에 일생을 바쳐 일해 왔는지 모르는 이도 없었다.

“이제 메케인의 행동이 상당히 강해질 거야. 다들 나서지 말고 몸을 사리는 게 이로울 거야.”

국장인 메케인과의 싸움에서 패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설마하니 그런 변수가 튀어나올 줄 예상 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존 마이클 대통령이 그런 모종의 거래를 하다니, 의외의 일이었다.

책상에 놓여 있는 액자를 조심스럽게 박스에 마지막으로 담아 넣은 카일러 부국장이 상자를 닫고는 양손으로 들어 올렸다.

“그럼 수고들 해.”

쓸쓸히 부국장실을 나서는 그의 뒷모습을 보면서 누구하나 잘 가라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것만큼 비참한 것도 또 없기 때문이었다.

‘다시는 돌아올 일은 없겠지.’

차를 몰고 CIA본국를 나서면서 사이드미러를 통해 작아지는 건물들을 바라보았다.

해가 뉘엿뉘엿 지기 시작하는 시각에 맞춰 나선 카일러 부국장은 어둠이 내려 깔리는 시각에 맞춰서 집에 도착 할 수가 있었다.

딸이 대학교에 다니고 있기 때문에 일리노이 주에 머물고 있어 집에 반겨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들어오면서 불을 켠 카일러가 거실로 들어가 소파에 박스를 내려놓고는 열어서 맨 위에 있는 액자를 한쪽에 놔두고 하나하나 집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중요한 것들만 챙겨 왔으니 정리하는 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다.

그렇게 마지막으로 놓아둔 액자를 들고 조심스럽게 먼지를 닦아 방안으로 들고 들어갔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간 카일러는 순간 얼굴이 굳어지고 말았다.

“날 죽이러왔나.”

침대에 걸터앉아 있던 사내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살며시 입술을 깨문 카일러가 다시 입을 열었다.

“마지막으로 통화 한 통 해도 되겠나?”

그러자 이번에도 사내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고맙네.”

품에서 폰을 꺼내든 카일러가 저장되어 있는 단축번호를 눌렀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그의 귀에 딸을 목소리가 들려왔다.

[무슨 일이에요, 아버지?]

“잘 지내고 있나 궁금해서 전화해봤다.”

[아버지도 참... 연말에 봤으면서 벌써 또 보고 싶으신 거예요?]

“내가 원래 변덕이 좀 심하잖아.”

[걱정하지 말아요. 제가 누구 딸인데...]

그 말에 카일러가 작게 쓴웃음을 지었다.

“그랬지. 엄마를 닮아서 너도 씩씩하게 잘 커주었지.”

죽은 아내를 쏙 빼닮은 줄리아는 카일러에게 있어 하나뿐인 소중한 보물이었다.

“기죽지 말고... 열심히 살아야 한다.”

[걱정 하지마세요. 저 친구가 불러서 이만 끊어야 할 거 같은데.]

“알았다.”

[나중에 제가 연락드릴게요. 정 보고 싶으시면 날 잡아서 갈게요.]

“그래도 내 생각하는 사람은 너 밖에 없구나.”

[당연하죠~ 딸인데.]

“사랑한다, 애야.”

[아버지도 참...]

“너는 말해주지 않을 참이냐?”

[나도... 사랑해요. 끊을게요!]

통화를 끝낸 카일러가 폰을 허주머니에 넣었다.

그러더니 들고 있는 액자를 손으로 쓰다듬으며 말없이 바라보았다.

“당신의 자식은 돈 걱정 없이 살아갈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전해주라 했습니다.”

“그런가.”

그게 자신의 목숨의 대가일 것이라 생각했다.

천천히 권총을 꺼내든 사내가 카일러의 이마에 총구를 겨누었다.

푸슛­!

순간 소음기가 달린 권총이 불빛을 발했고 그대로 카일러의 몸이 바닥에 허물어졌다.

죽어버린 카일러를 바라보던 사내가 폰을 꺼내들어 전화를 걸었다.

“끝냈습니다.”

죽어 있는 카일러의 옆에 떨어진 액자 속엔 죽은 그의 아내와 그런 아내를 쏙 빼닮은 12살의 어린 줄리아, 그리고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는 카일러의 단란한 가족의 모습이 찍혀있었다.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