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95화 〉 295화 한 번이면 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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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뭘 그렇게 쳐다보냐?”
아무 말 없이 가만히 자신을 빤히 쳐다보기만 하자 민우가 어색한 듯 말했다.
“왜 그랬어...?”
그제야 닫혀 있던 지나의 천천히 입이 열리며 민우에게 물음을 던졌다.
“왜 그랬냐고?”
“그래.”
지나는 아직까지도 민우가 엄마의 앞에서 무릎을 꿇었던 것이 믿기지가 않았다.
누구보다 자존심이 강하고 남들에게 지기 싫어하는 사람이 오빠인데 그런 모습을 보이다니 보고도 믿기지가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그게 자신 때문에 한 일이라 더욱더 마음이 아팠다.
“왜 그랬냐니, 거기서 다 들었잖아.”
“오빠...라서?”
“맞아.”
“......”
지나는 다시 말 없이 잠시 동안 민우를 바라보았다.
또 그런 행동에 순간 민우가 손을 들어 지나의 머리를 가볍게 쥐어박았다.
“뭐야 갑자기...?!”
갑작스러운 꿀밤에 지나가 머리를 문지르며 인상을 찡그렸다.
“나이도 어린 애가 뭔 근심이란 근심은 네가 다 짊어진 것 같은 표정을 짓고 있어?”
“오빤 지금 농담이 나와?”
좀 세게 쥐어박아서인지 지나가 손으로 머리를 문질렀다.
“농담이라니... 그리고 아프라고 쥐어박은 거다. 그냥 시늉만 할 거면 칼로리 소비되게 왜 그런 짓을 해? 귀한 신체 에너지인데.”
따지듯 묻는 지나에게 민우는 오히려 핀잔만 주었다.
“뭐?!”
민우의 말이 어이가 없었는지 지나가 새침하게 노려보았다.
“많이 아파?”
“그걸 말이라고 해.”
“다행이네. 난 혹시나 덜 아프면 어떡하나 했거든.”
“오빤 정말...”
이어지는 뻔뻔한 말에 결국 지나는 눈살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내가 말을 말아야지.”
한 숨을 내쉬며 작게 중얼거리는 그때 자리에서 일어난 민우가 지나의 머리에 손을 얹었다.
“너도 정말로 사랑하는 사람도 생기고 이제 진짜 여자가 되긴 되었구나.”
“오빠...?”
“마냥 어린애 인줄만 알았는데 말이야.”
자신을 놀리던 오빠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지나가 어색한 눈동자로 바라보았다.
지금까지 이런 행동은 거의 없었기에 이런 오빠스러운 모습은 지나에겐 그저 어색한 기분만 들게했다.
그러는 사이 조심스럽게 민우의 손이 지나의 머릿결을 아래로 쓸어 주었다.
“네가 쪼끄만 할 때 이렇게 많이 쓰다듬어 주곤 했었는데.”
마치 옛날일들을 회상하듯 떠올리며 중얼거렸다.
“......”
“세월이 흐르긴 흘렀나 보다.”
장난스러운 표정은 사라지고 거기엔 따뜻한 미소가 자리해 있었다.
지나는 그런 민우를 바라보면서 문득 어린 시절의 일이 떠올랐다.
아버지는 회장님에다가 어머니 또한 그때는 바쁜 시기여서 어느 정도 자라고 난 후부터는 귀한 집 자제들만 간다는 보육원에서 시간을 보낸 적이 많았다.
집으로 돌아와도 유모 역할을 해준 아주머니와 많은 시간을 보냈고 넓은 저택에서 지나의 친구라고는 인형이나 장난감이 전부였다.
그런지나가 그 어느 때 보다도 기다리던 시간이 있었는데 그건 다른 누구도 아닌 오빠가 집으로 돌아오는 시간이었다.
늦둥이로 태어난 지나를 민우는 그 누구보다 아껴주고 돌봐주었다.
혼자서 외동으로 자라다 여동생이 태어났으니 민우로써도 참으로 좋을 수밖에 없었다.
동생이 있는 친구나 누나나 형이 있어 같이 다니는 모습을 보면 그게 너무 부러웠던 것이다.
아무리 장난감들이 많고 게임기가 있다고 해도 돌아보면 넓은 집안에서 혼자였던 때가 많았다.
거기다 아버지가 엄하게 키워서 제대로 부모님에게 응석을 부려 본적도 없었던 민우였다.
그러던 차에 지나가 태어났고 누구보다 기뻐했던 게 바로 민우였다.
지나도 어린 나이에 오빠인 민우의 뒤를 따라간다고 옷깃을 잡으려 아장아장 쫓아다녔다.
멀뚱거리며 올려다보면 미소를 지으며 민우는 자주 지나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었다.
정말로 사랑스럽고 귀여온 여동생이었다.
‘민준씨가 머리를 쓰다듬어 줄 때 이상하게 편안했는데 이 때문이었구나.’
한 번씩 이만석이 머리를 쓰다듬어 줄 때 지나는 새침하게 노려보면서도 속으로는 은근히 즐겼다.
이상하게 마음이 편안해지고 뭔가 안정이 되는 느낌을 받았던 것이다.
이제야 왜 자신이 머리를 쓰다듬을 때마다 그런 경험을 하였는지 이해를 하게 되었다.
잘 기억이 나지 않았었는데 어릴때 오빠가 주로 그런식으로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었다.
“슬펐어...?”
“슬프다니?”
“내가 이렇게 커가는 게.”
머리를 쓰다듬어준 민우가 조심스럽게 손을 땠다.
그러고는 입고리를 말아 올리며 웃음을 지었다.
“슬프긴... 달고 다니던 혹이 떨어져 나간 것 같아 얼마나 기분이 좋았는데.”
“뭐야?”
“하하하! 그렇게 노려보지 마... 그때는 후련 했는데 지금은 네 말대로 마음 한켠이 허전하니까.”
손을 천천히 들어 민우가 지나의 뺨을 어루만져 주었다.
“그 녀석에게 주기엔 내 동생이 너무 아까운데...”
그런 민우의 행동에 지나는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다.
“언제는 빨리 시집이나 가버렸으면 좋겠다며?”
“그건 네가 하도 오빠를 힘들게 하니까 그렇지.”
“먼저 시비를 건 게 누군데 그래?”
잠시 동안 눈싸움을 벌였던 두 사람이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고마워 오빠. 그리고 미안해.”
“빈말이 아니라 정말로 미안하긴 하냐?”
“사람이 말하면 좀 진지하게 들어 이 바보야.”
주먹을 말아 쥔 지나가 민우의 가슴을 한대 쳐버렸다.
“어? 이게 오빠를 치네?”
“오빠가 먼저 내 머리 쥐어박았잖아.”
“허... 하나 뿐인 여동생이라고 귀여워 해줬는데 그런 오빠를 때리다니.”
“왜 부족해? 오빠가 원한다면 한 대 더 쳐줄 수 있는데.”
“그러면 내가 손해다. 안 되지.”
잠시 동안 티격태격 되던 민우가 조심스럽게 이만석에 대해서 말을 꺼냈다.
“아까도 들어서 알겠지만 나 그 녀석 용서하는 거 아니다.”
“알고 있어.”
“다음에 그 녀석이 또 너 가슴 아프게 하면 당장 오빠에게 전화해. 그땐 정말로 내가 따끔하게 혼내 줄 테니까.”
그러면서 바로 달려갈 것 같은 제스처를 취하는데 그 모습이 지나는 웃겼다.
“오빠 싸움 잘해?”
“나참... 그렇게 말하니까 또 슬퍼지려고 하네. 나 신체 단련 한다고 합기도에 복싱 배운 거 벌써 잊었어? 호신술 정도는 내가 직접 가르쳐 줄 수 있는 실력이란 말이지.”
“민준씨는 혼자서 무서운 사람들 다 휘어잡고 다니던데?”
“그 정도는 나도 할 수 있다.”
“정말?”
의심을 눈초리를 지우지 못하고 뚫어져라 바라보는 시선에 민우가 애써 당당하게 가슴을 폈다.
“무, 물론이지!”
“훗... 알았어. 믿을게.”
“뭐냐 그 웃음은? 정말이라니까?! 내가 이래 봐도...”
“정말로 믿어. 오빠 말 다 사실이라는 거 알아.”
찝찝한 듯 입맛을 다신 민우가 지나를 향해 다시 입을 열었다.
“하아... 그런데 큰일이다.”
“큰일?”
“이제 어머니 얼굴 어떻게 바라보지? 괜히 무릎 꿇었나?”
어머니 앞에 나섰을 땐 모든 풍파는 다 막아 줄 것 같이 진지하더니 이제 와서 울상을 짓는 오빠의 모습에 지나는 저도 모르게 웃음이 다 나왔다.
“걱정하지 마. 엄마는 내가 잘 말해볼게.”
“진짜?”
“응... 나 때문에 그런 건데 내가 뒤로 빠지면 안 되잖아.”
오빠가 자신을 위해서 그렇게 행동까지 했는데 여기서 나서지 않으면 그거야 말로 양심도 없는 일이다.
“그래... 잘 생각했다.”
금세 다시 표정이 밝아진 민우가 지나의 어깨를 두 어 번 힘차게 두드려주었다.
“이제야 진짜 내 여동생 같네.”
“말은 아낀다, 뭐다 그래놓고 그럼 속으론 아니었다는 말이네?”
“그럴 리가.”
새침하게 바라보는 지나의 모습에 민우가 능글맞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혼자서 서재에 남아 있던 정석환 회장은 이만석에 대한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도대체 어떤 방식으로 제갈을 물린 걸까.’
언론사와 방송사들이 전부 이만석이 개입해서 그런 일들을 한 것이라면 분명히 어떤 계기가 있었기에 그런 것은 분명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어떻게 제갈을 물렸는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아무리 압박을 가한다고 해도 그것도 한계가 있는 것이지 충실히 따르게 하는 건 상당히 힘든 일이었다.
헌데 신화그룹의 일을 돌이켜보면 이젠 그들이 아주 제대로 일을 수행한 것으로 생각이 될 정도였다.
아무리 언론사와 방송사들을 자신쪽으로 끌어들인다고 해도 이렇게나 완벽히 장악하는 것은 독재를 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물론 이해타산이 맞으면 이익이 되는 쪽으로 뭉치는게 그들이라고 하지만 지금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그렇지도 않았다.
말 그대로 완벽히 그들의 재갈을 물린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었다.
등골이 서늘해 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서민준... 서민준......’
이만석과 대화를 끝내고 고심에 고심을 거듭해 보지만 딱히 알 수 있는 건 없었다.
오히려 더욱더 뿌옇게 안개에 쌓이는 것만 같은 기분만 커질 뿐이었다.
미궁 속에 빠지는 것만 같아 더욱더 답답해지기만 한 정석환 회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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