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94화 〉 294화 한 번이면 족합니다
* * *
전혀 생각지 못 한 행동이었다.
아들인 민우가 저렇게 무릎을 꿇을 것이라고 어떻게 예상이나 할 수가 있을까.
곤혹스러운 듯 내려다보던 최여사가 다시 입을 열었다.
“당장 일어나지 못해?”
“어머니의 심정이 어떠한지 알고 있습니다.”
“알고 있다는 녀석이 지금 이런 꼴사나운 행동을 한단 말이냐?”
“지나의 오빠이기에 이런 것입니다.”
“그래... 네 말 대로 오빠라면 오히려 더 말려야 하는 거 아니야? 그런데 뭐? 오빠라서 한 번만 지켜봐 달라고?”
최여사가 기가 차다는 듯 무릎을 꿇고 있는 민우를 향해 쏘아붙였다.
여동생이 그런 위험한 상황을 겪었으면 오히려 만나지 못 하게 말려야 정상이었다.
그런데 오빠라서 한 번만 지켜봐 달라니 참으로 이해 할 수가 없는 행동이었고 말이었다.
“지나가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모르시겠습니까?”
“그 녀석 때문에 그런 것 아니냐.”
“맞습니다. 스스로 극단적인 행동을 할 정도로 사랑했기에 그런 것이겠죠.”
“그래서 내가 더 화가 나는 거야.”
자신의 딸 정도면 어디하나 빠지는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학벌이 부족한 것도 아니고 외모가 빠지는 것도 아니다.
거기다 집안 내력은 또 어떠한가.
아버지가 다른 누구도 아닌 그 유명한 세진그룹의 회장님이지 않은가 말이다.
그랬기에 더욱더 최여사의 마음이 아프고 기분이 좋지 않았던 것이다.
“저 애는 모든 것을 버릴 각오로 목숨을 끊으려 했습니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집안이나 재력, 그리고 외모까지 그 무엇 하나 미련을 두지 않았던 겁니다.”
“그래서... 네가 하고 싶은 말이 뭐냐.”
“다시 찾은 동생입니다. 지나를 떠나보내는 잃은 한 번이면 족하다고 생각합니다.”
민우의 목소리는 그 여느 때보다도 진중했고 눈빛은 또렷했다.
최여사는 그런 아들의 시선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그렇게 되니 잠시간의 정적이 흘렀다.
뒤에서 이 모습을 지켜보는 희경은 상당히 당황한 듯 아무말 하지 못 하고 멍하니 바라보았고, 지나는 그런 오빠의 모습을 상당히 충격적이게 바라보았다.
한 번도 오빠가 무릎을 꿇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던 지나여서 놀란 마음이 진정이 안 될 정도였다.
사실 놀란 건 지나 뿐만이 아니었다.
최여사 또한 무릎을 꿇고 있는 민우의 모습을 바라보는게 상당히 힘들었다.
세진그룹의 후계자로 거론되며 아버지 밑에서 누구보다 탄탄대로를 달리며 엘리트코스를 밟아온 아들인데 무릎을 꿇고 앉아있다니 상당히 충격적인 행동이었다.
“지나를 떠나 보내는 일은 한 번이면 족하다고?”
“그렇습니다.”
“너 그 말이 지금 얼마나 무서운 말인지 알고나 하는 소리야?”
떠나보내기 싫다는 말은 또 잘 못된 행동을 할 것을 염두해둔 말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민우의 표정은 그 어느때 보다도 진지했다.
잠시 동안 아들을 바라보던 최여사가 고개를 돌려 뒤에 서있는 지나를 바라보았다.
손으로 입을 가리며 바라보고 있는 딸의 두 눈에는 눈물이 맺혀있었다.
잠시 동안 그 모습을 바라보다 다시 고개를 돌려 민우를 내려다 보았다.
“도대체 너희 둘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이해 할 수가 없구나.”
그렇게 말한 최여사가 몸을 돌려 안 방으로 다시 들어갔다.
손으로 입을 가리고 눈물이 맺혀 있는 지나의 앞으로 다가가 섰다.
“나 또한 다시 너를 잃고 싶은 생각은 없다. 네 오빠의 말대로 정말로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면 내 가슴이 참으로 아프구나.”
지나는 아무런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저 슬픈 눈으로 최여사를 바라볼 뿐이었다.
“혼자 있고 싶으니까. 나가거라.”
지나를 지나쳐 침대에 몸을 앉혔다.
“나가질 않고 뭐하는 거야?”
제차 축객령이 떨어지자 지나는 안방을 걸어서 나설 수밖에 없었다.
조심스럽게 안방을 문을 닫은 지나는 무릎을 꿇고 앉아 있는 민우를 바라보았다.
“오빠...”
느린 속도로 천천히 몸을 일으키고 있는 민우를 지나가 조심스럽게 불렀다.
천천히 자리에서 몸을 일으킨 민우가 눈물로 젖어 있는 지나를 바라보았다.
손으로 조심스럽게 눈가에 묻은 눈물을 닦아준 민우는 잠시 웃어보이곤 별 말없이 걸음을 옮겨 계단으로 향했다.
희경은 잠시 동안 지나를 걱정스러운 얼굴로 바라보다 그대로 걸음을 옮겨 민우를 따라 2층으로 올라갔다.
“자네 정체가 뭐지.”
정석환 회장은 굳어진 얼굴로 이만석에게 정체성에 대해서 물었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게 만약 조금 전에 이만석이 했던 그 말이 사실이라면 이건 기준점에서 벗어나도 한 참을 벗어난 인물이었기 때문이었다.
능력만 된다면 어느 정도 언론의 힘을 자신 편으로 끌어 들일 수는 있었다.
하지만 한 나라의 언론사 전체를 통제한다는 것은 사실 말이 되지 않는 일이었다.
독재를 하여 모든 언론사를 관리괌독하지 않는 한 절대로 불가능한 일을 지금 이만석이 얘기를 꺼냈던 것이다.
사실 신화그룹을 때렸던 것이 모든 언론사는 아니었지만 메이저 언론사 전부는 다 동참했다고 봐도 옳았다.
거기다 공중파 방송들까지 더 하면 이건 거의 모든 언론사가 다 신화그룹을 때린 것인데, 그 내막이 이만석이 관련 되어있다는 것은 사실이라고 해도 도저히 믿기지가 않는 일이었다.
아무리 정석환 회장이라고 해도 그렇게는 할 수 없는 일이었기에 더 그러한 것이다.
“아무리 힘이 막강해도 한 사람이 나라 전체를 좌지우지 할 수는 없는 일이네. 그런데 신화그룹의 일을 자네가 개입되어 있다고 말한다면 솔직히 믿기가 힘들어. 그건 현실적으로도 이루어 질 수가 없는 말이야.”
“제 말이 거짓말 같으십니까.”
차분한 목소리로 말하는 이만석의 표정은 진지했다.
저 모습과 목소리를 보면 도저히 거짓을 말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사실이란....말인가.”
다시 한 번 등골이 서늘해진 정석환 회장이다.
만약 공중파와 대부분의 언론사를 전부 잡고 있다면 이건 상당히 큰일이었다.
모든 매체가 집중하여 치부를 파헤치고 논란을 키우며 기사를 때려버리게 된 다면 국민들의 관심은 당사자에게 몰릴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되면 기업의 이미지에 심각한 타격을 입게 되고 최악으론 흔들릴 수도 있게 되는 것이다.
신화그룹만 봐도 그렇다.
최근 들어 수습이 되어가고 있다지만 매출이 수직으로 뚝 떨어지는 타격을 입었었고 이미지도 상당히 실추가 된 상황이었다.
손실액만 해도 모르긴 몰라도 어마어마할 것은 당연한 사실이었다.
“일성회와 갈등이 있기 전의 행보에 대해서 알 수가 없었어. 어디서 무얼 했는지, 어떻게 살았는지 하나도 나온 게 없었지. 도대체 자네 정체가 뭐지.”
이만석과의 일이 있은 후에 그는 뒷조사를 하기 시작했다.
도대체 뭐하는 놈이기에 자신에게 그렇게 당당하게 협박을 할 수가 있었는지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들어난 내력은 확실히 놀랄 만한 것들이었다.
차기 대통령으로 당선이 확실시 되는 윤정호 의원의 딸과 사귀고 있는 것만 해도 상당히 놀라운 일이다.
허나 그렇다고 해도 그 정도의 내력이라면 얼마든지 진심으로 상대하면 누를 수 있다고 보았다.
그런데 이건 아니었다.
일부 언론사도 아니고 공중파를 포함해 대부분의 언론사들을 잡고 있다는 것은 자신이라고 해도 가능한 일이 아닌 것이다.
뜻을 같이 하는 언론사들이라면 어느정도 끌어 들일 수 있겠지만 그 반대로 반감을 가지고 있는 곳들도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이었다.
그 이전의 이만석의 행보에 대해서는 도저히 밝혀 낼 수가 없었다.
어디에서 어떻게 있다가 튀어나온 놈인지, 무얼 하던 놈인지 하나도 드러나는 게 없었던 것이다.
“전 회장님이 알고 있는 그대로의 남자입니다. 다만... 끌어 낼 수 있는 힘이 회장님이 생각했던 것 보다 더 클 뿐입니다.”
“......”
정석환 회장은 이만석을 가볍게 보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제가 바라는 것은 한가지뿐입니다. 지나씨를 내 곁을 떠나게 하지 않을 거라는 것. 그게 제가 바라는 일입니다.”
정석환 회장은 이만석에게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서재의 문이 열리고 이만석이 밖으로 나왔다.
“민준씨.”
기다리고 있던 지나가 밖으로 나온 이만석의 곁으로 다가갔다.
앞에선 지나를 바라보며 이만석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울었습니까?”
“......”
아무런 말도 못하고 서있는 지나를 바라보던 이만석이 조심스럽게 어깨를 감싸 안아주었다.
“이제 내 곁에서 지나씨를 떠나보내는 일은 없을 겁니다.”
이만석에게 안겨 들었던 지나는 그 말에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
그러더니 조심스럽게 떨리는 손으로 그의 등을 끌어안았다.
“허락해... 줬군요.”
잠시 동안 지나는 그렇게 이만석에게 안기어 있었다.
대문까지 배웅을 나선 지나는 이만석을 얼굴을 바라보았다.
“생각보다 화가 많이 났었나 보군요.”
“각오 하고 있던 일이에요. 그러니 민준씨는 걱정하지 않아도 되요.”
“왜 울었는지 말해 줄 수 있습니까.”
이만석은 대문까지 배웅을 나선 지나가 밖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알려주었으면서 왜 울었는지 대한 구체적인 설명은 아직도 말해주지 않은 것에 대해서 마지막으로 물어보았다.
“나중에 말해드릴게요. 지금은 민준씨를 더 이상 걱정하게 만들고 싶지 않아요.”
잠시 동안 지나의 두 눈을 바라보던 이만석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조심해서 가요.”
지나는 이만석이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계속해서 지켜보았다.
‘고마워요.’
그렇게 이만석과 헤어지고 집으로 돌아온 지나는 그대로 2층으로 올라갔다.
새언니와 오빠가 부부침실로 사용하고 있는 곳으로 향한 지나가 조심스럽게 노크를 했다.
그러자 닫혀 있던 문이 열리며 희경이 모습을 드러냈다.
“오빠하고 얘기 좀 하고 싶은데 괜찮을까요?”
“알았어요.”
고개를 끄덕인 희경이 옆으로 비켜서주었다.
“나가 있을 테니까 두 사람 얘기 나눠요.”
그러고는 조용히 자리를 비켜주었다.
“그 녀석은 갔어?”
“응.”
“어떻게 됐어?”
“허락해... 주었데.”
“잘 됐네.”
“......”
지나는 말없이 민우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