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93화 〉 293화 한 번이면 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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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정도 언론을 힘과 뒷배를 지니고 있다고 해도 그것이 자네를 지켜 줄 수 있을 것 같나.”
절대 쉽게 넘어갈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호락호락하게 넘어간다고 될 일도 아닌 것이다.
그런 일을 겪고도 당당하게 이런 말을 하는 이만석의 행태가 참으로 오만해 보였다.
“나에 대해서 어느 정도 알아보았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다만...”
“다만?”
“그게 회장님이 알고 있는 내 힘이라 생각한다면... 아무래도 제대로 알아보질 못 한 것 같습니다.”
“자신의 딸을 사귀게 해주었다고 하면 어느 정도 자네에게 힘을 실어주겠지. 하지만 그 깊이가 어느 정도 될 것 같나. 아무래도 자네는 세상을 너무 가볍게 보는 경향이 있는 것 같군.”
재계 서열 탑에 올라서 있는 세진그룹의 이끌고 있는 정석환 회장이라면 마음만 먹으면 대통령도 함부로 행동 할 수 없게 만들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막말로 대통령은 임기가 있지만 정석환 회장은 그렇지가 않았다.
정해져 있는 힘과 그렇지 않은 힘은 차이가 있는 법이다.
그때는 일을 크게 벌이지 않기 위해서 한 발 뺐다고 하지만 그 또한 마음만 먹으면 언론 정도는 얼마든지 다른 언론에 힘을 이용해 압박을 가할 능력이 충분했다.
그제 사업만 잘 한다고 최고의 기업이 될 수는 없는 법이다.
그만큼 따라오는 힘과 배경이 뒷받침 되어야 글로벌 회사로 성장 할 수가 있는 것이다.
거기다 세진그룹이 휘청하면 나라의 경제에 아주 큰 타격을 입을 수가 있다.
아무리 대통령이라고 해도 함부로 정석환 회장을 대할 수 없는 이유 중에 하나이기도 했다.
윤정호 의원이 이만석을 봐주고 있다손 치더라도 그 상대가 자신이라면 또 얘기가 달라진다.
정치인은 국민의 여론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나라의 경제도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한 가지만 말씀을 드리도록 하죠.”
“말해보게.”
뭔가 또 내보이려고 하는 것 같은데 정석환 회장은 크게 생각하지 않았다.
어떤 패를 꺼내들더라도 막을 자신이 충분했기 때문이었다.
“장담하는데 일주일 안에 세진그룹의 대한 치부를 모든 국민이 알 수 있게 만들어 드릴 수 있습니다.”
“치부?”
“그렇습니다. 포털 사이트뿐만이 아니라 공중파에다 신문까지 아주 회장님을 누구보다 유명인사로 만들어 드릴 수 있다는 말입니다.”
“나보고 웃으라고 하는 말인가.”
이만석의 말에 정석환 회장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말했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게 모든 언론사를 통제 할 수는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무리 힘을 써도 대통령이 되서 독재 비슷하게 하지 않는 한 완벽하게 공중파까지 모두 장악해서 힘을 낼 수는 없다고 보았다.
그건 자신이라도 절대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집트에 다녀오는 길에 안타까운 소식이 전해졌더군요.”
그렇게 말문을 연 이만석이 어처구니없어 하는 정석환 회장을 향해 하나의 일을 꺼냈다.
“나라의 경제를 이바지하기 위해 열심히 사업을 하고 있는 신화그룹의 강민석 회장님의 차남이 안타깝게 생을 마감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갑자기 그 얘기는 왜 나에게 하는 거지?”
“그에 대해서 좀 알아보셨습니까.”
“내가 알아볼 이유가 무엇 있나.”
“강은성이라는 남자가 잘 못을 저질렀더군요.”
“잘 못?”
“우리 일성회의 간부급이라 할 수 있는 차이링이 마음에 들었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추파를 던지다 되지 않으니 납치를 하려고 했죠.”
“납치라니.”
처음 듣는 얘기에 정석환 회장은 적잖이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얘기는 금시초문이었기 때문이었다.
그가 알기로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심장마비로 죽은 것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왜 죽었는지 조금은 의문이 들긴 했지만 강민석 회장이라면 아들의 죽음을 그저 지나쳐갈 인물이 아니었기에, 다른 뭔가가 있었다면 사건을 파헤치려 했을 것으로 보고 생각을 접었던 일이었다.
“한 동안 신화그룹에 대해서 방송에서도 그렇고, 국회에서도 참으로 시끄러웠다고 하더군요.”
그건 정석환 회장도 잘 알고 있었다.
조세회피처에 관한 신화그룹의 의문의 기사가 몇 몇의 언론 매체에 실리더니 버진아일랜드 스위스 은행에 흘러 들어간 한국의 거액의 자금흐름에 대한 단서를 잡았는데, 그게 신화그룹으로 의심을 받았던 것이다.
공중파는 물론이고 신문사도 연일 그 기사를 기사1면에 실으면서 연일 신화그룹을 때려되니, 그 때문에 다른 기업들도 불똥이 튀지 않을까 몸을 노심초사를 했다. 정석환 회장도 여론의 흐름이 좋지 않아 긴장을 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국회에서도 특위에 관한 얘기가 나오기 시작한 후로 분위기가 보통 살벌했던 게 아니었다.
“왜 그 얘기를 지금 하는...”
좋지 않은 일이라 눈살을 찌푸렸던 정석환 회장은 순간 그대로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 기분을 맞보았다.
“아직도 강은성이라는 남자가 그저 심장마비로 생을 마감 한 것으로 보고 계십니까. 민박집에서 주검으로 발견 되었다고 하는데 전 좀 의심스럽군요.”
이만석의 말에 정석환 회장은 뭐라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게 지금 이만석이 하는 이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대번에 알아차린 것이다.
‘믿을 수가 없다.’
포털 사이트를 이용해서 압박을 한 것만으로도 대단한 일이었다.
하지만 신화그룹에 일어났던 일과 비교하면 세발의 피인 것이다.
강민석 회장은 그 일로 인해 회사의 이미지와 매출에도 지대한 타격을 받았다.
거기다 아들까지 잃는 아픔을 겪지 않았던가.
언론의 힘이 얼마나 무서운지 세삼 깨닫게 해주는 계기이기도 했다.
“내가 알기로 조세회피처에 관한 의혹은 신화그룹에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는데 말이죠.”
“내가 그 말에 놀아 날걸로 보이나.”
“놀아나다니 그럴 리가요. 다만 세진그룹도 그런 불상사가 당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포털 사이트를 이용해서 압박한 것만 해도 어느 정도 놀랄 일이긴 했다.
하지만 신화그룹에서 일어난 일과는 비교 할 수가 없다.
그때는 정말로 신화그룹을 잡아먹을 뜻이 뉴스와 신문, 그리고 인터넷에서 연일 신화그룹에 관한 기사를 쏟아내고 때렸던 것이다.
패널들을 모셔놓고 그 주제를 두고 시사토론을 하는 등 아주 난리가 아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그런 일들이 하나 둘 줄어들기 시작하더니 지금에 와서는 기사가 모습을 감추었다.
그때는 강민석 회장이 뒤늦게 전력을 다해서 손을 쓴 것이라 생각했는데, 지금 그 내막이 이만석을 통해서 드러나는 것 같았다.
‘사실이란 말인가.’
이 말이 사실이라면 조금 전에 이만석이 말 했던 일주일 안에 세진그룹을 전 국민에게 치부를 밝혀내겠다는 저 말이 거짓말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말이 정말이라면...’
아무리 좀 못난 아들이라고 해도 아들은 아들이었다.
그런 아들의 죽음이 그저 심장마비로 인한 사고사가 아닌데, 강민석 회장이 넘어갔다는 것은 어떻게 해볼 수 없는 상황이어서 그랬다는 결론이 지어진다.
다른 무엇도 아닌 아들의 죽음이다.
세진그룹만큼은 아니지만 대한민국에서 내로라하는 대기업 중에 한 곳이 신화그룹이었다.
그런데 강민석 회장이 손을 쓰지 못 했다는 것은 이만석에 대해서 잘 못 보아도 자신이 한 참 잘 못 보았다는 말이 되었다.
물론 그게 사실인 경우에 관한 일이다.
“허지만 전 세진그룹이 그렇게 되길 원치 않습니다.”
“......”
굳어진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는 정석환 회장을 향해 이만석이 다시 말을 이었다.
“그렇게 되어 버리면 나라의 경제도 타격을 입을 것이고 무엇보다 지나씨가 회장님이 힘들어 하는 모습을 보게 되면 가슴 아파 할 게 당연하기에 전 바라지 않습니다.”
상당히 오만하고 광호한 말이었다.
허나 정석환 회장은 그런 이만석에게 아까처럼 어처구니없는 모습을 보인다거나,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만큼 얼굴은 굳어 있을 뿐이지만 대답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알고 보면 속으로 상당히 큰 충격을 받은 상황이었다.
“절대 허락 할 수 없어.”
딸의 말에 최여사는 단호한 목소리로 대답 했다.
이만석을 사랑한다고 그와 헤어질 수 없다는 말이 상당히 가슴을 아프게 만들었다.
“저 놈 때문에 네가 어떤 꼴을 당했는데 지금 엄마 앞에서 그런 말이 나와?!”
눈에 쌍심지를 켜고 언성을 높이는 모습은 얼마나 화가 났는지 대변해 주는 것만 같았다.
지나도 그 마음 어떤지 이해할 수는 있었다.
충분히 화를 내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었고 자식을 사랑하는 부모라면 그게 정상이다.
“전에도 말 했지만 네가 원하면 얼마든지 좋은 남자를 만날 수가 있어. 도대체 네가 뭐가 부족하다고 그런 일을 겪고서도 만나겠다고 하는 거야!”
“민준씨가 아니면 안 되니까.”
“지금 엄마 앞에서 그게 할 소리야?!”
“나 정말로 민준씨 사랑한단 말이야.”
“안 되겠다...”
자리에서 일어난 최여사가 문 쪽으로 향했다.
“앞으로 학교 갈 때말고 밖으로 나갈 생각도 하지마.”
“엄마!”
“네가 생각을 고쳐먹기 전까지 외출은 금지야.”
뒤에서 들려오는 지나의 외침에도 최여사는 무시하며 얘기를 끝내고 안방의 문을 열었다.
“문 앞에 서서뭐하는 거니?”
거실로 나가려던 최여사는 문 앞에 서있는 민우를 보고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어머니가 그렇게 행동을 제약한다고 해도 멈추지 않을 겁니다.”
“너 지금 우리 얘기 엿듣고 있었니?”
“엿들은 건 죄송하다 생각합니다, 어머니. 하지만 정말로 지나를 사랑하신다면 한 번만 기회를 주었으면 합니다.”
“뭐라고?”
“오, 오빠.”
문 앞에 민우가 서서 얘기를 엿들었다는 것도 놀랍지만 이런 말을 할 줄은 더 생각지 못 해서 지나의 두 눈이 크게 떠졌다.
짝!
“오빠!”
순간 지나의 입에서 놀란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걱정스러운 모습으로 바라보고 있던 희경 또한 상당히 충격 받은 눈동자가 떨리고 있었다.
허나 그럼에도 당사자인 뺨을 맞은 민우의 두 눈동자는 말을 할 때와 똑같이 차분했다.
“지금 네가 어미 앞에서 그게 할 소리냐.”
자신을 바라보는 민우를 바라보며 최여사가 노여움을 드러냈다.
“지나가 죽을 뻔 했어. 그런 원인을 제공한 놈을 다시 만나게 해주라고? 오빠가 돼서 네가 지금 그게 할 소리야!”
“오빠이기 때문에 그런 겁니다.”
“뭐?”
“제가 지나의 오빠라서 어머니에게 이렇게 말씀을 드리는 겁니다.”
“도대체 무슨 생각인거야? 난 도대체 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이해 할 수가 없구나. 아니, 지금은 그러고 싶지도 않아.”
그렇게 말한 최여사가 다시 서재 쪽을 바라보았다.
“내가 결판을 지어야겠어.”
남편의 굳어진 얼굴에 조용히 물러나긴 했지만 이젠 도저히 그럴 수도 없을 것 같았다.
그렇게 서재 쪽으로 향하려는 그때 민우가 천천히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오, 오빠...”
“여보!”
그 모습에 지나가 떨리는 목소리로 부르며 양 손으로 입을 가렸고 희경이 놀란 듯 소리쳤다.
“이게 무슨 짓이냐.”
분노에 가득 찬 어머니의 말에 민우가 진중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지나를 사랑한다면... 한 번만 지켜봐주었으면 합니다.”
설마하니 민우가 무릎을 꿇을 줄 몰랐던 최여사는 분노에 찬 말과는 다르게 상당히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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