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89화 〉 289화 집행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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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 대표로 선출 되어 미국을 이끄는 이가 기거하는 백악관의 대통령 관저에는 최초의 흑인 대통령으로 선출 된 존 마이클 대통령이 자리하고 있었다.
서민정책과 과도한 의료비 지출을 줄이고자 실행 된 기초복지공약 정책은 많은 대중들의 지지를 받았고 노후화된 보건소를 새롭게 건립하여 의료혜택을 향상시키는 등 많은 인기를 구가하고 있었다.
그렇게 다시 중간 평가차 치러진 대선에서 연임을 확정지은 존 마이클은 그동안의 공약에 탄력을 받으며 힘있게 정책을 추진해 나갔다.
하지만 남은 임기가 3년도 채 남지 않은 시점이라 그와 대립하고 있는 쪽에서 은연중에 레임덕에 관한 얘기들을 거론하며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었다.
그러나 대중들의 지지기반으로 힘을 지탱하고 있는 상황이어서 그들이 바라는대로 레임덕에 대한 얘기는 아직까진 그저 기후로 그치고 있는 실정이었다.
그런 존 마이클 대통령의 얼굴엔 깊은 시름이 담기어져 있었는데,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사람좋은 얼굴로 그와 마주하고 있는 카일러라는 남자 때문이었다.
CIA의 부국장 직에 앉아 있으면서 정보기관의 반을 움직이는 이이기도 한 사람이자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이들 중에 한 명이기도 했다.
“이건 초유의 사건입니다.”
재차 사태의 심각성을 강조하는 그의 목소리는 사람 좋은 얼굴과는 다르게 상당히 진지했다.
“대통령께서도 알고 있으신 것처럼 미국의 국가안보를 위해 CIA가 손과 발이 되어 그동안 많은 노력을 해왔습니다. 지금은 미국을 대표하는 기관 중에 하나가 되었고, 세계 정보기관들이 나가야할 전문성과 반향을 제시해준 모범이 되는 명예를 얻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세계에서 애국심을 가지고 국가를 위해 노력하는 우리 요원들이 모두 실종이 되었습니다. 그 뿐만이 아니라 하나의 지부 또한 완전히 괴멸이 된 상황이지요. 지금까지 이러한 사건은 CIA가 창설이 되고 한 번도 없었던 일입니다.”
카일러가 전용기를 타고 날아오기 전에 존 마이클 대통령 또한 그에 관한 보고를 받았었다.
CIA의 지부가 괴멸되었다는 것은 그에게도 상당한 충격을 안겨 주었다.
안토니오가 떠난 일도 상당히 당혹스러움을 안겨 주었는데 지부가 무너졌다는 것은 그보다 더한 충격을 주기에 충분했던 것이다.
어떻게 그런 일이 벌어졌는지 밝혀내기 위해 조사에 들어갔지만 이제 막 움직임을 시작한 지라 아직까지 성과라고 말 할 수 있는 것들은 없는 상황이었다.
“안토니오가 서민준과 내통하고 있었다는 것이 밝혀진 지금 이런 초유의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졌을지 솔직히 저로썬 장담 할 수가 없습니다. 다만 이렇게 빠른 시일안에 지부하나가 괴멸되려면 그만한 정보와 작전이 바탕이 되어야하며 그러려면 조직 내부의 상황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인물이 도와주어야 한다는 생각합니다.”
“안토니오가 이일에 관여되어 있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겁니까.”
“아작 확답을 할 수 있는 증거들은 없지만 전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을 책임졌던 수장이 그였으니까 누구보다 내부 사정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인물입니다.”
존 마이클 대통령은 카일러 부국장의 말에 뭐라 반박을 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그가 가담했다는 증거가 없는 것처럼 그가 가담하지 않았다는 증거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더군다나 그 전에 안토니오가 이집트로 떠나는 일이 있었으니 가담했다는 쪽으로 더 무게가 실리는 상황이었다.
“나라가 불안전한 중동에서 벌어진 일이 아니라 치안이 안정적으로 알려져 있는 한국에서 벌어진 일입니다. 경제가 발전한 나라에다 총기규제도 엄격하다고 합니다.”
거기까지 말한 카일러 부국장이 잠시 뜸을 들이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분단이 되어 북한이라는 위험한 나라를 끼고 있는 한국은 어떻게 보면 불안해 보일 법 하지만 그만큼 다른 나라들보다 민간인이 휴대 할 수 있는 무기에 대해서 민감하게 반응 할 뿐만이 아니라 치안에 신경을 쓰는 나라입니다. 한국군에선 사격을 하면 탄피까지 꼼꼼하게 전부 챙겨서 관리를 한다고 합니다. 만에 하나라도 잃어버리게 되면 큰일 난다고 하는데 그만큼 민감한 나라라는 애기이지요.”
“그래서 하고 싶으신 얘기가 무엇입니까.”
“한국정부에 이일에 대해서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이 가담했다고 생각하십니까.”
“앞서 한국에 대해서 말한 것 같이 일반적은 테러로 치부하기엔 너무나 큰 사건입니다.”
“중국이 힘을 키워가고 있는 상황에 동맹관계에 갈등의 씨앗을 남겨선 좋을 게 없는 상황입니다.”
최근 들어 급격하게 성장을 하며 힘을 키워온 중국과 한국이 밀접한 경제관계를 맺어가고 있는 현실을 우려하는 상황이었다.
중국과 한국의 관계가 옛날보다 상당히 진전이 되어 있는 상황이었는데, 일본의 역사문제를 두고 공동대응을 하기도 하는 등 중국을 견제하고 있는 미국 쪽에선 상당히 꺼림칙한 상황이기도 한 것이다.
“만약 이대로 조용히 처리하게 된다면 그만큼 앞으로의 동맹관계에 있어서 힘이 약화 될 수도 있는 발단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의 지부가 괴멸된 초유의 사건입니다.”
“지금 카일러 부국장이 하늘 말이 국익을 위한다고 맹세 할 수 있습니까?”
“제가 비록 정책적으로 갈등을 빚고 있기는 하지만 엄연히 미합중국의 국민이며 나라의 녹봉을 받고 일하는 공무원입니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하는 그이 모습에 존 마이클은 쓴웃음을 지었다.
저 확고한 말과 눈빛을 보면 참으로 애국심이 느껴지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의 실체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그는 그 말을 그대로 믿지 않았다.
물론 카일러 부국장 또한 존 마이클 대통령이 이 말을 믿지 않는 다는 걸 잘 알고 있다.
“애국자시로군.”
“미국인으로써 당연히 가져야 할 마음가짐이라 생각합니다.”
때로는 생각과 다른 얘기들이 진실처럼 오고가기도 한다.
그게 설사 두 사람이 믿음을 가지고 있던지, 아니면 그렇지 않다고 해도 중요한 것은 지금 대화를 나누고 있는 그들의 자세와 말 속의 내용들이었다.
“무엇보다 이곳으로 오면서 지부로 사용하던 스카이엘텀의 직원으로 있는 이들 세 명이 항의하러 갔다가 실종되었습니다.”
“CIA쪽 사람들이겠지요?”
“그렇습니다. 그 세 명에 대해서 행방은 현장에 있던 경찰들을 통해서 알게 되었는데, 이것이 더욱더 한국정부가 가담했다는 증거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세 명을 데려간 이들이 누구입니까.”
“한국의 국정원 요원들입니다.”
“정보국 요원들이 말입니까?”
“이번 일은 우리 측 선에서 조용히 해결 된 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측이라는 것은 CIA를 지칭하는 말이라는 것을 존 마이클은 바로 알아들었다.
그에 관한 얘기를 좀 더 나눈 후에 카일러 부국장이 물러나 혼자 남게 된 존 마이클 대통령의 얼굴은 상당히 심각해져 있었다.
‘상황이 좋지가 않아.’
안토니오가 떠나고 연이어 지부가 괴멸되었으니 이일은 확실히 저 쪽에서 물고 늘어지기 아주 좋은 상황이 되어버렸다.
카일러 부국장이 왜 이곳까지 찾아와서 저렇게 말을 하는지 어느 정도 짐작은 갔다.
이일을 빌미로 정말로 한국정부에 책임을 묻게 되면 그것만큼 이쪽에서 확실히 인정하는 꼴이 되 버리는 것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 만약 나서지 않게 된다면 그 또한 상대에게 아주 좋은 먹이를 제공하는 꼴이 되는 것이어서 상당히 난처한 상황이었다.
‘김현수 그자의 임기가 이제 1년도 채 남지 않은 상황일 텐데...’
정상회담을 통해 한국의 대통령인 김현수를 여러 번 만나서 대화를 나누었다.
그 뿐만이 아니라 북한의 문제를 두고 핫라인을 통해 따로 전화 통화를 한 적도 꾀 되어서 얘기를 나눈 시간을 따지면 적지는 않았다.
‘임기 말에 이런 일을 벌일 정도로 대범한 사람이었던가.’
그가 알기로 김현수는 소탈한 편도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모험을 한 정도로 간이 큰 사람도 아니었다.
그런 그가 이제 채 1년도 남지 않은 임기를 두고 이런 일에 가담하였다는 게 믿기지가 않았던 것이다.
‘정권장악력이 상당히 떨어져 있는 시점이니 그가 가담했다고 장담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이번 년도를 끝으로 그는 대통령 직에서 물러나야 한다.
레임덕에 힘도 상당히 빠져 있을 시기인 것이다.
“밖은 시끄럽게 돌아가도 이렇게 길을 따라 조성된 정원을 둘러보면 마음이 차분해 지는 것 같습니다.”
이제 50대 후반에 접어든 김현수 대통령의 머리는 세월의 흔적처럼 흰머리가 희끗희끗했다.
비서실장인 종원찬을 대동하고 산책을 나선 김현수 대통령의 얼굴엔 팔자주름이 지어져 있었지만, 안경을 쓰고 있는 그의 두 눈은 젊을 때 한 참 정치가로써 이름을 알리던 그때처럼 여전히 힘을 간직하고 있었다.
“대통령께서 추운 바람에 몸이 상할까 염려됩니다.”
“겨울인데 이정도 바람은 당연합니다. 이정도 바람에 감기 걸릴 정도로 쇠약하지는 않았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눈웃음을 지은 김현수 대통령이 천천히 한 발짝 때며 걸음을 옮겼다.
겨울이라 정원의 싱그러움을 크게 느낄 수 있는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이렇게 세상과 동떨어진 것처럼 유유자적 산책을 하는 이 시간을 김현수 대통령은 상당히 좋아했다.
그렇게 얼마나 걸음을 옮겼을까.
조용히 산책을 하던 김현수 대통령이 닫혀 있던 입을 다시 열었다.
“그들은 어떻게 됐습니까.”
“고문은 있었지만 CIA쪽 사람이라는 걸 자백해 왔습니다.”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 김현수 대통령은 그저 고개만 끄덕일 뿐이었다.
“어쩌면 이번일이 내 정치사에 있어 아주 큰 결단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그 결단이 무엇인지 비서실장인 종원찬도 잘 알고 있었다.
“이 나라가 어느 반향으로 움직이게 될지 이젠 저 또한 장담 할 수가 없겠지요.”
대통령이라는 자리에 있으면서 권력의 정점도 맞보았고 많은 갈등과 사건도 함께 따라왔다.
그가 공약했던 정책을 두고 설전이 오고가기도 했고 국회에서도 연일 시끄러운 고성이 오고가기도 했던 것이다.
지금은 국민들의 지지가 바닥으로 추락하여 레임덕이라는 말이 이젠 자연스럽게 방송을 통해 나오는 실정이었다.
거기다 김철중 의원의 윤정호 당대표의 지지선언은 참으로 놀랄만한 일로 그 또한 당황하기 충분한 일이었다.
한 때는 욕심과 권력에 눈이 먼 적도 있었지만, 지금은 한 축으로 밀려난 상황이다 보니 자신에 대해서 돌아보게 되었고 많은 생각과 여유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더 이상 자신이 나서서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아도 알려져 있는 그였지만, 권력이 집중 되어 있는 이 나라의 대통령답게 마음만 먹으면 식물대통령이라 불려도 상황에 관여 할 수 있는 여지는 충분히 있기는 했다.
하지만 그러고 나면 오히려 수세에 몰리는 상황이 올 수도 있고, 권력의 욕심에서 한 걸음 물러난 시점이라 크게 일을 키우고 싶은 심정도 없었다.
그동안 나라살림을 잘 이끌어갔냐고 한다면 썩 그렇다고 할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여론조사에서도 그렇고 그 또한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경제가 어려운 상황에 리더로써 이렇다 할 타개책을 제시하지 못 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그랬던 그에게 한 명의 인물이 나타났다.
삼엄한 경호를 뚫고 어떻게 들어왔는지 모르지만 그는 분명히 비서실장과 대화를 나누던 자리에서 그렇게 마주했다.
갑작스러운 침입자에 놀란 것도 잠시 경호원을 호출하려던 그 행동은 금방 저지를 당했고 그 사내는 그 자리에서 두 사람을 믿을 수 없는 능력을 보여줌으로써 심리적으로 두 사람을 굴복시켰다.
그 후에 여러 대화를 나누었다.
상당히 충격을 받기도 했고 놀라기도 했다.
허나 중요한 것은 그게 꿈이 아닌 현실이라는 것이라는 것에 있었다.
“큰 결단이라고 하지만 나에겐 선택권이란 없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는 오만하지만 믿을 수 없는 힘을 보여주었다.
그리곤 기세를 질리게 만들었고 심정으로 큰 충격과 놀라움을 안겨주었다.
아직도 그때를 생각하면 솜털이 다 곤두 설 지경이었다.
우여곡절이 많았던 그의 인생에서 최고의 공포를 맛보았던 순간을 꼽으라면 김현수 대통령은 망설이지 않고 이만석과 만난 순간을 꼽을 것이었다.
제일 두려운 사람을 한 명 뽑으라면 역시 그를 택할 것이다.
그건 함께 동행 하고 있는 종원찬 비서실장도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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