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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에 나만이 유일한 마법사가 되었다-281화 (281/812)

〈 281화 〉 281화 그가 전한 말

* * *

이만석은 평소와 다름없이 일상적인 생활을 보냈다.

다음날 방을 나선 그의 얼굴은 평소와 다름없었고 어제와 같이 어두운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차이링은 물론이고 하란이 지나에 대한 일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런 이만석에 대해서 신경이 쓰이지 않을 수 없었다.

집으로 돌아왔을 때의 굳어 있던 모습과는 다르게 지금 생활하는 이만석의 모습은 전혀 그런 흔적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허나 그렇기 때문에 차이링은 물론이고 하란이 또한 이만석에 대해서 걱정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침대는 내일쯤에 들어온다고 했어?”

“응... 10시쯤에 온다고 그랬어.”

“차이링 넌 침대 없어도 돼?”

“구해야지. 안 그래도 바닥에 자려고 하니까 등이 다 배길 참이잖아. 그래서 내일쯤에 가보려고... 당신도 같이 가줄 거지?”

고개를 끄덕이며 반찬을 집어 먹는 모습에 하란이도 곧장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저도 같이 가면 되겠네요?”

“어머, 동생도?”

“오빠도 가는데 저도 안 갈 수가 있나요... 그리고 이제 한 가족이나 다름없는데 저도 신경써줘야죠.”

“몸도 힘들고 구지 같이 안가 줘도 되는데...”

“안 힘들어요. 그 정도로 체력이 약하지 않아요.”

“그러니?”

“네.”

지지 않고 웃으며 대답하는 모습에 차이링이 아쉬운 듯 입맛을 다셨다.

이걸로 어떻게 이만석과 데이트 좀 하려고 했는데 역시나 잘 따라 주지 않았던 것이다.

‘확실히 사수하겠다 이거지?’

하란이가 왜 저러는지 차이링은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차이링이 실망하지는 않았다.

이만석과 단 둘만의 시간은 이런 방법 말고도 언제든지 만들 수 있었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먼저 일어날게.”

그러는 사이 식사를 끝내고 먼저 자리에서 일어난 이만석이 창가 쪽으로 향했다.

서로 티격태격 하던 하란이와 차이링은 그런 이만석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오빠... 괜찮을까요.”

“글쎄.”

오히려 아무렇지도 않게 행동하는 이만석의 모습이 더 신경이 쓰여서 어쩔 수가 없었다.

그날 이만석이 집을 나서는 모습을 보지 않았다면 이렇게 신경이 쓰이지 않을 텐데 왜 그렇게 나갔고, 그 이유를 알게 된 시점에서는 신경 쓰지 않으려고 해도 그럴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당분간은 그 여자에 대한 얘기는 하지 않는 게 좋을 거야.”

차이링의 말에 하란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하란이 또한 마찬가지의 생각이었기 때문이었다.

식사를 끝내고 가볍게 차 소파에 앉아 차 한잔을 즐겼다.

어떤 일이 생기고, 무엇을 하든 결국엔 시간이 흐르는 것은 똑 같았고 이번에도 여지없이 밤은 깊어갔다.

잠자리에 든 이만석은 잠들지 않고 가만히 누워 있었다.

‘계속해서 지나를 신경 쓸 수는 없는 일이다.’

일성회에 대한 일도 있고 이집트에 대한 일도 신경 써야 하는 판에 죽치고 앉아 있을 수만은 없는 일이었다.

일단 성공적으로 지나의 몸을 회복시켰으니 예상대로라면 지금은 깨어나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내가 여자들 때문에 이렇게 고민을 하게 될 줄은 몰랐군.’

지금까지 살아온 그의 인상에서 여복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인생이었다.

물론 지금의 자신과 예전의 자신을 같은 사람이라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분명히 살아온 세월만 따지면 그랬다.

좋아하는 사람이 생겨도 고백한번 제대로 하지 못 하고 짝사랑으로 끝나기 일 수 였고, 첫 경험 또한 군대에서 선임을 따라 이끌려나가 업소에서 총각딱지를 땠다.

그렇게 말고는 여자 손 한 번 잡기 힘든 인생이고 그건 전역을 하고 살아오면서도 전혀 변한 건 없었다.

그랬던 인생이 이젠 여자를 두고 헤어지니 마니 하는 등 이런 고민을 하고 있으니 웃기지도 않은 상황이었다.

‘둘 다 나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사는 인생은 정반대이구나.’

완전히 다른 사람이라고 해도 그렇게 믿어버릴 정도였다.

‘이런 생각을 한들 무엇이 해결될까.’

누가 뭐라고 해도 스스로 이만석이라는 이름은 버리지 않았다.

그것 하나만으로도 지금의 정체성에 대해서 잡고 이끌어 갈 수 있는 상황이지 않던가.

그렇게 고민만 해보았자 머리만 아파질 뿐이었다.

잠자리에든지 2시간 정도 지났을까.

이만석은 문 밖에서 들려오는 벨소리에 잠에서 깨어났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오니 그 소리를 들었는지 차이링은 물론이고 하란이 또한 밖으로 나왔다.

“이 늦은 새벽시간에 누구지?”

“그러게요.”

눈을 비비며 말하는 하란이가 대답을 하는 사이 인터폰에 달려있는 화면의 카메라를 통해 대문 밖을 확인한 이만석의 얼굴이 굳어졌다.

“잠시 나갔다 올게.”

“누군데 그래?”

이만석의 곁으로 다가온 차이링이 역시나 화면을 바라보는데 거기에 서있는 인영을 보곤 놀란 표정을 지었다.

“정민우?”

“정민우라면 그 여자의 오빠잖아요.”

역시나 하란이 또한 놀라긴 마찬가지였다.

그러는 사이 방으로 들어가 코트를 걸치고 나온 이만석이 그대로 현관문으로 향하더니 신발을 신었다.

늦은 새벽시간에 찾아온 민우를 만나기 위해 나서는 아만석을 보고 차이링은 물론이고 하란이도 뭐라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저 사람이 왜 찾아왔는지 알 수는 없었지만, 이대로 돌려보낼 수는 없는 상황임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만석이 나가고 두 사람만 남게 되었을 때 차이링이 입을 열었다.

“묻어둔다고 지나갈 일은 아니지.”

“큰일은 벌이지지 않겠죠?”

“어떤 생각으로 찾아왔느냐에 따라 다를 거야.”

민우가 늦은 시간에 찾아왔다면 분명 그저 대화만 하기 찾아온 것이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당을 가로질러 대문으로 향한 이만석은 망설이지 않고 잠겨 있던 출입문을 열었다.

그리곤 문을 열고 밖으로 나서니 정장차림의 민우가 그 앞에서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한번 더 눌러보려고 했는데 말이야.”

이만석을 보며 민우가 쓴웃음을 지었다.

“술 먹었나..”

“그래... 좀 먹었지.”

확 풍겨오는 양주냄새에 한 말이었다.

“뭣 때문에 이 시간에 여기까지 찾아 온 거지.”

무표정한 얼굴로 말을 하는 이만석을 향해 민우가 손을 내밀었다.

“혹시 담배 한 개비 줄 수 있어? 벨을 누르고 기다리는데 보니까 다 떨어져서 말이야.”

이만석이 말없이 코트에서 담배 갑을 꺼내어 한 개비를 빼서 건네주었다.

품에서 라이터를 꺼내든 민우가 불을 붙이더니 깊이 들이 마쉬곤 내쉬었다.

“이런 모습으로 담배를 피워보긴 또 처음이야.”

칼바람이 부는 새벽시간대의 골목은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냈다.

이런 상황에서 담배를 피워 본 적이 없었던 민우여서 저런 말을 한 것이다.

“하지만 맛은 나쁘지가 않으니 괜찮네.”

그렇게 다시 깊이 담배 한 모금을 빨고는 길게 연기를 내뿜었다.

“꼭 그렇게 해야 했어.”

다시 한 모금을 깊이 빨고는 연기를 길게 내뱉은 민우가 다시 말을 이었다.

“도대체 왜지.”

민우의 말에도 이만석은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다.

“무슨 이유 때문에 지나와 헤어진 거지. 그 애 정도면 외모도 그렇고 배경 또한 빠지지 않는데 말이야.”

“사랑하지 않으니까.”

“사랑하지 않는다라...”

“그게 서로에게 좋을 것 같다는 판단에서 그런 거다.”

“그게 이런 결과를 만들어 낼 것이라는 걸 생각은 하지 않았었나보지.”

“그 전에 정리를 하려 했던거야.”

잠시 동안 두 사람은 다시 말이 없었다.

그러는 사이 민우는 피고 있던 담배의 심지가 짧아지자 그대로 바닥에 버리고는 발로 비벼 껐다.

“지나가 깨어났어.”

“......”

“어떤 생각으로 괜찮을 거라는 말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깨어나긴 했어.”

그렇게 말한 민우가 다시 쓴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괜찮지는 않아. 왜 그런 줄 알아?”

고개를 들어 똑바로 이만석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아직도 널 잊지 못 하고 있기 때문이야.”

병실에서 지나와 모습이 민우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네가 없으면 안 된다고 하더라. 너를 못 잊겠다고 말을 했어. 그리고 날보고 널 건드리지 말라고 부탁을 해왔어. 내 여동생을 저 지경으로 만들어 놓은 너에게 복수를 하고 싶은데 그 애가 부탁을 해왔어.”

“미련한 생각이야.”

“그래. 미련하지. 자신을 버린 남자를 그렇게 두둔하는 그 애는 참으로 미련해. 하지만 난 그 애의 부탁을 들어 줄 수밖에 없어. 왜 그런 줄 알아?”

민우는 잠시 말을 잊지 못 했다.

순간 울컥하는 마음 때문에 그랬던 것이다.

“널 묻어버리고 싶은데 그럴 수가 없어. 만약 그런 행동을 벌였다간 다신 여동생을 보지 못 할지도 모르니까.”

무표정한 얼굴로 바라보는 이만석을 노려보며 민우가 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그 웃음은 불어오는 칼바람과 같이 주변을 얼어붙게 만들 정도로 한기가 서려있었다.

“네가 잘못되면 그 애도 널 뒤 따라 갈지도 몰라. 분명히 나에게 했던 그 말은 진심이었을 테니까. 네 말대로 미련하지. 아주 미련한 애야. 자신의 처지가 어떠한지 알고 있으면서도 널 생각하고 있으니까.”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뭐지.”

이만석의 말에 민우가 입술을 깨물었다.

하지만 병원에서처럼 멱살을 잡거나 그런 행동은 벌이지 않았다.

그러나 그보다 더욱 놀라운 말이 민우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다시... 지나와 만나 줄 수 없겠어?”

“......”

“지나와 더 이상 만날 생각이 없다는 거 다 알고 있다. 나 또한 그걸 바라고 있지 않아. 하지만... 지나가 힘들어 하고 있어. 겨우 살아 돌아 왔는데 다시 흔들리고 있단 말이야. 널 건드리지 않아도 그 애가 또 무슨 일을 저지를지 장담 할 수가 없어. 그런데 분하게도 그걸 막을 수 있는 사람이 지금 너 하나뿐이라는 현실이야.”

“상처만 될 뿐이다.”

“상관없어. 한 번 잃었던 여동생이다. 두 번을 잃을 수 없어.”

똑바로 자신을 처다보는 민우의 얼굴을 바라보던 이만석이 닫혀 있던 입을 열었다.

“다음에 얘기 하도록 하지.”

그렇게 말을 한 이만석이 몸을 돌렸다.

아니, 돌리려고 했다.

“무슨 짓이지.”

민우의 행동에 이만석은 눈살을 찌푸렸다.

지나에 이어서 그 또한 지금 뜻밖의 행동을 벌였기 때문이었다.

놀랍게도 몸을 돌리려는 순간에 민우가 바닥에 천천히 무릎을 꿇고 앉았다.

“내가 아닌 오빠로써 너에게 이렇게 부탁하겠다. 제발... 지나를 살려다오.”

민우는 이만석이 정말로 미웠다.

자신의 여동생의 인생을 망친 것 같아 그가 증오스러웠다.

하지만 지나를 다시 웃게 만들어 줄 수 있는 건 이만석 밖에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너무 괴로워하는 여동생을 이대로 두고 볼 수가 없었다.

한 번 잃었던 여동생을 다시 되찾은 민우다.

병원에서 오빠로써 못 해준 게 많아 가슴이 아프고 후회스러웠던 민우였다.

이 행동이 상당히 수치스럽고 굴욕적이라 할 지라도 이번일은 민우의 가슴을 아주 크게 뒤흔들어 놓았다.

아무리 자존심이 중요하다 하더라도 목숨과 비교 할 수는 없는일이다.

아픔을 겪은 그런 그에게 있어 이렇게 무릎을 한 번 꿇는 것만으로 여동생을 웃게 만들어 줄 수 있다면 기꺼이 그렇게 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민우에게 지나는 세상에 단 하나 밖에 없는 소중한 여동생이었으니까.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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