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80화 〉 280화 그가 전한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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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먼이 실종이 되고 난 후 안토니오는 분주하게 움직였다.
다른 누구도 아니고 CIA고위 간부급 인사가 실종이 되었으니 찾지 않는 게 이상한 일인 것이다.
하지만 이만석을 치러 간 후에 모습을 감춘 그를 찾는다는 것은 절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마지막으로 그와 연락을 주고받았던 장소엔 차량이 있었다는 바퀴자국은 물론이고 작은 흔적조차 찾지 못 하고 돌아와야 했다.
새해인데도 퇴근조차 못 하고 그에 대한 대책을 새우고 찾아보았지만 역시나 헛수고에 지나지 않았다.
이제는 프리먼은 단순 실종이 아니라 이만석에게 당했다는 것으로 상황이 좁혀져 가고 있었는데 그것만으로도 내부에서는 많은 얘기들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중무장한 요원들이 모두 증발해 버렸으니 어수선해지지 않는 게 이상한 일이었다.
상황실에서 커피 한 잔을 마시며 현장을 주시하고 있는 안토니오의 얼굴은 별로 좋지가 않았다.
아니, 안 좋은 정도가 아니라 표정이 굳어 있다고 보는 게 옮았다.
늦은 오후가 되어서 전화를 한 통 받은 안토니오는 긴장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전화를 건 이가 다른 누구도 아닌 메케인 국장이었기 때문이었다.
그에게서 걸려온 전화에 안토니오는 놀라긴 했지만, 갑작스럽게 국장에게서 전화가 걸려온 것에 대한 안 좋은 마음이 더 컸다.
[프리먼에 대해서 찾지 않아도 돼.]
“수사를 종료하라는 말씀이십니까?”
[이미 당했을 텐데 찾는 들 뭐하겠나. 그리고 찾지도 못 할 텐데 말이야...]
“알겠습니다.”
이미 예상하고 있던 상황이어서 더 이상 안토니오는 그에 대해서 물음을 던지지 않았다.
[그리고 자네에게 안 좋은 소식을 전하게 되었어.]
“안 좋은 소식 말입니까.”
역시나 불안했던 느낌이 그대로 맞아 떨어지는 순간이었다.
[집행부가 움직였네.]
“집행부?”
[이번 주 중으로 수사팀이 꾸려 집행부장이 직접 한국으로 떠날 거야.]
“이유를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서민준과 내통하고 범죄를 도와준 혐의네.]
“그게 무슨...?”
어처구니없는 말에 안토니오의 인상이 찡그려졌다.
지금 국장이 자신에게 하는 말이 전혀 이해가 가질 않았다.
내통은 무엇이고 범죄를 도와주었다는 것은 또 뭐란 말인가.
그리고 집행부에서 직접 수사팀을 꾸려 자신을 구금하러 온다니 믿을 수가 없는 일이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카일러가 대통령을 찾아갔어. 서민준과 접촉을 한 것부터 시작해 프리먼이 왜 당했는지 대해서 의문점을 제시 했다더군. 어떻게 소리 소문 없이 실종이 되었는지. 그리고 자동차 폭발사고와 그동안의 일들에 대해서 전부다.]
“내가 서민준과 접촉을 한 것은 그를 우리 쪽으로 끌어 들이기 위해서이지 않습니까.”
[내가 지시를 했으니 당연한 일이지. 대통령 또한 알고 있는 사실이야. 하지만 지금 상황이 좋지가 않아. 언제 말을 맞추었는지 국가안보국에서 성명서를 제출했어.]
“안보국에서 말입니까.”
[그쪽 놈들이야 카일러와 같이 그들과 한배를 탄 이들이 잡고 있으니 같이 행동에 옮긴 것이겠지. 어쨌든 대통령은 물론이고 나 또한 난처하지 않을 수 없는 입장에 서게 되었어.]
“제가... 해야 할 행동이 무엇입니까.”
이렇게 전화를 직접 걸었다면 일단 뭔가 지시를 하기 위해서 그런 것이라는 걸 안토니오는 잘 알고 있었다.
[정권은 우리 쪽에서 쥐고 있다고 하지만 아직은 정면승부를 할 때가 아니야. 그들이 숨겨놓은 이빨을 들이미는 순간 이것도 한 순간에 무너지고 말 테지.]
CIA또한 국장인 메케인과 부국장인 카일러로 힘이 양분되어 있는 상황이었다.
거기다 국가안보국은 물론이고 이젠 FBI까지 내부가 흔들리고 있는 마당에서 쉽게 빌미를 주어선 안 되는 상황이었다.
대통령의 권한이 강하다고하나 지금까지 미국 내에서 그들이 쌓아올린 힘과 입지는 실로 방대하기 때문이었다.
쉽게 물러서지도 않을 것이고 물러날 이들도 아니었다.
[지금으로썬 섣불리 자네를 두둔 할 수가 없는 입장이야.]
“저들이 하라는 대로 따르라는 말씀이십니까.”
[잡혀들어 간다고 해도 언젠간 혐의에 대해서는 풀리게 될 거야. 내가 책임지고 빼낼 테니까. 하지만 그 기한에 대해서는 결코 짧지는 않을 거야.]
안토니오가 자신도 모르게 입술을 깨물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이건 완전히 팽 당하는 기분이었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자네를 물고 늘어질 줄은 몰랐네. 하지만 약속하겠네. 어떤 수를 쓰더라도 꼭 빼네 주겠다는 것을.]
상황실에서 커피잔을 들고 있는 안토니오의 얼굴은 펴질 줄을 몰랐다.
새롭게 집행부장에 올랐던 인물에 대해서 알아보니 브래이든이란 남자로 부국장인 카일러 국장의 지도하에 엘리트 코스를 밟고 올라선 인물이었다.
그런 자가 직접 수사팀을 꾸리고 이곳으로 온다는 것은 확실하게 하기 위해서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집행부장이 직접 온다는 것은 결코 쉽게 넘어가지 않겠다는 언포이기도 하였기 때문이었다.
‘대의를 위한 희생이란 말인가.’
국장과 통화를 했단 내용을 생각하는 안토니오는 상당히 속이 쓰라렸다.
확실히 지금의 상황에서 국장이 쉽게 자신을 두둔하고 나서지 못 한다는 것은 그도 알고 있다.
하지만 알고 있다고 해도 속이 쓰라리는 것은 어쩔 수가 없는 일이었다.
‘카일러 그자가 그저 날 구금만 할 리가 없다. 갖은 고문을 다 해서 거짓자백을 받은 후에 날 처넣어서 영원히 썩게 만들게 틀림없어.’
국장이 자신을 꼭 빼내겠다고 했고 그건 사실일 것이다.
하지만 그때가 되면 자신은 폐인이 되어 있을 것임은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그 또한 카일러가 얼마나 잔인한 성정의 남자인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병원 밥이 맛이 없니?”
걱정스런 표정으로 바라보는 어머니의 말에 지나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에요.”
“그런데 왜 그렇게 반에 반도 먹질 못하는 거야.”
반찬은 물론이고 밥이나 국 도한 양이 별로 준 것 같지도 않은 상황이었다.
매 식사를 이렇게 이어가니 어머니인 그녀의 입장으로서는 걱정이 되지 않을 수가 없는 일이었다.
그때 병실문이 열리며 정장차림의 민우가 안으로 들어섰다.
저녁시간대 였으니 아마도 퇴근을 하고 곧장 이리로 돌아온 것이 분명해 보였다.
“식사하고 있었구나.”
“애가 통 밥을 먹질 않는구나.
곁으로 다가온 민우를 향해 어머니인 최은숙이 걱정스럽다는 듯 말했다.
잠시 동안 지나의 모습을 바라보던 민우가 어머니를 향해 입을 열었다.
“어머니, 지나하고 둘이서 얘기 좀 나눠도 되겠습니까.”
“둘이서?”
의아한 표정으로 바라보던 최여사가 곧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무슨 얘기인지는 모르겠지만 지나 몸도 성치 않은데 오래 끌지는 말거라.”
“그럴게요.”
병실 문을 나서고 두 사람만 남게 되었을 때 민우가 의자를 가져다 침대 옆에 놔두고 몸을 앉혔다.
“세 숟갈 정도 밖에 먹질 않았네.”
남은 밥 양을 바라본 민우가 쓴웃음을 지으며 그리 말했다.
“입맛이 없어?”
“그냥... 잘 넘어가질 않아.”
어두운 표정의 지나의 얼굴에 민우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렇게 계속해서 식사를 하지 않으면 몸만 더 안 좋아질 뿐이야.”
“......”
“몸 추스르고 빨리 자리를 털고 일어나야지.”
“......”
대답이 없는 지나의 모습에 민우가 작게 한 숨을 내쉬었다.
지금 자신의 뭐라고 말을 한다고 해도 지나에게 와 닿지 않을 것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서민준 생각하는 거지.”
“......”
“네가 이렇게 된 것도 다 그놈 때문인데 아직도 그 녀석 생각하고 있는 거야?”
자신의 여동생이 왜 이렇게 힘들어야 하는지 민우는 이해 할 수가 없었다.
누구보다 당당하고 밝았던 아이가 왜 스스로 목숨을 끊어야 했는지 가슴이 답답하기만 했다.
남부러울 것 없이 커온 여동생이 왜 남자 하나 때문에 이렇게 비참해 저야 하는지 이해하고 싶지도 않았다.
“세상에 좋은 남자들 많아. 널 진심으로 사랑해주고 아껴 줄 수 있는 그런 남자들이 찾으면 얼마든지 있단 말이야.”
지나의 모습에 결국 참다 못 한 민우가 그렇게 말을 했다.
기적처럼 살아 돌아온 동생이 왜 이렇게 슬픔에 잠겨 있어야 하는지 가슴이 아프기만 했다.
“아버지하고 어머니가 얼마나 걱정을 하고 계시는지 너도 잘 알고 있잖아.”
“오빠... 희경이 언니 사랑해?”
“희경이?”
“언니 사랑해?”
재차 물어오는 지나의 말에 민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사랑해.”
“오빠가 언니를 사랑하는 것처럼... 나도 민준씨를 사랑해.”
“......”
“그가 웃으면 나도 웃음이 나오고, 그가 즐거우면 나도 즐거워. 생각하면 가슴이 설레고 마음이 두근거려. 그 사람만 보면 그래. 그 사람만 생각하면 그래. 나... 이런 거 처음이야. 이렇게 누굴 사랑해 본 적도 없고 가슴이 두근거려 본 적도 없어.”
“그건 아직 네가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을 해보지 못 해서 그런 거야. 이런 아픔이 있어야 다 성장을 하는 것처럼 찾아보면 좋은 남자는 얼마든지 만날 수 있어. 나도 희경이를 만나기 전까지 그랬으니까.”
“나도 그랬으면 좋겠어.”
지나가 민우의 말에 슬픈 목소리로 말했다.
“만약 그와 헤어지는 날이 오더라도 좋은 인상으로 남길 바랐어. 매달리가나 구차한 여자는 되고 싶은 마음은 없어.”
그렇게 말한 지나의 두 눈가가 촉촉이 젖어 들어갔다.
“하지만 막상 그런 일이 벌어지고 나니까 그렇게 되지가 않아. 그가 날 떠난다고 생각하니까 미칠 것만 같았어. 믿고 싶지도 않았고, 그가 날 떠났다고 생각하고 싶지도 않았어. 하지만 아무리 전화를 해도 받질 않아. 연락을 해도 그는 이제 내 전화를 받질 않아. 모든 걸 다 잃은 것 같이 가슴이 무너져 내리는 기분이었단 말이야.”
“지나야...”
“나 어떡하면 좋아?”
“......”
“그 사람 없으면 나 살 수 없을 거 같은데 나 어떻게 하면 좋아...?”
양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눈물을 쏟아내는 여동생의 모습에 민우는 주먹을 말아 쥐었다.
“그거 알아.”
“으흐흑...!”
“네가 이렇게 힘들어 할수록 더욱더 그 자식이 증오스러워 진다는 거.”
입술을 강하게 깨문 민우가 더 이상 지나가 우는 모습이 보기 힘들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고는 걸음을 옮겨 문 손 잡이를 잡았다.
“나 죽어.”
손잡이를 잡았던 민우의 움직임이 순간 멈추었다.
“그러니까 제발... 민준씨를 건드리지 말아줘.”
“......”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온 민우가 오른 손으로 양 눈을 가렸다.
너무나 분하고 울컥하는 마음에 눈에서 흘러나오는 눈물을 닦아내기 위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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