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78화 〉 278화 그가 전한 말
* * *
차를 끌고 도로를 달려가면서 이만석은 민우가 했던 말을 곰곰이 생각했다.
‘분명히 지나가 잘 못 되면 용서하지 않겠다고 했다.’
민우가 했던 말을 곰곰이 생각해보면 다행이 아직 살아 있다는 뜻이었다.
그렇다는 것은 어떻게 된 일인지는 몰라도 강에 뛰어 들었다는 지나를 구했다는 것이고, 생명에 얼마나 위독한지는 모르겠지만 아직 살아 있다는 말이었다.
그렇다면 어느 병원인지는 알 수 없지만 지금 지나가 있는 곳이 병원이라는 말이 되었다.
‘서둘러야 한다...’
지나가 어디병원에 이송되었을지 생각을 해보던 이만석은 일단 세진에서 운영하는 종합병원으로 향했다.
속도를 높여 서둘러 그곳으로 달려가 대충 차를 주차 시켜놓고 응급실 쪽으로 들어가 확인해 보았지만 아쉽게도 지나는 거기에 없었다.
그렇다면 이곳으로 이송되지 않고 근처의 좀 더 가까운 병원으로 갔다는 얘기였다.
다시 차를 몰고 가려던 이만석은 그 생각을 접어버리고 곧장 사람들이 없는 곳으로 향해 생각해둔 장소로 워프를 해버렸다.
그렇게 도착한 곳은 강남세종병원이었다.
서둘러 걸음을 옮겨 이만석은 응급실 쪽으로 향했고 거기에 상주해 있는 의사를 잡고 곧장 물어보았다.
“정지나라는 환자가 이곳으로 왔습니까.”
“갑자기 당신이 누군데 나에게..”
다짜고짜 물음을 던져오는 모습이 어이가 없었는지 그렇게 말했던 의사는 이만석의 눈빛과 마주한 순간 저도 모르게 말을 멈추고 말았다.
오금이 저릴 것 같은 그 차가운 시선에 기가 눌려버린 탓이었다.
“왔습니까, 안 왔습니까.”
“그 환자가 누구인지 알아야 제가..”
“강에 뛰어들었던 여자입니다.”
“강?”
강이라는 말에 반문을 했던 의사가 뭔가 떠올랐는지 입을 열었다.
“그런 환자라면 한 명 급하게 응급차에 실려 왔었습니다. 응급조치를 받고 지금 중환자실에 있는데... 그쪽이 찾고 있는 사람은 아니... 설마 찾고 있는 사람이 정석환 회장님의 여식입니까?”
말을 하다말고 의사의 얼굴에 놀라움이 일어났다.
지금 병원에서 화자 되고 있는 얘기가 있는데, 그 세진그룹의 여식이 지금 중태에 빠져있다는 것이 바로 그 얘기였다.
처음 정지나라는 이름에 다른 사름을 찾는 줄 알았는데, 말하다 보니까 딱 강에 뛰어 들어 실려 온 사람은 정석환 회장의 딸 한 명뿐이었다.
지금 그쪽의 조치로 인해 쉬쉬하는 분위기 이긴 하지만 병원에서 근무하는 사람들 중에 그 얘기를 하고 있지 않은 이들이 없었다.
그 유명한 세진그룹의 여식이 목숨을 끊으려고 했는데 놀라지 않을 사람이 없는 것이다.
다만 그쪽의 조치로 인해 대놓고 말을 하고 다니는 이들은 없었다.
“중환자실이 어딥니까?”
“지금 개인 중환자실에 머물고 있습니다. 지금 그쪽은 접근이 제한이 된 상황인지라 아무나 들어 갈 수 없을 텐데...”
“위치가 어딥니까.”
의사가 말해준 대로 이만석은 서둘러 응급실을 나와 복도를 지나 중환자실로 향했다.
중환자실 중에서도 개인 실이 따로 마련되어 있는 곳이 있었는데 주로 대기업 회장님들이나 정치인들이 이용하는 병실이었다.
병동에 들어선 이만석은 개인병실 쪽으로 걸음을 옮겨 향하니 그쪽에 정장 차림의 사내들이 안 쪽에 마련 된 병실엔 들어가지 못 하도록 몇 몇이 지키고 서있어 역시나 이만석이 나타나니 역시나 제지를 하고 나섰다.
“누구십니까?”
“비켜.”
“신분을 밝히셔야...”
다짜고짜 반말로 응대하는 모습에 기분이 상해 다시 엄포를 놓으려다 그대로 하던 말을 멈추고 말았다.
오싹!
등골이 서늘해지는 한기에 저도 모르게 몸을 움찔 하고 말았다.
‘무, 무슨 눈빛이...’
그건 그 뿐만이 아니라 그 옆에 서있던 사내들 또한 마찬가지여 있는데, 그 중에 두 명은 다리가 후들거리고 있었다.
몸이 경직되어 있는 그들을 지나쳐 들어간 이만석은 옆으로 복도를 꺾어 도니, 병실문 밖에 마련 된 의자에 앉아 있는 민우가 고개를 숙이고 있었고 옆에선 한 여자가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이쪽으로 다가오는 발소리에 고개를 들어 바라본 민우의 얼굴에 놀람이 스쳐 지나가더니 그대로 험악하게 변해버렸다.
“이 개새끼!”
그의 아내가 뭐라고 말릴 사이도 없이 자리에서 일어난 민우가 욕설을 내뱉으며 이만석에게 달려들어 그대로 주먹을 휘둘렀다.
퍼억!
빠르게 휘두른 주먹에 이만석은 쉽게 피할 수 있었으나 그대로 맞아주었다.
“네가 이곳에 왜 왔어?! 무슨 낯짝으로 얼굴을 들이민 거야!”
멱살을 잡은 채 악을 내지르는 민우 음성에 이만석의 고개를 바로하며 입을 열었다.
“지나는 저곳에 있겠지?”
“뭐?”
이만석의 말에 반문했던 민우가 입술을 깨물더니 그대로 다시 주먹을 휘둘렀다.
퍼억!
“개 같은 놈!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해! 죽여 버리겠어. 이 개새끼!”
악에 받친 민우가 사정없이 이만석의 얼굴에 주먹을 휘둘렀다.
그렇게 한 참을 주먹을 휘두르던 민우가 호흡을 고르며 잡고 있던 멱살을 놓았다.
“네놈을... 네놈을 지나와 만나게 하지 않았어도.... 그때 내가 확실히만 했어도......”
울분에 찬 눈빛으로 말을 내뱉은 민우가 눈에서 흘러내리는 눈물을 손으로 닦았다.
“미안하다.”
입술이 터져 흘러 나온 피를 이만석이 고개를 바로하며 닦아냈다.
“꺼져... 여긴 네놈이 있을 곳이 아니야.”
사납게 노려보며 말을 내뱉는 민우의 말에도 이만석은 움직이지 않았다.
“꺼지라고...!”
덜컥!
그때 병실 문이 열리며 두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한 명은 민우를 담은 정갈한 차림의 중년인이어고 다른 한 명은 미부인 이었는데, 얼굴 생김새가 지나와 닮아 있었다.
“딸을 보러왔나.”
정석환 회장이 이만석을 잠시 동안 바라보다니 닫혀 있던 입을 열었다.
“들어가봐.”
“아버지!”
민우가 놀란 표정으로 정석환 회장을 바라보았다.
“깨어날 수 있을지 장담 할 수 없다고 하더군... 어쩌면 이대로 보내야 할 수도 있겠지. 강에 빠지기 전 지나가던 여학생이 낌새를 느끼고 사전에 119에 전화를 걸어 제때 와서 찾은 것만 해도 다행이지.”
“......”
마치 다른 사람의 얘기를 하듯 차분하게 말하는 정석환 회장의 말에 이만석은 물론이고 민우도 뭐라 말을 하지 못 했다.
다만 그 옆에 있던 지나의 어머니가 눈물을 흘리며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나중에 얘기 하도록 하지.”
“알겠습니다.”
고개를 살짝 숙여 대답한 이만석이 그대로 병실 안으로 들어갔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민우가 정석환 회장을 향해 이해 할 수 없다는 듯 말했다.
“왜 저 자식을 들여보내 주는 겁니까?! 저놈 때문입니다! 저놈 때문에 지나가 저렇게 되었다구요!”
“다시는 깨어나지 못 할 수도 있다고 하지 않더냐. 그래도... 결국엔 보내 줄 수밖에 없는 상황이 오더라도 지나가 미련은 남지 않게 해줘야지.”
“아버지...”
정석환 회장이 고개를 돌려 잠시 병실 문을 바라보았다.
안으로 들어선 이만석은 넓직한 공간 안으로 또다시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내실의 문과 함께, 한 쪽 유리벽이 내부를 비추고 있었다.
유리벽의 안 쪽에는 하나의 침대와 산소호흡기와 생명유지 장치를 달고 잠자듯 누워 있는 지나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닫혀 있는 손잡이를 잡고 내실로 통하는 문을 연 이만석이 안으로 들어가 살며시 닫은 후 지나가 누워 있는 침대로 향했다.
심박 수가 표시되어 있는 그래프와 기계가 작동하는 작은 소리들이 일정하게 들려왔다.
얼굴엔 산소 호흡기를 달고 있었는데 눈을 감고 있는 모습을 보니 곤히 자고 있는 것만 같았다.
“왜 이런 짓을 저지른 거지.”
지나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던 이만석이 작게 입을 열었다.
“너 같은 여자가 왜 이런 미련한 행동을 한 거야.”
누구나 부러워하는 가정에서 태어 나고 자란 이 여자가 이런 행동을 저질렀다는 게 이만석은 찹찹하기만 했다.
손을 들어 조심스럽게 지나의 머리카락을 쓸어주었다.
곤히 잠들어 있는 것처럼 보이는 그녀의 모습을 바라보며 다시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내 생각이 틀렸던 모양이야.”
지금이라면 그래도 씁쓸하며 아플지언정 시간이 지나면 치유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더 이상 마음도 없는 이 여자를 데리고 있으면 안 될 것 같아 놓아주려 한 행동이었다.
하지만 그런 자신의 생각이 늦었다는 것을 알았다.
자신의 그런 행동이 이 여자에겐 아주 큰 상처가 되어 가슴을 후벼 팠던 것 같았다.
어떤 심정으로 전화를 걸었을지 알 것 같았다.
카페를 나서고 집으로 향하던 그 순간에도 전화는 쉴 새 없이 진동을 울렸다.
하지만 이만석은 절대로 그 전화를 받지 않았다.
헤어지기로 마음먹은 이상 미련을 주어선 안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 때문에 이대로 보낼 수는 없는 일이다.’
지나의 머리를 쓰다듬던 이만석이 손을 때어냈다.
그러고는 그의 몸속에 있는 마나의 고리를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후우웅!
순간 그 주변으로 옅은 바람이 맴돌기 시작했다.
그 직후 대기에 퍼져 있던 마나가 움직이더니 이만석을 손길에 따라 지나의 몸 주변으로 감싸갔다.
서클을 개방시켜 마나를 움직이기 시작한 이만석은 처음으로 살생이 아닌 꺼져가는 생명의 불씨를 살리기 위해 힘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개 같은 자식...’
누구 때문에 여동생인 지나가 저렇게 되었는데 당당히 얼굴을 들이밀다니, 민우는 생각만 하면 속이 타들어가는 것만 같았다.
아버지는 회사일 때문에 잠시 나갔고 병실 밖에선 어머니와 그의 아내, 그리고 민우 이렇게 세 명이서 지키고 있었던 것이다.
이만석이 나올 때 까지 두 사람의 시간을 주라고 하고 간 상황이어서 이렇게 복도에서 기다리고 있는 것이었다.
{와~! 오빠가 정말로 장가를 다 가네?!}
결혼식 당일 날 제대로 쫙 빼입은 민우는 거울 앞에 서 웃음을 짓고 있는 자신을 두고 놀리듯 말하는 지나의 말에 얼굴을 구겼었다.
{밖에 나가면 이 오빠와 식사자리 한 번 같이하려는 여식들이 얼마나 많은지 몰라?}
{그게 오빠가 잘나서겠어? 배경을 보고 그런 거지~!}
{나 정도 인물이면 미남 측에 들어가는 거지! 그리고 희경이가 괜히 내 프로 포즈를 받고 눈물을 흘렸겠어?!}
{언니가 이상한 게 분명해! 어떻게 오빠의 프로 포즈를 받고 눈물을 다 흘렸데?}
{너 나가 당장!}
그렇게 지나를 내보내고 다시 왁스로 머리 손질을 하던 민우는 뒤에서 문이 다시열리는 소리를 듣고 거울을 통해 바라보았다.
거기엔 슬쩍 얼굴을 들이민 지나가 웃음을 짓고 있었다.
{결혼 축하해!}
그러고는 문을 닫아 버리는데 그 행동에 민우가 피식 웃음을 지었다.
{저거 언제 철들라나 몰라...}
복도에 앉아 있던 민우는 또다시 그동안 지나와 티격태격 했던 게 머릿속에 하나 둘 떠올랐다.
오빠로써 좀 더 여동생을 챙겨야 했는데 그러질 못 했다는 게 미안했다.
회사일 핑계로 신경을 써주질 못 한 것 같아 가슴이 아팠다
그래도 하나 밖에 없는 여동생인데 그러질 못해서 너무나 속상했다.
어머니와 아내인 희경이가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장남인 자신도 거기에 따라 눈물을 흘리면 안 되지만 지나만 생각하면 계속 울컥했다.
‘오빠가 미안하다...’
결국에 또다시 눈에서 흘러나오는 눈물을 서둘러 손으로 닦아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닫혀 있던 병실 문이 열리더니 이만석이 모습을 드러냈다.
민우는 그런 이만석을 사납게 노려보았다.
지나의 어머니와 민우의 남편으로 보이는 두 사람에게 고개를 살짝 숙여 인사를 한 이만석이 몸을 돌려 걸음을 옮겼다.
“전화상으로 했던 내말 명심하는 게 좋아.”
걸음을 옮기던 이만석의 발걸음이 멈추었다.
하지만 고개는 돌리지 않은 채 여전히 앞을 바라보며 이만석이 닫혀 있던 입을 열었다.
“지나는 괜찮을 거야.”
“뭐라고?”
하지만 더 이상 이만석은 대답을 하지 않고 걸음을 옮겨 나아갈 뿐이었다.
자신을 발견하고 긴장 된 표정으로 서있는 경호원들을 스쳐 지나간 이만석은 그렇게 병원 밖으로 나왔다.
아무도 없는 곳으로 향해 워프를 하여 차로 이동해 시동을 켜고 몰고나왔다.
‘바보같이...’
한쪽의 마련 된 탁자에 놓아져 있는 팔찌가 이만석의 마음속에 남아있었다.
카페에서 나오기 전에 지나에게 돌려주었던 선물 받은 팔찌.
그것이 탁자에 놓여 있었던 것이다.
치료를 끝내고 마나를 걷어 들이기 전 이만석은 지나가 강에 뛰어 들었던 그 순간을 엿보았다.
자신 때문에 강에 뛰어 들었던 그녀의 행동을 모른 채 지나 갈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펼쳐진 그 순간의 기억 속에 존재하는 지나는 상당히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눈물을 흘리고 있었고 계속해서 자신을 찾았다.
막상 앞에서니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그녀를 떨리게 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젠 자신의 전화마져 받지 않는 이만석의 냉대가 그녀의 마음을 더욱더 비참하게 하여 가음을 후벼 팠던 것이다.
버림을 받았다는 충격이 그녀로 하여금 참기 힘든 슬픔을 몰고 온 것 같았다.
생각지도 못한 이별은 그녀가 견딜 수 없었던 것이다.
지갑과 폰을 가지런히 놔두었다.
차고 있던 액세서리 또한 빼버렸다.
그렇게 지나가 마지막에 품고 갔던 것은 자신의 팔목에 유일하게 차고 있는 이만석에게 선물해주었던 팔찌, 그것이 전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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