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75화 〉 275화 그가 전한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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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버지니아주 랭글리에 위치한 CIA본국의 부국장실에는 정갈한 인상의 50대 중반으로 보이는 남자가 불만이 가득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그의 앞에는 정장을 차려 입은 이들이 여러 명 앉아 있었는데, 이들 모두가 각 부서의 간부직을 겸하고 있고, 그 중에 한 명은 이번 달 들어 집행부의 책임을 지는 자리에 오른 인물도 있었다.
여기까지 부국장의 라인을 타고 올라선 이들이라 할 수가 있었다.
“지금 여기에 옷을 벗어야 할 사람들이 여러 명보여.”
마음에 들지 않는 다는 듯 자신의 눈치를 보고 앉아 있는 이들의 얼굴들을 하나하나 바라보았다.
이들 중에 자신에게 불똥이 튈까 노심초사 하는 이들이 많았다.
“알아서 잘 처리하겠다고 해놓고는 죽어버리고, 실종 되어 버리고, 무능함만 드러냈단 말이지.”
엔더슨의 얘기를 듣고 프리먼이 직접 자신이 가겠다고 자원했었다.
그리고 여기에 있는 이들 또한 그가 이라크에서 펼친 활약으로 환대를 했다.
그 정도의 인물이 직접 나서리라 생각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게 프리먼은 직접 이라크에서 작전을 펼칠 때 데리고 있었던 요원들을 포함해서 인원을 꾸려 한국으로 떠났다.
그 뿐만이 아니라 해결사들 중에서도 특급에 요하는 이들을 선발해 보냈는데 들려온 소식은 차량 폭발로 인한 전원 사망이었다.
이어서 펼친 작전들이 연달아 실패하고 마지막엔 직접 요원들을 이끌고 이만석을 처리하러갔던 프리먼도 실종되고 말았다.
“메케인 그자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겠나.”
이만석을 키로 이용해서 IS를 흔들어 보자던 그의 생각을 반하고 펼친 작전이었다.
이집트를 맡고 있던 엔더슨을 포함한 요원들이 여럿 죽어나갔으니, 그만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차원에서 결정을 내린 것이다.
하지만 실상은 엔더슨이 당하고 투랍 대통령이 물러나면서 이집트의 얻을 수 있는 지하자원을 포함해 막대한 경제적 이익을 손도 대보지 못 하고 물거품이 되어버린 것에 대한 보복이었다.
월가를 포함해 그를 뒤에서 받쳐 주고 있는 유대자본 세력들은 이만석의 목을 원하고 있었고 자신 또한 그러길 바랐다.
한데 이라크에서 큰 공적을 쌓아올리고 든든한 한 축으로 올라선 프리먼은 한국에서 뭐하나 제대로 해보지도 못 하고 사고에, 실종, 그리고 실패를 거듭하더니 스스로 종적을 감추고 말았다.
실종으로 결론을 내긴 했지만 지금가지 찾지 못한 이들을 보면 그 또한 당했다고 봐야 옮았다.
“그렇게 눈치만 보지 말고 뭐라 말을 해봐.”
이번 달에 드디어 집행부장에 올라선 40대 초반의 금태 안경을 쓰고 있는 브래이든이란 이름의 남자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이 일은 프리먼의 잘 못만 있는 게 아닙니다.”
“그럼?”
“엄밀히 따지면 한국을 책임지고 있는 이는 안토니오이니 그 또한 이번 일에 대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식으로 말인가.”
“자체에서 정한 행동지침에도 분명히 나와 있지 않습니까. 본국에서 부국장급 이상의 책임자가 인사단행을 하여 파견한 요원들에 한해서 필요 하에 따라 작전이 필요한 지원을 아끼지 않아야 한다는 걸 말입니다.”
“그렇긴 하지.”
분명히 그런 행동지침이 마련되어 있기는 했다.
본국에서 파견했다고 다 그런 것이 아니라 단 부국장급 이상의 책임자가 직접 인사를 통해 파견한 요원들에 한해서라는 게 정해져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프리먼은 부국장인 그가 직접 뽑아서 보낸 인물이었고, 당연히 그에 맞는 지원을 받을 수가 이었다.
“프리먼님의 책임도 없는 건 아니지만, 이런 참담한 결과가 나온 건 안토니오 그자가 제대로 된 지원을 해주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아주 참담한 일이야...”
CIA가 창설되고 이렇게 뭐하나 일을 제대로 해보지도 못 하고 요원들이 죽고 실종 된 일은 처음이었다.
이일로 인해 카일러 그의 자존심은 구겨질 대로 구겨진 상황이고, 그를 뒤에서 힘을 실어주고 있는 이들에게서도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건 집행부가 나서야 할 일이라 생각합니다.”
“프리먼은 스스로 죽음을 통해 책임을 어느 정도 짊어지고 있으니 안토니오에게도 그만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말이로군.”
“필시 서민준 그자와 뭔가 내막이 있었던 게 아닐까요?”
그때 브래이든의 옆에 앉아 있던 정보부 소속의 처진 볼 살의 암갈색 눈동자의 두둑한 뱃살의 40대 후반의 윌리엄이 진중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내막?”
“그렇지 않다면 어찌 이라크에서도 혁혁한 공적을 쌓아올린 프리먼님이 그렇게 당했겠습니까. 필시 키를 이용하기 위한 국장측에서 뭔가 접촉을 시도 했을 것임이 분명하고 그건 보지 않아도 알 수가 있는 일입니다.”
“그러니까 그 내막은 들어보지 않아도 오고간 얘기가 있었을 것이란 말이군.”
“그렇지요.”
메케인 국장은 이만석을 키로 이용하려고 한다는 걸 여기에 있는 이들 중에 모르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당연히 안토니오를 통해 회유하기 위한 접촉을 시도 했을 것이 분명했고 어떤 대화를 나누었는지 알 필요는 없었다.
“안토니오 그가 범죄자와 내통을 하고 있었다니......”
“이건 하나의 지부를 이끄는 책임자로써 아주 큰 범죄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당장 구금을 해야 합니다.”
“조직을 위해서도 집행부를 직접 이끌게 된 책임자으로써 가만히 있을 수가 없는 일인 듯합니다.”
“브래이든... 자네가 수사팀을 꾸리도록 해. 지부를 책임지는 자리에 있는 이가 악질 범죄자와 내통을 한다는 것 자체가 미국을 대표하는 정보국으로써 있을 수 없는 일이지.”
“당장 수사팀을 꾸리도록 하겠습니다.”
안토니오가 이만석과 만나서 무엇을 얘기 했는지 알필요는 없었다.
다만 그가 접촉을 해서 대화를 나누었다는 것, 그게 중요한 일이었다.
이미 안토니오에 대한 이들의 결론은 범죄자와 내통하여 프리먼에게 해를 입혔다는 것으로좁혀져 있었다.
“집을 나가겠다고?”
윤정호 의원이 놀란 표정으로 하란이를 바라보았다.
“네. 하지만 아버지가 생각하는 그런 것과는 다르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되요.”
천처히 고개를 끄덕이며 마음을 가라앉힌 윤정호 의원이 다시 물음을 던졌다.
“서민준 그 친구 때문이냐?”
“맞아요.”
“갑자기 왜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 말해줄 수 있겠느냐.”
고개를 끄덕인 하란은 이만석의 집에서 있었던 일을 간략하게 말해주었다.
그렇게 약 5분 정도의 시간동안 얘기를 들은 후 윤정호 의원이 쓴웃음을 지었다.
“그래서 거기서 함께 지내고 싶다 이 말이구나?”
“네.”
바라보는 눈동자는 또렷해 불안감이나 우울감, 그리고 슬픈 감정이나 그런 낯빛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어제 그렇게 눈물을 흘리며 슬퍼 보이는 모습과는 확연한 차이를 보이는 모습이었다.
‘녀석... 그렇게 강하게 마음을 먹어야한다.’
아무리 하란이가 생각을 고쳐먹고 어제 밤 이만석을 다시 만나러 갔다고 해도 윤정호 의원은 걱정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차이링이 거기서 지낸 상황과 그녀를 마주 하고도 딸이 강하게 마음을 잡을 수 있을까 내심 불안했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 고집이 엿보이는 얼굴을 보니 괜한 걱정이었다는 걸 깨달은 윤정호 의원이었다.
“알았다. 네가 그렇게 말을 하는데 아버지가 된 입장에서 말릴 수는 없겠지.”
“정말인가요?”
“오냐... 단 서민준 그 친구를 잡으러 갔으면 확실히 잡아야한다. 중간에 포기하고 돌아서면 애비가 용서하지 않아.”
“네, 그럴게요.”
“일단 급하게 필요한 옷가지나 짐들을 옮기는 것으로부터 시작 하자. 가구는 침대부터 시작해서 새 걸로 사서 들이는 게 좋을 거야. 이번주 중으로 사람을 붙여 줄 테니까 네 마음에 드는 걸로 직접 골라봐라.”
“저 오늘부터 들어갈 거예요.”
“오늘부터?”
“네... 그렇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서요.”
하란이의 머릿속에 자신을 바라보며 재밌다는 듯 웃음 짓는 차이링의 얼굴이 떠올랐다.
“잠자리가 불편하지 않겠느냐?”
“괜찮아요. 그 정도도 못 참으면서 어떻게 오빠를 사랑 할 수 있겠어요.”
“네 생각이 그렇다면 그렇게 해라.”
따뜻한 미소를 짓는 모습에 하란이 따라 웃어주었다.
“고마워요. 그리고 미안해요 아버지.”
딸이 왜 자신에게 사과를 하는지 윤정호 의원도 잘 아고 있었다.
‘미안한건 나란다.’
하지만 오히려 하란이보다 미안한 감정을 느끼는 건 윤정호 의원이 더 컸다.
“너 어딜 가는데 그렇게 차려입고 나왔어?”
새해를 맞아 제대로 쉬지도 못 하고 지방 출장을 다녀온 민우가 위층으로 올라가다 말고 계단을 타고 내려오는 지나를 보며 의아한 표정으로 물음을 던졌다.
검은색 스타킹에다 블랙 컬의 스커트를 입고 있는 지나는 흰색 니트에 어깨를 감싼 실버 오즈세컨드 코트를 가볍게 걸쳐 차려입어 도도한 도시녀의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모습이었다.
스타킹에 부드러운 재질이라 빛에 따라 허벅지의 살색이 은은하게 빛 춰 보였고, 다리의 라인이 살아나는 것은 물론 스커트 길이 또한 무릎보다 짧아서 스타킹은 신지 않았다면 조금만 잘못 앉아도 아슬아슬하게 팬티가 다 보일 것만 같은 길이었다.
어깨 바로 아래까지 내려오는 하늘거리는 웨이브 펌은 정갈했고 염색을 한 갈색의 머릿결은 빛을 받아 생기를 더했다.
귀걸이나 화장은 외출할 때 기본으로 하고 나가는 지나였으니, 차림에다 모습을 본건데 누군가를 만나러 가는 것이 분명해 보였다.
그리고 그 누군가는 말하지 않아도 민우는 단박에 알 수가 있었다.
“보아하니 서민준 그 친구 만나러 가는 모양이지?”
“응... 맞아.”
순순히 인정하는 모습에 민우가 다시 지나의 위아래를 훑어보더니 눈살을 찌푸렸다.
“눈에 들려고 아주 작정을 했구만?”
“당연하지~ 내가 민준씨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이제 오빠도 잘 알잖아?”
“아버지는?”
“서재에 계셔.”
“아니... 그게 아니라. 너 그 친구 만나러 가는 거 알고 있냐고.”
“말 안했으니 모를걸? 하지만 상관없어. 민준씨 만나러 가는데 아버지가 뭐라 하진 않을 거야. 그럼 나갈게 오빠.”
그러더니 뭐라 말을 할 틈도 없이 그대로 계단을 내려가 버리는 지나의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다 서둘러 걸음을 옮겨 계단을 내려와 서재로 향했다.
똑똑!
“저 민우입니다.”
목청을 가다듬고 노크를 한 후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다.
신문을 읽고 있는 아버지의 모습이 민우의 눈에 들어왔다.
조심스럽게 안으로 들어와 문을 닫고 다가가자 들고 있던 신문을 반으로 접어 탁자에 내려놓았다.
“갔던 일을 잘 마무리 지었어?”
“예... 일단 추가 부품생산에 대해서 좀 더 시기를 조정을 할 수 있게 상의를 했습니다. 좀 빠듯해 질 것 같긴 하지만 거래처에서 원하는 대로 맞춰 줄 수는 있을 것 같으니 나쁜 상황은 아닙니다.”
“수고했어.”
민우는 이 말이 아버지가 해주는 최고의 칭찬이라는 걸 잘 알고 저도 모르게 웃음이 지어졌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곧 조심스럽게 입을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런데 조금 전에 지나가 외출을 했습니다.”
“외출?”
“그게 서민준을 만나러 간다고......”
“그래?”
“예.”
“음...”
고개를 끄덕이는 아버지의 모습에 민우가 잠시 동안 서서 기다렸다.
그렇게 얼마나 기다렸을까.
드디어 닫쳐 있던 정석환 회장의 입이 다시 열렸다.
“지방 출장 다녀온다고 피곤 할 텐데 올라가서 쉬어.”
“예?”
“잠도 제대로 못 잤을거 아니야.”
“......”
잠시 눈을 깜박이며 바라보던 민우가 곧 인사를 올린 후 서재를 나와 조용히 문을 닫았다.
“내가 이상한건가.”
왠지 자신만 바보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느껴지는 민우였다.
현관문을 나선 지나가 그대로 주차장으로 향해 자신의 애마인 노란색 BMW Z4의 운전석에 올라탔다.
시동을 키고 선글라스를 꺼내어 쓴 지나가 그렇게 차를 몰고 주차장을 나서기 전, 이어폰을 귀에 꼽고는 저장되어 있는 이만석의 폰 단축번호를 누른 후 빠져나갔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신호음이 여섯 번째 정도 들렸을 때 그녀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 남자의 음성이 들려왔다.
[무슨 일입니까?]
“꼭 무슨 일이 있어야만 전화를 하나요? 그보다 민준씨... 지금 집에 있어요?”
[네, 그렇습니다만.]
“잘 됐네요. 저 지금 백화점에 가는 길이거든요. 혹시 필요한 거 있어요?”
[그건 왜 물어 보는 겁니까.]
“새로 이사한 집 집들이 하는데 빈손으로 갈 수 없잖아요. 새해도 밝았고 이사를 한 후에 한 번도 가질 못 했는데 오늘 찾아가려고 그래요. 혹시 뭐 필요 한 거 있어요?”
갑자기 이어폰에서 아무런 말이 들려오질 않자 지나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민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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