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7화 〉 267화 새해
* * *
[아무런 흔적도 없습니다.]
“차량이 섰던 자국이나 그런 것도 남겨있지 않다고?”
스피커를 통해 들려오는 요원을 목소리에 안토니오가 다시 그렇게 물었다.
[예, 주변을 훑었지만 별다른 흔적도 찾을 수 없습니다. 이곳에 차량이 있었다는 바퀴자국도 없는 상황입니다.]
생각에 고심을 하는 듯 하던 안토니오가 결정을 내렸는지 잠시간의 시간이 지나고 다시 닫혀 있던 입을 열었다.
“놓친 것이 없는지 한 번만 더 살펴보고 이상이 없다면 그대로 복귀하도록 해.”
[알겠습니다.]
그렇게 통신 연락을 끝낸 안토니오가 품에서 담배갑을 꺼내더니 하나를 입에 물고는 라이터로 불을 붙였다.
“후우!”
아무리 생각을 해도 이해 할 수가 없었다.
마지막으로 프리먼과 연락을 주고받았던 위치가 바로 저곳이었다.
그래도 혹시 모를 일에 대비해 위치정도는 파악하고 있었던 것이다.
한데 그곳에 아무런 흔적도 없다고 한다.
만약 그곳에 있었다는 것을 몰랐다면 다른 쪽으로 반향을 접고 생각을 해볼 수 있었겠지만, 저곳에 프리먼이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는 그로써는 이해 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아무런 흔적도 없다니, 그게 말이 되는 것일까.’
평평한 시멘트 바닥도 아니고 자갈과 흑으로 인해 분명어딘 가엔 자국이 남았을 것이었다.
발자국도 찍혀 나오는 마당에 바퀴자국이 없다는 건 말이 안 되는 상황이었다.
분명히 저곳에 프리먼이 갔었다.
하지만 그 장소에 보낸 요원 두 명은 아무런 흔적도 찾을 수 없다고 했다.
‘설마 흔적을 지운건...?’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던 안토니오였지만, 곧 고개를 가로저으며 자신의 생각을 부정했다.
일일이 그 흔적들을 모두 찾아서 지울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설령 사건현장을 지운다는 생각으로 그랬을 수도 있지만 그것도 좀 앞서 나간 것 같았다.
그리고 그 많은 흔적들을 어떻게 찾아 없앤단 말인가.
더군다나 그러려면 프리먼이 데리고 갔던 요원들하고 모두 당했어야 한다는 건데, 그렇게 완벽히 처리를 하고 흔적까지 꼼꼼하게 찾아서 지운다는 것은 좀 과하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프리먼이 실종이 된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해도 프리먼과 그가 데리고 간 요원들, 그리고 차량 세 대가 없어진 것은 사실이었다.
아무런 흔적도 찾을 수가 없고 위치를 추적하려해도 잡히지가 않는다.
‘이걸로 두 번째.’
저택으로 쳐들어갔던 요원들 중에 미쳐서 돌아온 데이빗 말고는 나머지 인원들은 깔끔하게 실종이 되어 버렸다.
물론 그들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 알아 낼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아니지... 프리먼이 오기 전에 사라진 애들을 생각하면 세 번째야.’
프리먼이 오기 전에 한스 들이 실종 되어서 찾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미 그들의 죽음이 기정사실화되어가고 있었지만, 시신조차 찾지 못한 것은 확실히 좋지 않은 일이었다.
‘당한 것이 분명하다.’
안토니오는 프리먼 일행들이 당했다고 생각했다.
그들이 중무장한 상태로 쳐들어갔다고 하지만, 이렇게 사라져버린 마당에 찾을 방도가 없다면 이만석에게 당했다고 봐야했다.
이게 처음이면 다른 쪽으로 생각을 해볼 수 있겠지만, 앞서 이랬단 사례들이 이미 존재하고 있는 마당인지라, 다른 쪽으로 생각하는 것 자체가 힘들었다.
거기다 모두 이만석과 관련 된 일이었다.
‘문제가 심각하군.’
상황이 그렇게 되자 안토니오는 이만석에 대한 생각을 완전히 바꾸어야 할 것 같았다.
중무장한 요원들을 이끌고 간 프리먼이 소리 소문 없이 실종이 되었고, 거기에 이만석의 소행이 맞다면 확실히 그렇게 깔끔하게 처리 할 능력을 갖추었다는 반증이었다.
‘그자의 주변에 이런 일에 능한 전문가들이 있었던가.’
그러고 보면 없을 것이라 단정 짓기도 힘들었다.
그자가 그동안 활동하던 모습을 보면 일반적인 시선으로 바라봐선 안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대놓고 통제실에 처들어와 총으로 갈겨버리고 협박한 후 돌아간 놈은 이만석이 처음이었다.
지금까지 그런 대범한 행동을 한 사람도 없었고,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정상적인 이라면 불가능 했다.
‘그 말이 확실히 겁주려는 협박만이 아니었던 모양이군.’
살고 싶으면 허튼 행동 벌이지 말라던 이만석의 말.
프리먼이 실종되고 나서보니 확실히 그 의미가 와 닿는 안토니오였다.
‘어디서 저런 자가 나타난 것인가.’
그의 옛날 행적들을 보면 도대체 무얼 하고 지냈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에 대한 정보는 일성회벌어진 사건에서부터 시작 되었다.
그 전의 일은 하나도 드러나는 게 없었던 것이다.
별장 주변에 접근을 해도 되는지 물어왔던 요원들에게 안토니오는 거기까지 가지 말라고 했었다.
거리를 두고 살펴 보면 만약 그곳에 이만석이 있어도 들킬 염려는 없겠지만, 뭔가 불길한 기분이 들었던 것이다.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샅샅이 살펴봐도 나오는 것이 없을 것이라는 걸 안토니오는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확실히 해두는 것도 나쁘지는 않은 일이니 그렇게 일러두었었다.
‘새해첫날부터 쉬기는 글러먹었어.’
아무래도 오늘은 이곳에서 밤을 새야 할 것 같았다.
다음날 아침.
첫 새해가 떠오른 태양을 테라스 쪽에서 올려다보고 있던 이만석의 허리를 등 뒤에서 차이링이 살며시 껴안았다.
“새해 첫 해를 보는 기분이 어때?”
“새벽에 감회를 다 느껴서인지 별 감흥은 없어.”
“흐응~ 기운을 다 뺀 게 아니고?”
허리를 끌어안고 있는 이만석의 등에 머리를 살며시 기대고 있던 차이링이 다시 손을 풀면서 말했다.
“떡국 다 끓였으니까 들어와.”
걸음을 옮겨 차이링이 들어가고 나서도 다시 잠시 동안 태양을 올려다보던 이만석이 몸을 돌려 안으로 들어섰다.
식탁으로 다가가니 차이링이 그릇에 국자로 떡국을 덜고 있었다.
계란도 풀고 잘게 파도 썰어 넣었는데 보기엔 하얀 국물도 잘 우러나온 것이 나빠 보이진 않았다.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떡국을 숟가락으로 떠먹은 이만석은 퍼지지도 않고 쫄깃한 식감이 괜찮았다.
간도 짜지 않고 적당해 첫 솜씨치고 나쁘지 않았다.
“먹을 만해?”
“응.”
“아직 냄비에 많으니까 더 먹고 싶으면 말해.”
두 사람이 먹는 것뿐이지만 차이링은 생각 외로 떡국을 좀 많이 끓인 것 같았다.
“말하지 않아도 더 먹어야 할 판이야.”
“좀 많이 끓였나?”
4인 가족이 식탁에 앉아서 먹어도 더 먹을 수 있을 정도로 충분한 양이었지만, 이만석은 구지 그 얘기는 고개를 한 번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래도 당신이 먹어 줄 테니까 상관없겠지?”
슬쩍 차이링의 그릇을 보니 1인분도 안 되어 보일 정도의 양이었다.
이만석의 시선에 차이링이 다시 입을 열었다.
“나 몸매관리 하잖아. 당신도 알고 있는지 몰라도 떡살은 잘 빠지지도 않는다고 하니까 조심해야지.”
졌다는 듯 고개를 가로젓는 이만석을 차이링이 미소를 지으며 먹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렇게 결국 이만석은 떡 국을 2인분도 너끈히 담을 수 있을 만한 그릇에다 가득 채워서 세 그릇이나 먹었다.
그 모습에 차이링이 아주 행복해했다는 것은 비밀도 아니었다.
새해 첫날의 평화로운 한때를 보낸 후 이만석은 그렇게 오후가 되어 서야 집으로 돌아왔다.
따로 짐정리를 할 것도 없는 상황이라 샤워 실에 들어가 온탕에 들어가 몸 좀 녹인 후 편한 복장으로 옷을 갈아입고 나왔다.
머리를 닦으며 안방으로 향하던 이만석은 문을 열고나서는 차이링이 눈에 들어왔다.
“마침 샤워 다했나보네?”
“하려고?”
“응... 집에 돌아왔으니 노곤하게 몸 좀 녹여야하지 않겠어?”
그리곤 샤워실로 향하는 차이링을 뒤로하고 방으로 들어온 이만석이 헤어드라이기로 머리를 말렸다.
지이잉!
그때 진동으로 해놨던 폰 벨소리가 울리자 확인을 하곤 통화 버튼을 눌렀다.
[새해 복 많이 받아 오빠~!]
“새벽에도 그 말 한 것 같은데?”
[새벽에 한 거랑 오늘 말하는 건 다른 거야~]
“그래?”
[지금 뭐하고 있어?]
“샤워 끝내고 머리 말리는 중이야.”
[문자로 보낸 것 보다 빨리 도착했나보네?]
“그런 셈이지.”
[잘 됐다.]
“잘 되다니?”
하란이의 말에 의아한 듯 이만석이 반문을 했다.
[나 지금 오빠집 근처야. 조금만 더 가면 앞에 도착 할 거 같아.]
“뭐?”
생각지도 못한 말에 이만석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아! 다왔다! 담장 너머에 큰 소나무가 있는 집이 오빠가 사는 집 맞지?]
“......”
[나 집 앞에서 기다릴 테니까 마중 나와 줘, 오빠.]
그리곤 통화를 끊어 버리는데 이만석은 생각지 못 한일에 잠시 난처한 기색을 지었다가 한 숨을 내쉬었다.
“계속해서 숨길 순 없으니까....”
걸어둔 코트를 걸치고 그렇게 안방 문을 열고 나섰다.
“데려다 줘서 고마워요.”
“아닙니다, 아가씨. 나중에 돌아갈 때 연락 주시면 바로 데리러 오겠습니다.”
“네 그럴게요. 조심해서 가세요.”
검은색 그랜저 차량을 그렇게 떠나보내고 혼자 남게 된 하란이가 포장이 되어 있는 커다란 과일바구니를 대문 옆에 놔두고 양손을 모아 입김을 불었다.
“전에 이사한 집이 여기구나.”
전에 살던 오피스텔에도 가보질 못 했고, 이사를 하고 집들이도 못 했는데, 새해를 맞아서 들르지 않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물론 하란이 또한 사는 집도 상당히 으리으리한 고급 저택이었지만, 이만석이 사는 집을 얘기 말고 직접 보는 건 처음이었으니 가슴이 두근거렸다.
“오빠가 좋아해 줬으면 좋겠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