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4화 〉 264화 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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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사다난 올해가 지나가고 드디어 새해의 신년의 달이 다가왔다.
방송을 통해 울려나오는 제야의 종소리는 많은 고통과 기쁨, 그리고 추억과 일들을 가슴 한 켠에 묻어두고, 새 마음 새 뜻으로 새 미래를 개척해나가는 많은 이들의 소망과 마음을 담고 그렇게 세상을 향해 크게 울려 퍼졌다.
비록 별장에 와서 제야의 종소리는 티비를 통해 보게 되었지만 차이링의 얼굴은 크게 아쉬움이 엿보이진 않았다.
“드디어 새해네...?”
“이렇게 조금전 까지의 일도 작년이 되어버린거군.”
“감회가 새로워?”
제야의 종을 치고 있는 방송을 보고 있는 이만석을 향해 차이링이 그렇게 물어왔다.
“그렇지... 많은 일들이 있었으니까.”
그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이만석은 정말로 이젠 작년의 일이 되어 버린 일들이 머릿속에 빠르게 스치듯 떠오르며 지나갔다.
작년은 정말로 이만석에게 무엇보다 특별한 날들이었다.
그의 인생이 완전히 바뀌어 버린 날들이기도 하고 어떤 날 보다도 사건사고가 있었던 날들이었으니까 말이다.
‘어떻게 보면 지금도 도저히 나에게 일어난 일이 현실인지 믿을 수가 없어.’
그는 밑바닥 인생을 전전하며 살아가던 평범한 중년 아저씨였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빌어먹으며 겨우 살아가다가 암 선고를 받고 죽음을 결심하게 되었다.
차가운 강물 속에 몸을 던져 정신을 잃었다가 다시 눈을 떴을 땐 그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어떻게 자신에게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알 수 없었지만 어안이 벙벙했던 그는 시험 삼아 머릿속에 있는 마법을 시전 해 보았고, 그대로 이루어지는 것을 보고 경악하며 놀라자빠졌다.
온라인게임이나 환타지영화, 그리고 소설에서나 봤을 법한 그런 마법들이 실제로 존재 할 수 있다는 것도 놀라웠고, 그걸 자신이 사용하게 되었다는 것도 너무나 놀라운 일이었다.
머릿속엔 무수한 마법공식들이 들어있었고 그것들을 다 사용 할 수 있는 힘또한 자신에게 충만했던 것이다.
몸속에 존재하는 서클의 고리들의 숫자는 정확히 9개여서, 거기서 나오는 충만한 기운들이 얼마나 어마어마한지 현실로 와닿지 않을 정도였다.
그렇게 놀랐던 것도 잠시, 새롭게 인생을 시작하게 된 자신은 너무나 기분이 좋아 덩실덩실 춤을 출 정도로 이 힘을 어떻게 사용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도 못 했다.
그저 조폭들이 운영할 법한 도박장을 털어서 자루에 돈을 챙기고 그걸로 탱자탱자 놀고 쓰는 데에 혈안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태어나서 그렇게 돈을 물 쓰듯 써본 적도 처음이었던지라 기분 좋게 놀아본 것도 정말로 오랜만이었다.
그러다 하란이를 만나게 되었고 일성회와 엮이게 되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자신이 돈을 훔쳤던 도박장을 운영하던 곳이 일성회였다는 것을 알았을 때는 좀 우스웠지만 이것도 인연이려나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게 하란이어에 이에 일성회 그리고 삼합회와 엮이게 되었고 나중에 가선 야마구찌회까지 마주하게 되었다.
그런 갈등을 겪다가 삼합회의 지부장이었던 차이링을 마주했고 결국엔 납치를 했다가 이런 상황까지 오게 된 것이다.
그렇게 지내고 일을 겪다보니 일성회의 후계자 자리까지 꿰차게 되었고 나중에 가서 지나라는 여자와도 엮이게 되어 생각해보면 참 우스운 상황이었다.
세 여자 모두 보통의 내력을 가진 이들이 아니었으니 그런 것이다.
이집트에 가서 벌일 일들을 생각하면 확실히 더 많은 사건사고들이 있었던 지라 작년은 이만석에게 참으로 특별한 한해였다.
길게 갈 필요 없이 몇 시간 전으로만 가도 작은 소란이 있었으니 확실히 보통의 한 해를 보낸 건 아니었다.
‘올해도 조용히 지나가진 않겠지만.’
그런 한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게 되었지만 올해라고 작년과 다르게 조용히 흘러갈 것이라 보지 않았다.
아직 해야 할 일도 많았고 또 어떤 일들이 벌어질지 알 수 없었지만 그렇게 평범하게 보낼 것 같지는 않다는 게 자신의 생각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만석은 은근히 그런 일들을 귀찮아하기보단 즐기고 있는 입장이었다.
옛날의 자신이었으면 꿈도 꾸지 못 할 생각이었고 그런 생각을 한다는 것 자체가 스스로도 놀랄 만큼 많이 변했다는 증거였다.
처음 사람의 목숨을 취할 때는 상당히 꺼림칙했고 솔직히 말해 두려웠었다.
하지만 지금은 전혀 그런것 없이 적이라 판명되면 손을 쓰는 것에 망설임이 없어져버렸다.
행동거지 또한 헤실거리며 웃던 것이 점차 사라졌고 말수도 옛날과 비교하면 줄어들었다.
그때는 실없는 농담도 자주했고 조금만 기분이 좋아도 헤실 거리며 껄껄 웃었고, 주최하지 못 할 정도가 되면 덩실덩실 돌아다니며 춤까지 췄으니, 지금의 자신은 생각 할 수도 없는 행동들이었다.
마치 다른 사람이 되었다고 해도 될 정도로 그의 성격은 차갑고 냉정하게 변해버렸다.
환경이 그리 만드는 것인지, 아니면 죽었다 살아난 순간부터 그렇게 달라질 운명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만석은 서민준으로 살아가고 있다고 하더라도 자신의 본래 이름인 이만석은 절대 잊지 않고 있었다.
그게 스스로 괴물이라고 생각하며 더 이상 인간이 아니라는 혼란을 심하게 겪었을 때 못 났던 자신의 옛 생이었지만, 조금이라도 정체성에 대해서 되돌아 볼 수 있게 해준 이름이었기 때문이었다.
아직도 자신이 지금도 사람인가에 대해서는 단정 지을 수 없고 혼란이 정리가 된 것은 아니지만, 최대한 그에 대한 생각을 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버린 지금의 자신을 보고 알려줘도 누가 이만석이라고 생각하고 믿을 수가 있을까.
스스로도 한 번씩 그때의 자신과 지금의 자신이 같은 사람인가에 대해서 생각을 해볼 정도였다고 해도, 그런다고 답이 나오는 것이 아니어서 스스로 그런 쪽으로 생각하지 않으려 노력을 했다.
“나도... 작년 한해는 절대 잊을 수 없을거야.”
생각에 잠겨 있던 이만석의 귀에 차이링의 음성이 들려왔다.
“오랫동안 내 생을 받쳐 몸담았던 삼합회를 떠나게 된 년도이니까.”
반반한 외모덕분에 여리디여린 소녀였던 그녀는, 사회의 어두운 면을 일찍 알게 돼 그렇게 갖은 고통에 시달리다가 낯 선 남자들의 손에 팔려가면서 눈물을 삼켜야했다.
그렇게 시창 가에 팔려가 끔찍한 나날들이 계속해서 이어 질 뻔했던 상황에서 십령방주 중에 한 명이었던 장차오의 눈에 띄어 창녀가 되는 것은 면하게 되었다.
자신에게 찾아온 행운을 놓치지 않기 위해 악착같이 노력했고, 경쟁자들을 밀어내고 올라선 간부의 자리에도 안주하지 않으며 한발 더 나아가 드디어 지부장이라는 조직을 이끄는 핵심간부의 위치에 까지 올라서게 되었다.
그렇게 죽을 만큼 노력해서 올라온 모든 것을 잃게 되었던 순간이어서 그녀에겐 잊을 수 없는 일들 중에 하나였다.
더불어 또다시 장차오를 만났을 때처럼 새로운 인생을 맞이하게 된 전환점이 되는 순간이기도 했다.
지금은 삼합회가 아닌 일성회를 위해 일하고 있는 그녀였지만 불만이나 그런 것은 없었다.
삽합회에서의 그녀의 능력을 인정해 준 것도 있었고 그만큼 대접도 받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쩌면 지금에 이르러선 과분할 정도였으니 불만이 있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런 것들보다도 무엇보다 차이링이 작년 한 해를 잊을 수 없는 것은 바로 옆에 안아 있는 이만석 때문이었다.
이 남자를 알게 된 해이기도 했으니 절대 잊을 수가 없는 한 해였다.
‘하지만 역시 무엇보다 당신 때문에 잊을 수 없는 게 가장 클 거야.’
속으로 그렇게 말하는 차이링을 향해 이만석이 쓴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아직도 나에게 복수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복수?”
“시간이 지나면서 괜찮아지긴 했지만 처음 나에게 잡혀와 바라보던 그 표독스러운 눈빛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거든.”
“흐응~ 그걸 아직도 가슴에 담아두고 있었나 보네?”
“당신이라는 여자가 어디 보통 여자여야 말이지.”
확실히 그때 정신을 잃고 깨어나 팔이 묶인 것에 당황했다가 납치를 당했다는 것을 알았을 땐 이만석에 대한 분노가 상당했었다.
10년이 걸려도 그에게 꼭 되갚아 주고 말겠다는 생각을 고씹었고 마음에 담아 두었었다.
물론 이만석의 말처럼 시간이 지나면서 그건 속으로만 담아두고 있을 뿐이지 겉으로 표현하지는 않았다.
상대가 자신에 대해서 좋게 생각하게 있는 상태에서 일을 벌이는 것도 상당히 재밌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예전이라면 지금처럼 이만석이 복수를 할 거냐고 물어본다면 속으로 비웃어 주었을 것이다.
그건 당연한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난 당신을 죽여 버리고 싶었어. 일이 뜻대로 풀리지 않게 된 것도 당신이라는 존재 때문이었고 내가 납치가 되어 모든 것이 끝나게 되었던 것도 다 당신이 벌일 일이었으니까.”
“그래?”
고개를 끄덕인 차이링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때 내가 당신에게 스스럼없이 다가갔을 때 어떤 마음을 가졌을지 모르겠지만 난 속으로 묻어 두었을 뿐 계속해서 가지고 있었어. 당신에게 꼭 배 이상으로 되갚아 주겠다고 말이야. 그러려면 결국엔 당신의 사지를 절단 내고 내 손으로 죽여야 좀 풀리겠다는 생각도 들었어.”
“안겨 왔을 땐 난 마음을 좀 열은 줄 알았는데?”
자포자기 한 심정으로 자신에게 안겨 왔을 것이라 생각했고 기세가 한 풀 꺾이고 협조적인 것 같아 그때는 어느 정도 풀어진 것으로 생각했었다.
“꼭 그 남자에게 마음이 있다고 여자가 몸을 주는 것은 아니잖아?”
맞는 말이었으니 수긍하는 듯 다시 고개를 끄덕이는 이만석이었다
“상대가 날 그렇게 해코지 했으니 배 이상으로 돌려줘야 맞는 거고 지금까지 그렇게 행했어.”
여자의 몸으로 삼합회에서 살아남는 것은 결단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누구보다 이를 악물어야 했고 잔인해 저야 했으며 죽여야 할 일이 생기면 망설임 없이 손을 써야 했다.
그래야 자신이 여자라고 얕보던 이들도 눈치를 보게 되고 긴장하게 되는 것이다.
지부장에 올라선 그녀를 더 이상 일개 여자로 대하는 조직원은 없었다.
아름다운 외모를 하고 있지만 누구보다 표독스러우면서도 무서운 독니를 숨기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예전 어린 소녀에 지나지 않았던 자신의 손과 입을 가지고 장난질을 쳤던 그 남자들을 십여년이 지난 뒤에도 가슴에 담아두고 있다가, 그럴 능력이 되었을 때 끝까지 추적해서 찾아내어 죽여 버린 것이 그녀였다.
지금 같이 가슴에 담아두었던 상대가 세월이 흘러 아직도 복수를 생각하고 있느냐고 물어온다면 그것 자체가 우스운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 이만석이 그런 우스운 말을 내뱉고 있었지만, 차이링은 그 말을 차갑게 비웃어 주지 못했다.
아니, 그럴 수 없다는 게 옮았다.
“하지만 지금 내 손에 칼이 들려져 있고 당신을 죽일 수 있는 상황이 찾아왔다고 하면... 난 그러지 못 할 거야.”
그렇게 말한 차이링이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그 이유는 당신도 잘 알거라고 믿어...”
자신의 모든 걸 망치게 만들었을 때 그녀는 이만석을 죽이고 싶을 만큼 원망스러웠다.
하지만 지금 그런 원망스러웠던 존재가 이젠 가슴을 아리게 만들기도 하고 눈물을 흘리게 만드는 이가 되어버렸다.
미워도 미워 할 수 없는 존재.
가슴을 아프게 만들어도, 그래도 그리워 할 수밖에 없는 사람.
그녀에게 이만석은 어느새 그런 이로 자리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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