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5화 〉 245화 제거
* * *
“네가 원해서 만나주고 있을 뿐이라니?”
“말 그대로야.”
“그럼... 정말로 네가 매달려서 사귀고 있다 그런 소리야?”
민우가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며 다시 물음을 던졌다.
지나의 말이 좀 믿기지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자존심이 강하고 자신만의 고집을 따지면 지나 역시 자기 못지않았기 때문이었다.
특히 그동안 어떤 식으로 남자들을 봐왔고 대해 왔는지 알고 있는 상황이라서 더 그러했다.
물론 현호와 만났을 때도 직접 미국으로 보러 간 적도 있고 하지만 그건 아버지의 말이 컸을 뿐이지 스스로 적극적으로 찾아 간 것은 아니었다.
거기다 관심을 갔을 지 언정 지나가 매달리거나 그런 것도 없었다.
말 그대로 호감을 표현 했을 뿐인 것이다.
헌데 지금의 지나의 말은 생각 이상으로 의외였다.
“따지고 보면 사귀고 있는 것도 아니야.”
“뭐?”
이어서 나오는 지나의 말에 민우는 다시 반문을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런 오빠의 반응에 지나가 쓴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말 했잖아. 내가 원해서 만나주고 있을 뿐이라고.”
“그러니까 사귀는 것도 아니고 만나주고 있을 분이다?”
“응.”
“......”
매달려서 사귀고 있다고 해도 어이가 없을 판에 그저 만나주고 있을 뿐이라는 말에 민우가 다시 할 말을 잃었다.
잠시 동안 침묵을 감돌자 지나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렇게 심각하게 볼 것 없어. 지금은 만나는 것뿐이지만 결국엔 사귀게 될 테니까.”
“그러니까 사귀는 게 아니고 네가 원해서 만나주고 있다 이 말인데... 자세히 한 번 말 해봐. 그 남자는 싫은 건데 널 억지로 만나주고 있다 이 소리야?”
“그건 아니야. 날 싫어하면 만나주지도 않겠지. 다만 날 사랑하지 않을 뿐이야.”
“그럼 넌?”
“난... 그 사람 이성으로 바라보고 있어.”
지나의 말에 민우는 기분이 상당히 언짢아 지는 것을 느꼈다.
이건 두 말 할 것도 없이 지 혼자만의 짝사랑이란 소리지 않은가.
“너 어제 외박해서 그 남자하고 같이 있었지?”
“당연히 같이 있었지.”
지나의 말에 민우는 다음 말을 하지 않았다.
아니, 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남녀가 둘이서 밤을 지새우면 할 일이 뭐가 있단 말인가.
이건 물어보지 않아도 답이 나오는 것으로 민우의 얼굴이 상당히 좋지가 않았다.
“도대체 그놈이 누군데 네가 그렇게 행동하는 거야?”
“그놈이라니... 민준씨보고 그렇게 말 하지마.”
“아니 그렇잖아. 네가 뭐가 부족해서 그렇게 지고 들어가냐고. 학력이 떨어져 외모가 딸려? 거기다 아버지가 누구지? 이 나라 최고라 할 수 있는 세진그룹을 이끌고 있는 회장이야. 그런 네가 과분하다느니, 부탁해서 만나주는 거라느니 하는 소리가 말이나 된다고 생각해?”
나라에서 잘 나간다는 연예인은 물론이고 정치인들을 포함한 이 나라 상류층에서 절대 아버지는 물론이고 자신들을 무시 할 수 있는 이들은 아무도 없었다.
지나가 원한다면 그녀를 만나겠다고 나서는 남자들을 줄을 세울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게 민우였기 때문이다.
실제로도 그녀에게 잘 보이기 위해 연회나 그런 자리에서 서로 나서는 오너가의 자식이나 능력있는 남자들이 많았다.
거기다 지나는 그런 이들의 시선을 당연하게 받을 정도로 이미 그런 생활이 몸에 배여 있었다.
물론 성격 또한 수줍음을 타는 그런 얘가 아니어서 그런 것도 있지만 말이다.
“네가 원하면 괜찮은 남자들 수 없이 만나 볼 수도 있고 고를 수도 있어. 그런데 그놈이 뭐기에 네가 그런 소리를 하는 거야?”
나이차도 나고 하나 밖에 없는 여동생이라 많이 예뻐 해주고 아껴온 오빠로써 상당히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었다.
“민준씨를 그렇게 말하지 말라고 했잖아. 그리고 오빠도 만나보면 이해 할 거야. 민준씨가 얼마나 괜찮은 사람인지.”
“아니... 만날 필요도 없을 것 같다. 그리고 두 말하지 않을 테니까 그놈하고 그만 만나.”
“뭐?”
“네가 뭐가 부족해서 그렇게 말하면서까지 만나는거야? 괜찮은 남자라면 내가 소개 시켜 줄 테니까. 그렇게까지 해서 만나지 마라.”
“싫어.”
“지나야...”
“나 민준씨하고 계속 만날 거야.”
“그놈이 뭔데 그렇게...”
“민준씨보고 그놈이라고 부르지 말라고 했잖아.”
지나의 말에 답답한 심정으로 다시 입을 열었던 민우는 순간 자신의 말을 끊고 대드는 모습에 말을 멈출 수 밖에 없었다.
아니, 흠칫 할 수 밖에 없었다.
조금 전까지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며 웃음을 짓고 있던 지나였지만 지금은 전혀 그렇지가 않았기 때문이다.
어느새 웃음기가 사라진 얼굴엔 차가운 눈빛만이 자리하고 있을 뿐이었다.
“아무리 오빠라고 해도 민준씨를 그렇게 폄하하는 건 용서하지 않아.”
“지나 너...?”
“이미 아버지가 허락한 마당에 오빠가 이렇게 왈가왈부 할게 못 된다고 생각해.”
그리곤 자리에서 일어난 지나가 문 쪽으로 향하더니 열어서 옆으로 비켜섰다.
“나 조금 전의 오빠의 말 때문에 상당히 기분이 좋지 않으니까 이만 나가줬으면 좋겠어.”
잠시 동안 앉아서 그런 지나의 모습을 바라보던 민우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시 생각해 볼 수 없겠어?”
“나가.”
냉기가 풍겨지는 음성에 작게 한 숨을 내쉰 민구가 지나의 방을 나섰다.
그대로 문이 닫히는 방을 슬쩍 고개를 돌려 바라본 민우의 얼굴에 근심이 묻어 나왔다.
‘그놈에게 단단히 빠져버렸어.’
자신에게 지나가 이렇게 행동한 건 처음이었다.
어릴 때부터 줄곧 잘 따랐고 사이가 좋았던 남매지간이었데 남자 하나 때문에 이런 반응이라니 솔직히 충격이었다.
다시 생각해도 어처구니가 없는지 민우가 헛숨을 내쉬었다.
‘이건 쉽게 볼 일이 아니야.’
지나의 반응을 봐선 쉽게 말로해서 해결 될 일이 아님을 느꼈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에게 과분한 사람이라느니 하면서 자길 좋아해 주지도 않는 남자를 만나고 마음도 주고 같이 밤을 지새운다는 건 자신의 여동생으로써 도저히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
주머니에서 폰을 꺼내든 민우가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문 실장님 접니다.”
지나의 말대로 아버지가 넘어 갔을지 모른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이미 알고 계시는대 가만히 두고 볼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이대로 넘어 갈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 남자가 누구인지는 몰라도 확실히 해야 할 것은 해야 한다고 본 것이다.
그에 대해서 좀 알아보려 얘기를 나눈 것인데 마음만 안 좋아진 꼴이었다.
“당신의 이런 모습을 보면 알다가도 모르겠단 말이야.”
수저를 들어 국을 떠먹고 있는 이만석을 보면서 차이링이 나긋한 목소리로 말했다.
“정말로 지나라는 그 여자에게 마음이 없는 게 맞는 거야?”
“그래.”
나물무침을 젓가락으로 집어서 먹은 이만석의 짧은 대답에 차이링이 다시 말을 이었다.
“그런대도 그렇게 만나주고 있는 것을 보면 정말로 당신 속은 알다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 그 여자도 오래가지 않을 줄 알았는데 이런 모습을 보니 아무래도 내가 보기엔 그 여자 당신을 사랑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사랑?”
“응... 아버지가 정석환 회장이겠다 보니까 외모도 예쁘고 부족한게 없어 보이는 여자던데 왜 그렇게 당신에게 연락을 해서 그렇게 만나려고 하겠어? 그리고 당신 그 여자가 말했다며?”
“어.”
“자신을 좋아하지도 않는 남자를 그렇게 만나려는 여자의 심리가 뭐겠어? 그렇게 뭐하나 부족한 게 없는 여자가 말이야.”
차이링은 모르겠지만 분명히 이집트에 갔을때 지나가 이만석에게 그런 말을 하긴 했었다.
흥미로운 시선으로 이만석이 식사를 하는 모습을 바라보던 차이링이 다시 말을 이었다.
“자신을 이성으로 바라보지도 않는 남자가, 그것도 여자친구가 있는데도 그렇게 접근했다면... 흐응~ 뻔하네.”
이건 여자의 직감이고 뭐고 할 것도 아니었다.
그런 여자가 여자친구도 있는 남자에게 저런 식으로 대한다는 것은 이성적으로 마음을 품고 있다고 봐야 옳았다.
“그래서 기분이 나빠?”
“아니.”
이만석의 말에 차이링이 딱 잘라 말했다.
“저번처럼 내가 당신에 대한 마음을 확실히 몰랐다면 상당히 마음이 좋지는 않았을 거야.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가 않잖아.”
서로 불편한 갈등이 있었지만 그로 인해 이만석은 자신에게 확실히 마음을 보여주었고 열어주었다.
그의 성격이 어떠한지 잘 알고 있는 차이링이어서 그녀는 그 말을 전적으로 의심 없이 믿었다.
그래서 차이링은 방금 전의 이만석의 말에 아니라고 딱 잘라 말 할 수가 있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