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1화 〉 241화 전화통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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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밤 9시가 넘은 시각에 맞춰 안토니오는 전화를 받고 급히 통제실로 향했다.
거기엔 이미 일단의 사람들이 모여서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는데 그 중에 40대 후반으로 보이는 날카로운 인상의 중년인이 앞에 띄어진 화면을 주시하며 바라보고 있었다.
통제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선 안토니오는 스크린을 주시하고 있는 중년인을 본 순간 얼굴이 굳어졌다.
‘프리먼 이자가 직접 왔단 말인가.’
그의 앞에 있는 인물은 다른 누구도 아닌 이라크에서 벌어졌던 테러 진압 작전을 직접 지위하며 현장을 이끌었던 조셉 프리먼이었기 때문이었다.
무엇보다 그의 얼굴이 굳어 질 수밖에 없는 게 부국장인 카일러의 직속에다 부장급 인선이었기 때문이다.
“들어왔으면 가까이오지.”
스크린을 주시하고 있던 프리먼이 낮은 목소리로 안토니오를 찾았다.
걸음을 옮겨 그의 곁으로 다가가 옆에 서자 다시 프리먼이 입을 열었다.
“이곳에 도착하고 잠시 현장 일에 대해서 좀 알아보았어.”
같은 부장급 직책을 맡고 있는 안토니오였지만 후배에다 3살이나 더 나이가 어린 상황이어서 자연스러운 하대가 흘러나왔다.
거기다 프리먼은 부국장의 직속이기도 하여 그 입김이 CIA에서 상당히 강한 편이었는데 이라크에서 세운 공으로 인해 훈장까지도 받은 상황이어서 총애를 받고 있는 상황이었다.
조사팀이라면 실무경험이 있는 차장급 인사가 통솔을 해서 올 것이라 했지만 프리먼 이자가 직접 이끌고 올 줄은 안토니오 또한 예상을 하지 못 했다.
“참 바쁘게 돌아가는 나라야.”
스크리엔 띄어져 있는 정보 창을 바라보던 프리먼이 고개를 돌려 안토니오를 바라보았다.
“이 나라는 5년 전에 내가 딱 한 번 온 적이 있었지.”
“그렇습니까?”
“그때도 느꼈지만 이 나라는 참 생동감 하나 만큼은 좋아.”
세계에서 일을 제일 많이 하는 나라 중에 하나에다 빨리빨리 행동하며 시간에 쫓기듯 생활하는 모습들은 프리먼에게 아주 많은 생각들을 하게 만들었었다.
그 또한 생활상이 느긋한 편이 아니어서 이런 빨리빨리 문화 자체를 나쁘게 보질 않았다.
“프리먼 당신이 이곳에 올 줄은 몰랐습니다.”
“그만큼 상황이 좋지 않았다는 증거 아니겠나?”
표정이 굳어 있는 안토니오의 모습에 프리먼이 웃음을 지었다.
“요원이 4명이나 당했어. 거기다 이곳에서 습격도 받았다지?”
“......”
“대단한 놈인 건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겠어.”
스크린의 한 편엔 이만석에 과한 정보도 띄어져 있었다.
잠시 시선을 돌려 그것을 안토니오 또한 바라보았다.
“당분간 내가 상황을 통솔하도록 하지.”
“책임자는 저입니다.”
프리먼이 이곳에 찾아온 순간 안토니오는 저 말이 나올 것임에 직감을 했다.
“이일을 수습할 때까지니까 열낼 필요 없어. 그리고 부국장님의 명이기도 해.”
그러더니 품에서 하나의 쪽지를 꺼내 안토니오에게 건네주었다.
그것을 펼쳐 읽어 내려간 그의 얼굴이 대번에 어두워졌다.
거기엔 조사팀의 현장상황 조치가 끝이 날 때까지 잘 따라주었으면 좋겠다는 부국장의 친필이 적혀 있었기 때문이다.
“일단 서민준 이 사내에 대해서 제대로 알아볼 필요가 있을것 같은데...?”
띄어져 있는 정보창엔 간략하게 적혀 있을 뿐 자세히 나와 있진 않았다.
‘작정을 했구나...’
그의 말에 안토니오는 속이 답답해져 오는 것을 느꼈다.
이런 식으로 친필을 보내어 명령을 이행시킬 정도면 국장이 한 발 물러섰다고 보는 것이 옮았다.
세 명의 요원 실종이 본국으로 올라간 순간 생각이상으로 발 빠르게 조치를 한 것이다.
아무래도 이건 작정을 하고 보고가 올라가자마자 바로 조치가 내려졌다고 봐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프리먼 이자가 이렇게 빨리 이곳에 올 이유가 없기 때문이었다.
생각이상으로 행동반경이 좁혀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조사팀이라고 하지만 현실은 통솔을 대체할 지휘팀이 급파 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안토니오가 그렇게 답답한 심정으로 프리먼을 맞이하고 있는 사이 그와는 반대로 당사자라 할 수 있는 이만석은 레스토랑에서 편안한 표정으로 고기를 썰고 있었다.
핏기가 감도는 고기 한 점을 나이프로 썰어서 포크를 이용해 집어 먹은 이만석이 와인 잔을 들아 가볍게 목을 축였다.
잔잔한 음악이 흘러나오고 크리스마스가 지났지만 연말이어서 제법 손님들이 눈에 띄었다.
“이집 분위기 괜찮지 않아요?”
갈색의 머릿결을 늘어트리고 값이 비싸 보이는 반짝이는 목걸이와 귀걸이를 하고 있는 지나는 회색의 니트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다리선이 보이는 적당한 길이에다 허리와 가슴을 받쳐주고 있는 라인이 반듯해 몸매를 돋보여주는 그런 스타일이었다.
한남동에 자리 잡은 레스토랑으로 기본 코스요리가 일반 레스토랑에 세 배 이상이나 차이나는 가격의 비싼 곳이었지만 7성급 호텔에서 내로라하는 요리사들 사이에서 책임을 도맡았던 셰프가 직접 운영하는 곳인 만큼 맛은 물론이고 인테리어 하나까지 전부다 고급스러움이 물씬 풍기는 곳이었다.
“자주 오십니까?”
“한 달에 두 세 번 정도는 오는 곳이에요.”
고개를 끄덕이며 질문을 하는 이만석을 향해 그렇게 말한 지나가 웃음기가 머금은 음성으로 다시 입을 열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을 해도 이집트에서 당신이 데려갔던 레스토랑이 더 좋았어요.”
거기가 이만석이 운영하는 곳이어서 그런 것도 있지만 타국에서 단 둘만의 시간을 가졌던 상황이라 분위기가 상당히 므흣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여기가 요리 맛은 최고지만 인테리어에 신경 쓴 것처럼 분위기도 그만큼 중요하잖아요. 민준씨가 사장이라서 하는 말은 아니니까 그런 쪽으로 생각하지는 말아요.”
그러면서 한 쪽 눈을 찡긋 하는데 그 모습에 이만석은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식사를 끝내고 레스토랑을 나선 이만석은 지나와 함께 근처의 바로 향해 술 한 잔을 더 걸쳤다.
그렇게 늦은 저녁시간대는 아니어서 바 안엔 손님들이 그리 많이 부적이지는 않았다.
이만석이 따라준 위스키를 한 모금 마신 지나가 이만석을 똑바로 바라보며 닫혀 있던 입을 열었다.
“민준씨... 궁금하지 않아요?”
“뭐가 말입니까.”
“크리스마스에 나 뭐하고 보냈는지.”
“모임을 가지거나 그와 비슷한 일을 했겠죠.”
“그게 뭐에요...”
애매모호한 대답을 하는 이만석의 말에 지나가 눈을 흘겼다.
“내가 누구하고 시간을 보냈을지... 또는 남자를 만났을지 그런 생각은 안 들어요?”
“남자라...”
얼음이 띄어져 있는 잔을 들어 가볍게 한 모금 목을 축인 이만석이 장난스러운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만난 남자라도 있었나보군요?”
“민준씨도 여자 친구하고 시간을 보냈을 텐데 나라고 혼자 조용히 보내라는 법은 없잖아요.”
“뭐... 그렇긴 하죠.”
이해가 간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 이만석이 수긍을 했다.
자신이 하란이와 만난다는 것을 지나는 이미 알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여자 친구는 어디까지나 하란이었고 자신은 그녀를 좋아한다고 하지도 않았다.
“수긍하지 말아요.”
하지만 그런 이만석의 대답이 끝나기가 무섭게 지나가 다시 눈을 흘기며 핀잔을 주었다.
“지금 일부러 그러는 거죠?”
“일부로라...”
“내가 그날에 다른 남자와 만났을 리가 없잖아요.”
“사적인 자리가 아닌 공적인 자리도 있겠죠.”
“그건 당연히 예외 해야 하는 거예요.”
“그렇습니까.”
쓴웃음을 짓는 이만석의 모습에 지나가 똑바로 그의 두 눈을 바라보았다.
“이래보여도 날 노리고 접근하는 남자가 얼마나 많은지 알아요? 내가 연락만 하면 만나러 나오겠다는 사내들 한 트럭을 될 걸요?”
지나의 외모가 빠지는 것도 아니고 아버지가 세진그룹의 정석환 회장이었으니 당연히 그럴 것이었다.
“이번 크리스마스에도 에프터 신청이 많이 들어왔지만 거절 했어요. 내가 왜 그랬을 거 같아요?”
대답을 하지 않고 다시 잔을 들어 한 모금 마시는 이만석을 향해 지나가 장난기 섞인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이미 마음에 두고 있는 한 사람이 있기 때문이에요.”
“......”
“그 남자가 설령 다른 사람을 만나고 있다고 해도.... 전 그럴 수 없었거든요. 그래서 혼자서 보낼 수밖에 없었어요.”
“외로웠겠군요.”
“네... 좀 그랬어요. 그 시간에 그 남자는 무얼 하고 있을지 다 알고 있는 상황이기도 했으니까.”
“그 남자는 지나씨에게 마음이 있지 않은 걸로 아는데... 틀렸습니까.”
“민준씨 말이 맞아요.”
“그렇다면 따로 만나도 문제 될게 있겠습니까. 거기다 그 남자는 여자 친구가 있다면 더 할 말이 없는 상황인데 말입니다.”
“그 남자는 그렇게 생각할지 모르죠. 하지만 난 그렇지가 않아요. 그렇게 관심이 가는 남자는 처음이었거든요. 그리고 이제 그 남자가 절 좋아하지 않더라도 신경 쓰지 않기로 했어요... 내 성격이 그런 것도 있고 또한 내 마음이 더 중요하다는 걸 다시 한 번 느꼈거든요.”
“......”
크리스마스날 혼자서 조용히 시간을 보내며 지나는 이만석이 뭐하고 있을지 생각을 했다.
데이트에 관해서도 그렇고 그날 뜨거운 시간을 보냈을 일에 대해서도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렇게 되니 자연스럽게 그의 품에 안기어 있을 하란이가 떠올라 그러지 않으려 해도 질투심이 가슴 한 켠에 자리했다.
사람 마음이 언제나 같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건 당연한 일로 이만석이라고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어렸을 때부터 남부러울 것 없이 살아온 그녀여서 딱히 뭔가를 가지고 싶다거나 하는 그런 큰 욕망이 있지는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가 않았다
눈앞에 있는 이 남자를, 자신에게 딱히 눈길을 크게 주지 않는 이 사람을 자신의 것으로 갖고 싶다는 욕망이 그녀의 가슴에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나는 그런 사심을 이만석 앞에서 숨기지 않고 당당히 내보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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