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8화 〉 238화 전화통화
* * *
[오늘 시간 좀 내줄 수 있겠나.]
“......”
[만나서 얘기를 좀 했으면 하는데.]
안토니오는 아무런 말이 없는 이만석에게 만나자는 제안을 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이만석은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고 이어서 다시 안토니오의 말이 들려왔다.
[이 일에 대해서 하고 싶은 말이 있다.]
“꼭 만나서 해야 하는 것인가.”
[전화로 할 얘기가 아니야.]
생각지도 못 한 안토니오의 제안 이었지만 그것도 잠시간의 생각 뿐 이만석은 다시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
“장소와 시간을 말해라.”
그에 말에 응한 이만석은 그렇게 30분 후 한강의 고수분지로 향했다.
쌀쌀한 겨울 날씨에 조깅을 하는 사람도 들물 었고 강도 얼어붙어 있었다.
벤치에 앉은 이만석은 눈앞에 펼쳐진 한강의 전경을 바라보면서 품에서 담배 갑을 꺼내 한 개비를 입에 물고 라이터로 불을 붙였다.
전에 쓰던 라이터가 아닌 하란이가 선물해준 것으로 교체를 한 것이다.
“후우!”
깊이 들이마셨다가 길게 연기를 내뿜은 이만석은 주변 풍경을 조용히 감상했다.
“썰렁하군...”
겨울이라 조깅이나 운동을 하는 인원도 없었고 크리스마스 다음날이라 그런지 저 멀리 지나다니는 사람도 드물었다.
불어오는 바람에 머릿결이 흔들리며 이만석은 그렇게 앉아서 담배를 태웠다.
한 개비가 전부 다 타들어 갈 무렵 이만석은 뒤에서 누군가 걸어오는 발자국 소리를 들었다.
틱!
잠시후 라이터로 불을 붙이는 소리가 들리더니 곧 옆에서 앞쪽으로 길게 연기 뭉치가 뿜어져 나오는 것이 아닌가.
“1분 늦었어.”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이만석이 다 핀 담배를 바닥에 버리고 발로 비벼껐다.
“차가 막혀서 말이야.”
굵직한 음성이 들려옴과 동시에 다시 걸음을 옮기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만석이 앉아 있는 벤치의 옆자리로 갈색 코트를 입은 외국인 한 사람이 몸을 앉혔다.
연갈색 머리에 구릿빛 피부의 이 중년인은 히스패닉계 미국인이자 현 CIA한국 지부를 맡고 있는 로빈 안토니오였다.
“이렇게 만나서 할 이야기가 무엇인지 들어볼까.”
안토니오가 담배를 피고 있는 사이 이만석이 질문을 던졌다.
두 세 번 정도 깊이 빨아 들였다가 연기를 내뱉기를 반복하던 안토니오가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넌 사람을 죽였어. 그것도 우리 요원을 말이야.”
“......”
“하지만 아직 그에 대한 결정이 내려진 것 아니야. 이곳 한국의 정세와 자네가 가지고 있는 입지와 세력에 대해서 그만큼 대단했다는 증거가 되겠지.”
통제실로 침입해 들어 온 것 만해도 아주 큰일이었다.
허지만 이만석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총기를 가지고 위협을 한 것도 모자라 한 명은 부상을 입히고 다른 한명은 생명까지 앗아가 버렸다.
이건 CIA입장에서 절대로 그냥 넘길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아직 이만석에 대한 처분의 입장은 제대로 정해지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만큼 이곳 한국에서의 상황이 쉽게 결정 내릴 수 없을 만큼 복잡하다는 증거이기도 한 것이다.
“하지만 부국장은 자네에 대한 처분의 결정을 이미 내린 모양이더군.”
“부국장?”
“찰스 카일러. 너를 미행하기 위에 붙었던 요원들을 실질적으로 뒤에서 명령을 내린 인물이라 할 수가 있지.”
“그자가 직접 명을 내렸다는 말인가.”
“그렇지는 않아. 그자는 지시만 했고 밑에서 다 했을 테니까.”
그렇게 말한 안토니오가 다 핀 꽁초를 바닥에 버리곤 발로 비벼 껐다.
“네가 죽인 크리스, 그리고 엔더슨 또한 부국장 쪽 사람이었어. 특히 크리스는 따로 한국 내에서 어떻게 일이 처리 되는지 개인적으로 전화를 해서 보고를 했을 거야. 내 쪽에서 데리고 있기엔 껄끄러운 친구였어.”
“그래서 잘 죽여줬다는 말인가. 하고 싶은 말이 뭐지.”
이만석은 그런 안토니오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음을 던졌다.
자신의 무고함을 알리려는 것도 아니고 왜 그런 구구절절한 설명을 자신에게 하느냐는 물음이기도 했다.
“무하마드가 IS의 자금이 흘러들어가고 있다는 건 알고 있나.”
“......”
“우린 그에 대한 정보를 입수하고 알아내는 과정에서 네가 그쪽에 투자한 사실을 알아냈지. 엔더슨의 실종과 관련 된 의문의 일에도 네가 관련이 되어 있더군.”
“그래서?”
“너라는 인물에 대해서 상당히 신중을 기하고 있는 입장이야. 요즘들어 IS에서 벌어지는 심상치 않은 일들이나 네가 무하마드에 투자를 한 시기와 그쪽에 인수를 하고 사업을 키우는 일들까지. 그 모든 것들이 연관성이 있다고 보고 있지. IS내에서 숙청설이 돌고 있는 내부의 사정을 포함해서.”
한순간에 IS를 이끌던 간부들의 실종은 CIA입장에서도 상당히 당황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들이 어떻게 움직일지 예측하기가 쉽지 않았고 거칠면서도 폭발적이게 도발을 해와서 상당한 골칫거리였기 때문이다.
허나 갑자기 IS를 이끌던 지도부들 중에 연회에 참석했던 인원들이 모두 실종되어 버렸고 결국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것이다.
CIA쪽에선 칼리프인 알 무하드가 자신에게 반기를 든 이들을 모아서 숙청을 했다고 볼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 예로 지급 알 무하드에 대한 IS의 입김은 상당히 강해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 일이 알 무하드에 대한 두려움을 키웠고 공포정치의 힘이 은연중에 퍼졌던 것이다.
헌데 놀랍게도 그 일이 있은 후부터 IS의 거친 행동이 다소 잠잠해졌다는 것이다.
내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 수는 없었지만 그들을 주시하는 이들의 입장에선 현재로썬 다행인 일이 아닐 수 없는 상황이었다.
“네가 어쩌면 그쪽의 정보를 빼내고 소통을 할 수 있는 키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 우리 쪽 생각이야.”
“날 회유하겠다는 건가.”
“네가 만약 IS쪽과 접촉이 있었고 이 급변상황에 대해서 뭔가 알고 있다면 상당히 중요한 인물이 되는 거지. 무하마드의 행적들을 보면 종교적인 포섭과 지역 활동이 주된 일이었어. 하지만 지금은 사업을 키우는 대만 열중한 모습으로 변했어. 이걸 뭘 의미하는지도 알아가는 과정이었어.”
결론은 나지 않은 것으로 이만석에게 말해줄 필요도 없던 내용들이다.
“네가 한국에서 가지는 입지도 있지만 요원을 살해하고도 우리쪽에서 널 신중하게 보고 있던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어. 회유라고 하면 그 말도 맞겠지.”
이만석과 IS사이에 분명 뭔가 일이 있었던 것이 분명했다.
시리아에서 일어난 숙청과 그 사이에 이만석의 무하마드에 대한 접촉과 투자, 그 모든 것들이 한 달 안에 일어난 과정들이었던 것이다.
“사실대로 말하면 나도 네 전화를 받고 알아내는 과정에서 들은 얘기야. 이집트에서 네가 어떤 일을 하고 있었는지 자세히는 알 수 없지만 이것만으로도 상당히 놀라워.”
한국에서 그가 어떤 일을 이루었는지 알아보았던 이가 바로 안토니오였다.
그가 보기엔 이만석의 성장속도는 일반적인 기준으로 보기엔 놀라우리만치 상당히 빨랐다.
더욱이 그가 어디서 왔고 이름을 알리기 전에 무엇을 했는지에 대한 행적은 아무리 찾아도 나타나지 않았던 것이다.
“며칠 내로 해결사가 한국으로 들어올 거야.”
“날 죽이려고 말인가.”
안토니오가 고개를 끄덕였다.
“카일러는 너를 제거하기로 결정을 내렸어. 크리스 만으로 그런 결정을 내렸을 리는 없을 테니 엔더슨의 일을 벼루고 있었겠지.”
안토니오는 이만석이 엔더슨을 죽였을 것이라 결론을 내렸다.
통제실에서 한 말도 있거니와 그의 상정으로 보았을 때 분명히 뭔가 손을 봐주기로 했다면 죽였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 것이다.
“내가 이일을 눈치 채고 지시를 내리니 바로 너에게서 손을 땠더군. 거기다 모두를 포함해 그 시간에 무얼 했는지 말해주는데 현장에 있던 놈들은 사전에 알리바이를 만들어 두었을거야.”
한국내에서 활동하는 요원들은 안토니오의 명 없이는 마음대로 움직일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독단적으로 행동한 이들이 그에게 걸린 것이다.
이곳은 자신의 관할구역이었고 활동을 하려면 당연히 자신에게 보고가 되어야 했다.
징계사유가 충분했고 엄벌을 내려도 할 말이 없는 것이다.
“한국으로 찾아오는 해결사들이 누구인지 알아서 정보를 주도록하지.”
“......”
“하지만 아무리 너라고 해도 그들의 손에서 살아남기는 쉽지 않아. 네가 원한다면 신변을 보호 해 줄 수도 있어,”
“그 대가가 당신들의 키가 되는 것이겠군.”
이만석의 말에 안토니오가 나직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서민준... 네가 대단한 인물이라는 건 알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 가다간 결국에 넌 죽게 된다. 그게 카일러에 의해서 일수도, 다른 누군가의 의해서 일수도 있지.”
그 다른 누군가는 당연히 CIA전체 일 수도 있다.
“결국엔 협박인가.”
“네가 살 방법에 대해서 아려주는 거야.”
품에서 담배갑을 꺼낸 이만석이 다시 한 개비를 꺼내 입에 물었다.
마지만 한 개비라 텅 비어버린 갑은 벤치의 옆에 세워져 있는 쓰레기통에 던져버리곤 라이터로 불을 붙여 깊이 한 모금 빨았다가 내쉬었다.
그렇게 담배를 반쯤 피우고 나서야 이만석은 다시 입을 열었다.
“내가 죽는지... 아니면 카일러 그자가 죽는지 내기할까.”
“서민준...”
이만석의 말에 안토니오의 얼굴이 굳어졌다.
“내기의 대가는 당연히 당신의 목숨. 그리고 이런 식으로 협박을 한 그 작자들 또한 깡그리 포함해서.”
“네 처지...”
“더 이상 들을 것도 없겠군.”
다시 말을 하려던 안토니오의 말을 자른 이만석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안토니오, 당신이 살고 싶으면 전에 내가 했던 말을 명심해야 헐 거야... 그리고 날 미행했던 놈들은 내가 알아서 처리하겠다.”
그렇게 말한 이만석은 두 어번 더 빨아서 피우더니 바닥에 버리곤 발로 비벼 끈 후 걸음을 옮겼다.
등을 보이고 걸음을 옮기는 이만석의 모습을 안토니오는 심각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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