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0화 〉 220화 그녀의 마음
* * *
“여긴 어떻게 온 거야?”
“오빠 놀래어 주려고.”
귀엽게 웃음 짓는 하란이의 모습에 이만석이 살짝 한 숨을 내쉬었다.
“비행기 시간이 맞지 않으면 한 참 기다려야 했을 텐데.”
“그 정도는 기다릴 수 있는걸?”
“언제 온 거야.”
“나도 인천공항에 도착한지 얼마 안 됐어. 오빠한테 전화 걸었을 때 차에서 내려 걸어가고 있던 참이었어.”
“그래?”
“응! 아무래도 이렇게 시간이 딱 맞아 떨어지는 거 보니까 오빠하고 나 만나게 해주려고 보이지 않는 수호천사가 도와줬나봐.”
장난스럽게 말하는 하란이의 모습에 이만석이 가볍게 꿀밤을 한 방 먹여주었다.
“아야! 뭐야 오빠...!”
“뭐긴... 귀여워서 그러는 거지.”
“귀엽다고 꿀밤 먹이는 게 어디 있어?”
“여기 있네.”
그러곤 걸음을 옮기는 이만석의 따라 나란히 선 하란이가 조심스럽게 오른손을 잡았다.
‘오빠 손은... 언제나 똑같구나.’
조심스럽게 깍지를 낀 하란이는 그 친숙한 느낌이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것 같았다.
슬쩍 고개를 옆으로 돌려 이만석의 옆모습을 올려다보았다.
햇볕에 그을렸는지 구릿빛 피부였지만 날카로운 눈매의 호남형의 잘생긴 얼굴은 오히려 더 남자다움이 물씬 풍기는 것 같았다.
“...리고 있겠네.”
“응?”
“차타고 왔으면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 거 아니냐고.”
“운전기사 말이야?”
“그래...”
“아니... 지금쯤이면 이미 돌아가고 있을 거야.”
“돌아갔다고?”
하란이의 말에 이만석이 의문을 표했다.
“응... 오빠하고 같이 있을 건데 기다렸다가 나중에 돌려보내면 미안하잖아.”
“작정을 하고 찾아온 거구만...”
“당연하지!”
활짝 웃음을 지으며 당당하게 말하는 모습에 이만석이 쓴웃음을 지었다.
그렇게 주차장으로 향해 말해둔 장소로 가니 언제나 타고 다니던 아우디 한 대가 이만석을 태우기 위해 대기하고 있었다.
원키는 이만석이 들고 있으니 보조키를 이용해 여기로 차를 몰고 와 대기 시켜 놓았던 것이다.
문을 열고 먼저 하란이를 조수석에 태운 이만석이 운전석에 올라탔다.
그렇게 오래되진 않았지만 이 차가 애마가 되고 난 후부터는 이것밖에 타지 않았으니 시트 등받이부터 시작해서 익숙한 느낌과 감촉이었다.
기름을 확인해보니 센스 있게 가득 채워져 있어 따로 주유소에 갈 일은 없었다.
천천히 공항을 빠져나가 도로에 들어선 이만석은 속도를 높여 서울로 추발했다.
“이차 오랜만에 타네...”
“거의 반년만이지?”
“응. 그날 이후 오늘 처음 타는 거니까.”
얼굴에 웃음을 짓고 있는 하란이의 모습을 보니 이만석도 기분이 덩달아 좋아지는 듯 했다.
“대학교 원서 접수는 다 한 거야?”
“응... 일단 추려서 지원을 했는데 아직 어떻게 될 진 모르겠어.”
“어디어디 지원했는데?”
“성균관대랑, 한양대... 그리고 경희대에 넣었어...”
“그래?”
“글로벌 학부나 정책학과 쪽으로 지원했는데 로스쿨대비반이라고 해서 준비하기도 그렇고 괜찮다고 해서 지원을 하게 됐어.”
“변호사가 된다는 게 쉬운 건 아닐꺼야.”
“응...”
“수능공부 한 것만큼 집중하면 되겠지.”
“앞으로도 그렇게 하라고 하면 나 죽을 거 같은데...”
울상을 짓는 하란이의 모습에 이만석이 다시 농담을 던졌다.
“변호사가 되려는 애가 벌서부터 그러면 되나... 코피 나도록 노력해야지.”
“이미 여러 번 코피났었어.”
“붙을 자신은 있어?”
“뭐가?”
“지원한 과에.”
“응! 사실 모르겠다고 했지만 은근히 자신감은 들어. 상담도하고 직접 학교에 찾아가서 얘기도 나누고 했었는 걸.”
“그러면 아주 적게 자고 피땀 흘려 코피 흘린 값 했네.”
“뭐야 그게.”
노려보는 하란이의 말에 이만석은 음악소리를 조금 더 높이는 것으로 딴청을 부렸다.
그렇게 잠시간의 시간이 흘렀을까.
이만석이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늦었지만 수능 보느라 수고했어.”
“응...”
“서운하진 않았어?”
“오빠 바쁜 거 아는데 서운할 게 뭐있어? 아직 오빠에 비하면 난 아직 더 노력해야 하는걸...”
“그래?”
“나... 할아버지처럼... 진짜 훌륭한 변호사 되고 싶어. 그래서 진짜 열심히 노력할 거야..”
적게는 3시간에서 5시간 빼고는 공부에만 올인 했다는 걸 알고 있는 이만석은 하란이라면 잘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도 어릴 때부터 중학생 때까지 공부를 잘 했고 해오던 습관이 있어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변호사로써 명성을 날렸던 할아버지나 아버지인 윤정호 의원을 닮아서 그런지는 몰라도 공부를 할 때의 정신력은 참으로 대단했던 것이다.
중간에 간단히 한 끼를 때울 때나 화장실에 갈 때 말고는 조금의 쉬는 시간도 없이 공부만 했던 것이다.
그렇게 12전에 집에 오게 되면 1시에서 늦으면 3시까지 더 공부를 하고 씻고 6시 30분까지 잠을 청했다.
그 생활을 반복하다가 주말이 돼서야 8시간을 정도 잠을 자고 다시 하루 종일 공부에만 집중하는 나날들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되니 체력도 많이 딸리고 정신적으로도 힘이 들었지만 그럴 때마다 더 열심히 마음을 다잡고 노력을 했다.
좀 더 빨리 준비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점수도 생각 했던 것 보다 좋게 나왔고 노력했으니 후회는 없었다.
“어렸을 때부터 변호사가 꿈이었어?”
“응... 할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셔서 잘 기억이 나진 않지만 좋으신 분이셨어. 나중에 돼서 할아버지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아버지한테 들어서 알게 되었는데 그때부터 변호사가 되고 싶어 했던 거 같아.”
마음의 상처를 받고 방황을 하다 이렇게 다시 그 꿈을 찾게 되었으니 하란이한텐 참으로 다행한 일이었다.
그걸 바로잡게 해준 것이 바로 옆에 있는 이만석이어서 너무나도 고마웠다.
“나 정말 노력할거야. 그래서... 오빠 앞에 당당히 설수 있는 그런 여자가 되고 싶어.”
“날 너무 대단하게 보는 것 같네.”
하란이의 다짐에 이만석은 피식 웃음을 지었다.
그러자 곧바로 하란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입을 열었다.
“그런 말 하지마... 오빠는 나에게 정말로 대단한 사람이야.”
“그래?”
“응... 다른 사람들은 오빠를 어떤 사람으로 볼지 모르겠지만 난 아직도 오빠가 내 남자친구라는게 믿기지가 않아 그만큼 나에겐 멋진 남자야..”
“하란아.”
“응?”
“그게 바로 눈에 콩깍지가 씌었다고 하는 거란다.”
“콩깍지라니... 너무해 오빠.....! 나 진짜 진심으로 한 말인데.”
이만석의 말에 하란이 금새 울상을 지으며 말했다.
“하하하!”
“웃지마...! 그렇게 놀리면 재밌어?”
“응.”
“오빠하고 말 안해.”
그리곤 고개를 돌려버리는 하란이의 모습에 이만석이 다시 웃음을 터트렸다.
“지금쯤 도착했을 거 같은데...?”
시간을 보면 도착 한 것이 아니라 이미 서울에 올라오고 있을 시간대였다.
식탁에 한상 가득 차려놓고 이만석에게 전화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던 차이링이 하는 수 없이 직접 폰을 들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잠시간의 통화음이 가고 곧 이만석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기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공항엔 도착했어?”
[응... 지금 서울로 가고 있는 중이야.]
“정말?”
순간 차이링의 얼굴이 미소가 지어졌다.
“뭐야 당신... 도착했으면 전화라도 주면 좋았잖아. 나 기다리고 있었던 말이야. 그런데 혹시 저녁은 먹었니?”
[아니... 안 먹었어.]
다행이 기내식을 먹지 않았다는 말에 차아링인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언제 도착 할 것 같아?”
사랑하는 낭군을 기다리는 여인의 모습이 이러할까.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다소곳하게 질문을 던지는 차이링의 목소리는 소녀처럼 사랑스러움이 묻어나온다.
[아무래도 오늘은 힘들 거 같아.]
“힘들 것... 같다니?”
갑작스러운 말에 차이링의 두 눈이 살짝 크게 떠졌다.
[하란이하고 같이 있어]
“하란이?”
[그렇게 됐어... 내일 들어가게 됐으니까 그렇게 알고 있으면 될 거야.]
순간 차이링은 잠시 동안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곧 다시 처음과 같이 밝은 톤으로 목소리를 흘기며 입을 열었다.
“흐응~! 오랜만에 만나게 됐다 이거지?”
[미안해.]
“미안하긴~ 당신 여자친구인데. 우리 꼬마아가씨도 당신 많이 보고 싶어 했을 거야. 그러니 잘 챙겨줘.”
[그래.]
그렇게 전화 통화를 끝낸 차아링이 잠시 동안 그 자리에 서있다가 식탁에 차려진 음식들을 바라보았다.
“나 혼자 이걸 다 먹을 수 있으려나...”
여느 때처럼 웃음을 지으며 말하는 그녀의 모습이 어딘가 모르게 쓸쓸해 보였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