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8화 〉 218화 혹독한 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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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의 죽음을 이렇게 맞닥뜨리게 확실히 그 충격은 작은 것이 아니었다.
밤을 지세우면서 고민하고, 생각하고, 결단을 내렸지만 이런 상황이 오게 되니 확실히 상당히 가슴이 쓰라렸다.
물론 이런 상황을 예상하지 않고 포기하겠다고 한 것은 아니다.
포기하겠다는 그 한 마디에는 어떤 위험도 감수하겠다는 뜻이 내포되어 있는 말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이렇게 빨리 은성이의 처단이 내려질 줄은 몰랐다.
‘설마... 내가 이러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자신이 은성이를 포기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 않으면 이렇게 결단을 내리진 얼마 되지 않아 이런 참변이 벌어질 수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일을 벌인 것 같지 않은 가.
‘은성아.’
마치 잠을 자고 있는 듯 누워있는 아들의 모습을 바라보는 강민석 회장은 속으로 아들의 이름을 불렀다.
“경찰에 연락하겠습니다.”
박실장도 충격을 받은 듯 은성이의 모습을 바라보다 폰을 꺼내며 경찰에 신고하겠다는 말을 내뱉었다.
“기다려.”
그렇게 막 연락을 취하려던 박실장을 은성이에게서 시선을 때지 않은 강민석 회장이 그 행동을 제지했다.
무슨 생각으로 제지를 했는지 모르겠지만 박실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그러는 사이 강민석 회장은 어디론가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잠시간의 신호음이 가는 듯 하더니 잠시 후 낭랑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들은 만나셨나요?]
“이미 내가 공장에 도착 했다는 걸 알고 있지 않나?”
아무도 없다는 말은 거짓이라는 걸 강민석 회장은 알고 있었다.
자신이 정말로 이곳에 왔는지 한 두 명 정도의 감시인원은 붙여났을 것이기 때문이다.
“무슨 생각인거지?”
강민석 회장은 자신에게 아들의 이런 모습을 보여준 이유를 물었다.
아무리 아들을 포기했기로서니 이런 잔혹한 모습을 보여주는 건 확실히 심했기 때문이었다.
[속셈 같은 건 없어요. 그저... 장례정도는 치룰 수 있게 해줘야 할 것 같아서 말이죠.]
“장례라고?”
강민석 회장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그 정도의 배려는 해드려야 할 것 같아서 말이에요.]
“배려라... 배려란 말이지?”
[네... 그 정도의 배려는 저도 해줄 수 있답니다.]
“차이링... 당신은 참으로 잔인한 여인이구만.”
[훗...그런가요?]
아들의 시신을 눈앞에 두고 마주하게 된 부모의 심정이 어떠할지 알고서도 이걸 당당히 배려라고 말하는 차이링의 말이 강민석 회장으로 하여금 그녀를 다시 보게 만들었다.
“내 아들이 타살이 된 것을 세상에 알려지게 되면 어떻게 될 것 같나?”
[글쎄요... 그렇게 되면 확실히 귀찮아 지겠네요.]
“그런데도 순순히 아들의 시신을 내 앞에 보냈단 말인가?”
[회장님은 그런 어리석은 일을 저지를 인물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으니까요.]
“어떻게 그걸 장담하나?”
강민석 회장은 갈아 앉은 목소리로 물음을 던졌다.
[신화그룹이 버티고 있으니까요.]
“작정을 하고 신고를 한다면...? 사람의 마음이란 게 알 수가 없는 게 아닌가.”
[훗... 회장님....... 농담은 이쯤에서 그만하도록 해요. 저도 피곤하니까. 회장님이 잘 알고 있을 거 아닌가요? 앞으로 어떤 일들이 벌어질지. 그리고 아직 원본영상은 풀리지도 않았잖아요.]
“......”
강민석 회장은 차이링의 말에 다시 입을 열 수가 없었다.
자신이 신하그룹을 어찌 생각하고 있는지 차이링 그녀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아마도 은성이를 포기하겠다는 전화를 한 순간부터 그에 대한 확신이 섰는지도 모른다.
‘대담한 여자로군.’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이렇게 아들의 시신을 자신에게 돌려주었다는 것은 그녀가 확실히 보통의 강심장이 아니라는 증거였다.
[앞으로 회장님의 행보를 지켜보도록 하죠. 임시특위는 끝이 난 것이 아니라... 김철중 의원님 쪽에서 유보시켰을 뿐이니까 말이에요.]
언제든 다시고 상황을 반전 시킬 수도 있다는 말이었다.
그리고 실제로 급한 불을 껐을 뿐이지 상황이 종료 되었다는 게 아니었다.
강민석 회장도 그걸 잘 알고 있었다.
“끊겠네.”
짧게 한 마디를 남기고 강민석 회장은 전화 통화를 끝냈다.
잠자듯 누워있는 은성이의 얼굴을 잠시 동안 바라보았다.
아들이 이렇게 깨끗한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은 어쩌면 차이링이 말한 배려중에 하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은성이의 죽음은... 타살로 가지 않는다.”
“회장님?”
박실장이 놀란 듯 바라보았다.
“난 신화그룹을 택했던 거야. 그 결과가 이걸로 나타난 거지.”
“......”
박실장은 강민석 회장의 말에 아무런 대답도 할 수가 없었다.
“아무래도 난... 아버지로썬 실격인가 보구만......”
담담하게 말을 하고 있지만 그의 목소리는 상당한 슬픔이 묻어나왔다.
지금 이런 말을 하고 있는 그의 심정은 어떠할까.
그건 당사자가 아니면 모를 일이다.
며칠이 지난 후 유희숙은 아들의 사고 소식을 듣고 그 자리에서 혼절을 하고 말았다.
민박집에서 발견 된 그의 사인은 심장마비였는데 경찰은 이일을 큰 수사 없이 사건을 종결시켰다.
나중에 정신을 차린 유희숙은 아들의 시신을 확인하고 그럴 리가 없다며 왜 우리 아들이 심장마비로 죽을 수가 있냐고 다시 조사를 해야 한다고 하였지만 강민석 회장은 그러지 않았다.
경찰이 이렇게 빨리 사건을 종료시킨 것도 은성이를 발견하고 며칠 동안 손을 써서 가능한 일이었다.
그것을 다시 뒤집을 이유가 전혀 없었던 것이다.
“도, 도대체 왜 멀쩡하던 아들이 이렇게 심장마비로 죽을 수가 있어요?!”
“돌연사는 아무도 예상 할 수가 없는 일이야.”
“여보!”
“나도 당신만큼이나 슬퍼...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이일을 그런 쪽으로 키워 어쩌겠다는거야? 회사가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 당신도 이제 잘 알고 있잖아. 나도 상당히 힘들단 말이야.”
“으흐흑.......!”
손으로 얼굴을 감싼 유희숙은 눈물을 쏟아냈다.
“여보.”
그런 아내의 어깨를 감싼 강민석 회장이 천천히 등을 다독여주었다.
“우리 은성이의 장례식만은 성대하게 치루어 줍시다. 아들이... 마지막까지 편하게 갈 수 있도록.”
“저.. 때문이에요..... 내가 은성이를 바르게 키웠어야 했는데......!”
어깨를 들썩이며 눈물을 흘리는 유희숙은 아들이 이렇게 된 것이 모두 자신의 탓인 것만 같았다.
그래서 더 슬프고 억장이 무너지는 것만 같았다.
그렇게 은성이의 죽음은 강민석 회장의 집안에 다시금 암울한 분위기를 몰고 왔다.
은성이의 죽음 소식은 곧 언론을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신화그룹의 조세회피처에 관한 것으로 관심을 받고 있는 지금 그의 둘째아들의 돌연사는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기 때문이다.
장례식을 치루는 사진이 기사로 실리게 되었고 슬픈 아버지의 얼굴과 어머니, 그리고 형의 모습이 그대로 보여지 게 되었다.
상황이 그렇게 되니 질타를 하던 시민들도 어느덧 잦아들게 되었는데 그만큼 눈물을 쏟아내는 유희숙의 모습이 측은해 보였기 때문이었다.
장례식장엔 수많은 유명인사들이 다녀갔다.
세진그룹의 정석환 회장은 물론이고 주화그룹의 주성민 회장 등 정재계인사들이 다녀갔던 것이다.
밤 시간이 되어서 강민석 회장은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와 담배 한 대를 입에 물었다.
아무리 성대하게 장례식을 치룬다고 해도 미안한 마음이 가시지는 않기 때문이었다.
아내도 그렇고 아버지로써 책임을 다 하지 못 한 은성이에게도 죄책감이 들었다.
“후우~!”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다 핀 담배꽁초를 비벼 끈 그는 수행하기 위해 나선 비서와 다시 안으로 들어갔다.
‘누구지?’
그런 강민석 회장의 눈에 아내와 얘기를 나누고 있는 처음 보는 여자가 눈에 들어왔다.
검정색 정장에 스커트를 입고 있는 모습을 보아 조문객으로 온 것이 분명한데 눈에 띌 만큼 예쁜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은성이의 친구인가?’
그녀의 경호원으로 보이는 두 명의 사내가 눈에 들어온 강민석 회장이 그쪽으로 다가갔다.
“당신 왔어요?”
“그런데 이 여자분은...?”
고개를 끄덕인 강민석 회장이 이 여성에 대해서 물음을 던졌다.
“은성이가 미국에 있었을 때 가깝게 지냈던 아가씨래요.”
“그래?”
“중국에서 은성이를 보기 위해 이곳 한국에까지 왔데요. 베이징에서 이곳까지 오다니 얼마나 고마워요 참......”
다시 은성이가 생각났는지 눈물을 훔치는 아내를 뒤로하고 강민석 회장은 고개를 돌려 여인을 바라보았다.
“중국에서 은성이를 보기 위해 왔다니... 이렇게 와줘서 고맙네.”
“아니에요. 저보다 회장님께서 더 상심이 크실 텐데요.”
‘속도 깊은 처자로군...’
누가 봐도 아름답다고 생각 될 정도로 한 폭의 그림 같은 수려한 외모를 하고 있는 것이 호감이 가는 여인이었다.
“아가씨 이름이 어떻게 되지?”
중국에서 이곳까지 왔다는데 당연히 이름 정도는 기억해 둬도 좋을 것 같았다.
“차이링...”
순간 표정이 굳어지는 강민석 회장을 향해 그녀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게 제 이름이에요.”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