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6화 〉 216화 혹독한 대가
* * *
“그게 무슨 말이냐?”
김철중 의원은 이채를 띈 표정으로 박동구를 바라보았다.
“그러니까... 임시특위 구성을 유보시켜 달라?”
“그렇지요...”
“어떻게 해서 그런 결정이 나게 된 거냐.”
한 참 수위를 높여 신화그룹을 압박을 가하고 있는 와중에 나온 박동구의 말에 김철중 의원은 의아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마음이 바뀌어서 그런 결정을 내렸을 리가 없으니 뭔가 일이 있었던게 분명해 보였기 때문이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해서 이렇듯 박동구를 향해 의문을 표 한 것이다.
“저도 2시간 전에 받은 전화에서 얘기를 들은 것인데 그게 참으로 놀라운 얘깁니다.”
“놀라운 얘기라니?”
“강민석 회장 그 양반 참으로 냉정한 양반이더만요.”
“아, 그러니까 무슨 얘기냐니까?”
“궁금하십니까?”
“당연하지 이놈아. 갑작스럽게 임시특위 구성을 유보시켜 달라는데 그 이유가 어찌 안 궁금할 수가 있겠어?”
“흐흐흐... 장인어른도 참 제가 얘기를 안 해 준답니까? 거 기다리시면 알아서 듣게 될 텐데 따져 물으시긴......”
조소를 지으며 말하는 박동구의 말에 김철중 의원의 표정이 그대로 찌푸려졌다.
“네놈이 이제 날 가지고 놀려고 그러는구나... 응?”
“아이구... 가지고 놀려고 들다니요?! 어찌 사위인 제가 장인어른을 가지고 놀 수가 있겠습니까요? 농담이라도 그런 말 마세요.”
“아 됐으니까 빨리 애기나 해봐!”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소리치는 모습에 박동구가 귀를 막았다.
“아... 귀청 떨어지겠네...... 그 강민석 회장 있잖습니까? 그 양반 포기를 했답니다.”
“포기? 뭘 포기해?”
“차이링 아가씨에게 전화를 걸어 결단을 내렸다는 말이요.”
“전화를 걸어서 결단을 내렸다고? 가만......”
포기를 했다는 말에 반문을 했던 김철중 의원은 결단이라는 말에 퍼뜩 머릿속에 떠오르는 인물이 있었다.
“설마... 아들을 포기했다는 말이냐?”
“그렇지요... 그래서 그 사람 다시 봤다고 얘기를 한 거 아닙니까? 그만큼 신화그룹을 생각하고 있었던 건지는 모르겠다만 아버지로써 참으로 잔인한 처사가 어니고 뭡니까.”
“그 사람이 아들을 포기해......?”
김철중 의원의 표정이 진지하게 변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이건 상당히 충격적인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상황이 좋지가 않기로써니 아들을 포기해 버리다니 그건 절대 쉽게 생각 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나도 이 얘기를 들었을 때 믿지를 못 했다니까요? 아무리 그래도 친아들을 포기 하다니... 나 참......”
“아니야... 어쩌면 그 강민석 그 사람이기에 가능한 일일지도 모르지.”
“예? 그게 무슨 말이요, 장인어른?”
“네놈은 아직 강민석 그 사람에 대해서 잘 몰라서 그런데 난 인연을 맺은 지 좀 오래 되어서 그 사람의 성정이 어떠한지 알고 있지. 그리고 자신이 신화그룹의 회장이라는 것에 대단한 명예로 생각하는 인물이 바로 강민석이라는 사람인게야.”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아들을 포기 한다는 건 좀...”
“그러니까 네놈은 잘 모른다고 했잖아. 어쩌면 가족보다 더 회사를 중요시 할지도 모르지.”
“에이... 장인어른도 너무 앞서 나가시네......!"
“닥쳐 이놈아! 네놈이 뭘 안다고 그래?! 네놈이 나라의 경제가 무언인지 알아?! 기업가들과 오랫동안 교류를 해 봤냐고!”
“아, 알았어요... 그만좀 땍땍거리쇼. 나이도 있으신 어른신이 그러다 쓰러지면 어떡합니까?”
“이놈이 그래도!”
때리려고 손을 드는 동작에 순간 박동구가 옆으로 엉덩이를 빼며 거리를 두고 앉았다.
“거 어찌됐든 일단 임시특위에 대해서는 좀 더 지켜보고 결정을 해도 늦지 않을 거라고 차이링 아가씨가 말했습니다.”
“이 일의 원흉이 그 강민석 그 사람 차남 때문에 벌어진 일이니 그런 결단을 한 모양이구만.”
다른 어떤 조건들보다도 사건의 원흉에 대해서 해결을 보려한 것이 가장 효과 적일 수가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친아들을 포기했다는 것은 좀 충격적이긴 했다.
박동구에게 그럴 수 있다고 말은 했지만 정말로 그런 결정을 내린 것은 상당히 큰일이었기 때문이다.
“아직 분위기 조성을 위한 말만 꺼내 놓은 상황이었으니 유보시킬 수는 있겠지만 확실히 큰 결단을 내리긴 했어......”
부모로써 자식을 포기 한다는 것.
이건 정말 나라의 정책을 결정하는 일 만큼이나 쉬운 일이 아니었다.
따지고 보면 오히려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이쪽이 더 큰일 일 수가 있었다.
“그런데 언제부터 네가 차이링을 아가씨로 불렀냐?”
차이링의 얘기를 꺼냈을 때 전에는 아가씨라는 말을 붙이지도 않았었다.
“당연히 아가씨로 불러야지요.”
“당연하다고?”
“그렇지요. 차이링 아가씨는 이제 엄연히 그분의 여자가 된 거 아닙니까? 그러니 첫 수하로써 깎듯 하게 아가씨로 모셔야지요. 첫 수하인 내가 모범을 보여야 그 밑의 따까리들도 보고 배울 거 아닙니까? 흐흐흐......”
박동구의 말에 김철중 의원이 인상을 찡그렸다.
“네놈은 참으로 옛날부터 느꼈던 거지만 무슨 이상한 생각을 하는지 알 수가 없구나.”
“에이... 장인어른도 그분의 두 번째 수하이시면서 뭘 그리 어렵게 생각합니까?”
이만석의 말을 거역 할 수도 없고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해야 하는 상황이니 따지고 보면 틀린 말은 아니었다.
“이런 몰지각한 놈을 봤나!”
갑자기 다시 노성을 내뱉는 모습에 박동구가 의아한 듯 바라보았다.
“갑자기 왜 그러시오?”
“보자보자 하니까. 뭐? 두 번째 수하? 아무래도 네놈은 좀 맞아야겠다.”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 골프채를 가지로 가는 모습에 박동구의 얼굴이 흑 빛으로 변했다.
“저, 저에게 이러시면 안 되지요?! 그분의 명을 잊었습니까?!”
“닥쳐 이놈아! 따까리? 장인 보고 따까리라고! 이 썩을 놈의 자식이!”
“자, 장인어른! 이러시면 안 되지요! 그분이 다 지켜보고 있습니다!”
“내가 널 지켜보고 있다 이놈아!”
사정없이 골프채를 휘둘러 오는 모습에 박동구가 서둘러 서재를 빠져나갔다.
꼬르륵!
먹은 게 얼마 없어 일까.
배에서 울리는 배꼽시계 소리에도 은성은 인상을 찡그릴 힘이 없었다.
계속해서 단팥빵이랑 흰 우유만이 지급 되었는데 건장한 청년인 자신이 그걸로 계속해서 한끼로 때운다는 건 상당히 무리가 있었다.
거기다 세끼 꼬박 나오는 것이 아니라 두끼 걸러 한끼로 나오는 것 같은 느낌이라 배가 등가죽에 다 붙은 것만 같았다.
“물...”
수분도 제대로 보충이 되지 않아 목도 상당히 마른 상황이었다.
입술이 터서 갈라진지는 이미 오래 되었고 피부도 상당히 푸석해져 있었다.
체내의 수분부족으로 갈증을 느끼고 있어 당장 눈앞에 물이 있다면 그리 깨끗하지 않아도 전부다 마실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은성아... 강은성....... 지금 이 쓰레기 같은 네 모습은 도대체 뭐냐.’
지금쯤이면 자신이 사라진 것에 대해서 난리가 나고 경찰에 사람들을 시켜서 벌써 구하고도 남을 시간인데 깜깜 무소식이었다.
이 상황이 은성은 너무나 이해가 가지 않았다.
신화그룹의 오너일가의 아들인 자신이 도대체 왜 이러고 있어야 한단 말인가.
이래선 안 되는 일이다.
‘이년에게 무슨 한 수가 있었던가...’
그날 자신에게 지켜보도록 하겠다던 그 모습이 은성의 머릿속에 맴돌았다.
그저 허풍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지금에 와서는 정말로 뭔가 자신을 가둬 둘 만한 한 가지를 숨기고 있었지 않나 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아직까지 아무런 소식이 없을 수가 없었다.
“개 같은... 새끼들......”
이놈이고 저놈이고 생각만 해도 다 짜증이 나고 분노가 일었다.
어머니도 그렇고 아버지도 아직까지 자신을 구하지 못 하고 있는 것에 실망감과 화가 솟구쳐 올랐다.
그때 닫혀 있던 문이 열리며 한 무리의 인영들이 안으로 들어섰다.
“꼴이 말이 아니군요.”
거지꼴로 바닥에 대짜로 누워 있는 은성을 보고 차이링이 눈살을 찌푸렸다.
“무슨 볼일로 온 거지...? 왜 또 손가락이라도 자를려고? 크크큭......”
천장을 바라보며 갈라진 목소리로 대답한 은성이 실소를 터트렸다.
“원한다면 또 잘라 드릴 수 있죠.”
“악독한 년......”
아무렇지도 않게 자른다는 말을 하는 모습에 은성이 욕설을 내뱉었다.
“하지만 손가락을 자라는 것 보다 당신에게 안타까운 소식을 먼저 전해야 할 것 같네요.”
“......”
은성은 대꾸를 하지 않았다.
그저 작게 실성한 사람처럼 웃음소리만 내뱉고 있을 뿐이었다.
“오늘 아침에 당신의 아버지하고 통화를 했어요.”
“아버지?”
하지만 차이링에게서 나온 말에 은성은 다시 입을 열 수밖에 없었다.
“그래요.”
“무슨 대화를 한 거지?”
혹시 자신을 구해내기 위한 뭔가 얘기를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그렇지... 드디어 실마리를 잡으셨나 보구나.’
아무래도 자신이 어디에 갇혀 있는지 제대로 파악을 하지 못했던 것 같았다.
하지만 이제 차이링과 전화를 했다는 것을 보아 경고 내지는 압박을 가하기 위함이 분명해 보였다.
“뭔가 기대를 하고 있는 모양인데... 그 기대 접는 게 좋을 거예요.”
“뭐?”
은성이 고개를 돌려 차아링을 노려보았다.
“기대를 접으라니... 무슨 개소리를 하는 거야?”
목이 아파서 갈라지는 목소리로 말을 하였지만 목청이 작지는 않았다.
“포기하겠다고 하더군요. 아들인 당신을...”
“그, 그게 무슨 헛소리야?”
“말 그대로예요.”
“무슨 개소리를 짓 꺼리느냔 말이야! 이 개 같은 년! 그딴 말장난에 내가 넘어갈 것 같으냐! 포기?! 아버지가 날 포기했다고?! 미친 소리 하지마!!!”
너무도 충격적인 얘기를 들어서일까.
바닥에서 고개를 치켜든 은성은 차이링을 향해 핏대를 새우며 언성을 높였다.
하지만 그런 욕 짓거리에도 차이링은 마치 불쌍한 어린양을 바라보듯 안타까운 표정만을 짓고 있을 뿐이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