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3화 〉 213화 혹독한 대가
* * *
[자,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아무래도 비서관 같은데 뜻 밖의 인물의 갑작스러운 전화에 당황한 듯 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김철중 의원보다 젊은 중저음의 중년인의 음성이 들려왔다.
[강민석 회장님이시라구요?]
“자주 연락을 했어야 했는데 오랜만에 연락을 합니다. 윤의원님.”
웃음이 깃든 밝은 톤으로 그리 말하니 전화상에서도 역시나 밝은 음성이 들려왔다.
[서로 바쁘면 연락도 뜸해지고 그런 것이지요. 괜찮습니다.]
“하하하... 그렇습니까? 차기 대통령이 되실 분이신데 참으로 겸손 하십니다.”
[대통령이라니요... 아직 선거도 치루지 않았는데 그러면 제가 무안하지 않겠습니까.]
“지지도 조사와 여론추이를 보면 이미 답은 나와 있는데요... 후보경선은 말할 것도 없는 상황이지요. 그런데 다름이 아니라... 제가 윤의원님에게 부탁을 하나 하고 싶어서 말입니다.”
그렇게 서로 좋은 덕담을 주고받은 강민석 회장이 조심스럽게 얘기를 꺼냈다.
[부탁이요?]
“예... 알고 있으실지 모르겠지만 회사 쪽에 불미스러운 일이 생겨서 말입니다.”
[불미스러운 일이라... 혹시 국세청에서 뜬 세무조사에 관한 것 아닙니까?]
“들으셨나봅니다?”
[정치권에서 돌고 도는 얘기가 거기서 거기 아니겠습니까. 모를 것도 없지요.]
“하하하... 그렇긴 합니다.”
윤정호 의원의 말에 너털웃음을 터트린 강민석 회장이 다시 말을 이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작년 초에 이미 좋게 끝난 일이었어요. 그런데 거참... 일이 이렇게 불거졌습니다.”
[그렇긴 하지요.]
자신의 얘기에 동조를 해주는 듯 한 음성에 강민석 회장은 좀 더 난처한 웃음을 지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
“그래서 알아보니 확실한 증거가 있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자금 흐름에 대한 정황을 잡았다는데 그게 우리 신화그룹을 엮어서 의심을 하고 있어요. 이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일입니까? 물증하나 없는 상황에서 다짜고짜 긴급 세무조사라고 열심히 일하는 우리 직원들 마음 심란하게 만들고 들쑤시고 돌아갔습니다. 그 때문에 분위기가 난리도 아니었습니다.]
[듣고보니 참으로 힘들었겠습니다.]
“그렇지요... 그런데 이게 제선에서 해결을 보면 좋겠지만 일이 조금 어렵게 되었어요.”
[저에게 바라는 도움이 무엇입니까.]
얘기를 늘어놓던 강민석 회장은 드디어 올 것이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말을 돌리지 않고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김철중 의원을 한 번만 설득시켜 주십시오.”
[김철중 의원을 말입니까.]
“그 사람이 작정을 하고 이일에 대해서 주도적으로 압박을 가하고 있어요. 제가 전화를 해서 대화를 나누어 봤는데 상황이 좋지가 않아요.”
[그라니까... 강회장님 말씀은 제가 김철중 의원을 한 번 만나서 대화 좀 해달라는 것입니까.]
“예.. 그렇습니다. 그렇게만 해주시면 우리 신화그룹 자체에서 앞으로 경제 활성화 방안을 위한 투자유치에다 정부가 개최하는 모든 정책에 적극 협조를 하겠습니다. 이건 신화그룹의 총수인 내 명예를 걸고 약속드리지요.”
[......]
강민석 회장은 큼만 먹고 조건을 내걸었다.
그저 친분만으로 도와달라고 하는 것이 아니었다.
만약 윤정호 의원이 대선에 승리하여 청와대에 입성을 하게 된다면 한국경제를 이끌고 있는 대기업의 총수들을 신경 쓰지 않을 수가 없는 일이다.
신화그룹이 작은 회사거나 중견기업도 아니고 말 그대로 재계서열 수위권을 다투는 대기업이었다.
그런 신화그룹의 총수인 강민석 회장이 이렇게 나서서 이런 파격적인 발언을 하였는데 어찌 보면 위험 할 수도 있는 일이었다.
정책이 어떠냐에 따라 기업경제에 불이익이 따를 수도 있는 상황에, 신화그룹이라는 거대한 여객선을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안개 속으로 들이밀겠다는 말이나 마찬가지여서 협조를 하겠다는 것은 정말로 큼 맘을 먹지 않는 한 불가능한 얘기였다.
거기다 이건 강민석 회장이 그동안 추구해온 기업정신을 깨트리는 행위이기도 했다.
정책에 무조건적으로 협조를 하겠다니 따지고 보면 이건 위험 할 수도 있는 게 아니라 정말로 위험한 발언이었다.
[강화장님이 저를 할 말을 잃게 만드십니다.]
“그만큼 이번사안이 좋지가 않기 때문입니다.”
[도대체 무엇입니까. 무엇이 김철중 의원이 신화그룹을 이렇게 압박을 가하게 된 것이지요?]
잠시 뜸을 들이던 강민석 화장이 한 숨을 내쉬었다.
“하아... 좋습니다. 이렇게 도움을 청하는 자리인데 말을 안 해 줄 수가 없겠네요.”
그렇게 강민석 회장은 일성회와의 일을 얘기했다.
자신의 둘 째 아들이 어떤 지경에 이르게 되었는지 그리고 얼마나 가슴을 조렸는지.
윤정호 의원에게 털어 놓았던 것이다.
허나 여기엔 빠트린 것이 있었는데 은성이 일성회가 운영하는 룸살롱에서 벌였던 겁탈과 폭행, 그리고 룸을 난장판으로 만들었다는 얘기는 하지 않았다.
그저 작은 말싸움과 같이 소란만 있었다고 낮춰서 말을 한 것이다.
“은성이 그 애가 입이 조금 험한 면이 있긴 해도 나쁜 애는 아닙니다. 그런데 이런 일이 벌어졌으니...”
[그거 때문에 납치가 됐단 말입니까?]
의아하다는 듯 물어보는 말에 강민석 회장이 다시 말을 이었다.
“그렇진 않습니다. 그 애가 그렇게 룸에서 나오다가 예쁜 여자 하나를 본 모양입니다. 그래서 말을 걸고 접근을 했다는데 알고 보니 여자가 삼합회의 전 지부장이었다던 차이링이라는거 아니겠습니까? 게다가 지금은 일성회에 몸담고 있다고 하는데 아무것도 모르고 접근을 했던 그 애의 추파가 상당히 불쾌 했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벌어진 사건을 내가 좀 일을 해결해 보려 나서봤는데 그게 참 가관이더란 말입니다.”
기가 차다는 듯 말하는 강민석 회장의 말끝에 윤정호 의원의 목소리가 다시 들여왔다.
[안 좋은 말이라도 오고갔습니까?]
“도대체 왜 납치를 하였냐고 하니까 그 여자가 하는 말이 모욕감을 느꼈답니다. 그래서 납치를 한 거라는데 그 말을 듣고 얼마나 어이가 없었던지. 예쁘면 추파를 던질 수 있는게 남자들인데 세상에 이런 일이 어디에 있단 말입니까. 무엇보다 그런 일성회의 뒤를 봐주고 있는 게 바로 김철중 의원입니다. 일성회가 그렇게 클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다 있었더란 말입니다.”
[확실히 심각한 일이긴 하네요.]
“윤의원님도 자식이 있으니까 아버지의 마음이 어떤지 이해하실 겁니다. 난 그저 아들을 다시 찾고 싶을 뿐인데 김철중 의원은 뭔가 단단히 오해를 하고 있어요. 오해를...!”
[......]
“여당의 거물이 조폭들을 비호하다니요... 요즘 같은 세상이 이게 말이나 되는 일이란 말입니까. 나 참......!”
[강회장님이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잘 알겠습니다.]
“내 이렇게 부탁을 드리지요. 같은 아버지로써 내 마음을 헤아려 주셨으면 합니다.”
[알겠습니다. 내일 다시 직접 연락을 드리지요.]
“오랜만에 연락을 했는데 이런 애기를 꺼내게 돼서 안타깝습니다.”
[그 심정 다 이해합니다.]
그렇게 전화 통화를 끝은 강민석 회장은 작게 한 숨을 내쉬었다.
“내 이놈을 가만두지 않을 테다...”
강민석 회장은 전화를 끊자마자 속이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것을 느꼈다.
“집안 망신은 물론이고 회사에다 이제 이 애비의 자존심마저 땅으로 구겨버리는구나.”
그동안 은성이 저지른 잘 못은 아내의 부탁과 애원으로 넘어간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일은 절대 그냥 넘어 갈 수가 없었다.
“다리몽둥이를 분질러서라도 버르장머리를 고쳐나야지 이대론 안 되겠다.”
아내가 애원을 하고 눈물을 흘려도 절대로 용서해주지 않을 생각이었다.
매를 드는 것은 물론이고 그래도 안 되면 오지 섬에 가둬넣고 일년간 합숙을 시킬 생각도 했다.
뼈 빠지게 굴리고 당해봐야 정신을 차릴 테니 말이다.
“이놈... 강은성......!”
김철중 의원보다 회사를 위기에 몰아넣고 자신의 체면을 쓰레기통으로 처박아버린 아들 은성이에 대한 그의 분노가 더욱 컸다.
강민석 회장과 전화 통화를 끝낸 윤정호 의원은 생각에 잠기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겨우 추파정도로 차이링이 그런 일을 벌일 리가 없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이미 이만석을 통해서 차이링에 대한 얘기를 많이 들었던 윤정호 의원은 그녀의 성격이 어떠한지 알고 있었다.
추파를 한 번 던졌다고 납치를 하다니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가지 않는 일이다.
‘다른 일이라면 이런 조건에 부탁을 해오니 고민을 해볼 수도 있겠지만 이건 그렇게 생각해선 안 된다.’
다른 무엇도 아닌 일성회가 관련된 일이다.
그 일성회의 다음대 회장으로 오를 사람이 이만석이 아니던가.
그리고 차이링은 자신의 딸처럼 그와 깊이 관여되어 있는 여자였다.
일성회가 아닌 다른 쪽이었다면 파격적인 조건을 내건 강민석 회장의 얘기를 두고 김철중 의원과 한 번 대화를 해볼 마음은 가져 볼 수가 있었다.
하지만 그 일에 이만석이 관계가 된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아무리 강민석 회장과 관계가 좋다고 하더라도 이일을 두고 이만석과 척을 질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아버지로써라는 말에 일단 알아보기로 마음은 먹었다.
‘직접 물어보는게 빠르겠지.’
고민은 길지 않았다.
윤정호 의원은 곧장 정인철 회장에게 연락을 취했다.
“정회장님 갑자기 연락을 드려 죄송한데 한 가지 물어볼게 있어 전화를 드렸습니다.”
[무슨 일이라도 생겼습니까?]
이만석의 일로 인해 두 사람의 관계가 많이 부드러워진 상황이라 이런 갑작스러운 전화에도 크게 불쾌감을 보이거나 하진 않았다.
“알고 계시겠지만 일성회와 신화그룹간의 일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일 때문이었군요.]
“차이링이 강민석 회장의 차남을 데리고 있다는데 왜 그런 일이 있었는지 혹시 알고 계시면 좀 듣기 위해서 전화를 드렸습니다.”
[뭔가 일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전화를 주셨으니 숨길 이유도 없고 알려드리도록 하지요.]
정인철 회장는 차이링에게 들었던 얘기를 윤정호 의원에게 그대로 전해주었다.
룸살롱에서 있었던 일, 그리고 그녀에게 접근해서 잘 풀리지가 않자 조폭을 동원해 납치를 해서 겁탈을 하려고 한 것까지 그 얘기들을 전부 알려준 것이다.
[그 은성이라는 놈 행실이 참으로 좋지가 않더군요. 연예기획사에서 예능에 꽂아주는 조건으로 많이 건드리고 다닌 모양입니다. 이쪽 물을 오래 먹다보면 그것만 봐도 어느 정도 그림이 잡힙니다. 지금까지 어떤 행실을 벌이고 다녔을지. 납치했으면 어떤 짓을 했을지 답이 나오는데 가만히 있을 애가 아니지요. 그래서 지켜보기로 했지요. 이 일에 대해서. 차이링 그 애한테 얘기를 들은 것도 있고. 그런데 무슨 일이 있었기에 이렇게 직접 다 전화를 하신 겁니까.]
“강민석 회장과 전화통화를 했습니다.”
[그 양반이랑 말입니까?]
“일단 얘기는 잘 들었습니다. 다음에 조촐한 자리를 마련 할 테니까. 그때 가서 편하게 대화를 나누어 봅시다.]
[허허허... 대통령이 되실 분에게 이런 말을 듣게 되니 참으로 기분이 좋군요. 확실히 제 인생에도 이제 제대로 꽃이 핀 것 같습니다.]
“아직 대통령이 된 것도 아닌데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부끄러울 뿐입니다. 그럼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전화 통화를 끝낸 윤정호 의원은 작게 한 숨을 내쉬었다.
‘왜 거짓말을 했습니까.’
자신에게 말 했던 강민석 회장의 말이 거짓말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 윤정호 의원은 아버지의 마음을 빗 되서 말하는 그의 대한 마음에 전화를 걸었던 자신의 심정이 차갑게 식는 것을 느꼈다.
어떤 생각에 그런 거짓말을 하였는지 알 수는 있었다.
하지만 자식을 가지고 그렇게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된다.
하란이에게 늘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윤정호 의원이 무엇보다 싫어하는 것이 아버지가 어떤 심정이든 자식을 가지고 거짓말을 하는 것이었다.
그 거짓으로 인해 하란이에게 상처를 안겨 주었던 윤정호 의원으로써는 그 때문에 하란이에게 늘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살았던 것이다.
영문도 모른 채 가족들에게 냉대와 멸시를 당했던 아이.
어린것이 인정을 받아보려고, 가족의 일원으로써 멸시와 모멸을 받으면서도 더 친근하게 가려했던 그 아이가 버려졌던 아픔과 거짓이 밝혀지면서 그 마음마저 칼로 긁어버린 꼴이 되지 않았던가.
그렇게 애써 스스로를 위로하며 그래도 자신을 유일하게 예뻐해주던 아버지에게 마저 배신감을 느끼면서 밝게 웃으며 노력 했던 하란이는 엇나가기 시작했고 그 아이를 잡아 준 것이 이만석이었다.
그래서 늘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있었는데 지금도 옛날처럼 다시 밝은 웃음을 짓는 하란이의 얼굴만 보면 아버지로써 너무나 행복했다.
‘당신의 심정이 어떠한지 알겠지만... 이번 일 만큼은 내 절대 도와줄 수 없겠구려.’
상당히 불쾌하고 기분이 좋지가 않았다.
강민석 회장은 윤정호 의원 앞에서 자식을 가지고 거짓말을 해선 안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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