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화 〉 200화 재회
* * *
“나 때문이라니...? 그게 무슨 뜻이야.”
갑작스러운 말에 현호는 이해가 가지 않는 다는 듯 물어보았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방금 전에 혜리가 한 말은 너무도 뜻 밖의 말이 없기 때문이다.
애들과 함께 어울려 지냈던 게 자신 때문이라니. 왜 그런 말을 하였는지 현호는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는 일이었다.
“정말로 모르겠어?”
그런 현호의 질문에 혜리는 다시 한 번 조금 전의 같은 물음을 던졌다.
“도대체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어.”
현호는 망설이지 않고 그렇다는 듯 대답했다.
“이게 너의 둔한 면인지도 모르지.”
“혜리야.”
그때 종업원이 두 잔의 커피를 가지고 왔다.
한 잔은 혜리 앞에, 그리고 카푸치노는 현호의 앞에 놔두고 맛있게 드시라는 인사를 한 후 돌아갔다.
“그전에 너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어.”
“하고 싶은 말?”
혜리에게 이유를 물어보려던 현호는 자신에게 또 뭔가 할 말이 있어 보이는 것에 반문을 했다.
“지나씨하고는 왜 해어 진거야?”
“......”
“약혼식까지 잡혀 있었다며?”
생각지 못 한 질문에 현호는 대답하지 못 했다.
“어떻게 안 거야.”
“어제 너의 소식에 대해서 조금 알아보았어. 그리고 지나씨하고 약혼식도 깨고 헤어졌다는 걸 알게 된 거야.”
거기에 대해서 알아보았다니 조금 당황스러운 일이다.
“왜 헤어지게 된 건지 물어봐도 돼?”
그런 현호에게 혜리가 다시 조심스럽게 질문을 던진다.
스푼을 이용해 커피잔을 저은 현호가 들어서 향을 느끼며 한 모금 마셨다.
조심스럽게 다시 잔을 내려놓고는 닫혀 있던 입을 열었다.
“집안 대 집안의 만남이기도 했고... 중요한 건 각자가 서로를 원하지 않는 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야.”
“겨우 그거 때문이야?”
혜리는 현호가 해어진 이유가 저거 말고 다른 게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지나의 집안이 어떤 집안이던가. 한국에서 선두주자를 달리고 있는 세진그룹의 총수인 정석환 회장의 딸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런 두 사람을 이어주는데 주성민 회장이 많은 노력을 기울였을 터다.
그것을 그저 성격차이로 깼다는 건 말이 되지 않는 알이었다.
현호의 아버지도 반대가 심했을 것이고 그건 정석환 회장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딸아이를 시집을 보내는데 쉽게 결정 할 부모님이 어디에 있단 말인가.
그렇게 결정을 내린 것을 다시 약혼식까지 준비하려던 것을 깨고 해어지겠다는 것을 그대로 허락하지는 않을 것이 분명했다.
혜리 또한 그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녀의 아버지 또한 헤지펀드회사를 운영하는 오너이며 금융업계의 큰 손으로 불리고 있다.
국내투자를 넘어 해외에 시선을 돌려 시장변동을 알아보고 주식은 물론이고 나라의 국채까지 사들여 손해나 피해를 입게 되면 소송을 불사하는 등 이익을 낼 수 있는 방법에 있어 모든 방법의 수단을 다 동원하여 최대수익을 이루어내고 있었다.
일부에서는 그것을 두고 비판을 하는 이들도 없잖아 있었지만 해외만 보더라도 악명이 자자한 헤지펀드회사들이 썩은 고기마져 개걸스럽게 먹어치는 하이에나라고 빗되어 말하기도 하지만 그만큼 그런 식으로 금융업에서 이름을 날리며 양육강식의 세계에서 살아남아 떳떳이 나아가고 있는 것처럼, 자국의 회사 또한 살아남으려면 맞불작전으로 나서야 하지 않았겠느냐는 반론도 상당했다.
돈을 굴리는 것만으로 치면 10위권 안에 드는 대단한 큰 손이라 할 수가 있었다.
혜리는 그런 식으로 사업을 벌이는 아버지를 좋게 보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렇게 남부러울 것 없이 살아온 만큼 이쪽에서 흘러가는 분위기 정도는 모르지 않았다.
그러니 더욱더 현호의 저 말이 그대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이다.
“나... 알고 싶어.”
“......”
“네가 왜 지나씨와 헤어지게 되었는지.”
현호는 별 다른 말없이 다시 잔을 들어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하지만 혜리는 그런 현호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고 계속해서 바라보았다.
“왜 그렇게 알고 싶어 하는지 물어봐도 될까?”
“그러면 말해 줄 거야?”
“어.”
현호는 그러하겠다고 짧게 대답했다.
“너를 사랑하기 때문이야.”
“뭐?”
순간 현호의 눈살이 살짝 찌푸려졌다.
“내가... 널 좋아하고 있다고.”
“......”
생각지도 못 한 말에 현호는 다시금 입을 다물었다.
아니, 솔직히 뭐라고 대답을 해야 할 지 몰랐다.
이건 너무도 충격적인 발언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놀라는 걸 보니 정말로 몰랐던 모양이네.”
그 모습에 혜리는 다시 쓴웃음을 지었다.
정말로 자신의 마음을 이렇게나 몰랐다는 것이 마음을 아프게 한 것이다.
“언제부터 였어?”
잠시간의 침묵이 감돌고 어느 정도 마음이 진정이 된 현호가 어색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네가... 나에게 손을 내밀었을 때.”
“손?”
“애들과 어울리지 못 하고 따돌림 당하고 있을 때 네가 나서서 나에게 친구하자고 했을 대부터 였을거야.”
혜리는 어릴 때 말 수도 적고, 성격도 상당히 내성적이었다.
그래서 아이들과 어울리지도 못 하고 그저 공부만 하는 그런 조용한 아이었다.
그런 식으로 시간이 흐르다보니 자연스럽게 반 아이들과도 멀어지게 되었고 은연중에 완전히 자신에게 특별한 일 아니면 말조차 걸지 않는 상황에 이르렀고 나중에 가서는 따돌림 비슷한 것도 받게 되었다.
그때는 혜리의 집안이 지금처럼 대단하진 않은 때여서 꽤나 잘사는 집안의 애들 사이에서 험담을 대놓고 들은 적도 많았다.
그때 스스럼없이 다가와 도움을 주었던 것이 현호였다.
어렸을 때부터 성격이 밝았고 활달한 아이었던 현호는 반에서도 꽤나 인기가 많았다.
무엇보다 가려서 친구를 대하지 않았고 성격 자체가 낙천적인 면도 있어서 스스럼없이 사람들을 대했던 것이다.
한 번은 대놓고 혜리를 괴롭히는 짓궂은 애와 싸운 적이 있었는데 선생님한테 혼나면서도 바보처럼 실없는 웃음을 지었었다.
그리곤 그런 현호에게 미안해서 사과를 하려고 기다렸던 혜리에게 현호는 손을 내밀었다.
{이제부터 우리 친구 하는 거다?}
{친구?}
{그래... 당하고만 있지 말고 때리면 너도 때려. 하지만 네 성격을 보니 그러지는 못 할 것 같고... 나하고 친구하면 그놈들이 또 너 괴롭히지 못 할 거 아냐?}
{......}
{그리고 지금 말하는 거지만 너 예쁘게 생겼으니까 자신감 가져. 반에서 너보다 예쁜애도 없더만.}
장난스럽게 그렇게 말하는 현호를 혜리는 아무 말 하지 못 하고 얼굴을 붉혔다.
{나 손 안 잡아 줄 거야?}
망설였던 혜리는 그렇게 현호가 내민 손을 잡았다.
{오늘부터 우리 친구인거다?}
눈에 멍이 든 채로 웃음을 지으며 말하는 그 모습에 혜리는 가슴이 콩닥콩닥 거리는 것을 느꼈다.
“나도 나중에 느낀 거지만 그때부터 널 이성으로 조금씩 보기 시작했던 거 같아.”
생각지도 못 한 말이어서 현호는 입을 반쯤 벌리고 바라보았다.
혜리가 자신을 남자로 보고 있었다는 것도 놀랐거니와 그 마음을 지금까지 가지고 있었다니 상당히 충격적이었다.
“네 앞에서는 대도록 이면 아무렇지도 않은 척 하려 했지만 조금은 느끼고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은 했었어. 하지만... 정말로 몰랐나보네.”
현호의 반응에 그렇게 말한 혜리가 이번엔 반대로 질문을 던졌다.
“자, 말해봐. 지나씨 하고는 왜 헤어 진거니?”
작게 한 숨을 내쉰 현호가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따로 사랑하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야.”
“그랬구나...”
역시나 예상했던 대답이 대답이었는지 혜리는 그렇게 놀라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혹시 그 여자 내가 아는 사람이야?”
“......”
“맞구나.”
대답을 하지 못 하는 모습에 혜리는 웃음을 지었다.
“하란이지...? 네가 좋아하는 사람.”
역시나 이번에도 대답을 하지 못 하는 모습에 혜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놀랍네... 지나씨와 그렇게 된 걸 보고 하란이는 잊을 줄 알았는데.”
그녀 또한 현호의 소개로 하란이를 알고 지냈다.
현호 처럼 성격도 밝고 활달한 대다 외모도 인형처럼 귀엽게 생겨서 호감가는 소녀였었다.
“잊을 수 없었어. 유학생활을 하면서 그리고 지나씨와 만나면서 확실하게 깨달았으니까. 난 하란이를 잊지 못 할 거라는 걸.”
“......”
“네가 나한테 한 말은 상당히 충격적이야. 하지만... 그래서 지금 네가 나를 더 잘 이해해 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
“......”
“네 말대로야. 난 하란이를 잊지 못하고 있어. 지금도 지나씨와 헤어지고 이렇게 혼자서 조용히 지내고 있어. 하란이 걔가 어떤 남자를 만나고 어떻게 지내는지 중요하지 않아. 중요한 건 내가 그 애를 사랑하고 있다는 거야.”
“하란이는 남자친구가 있어?”
방금 전의 현호의 말에 혜리는 다른 질문을 던졌다.
“응... 실제로 보니 상당히 멋진 남자더군. 기자라고 하는데 자신감도 넘치는데다 어디 가서도 기죽고 살진 않겠더라.”
“무슨 생각인거야?”
“기다릴 거야.”
현호는 혜리를 바라보며 사람 좋은 웃음을 지었다.
“설사 나에게 기회가 없을지 모르지만... 그날... 하란이에게 보기 좋게 차이고 돌아가던 날...... 속으로 다짐을 했어. 이대로 짝사랑으로 끝날지 몰라도 조용히 뒤에서 기다리겠다고.”
“상당히 멋진 남자라며?”
“응... 좀 질투가 나긴 했지만 키도 훤칠한데다 분위기도 그렇고 하란이 얘가 남자보는 눈은 있더라.”
“그런데도 기다린다고?”
“혜리야.”
갑자기 자신을 부르는 모습에 혜리는 눈을 깜빡이며 바라보았다.
“네 말이 정말로 사실이라면 넌 이미 내가 어떤 심정으로 하란이를 바라보고 있을지 이해하고 있을 거야.”
“......”
현호의 말대로 혜리는 그의 대답을 듣지 않아도 이미 알고 있었다.
“하란이는... 상처가 많은 아이야. 내가 그걸 치유해 줄 수 있다면... 그런 기회가 온다면... 꼭 그 애 옆에 있어줄 수 있도록 기다리고 싶어.”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