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9화 〉 169화 또 한번의 합숙
* * *
여기저기서 수군거리는 말들이 들려왔다.
교관이 나서려던 것을 제지한 안나에 대한 얘기가 주를 이루었는데 딴에는 작게 얘기한다고 하는 것이지만 인원이 25명인데 안 들릴 리가 없었다.
한국어라 뭐라고 하는지 알아들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허나 그러함에도 안나는 대충 이들이 어떤 내용을 얘기하고 있는지 느낌상 알 수는 있었다.
“이들 중에 네 위치가 어느 정도지.”
안나가 다시 영어로 물어보았다.
허나 어색하게 서있던 춘배는 안나가 하는 말을 제대로 알아들을 수가 없었고 이번엔 안영만을 바라보았다.
“네 실력을 물어보는 거 같은데.”
“실력?”
“그래... 우리들 중에 네가 몇 손가락 안에 드냐고.”
“아하! 그 얘기였군.”
안영만의 설명을 통해 알아들은 춘배가 당당하게 손가락 하나를 폈다.
“넘버원!”
“장난하냐?”
당당히 엄지를 척 내밀며 하는 말에 이원종이 인상을 찌푸리며 반박에 나섰다.
“왜 맞잖아. 이중에 제일 힘 쎈 사람이 누구야?”
“인마, 싸움은 힘이 다가 아니야. 그리고 내가 너 보다 강할지 어떻게 알어?”
“그래서 인정 못하시겠다?”
“당연하지!”
“그럼 이 자리에서 결판낼까?!”
“오냐... 바라던 바다!”
흥분하며 앞으로 나서려는 이원종을 안영만이 어깨를 잡았다.
“손 치워라. 여기서 누가 강한지 저놈하고 결판을...”
갑자기 자신의 어깨를 잡고 막아서는 안영만의 행태에 이원종이 눈살을 찌푸리며 말하다가 교관과 안나를 보고는 그대로 말을 멈추었다.
이미 차갑게 굳어버린 교관들의 표정은 화를 억누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 모습을 무표정하게 바라보는 안나의 시선도 상당히 좋지가 못했다.
‘아뿔사...!’
그제야 자신의 실수를 깨달은 이원종이 마른침을 삼켰다.
이곳은 길거리가 아니라 부대 안이었다.
그리고 저들은 군인신분이고 자신들은 훈련병이나 다름없는 상황이 아니던가.
헌데 그것을 망각하고 평소처럼 춘배와 흥분을 하며 말싸움을 벌이다 나서려고 했던 것이다.
이건 작은 실수가 아니라 얼차려를 하루 종일 받아도 할 말 없는 큰 실수였다.
춘배 또한 이원종의 얼굴을 보고 뭔가를 느꼈는지 더 이상 입을 열지 않았다.
그저 앞에 서있는 안나의 눈치를 볼 뿐이었다.
“네가 최고라고?”
다시 영어로 묻는 안나의 질문에 이번에는 그래도 어떤 말을 하는지 눈칫 것 알아들은 춘배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 안나가 갑자기 못을 돌리더니 입고 있던 상위를 벗어 한 쪽으로 던졌다.
“이야~!”
“저 몸 봐라...”
“장난아니네.”
그에 다시금 일행들 사이에서 수근 거림이 흘러나왔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구릿빛 피부에 탄력적인 팔은 적당히 근육이 잡혀 있으면서도 날렵해 보였다.
어깨 또한 발달이 되어 있었고 슬림한 몸매도 군살하나 없이 탄력적으로 발달해 있었다.
거기다 흉터로 보이는 자국들까지 더 해져 일반적인 여성의 몸으로 생각되지 않았다.
그에 춘배도 감탄사를 내뱉으며 바라보고 있는데 안나가 그를 향해 다시 입을 열었다.
“너도 상의 벗어.”
“예?”
반문을 했던 춘배가 고개를 돌리자 안영만이 군복 상의를 가리키더니 안나가 벗어놓은 쪽으로 눈치를 줬다.
그에 자신의 군복을 바라보고 안나가 벗어놓은 상위를 보더니 그제야 무엇을 말하는지 알아듣고는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어...그러니까...마이 옷...아웃?”
자신이 입고 있는 상위를 가르키며 뒤섞인 말로 표현하는 춘배의 모습에 안나는 별다른 지적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대충은 알아들은 것 같은 모습이었다. 그에 춘배는 다시 당혹스러운 심정을 느꼈지만 무표정하게 자신을 바라보는 안나의 시선에 하는 수 없이 입고 있는 상의를 벗었다.
그러자 지급받은 반팔 티 하나만 입은 채가 되었는데 두꺼운 팔 근육과 지방덩이가 뒤섞인 굵은 팔뚝이 내비춰졌다.
한 쪽에 놔둔 춘배는 안나가 왜 자신의 옷을 벗으라고 했는지 알 것 같아 더욱 난처한 것이다.
“저거 아무래도 춘배 형님하고 싸우려는 거 같은데?”
“에이 설마...”
“옷 까지 벗어 던졌잖아.”
“아무리 그래도 여자의 몸으로 춘배 형님을 정면으로 상대한다는 건 말이 안되지.”
“야, 그러면 저건 뭐야?”
“진짜 같은데?”
이 중에서 그래도 힘이 제일 강하다고 소문이 나있는 것이 춘배였다.
그 힘을 바탕으로 기선을 제압해 한 방에 쓰러트린 전적도 여러번이라 그걸 알고 있는 일성회 사내들은 정면으로 싸우려는 안나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아무리 그녀가 단련이 되고 강하다고해도 여자였던 것이다.
덩치도 차이가 나는데 절대 이길 수가 없는 싸움이었다.
“영만아... 저거 말려야 하는거 아니야?”
이원종도 안나가 춘배를 상대하려는 것을 알고는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수가 있겠지.”
허나 그 모습을 별다른 동요 없이 안영만은 잠자코 지켜보았다.
“수가 있다니? 이게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잖아. 덩치에서도 그렇고 저 거구를 어떻게 여자의 몸으로 이긴다는거야?”
“승산 없는 싸움은 걸지 않았을 거야.”
“뭐?”
“이렇게 우리가 다 보고 있는 앞에서 질 걸 알고 싸움을 걸 바보는 아니라는 소리지.”
믿을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돌린 이원종은 다시 안나를 바라보았다.
척 봐도 일반 여자들보다는 두꺼운 팔뚝에 근육이 잡혀 있다고 하지만 상대가 자신도 버거운 춘배였다.
무기를 다루거나 그런 건 몰라도 맨몸 싸움은 상대도 안 될게 뻔했다.
‘도대체 무슨 수가 있다는거야?’
이원종은 알 수 없다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저기...”
뭐라고 말은 해야겠는데 영어로 뭐라 말해야 할지 알 수가 없어 난처하기만 한 춘배였다.
“덤벼.”
그때 안나가 오라는 듯 짧게 말했다.
그 말은 물어볼 것도 없이 바로 해석이 될 정도로 알아들었다.
“내가 잘 못했으니까. 하지 맙시다... 그...쏘리...오케이? 아임쏘리!”
양손을 앞으로 펴며 용서를 구하던 춘배는 그때 순식간에 자신에게 달려온 안나를 보고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어?”
그리고 춘배는 보았다.
바닥을 박차고 순식간에 위로 도약한 안나의 모습을.
그리고 몸이 돌아간다 싶은 순간 정확히 오른발의 뒤꿈치 부분이 춘배의 뺨을 그대로 강타해 버렸다.
퍼억!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높이 떠올랐다 싶은 순간 고개가 옆으로 돌아간 춘배가 뇌가 흔들리며 다리에 힘이 풀렸고 바닥에 그대로 엎어져 굴렀다.
그사이 다시 바닥에 착지한 안나는 바닥에 엎어져 있는 춘배를 말없이 내려다보았다.
“저, 저거 뭐야?”
“방금 하늘을 날았잖아!”
“내, 내가 본 게 진짜냐?!”
믿을 수 없는 도약력과 몸이 회전을 하더니 그대로 턱을 강타해 버리는 발차기에 순식간에 여가저기서 감탄사가 감돌았다가 싸한 적막감과 긴장감이 주변을 에워쌌다.
특히 눈을 두 어번 비볐다가 바라보는 이들도 있었는데 그만큼 놀라운 발차기 였던 것이다.
확실히 이건 가슴이 철렁 할 만큼 너무 충격적이다.
“저런 건 영화에서나 가능 할 줄 알았는데...”
뒤에서 일명 꼴통이라 불린 사내가 멍하니 중얼거리는 것을 들은 이원종이 마른침을 삼켰다.
바닥을 구른 춘배는 아직도 정신을 제대로 못 차리고 고통스런 숨소리를 내뱉고 있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