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2화 〉 152화 한국인 투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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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며칠이 흐른 후 오마르는 자신의 폰으로 온 전화를 받고 곧장 아만에게 달려갔는데 얼굴엔 활기가 띠었다.
“한국인한테서 연락이 왔습니다. 지금 웨스턴 나일 호텔에 묵고 있다고 합니다.”
“웨스턴 나일이라면 여기서 멀지 않은 곳에 있으니 금방 데리러 갈 수 있겠어.”
아흐마다드 처럼 신시가지에 자리 잡고 있는 웨스턴 나일 호텔은 나일강을 끼고 있어 밤이 되면 고층에서 내려다보는 야경이 아름다운 것은 물론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호텔 중에 한 곳이었으니 인기가 많았다.
“아무래도 오마르 네가 직접 가는 편이 확실히 좋겠지.”
“예, 제가 직접 가셔 모셔오도록 하겠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난 오마르 압둘라흐만이 아만에게 인사를 건넨 후 문을 열고 나갔다.
여기서 차를 끌고 10분 정도 거리에 있는 웨스턴 나일 호텔로 향한 오마르는 구형 검은색 벤츠 차량을 주차 시키고 1층 로비로 들어섰을 때 이마에서 흐르는 땀을 닦으며 폰을 꺼내 전화를 걸었다.
잠시간의 신호음이 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낮지만 듣기 좋은 차분한 음성이 들려왔다.
[도착하셨습니까?]
“예, 지금 1층 로비에 와있습니다.”
[인상착의는 알고 있으니 말하지 않아도 됩니다.]
짧은 전화 통화를 끝내고 에어컨으로 인해 로비는 선선 했지만 아직도 흘러내리는 이마의 땀을 다시 손수건을 꺼내 닦아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걸렸을까. 180이 넘어가는 큰 키에 깔끔한 정장차림의 사내가 하나의 서류가방을 들고 이쪽으로 걸어오는데 호남형의 잘생긴 얼굴이라 첫인상이 호감 가는 얼굴이었다.
170대 중반인 오마르는 자신의 앞에 선 동양인 사내의 키가 머리하나가 더 있는 상황이라 올려다봐야 했다.
“서민준이라고 합니다.”
“오, 오마르 압둘라흐만입니다.”
영어로 인사를 해올 줄 알았던 것이 유창한 아랍어로 인사를 해오니 순간 당황하며 말을 더듬고 말았다.
간단히 통성명을 나누고 로비를 나선 두 사람은 야외 주차장으로 이동해 세워둔 구형 벤츠앞에 섰다.
그리곤 서둘러 오마르가 뒷문을 열어 주자 이만석이 올라탔고 조심스럽게 닫은 후 앞으로 이동했다.
그 후에 운전석 문을 열고 올라탄 오마르는 그대로 다시 아흐마다드로 향했다.
“듣기론 회사가 여기서 가깝다고 하던데 거린 시간을 보니 확실히 그렇군요.”
“웨스턴 호텔이 나일강을 끼고 있어 야경으로도 유명한 호텔인 만큼 그곳에 묶고 있는 관광객들을 모시는 것도 그렇고 번화가인 르바흐의 거리를 사이에 두고 있어 지리는 그래도 괜찮은 편에 속하지요. 지금은 좀 회사사정이 어렵지만 예전만해도 관광 업계에서 잘 나갔었습니다. 자본만 받쳐준다면 저력이 있는 만큼 다시 일어설 수가 있지요.”
고개를 끄덕이는 이만석의 모습에 오마르는 계속해서 아흐마다드에 대해서 좋은 점이나 회사 이력에 대해서 설명을 해주었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빌딩 앞에 도착한 오마르는 갓길로 차를 주차 시키고 내려서 뒷문을 열어주었다.
“그럼 가시지요.”
정중히 말하고 앞장을 서는 그의 뒤를 따라나섰다.
안으로 들어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5층으로 올라간 오마르는 사장실로 향해 조용히 노크를 하고 문을 열었다.
“오셨습니다.”
기다리고 있던 아만이 고개를 끄덕이자 옆으로 비켜서는 오마르를 뒤로 하고 이만석이 안으로 들어섰다.
“여기까지 오느라 고생하셨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난 아만 아흐마다드가 반색을 하며 이만석을 반겼다.
“이쪽으로...”
오마르가 안내해주는 자리로 이동해 아만 아흐마다드와 가볍게 악수를 나누었다.
“제가 여행사 대표인 아만 아흐마다드입니다.”
영어로 인사를 해오는 그에게 이만석도 자기소개를 했다.
“서민준이라고 합니다.”
가벼운 인사를 끝으로 둘은 자리에 착석을 했다.
그 사이 오마르는 인사를 하고 밖으로 나갔다.
“우리 회사에 대한 투자에 관심이 있으시다구요?”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며 입을 연 아만의 목소리는 친근감이 묻어났다.
“그렇습니다.”
“이유를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적당한 회사를 찾았습니다.”
“적당한 회사요?”
의문을 표하는 아만을 향해 이만석이 쓴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주변 카이로시나 이 나라에 대해서 저변이 어느 정도 넓은 여행사가 첫 번째고, 두 번째는 회사 내의 사정이지요.”
“그게 무슨 말입니까?”
이해가 가지 않는 다는 듯 말하는 아만을 향해 이만석이 다시 입을 열었다.
“아흐마다드가 나름 잘나갔던 여행사라는 건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언제 주저앉아도 이상 할 게 없는 회사입니다.”
기분이 나쁠 수 있는 말들을 이어서 하는 모습에 아만의 표정이 굳어졌다.
이만석이 서류가방을 들거나 버튼을 눌러 열었다.
그리곤 돌려서 보여주는데 거기엔 달러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모두 미화로 20만 달러입니다.”
순간 눈이 커진 아만을 향해 이만석이 다시 입을 열었다.
“이 돈이면 금융권에서 빌린 돈을 상환하고도 남을 겁니다.”
자금 사정이 좋지 못 해서 제2금융에서 돈을 좀 빌렸던 것이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걸 어떻게 알았냐는 것이다.
하지만 그럴 생각을 주지도 않겠다는 듯 이만석이 재차 입을 열었다.
“처음으로 들어갈 투자금은 이 돈의 세배쯤 될 겁니다.”
그렇다면 60만 달러다.
지금 눈앞에 있는 이 돈까지 합 하면 80만 달러라는 거금이 들어오게 된 다는 것이다.
자신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킨 아만 아흐마다드가 긴장 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 그러면 투자를 하는 대신 원하는 게 있을게 아닙니까?”
“당신이 가지고 있는 지분의 절반.”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는 이만석의 대답이 끝나기가 무섭게 아흐마다드의 눈동자가 긴장감이 서렸다.
“좋게 얘기가 끝나면 나중에 이차로 또다시 투자금을 끌어올 생각입니다.”
“이, 이차 투자금이라구요?”
고개를 끄덕이는 이만석읋 향해 다시금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얼마나...?”
“백만.”
순간 아만 아흐마다드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이대로 가다간 지분을 팔아서라도 회사를 운영해야 할 판인데 20만을 내놓더니 이걸로 빚을 갚고 반의 지분을 투자금이라는 명목 하에 60만에 넘기라는 소리였다.
거기다 나중엔 2차 투자금으로 100만달러를 더 끌어 오겠다고 하니 놀라지 않을 수가 없는 실정이었다.
그의 말이 전부라는 것을 믿을 수는 없었지만 눈앞에 턱하니 내어져 있는 달러들을 보면 거짓말은 아닌 것 같았다.
“혹시 뭐하는 사람인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조심스러워진 아만 아흐마다드가 다시 입을 열었을 때 노크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며 오마르가 파일 하나를 들고 안으로 들어섰다.
아무래도 회사에 대해 제대로 소개를 하려 준비를 해온 것 같은데 서류 가방이 열려 있고 그 안에 있는 달러들이 먼저 눈에 들어온 오마르는 잠이 아만을 바라보다가 조심히 다가갔다.
파일을 가지고 조심스럽게 자리에 착석한 오마르를 뒤로하고 이만석이 다시 입을 열었다.
“한국 쪽에서도 제휴를 맺은 여행사가 있을 테니 그곳을 통해서 일성회에 대해서 알아보면 될 겁니다.”
마치 회사의 사정에 대해서 속속들이 알고 있다는 듯 말하는 그의 모습에 아만은 자신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내 앞에 벌어진 이 상황에 대해서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20만 달러를 눈앞에 들이밀어 당황스럽게 만들더니 이어서 나온 말들은 기선을 제압하기에 충분했다.
거기다 지금 아흐마다드의 반의 지분을 목적으로 60만을 약속한다는 건 놀라운 일이다.
자본만 받쳐준다면 저력이 있으니 성장 할 수 있다고 자신하긴 하지만 내심 불안한 것도 사실이었고 리스트부터 시작해 문서들까지 들고 자취를 감춘 아자르를 생각하면 너무 타격을 크게 입을 격이었다.
“지분 말고 다른 것으로 하면...”
“안됩니다.”
말을 잘라버리는 이만석의 모습에 아만은 역시나 하는 심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걸 놓치게 되면 새로운 투자처를 찾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
만약 이번 일을 성사 시키지 못 하게 된다면 나중에 가선 헐값에 지분을 팔아야 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어쩌면 이건 그보다는 훨씬 괜찮은 일이라는 생각도 들어 갈등이 되었다.
“기관에서 일한다는 네 지인 믿을 만 해?”
고개를 옆으로 돌린 아만이 아랍어로 오마르에게 물어보았다.
“예, 그건 제가 보장합니다.”
“나보고 지분의 반을 달라는데... 어떤 생각으로 달라는지 모르겠지만 대놓고 잘라 말하는 모습이 젊은 놈이 참 사람을 당황스럽게 만드는데 재주는 있어. 이런 자리가 다시 또 언제 생길지 알 수 없으니 일단 끌어 볼 수 있는 대로 시간을 벌어보는 것도 좋은 것 같아.”
“예, 예... 그러는게 좋을 것 같습니다.”
말을 마무리하는 아만을 보던 오마르가 눈치를 보니 입가에 웃음을 짓고 있는 이만석이 눈에 들어왔다.
‘분명히 이 사람은 나에게 아랍어로 자기를 소개했다.’
아무래도 영어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던 것 같은데 그는 영어뿐만이 아니라 아랍어도 할 줄 알았던 것이다.
그것을 알지 못 하는 아만이 표정 관리를 하며 저런 말을 하는 것 같은데 오마르는 당혹감을 느꼈다.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회사의 일이니 만큼 쉽게 내릴 수 있는 결정이 아니어서 말입니다. 그래서 말인데 시간을 좀 주시겠습니까? 생각 할 것도 많은 것 같고 그쪽이 말씀한 것처럼 사실인지 알아보려 합니다.”
다시 영어로 이만석에게 말한 아만은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알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이만석이 다시 서류가방을 닫고 밑에 내려놓았다.
‘그래 한 번 알아보자. 이 자에 대해서 알아보고 해도 늦지는 않겠지.’
자리에서 일어난 이만석이 아만과 간단히 악수를 했다.
“삼일, 그 이상은 안 됩니다.”
그리곤 가방을 들고 몸을 돌려 나가버리는 모습에 시간을 최대한 끌어보려던 아만은 뭐라 하지 못하고 입만 뻥긋거릴 뿐이었다.
“그런데 저 사람 아랍어로 소개했었습니다.”
“뭐라고?”
문을 바라보고 있던 아만의 얼굴이 오마르에게 향했다.
“호텔 로비에서 만났을 때 저 서민준이라는 남자 영어가 아닌 아랍어로 자신을 소개했다는 말입니다.”
순간 아만의 얼굴이 그대로 굳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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