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9화 〉 149화 마음
* * *
시간이라는 것이 참 빠르게 지나가는 것 같다.
바쁘게 생활하며 지내다 보니 더 그렇게 느끼는 것 같은데 정작 이만석과는 달리 날짜가 다가올수록 더욱 아쉬워하는 사람은 따로 있었다.
이집트로 떠나기 이틀 전 이만석은 그날 하루 동안 시간을 비워달라는 지나의 간곡한 부탁에 응해주었다.
그날 지나는 이만석과 함께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데이트를 즐겼다.
셀카나 사진촬영도 많이 하여 추억이 될 만한 장면들을 많이 남겼다.
이만석의 표정이어야 봐야 별로 없었는데 그와는 반대로 지나의 모습은 입술을 내미는 모습이나 여러 표정의 모습들이 많았다.
그렇게 데이트를 즐기고 마지막으로 모텔로 향했을 때 샤워실에서 부터 시작해 침실까지 적극적으로 이만석에게 안겨왔다.
그의 손길과 애무에 마음껏 신음소리를 내뱉었고 몸을 내맡겼다.
이집트로 가면 당분간 보지 못 할 것이 분명하니 오늘 그때까지의 본전을 뽑고야 말겠다는 듯 놔줄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다.
이만석 덕분에 제대로 성에 대해서 즐기게 된 지나는 여러 자세를 취하며 품에 안기어 숨을 헐떡였다.
그렇게 오르가즘이 찾아오면 환희에 젖은 쾌감에 몸을 내맡겼고 아직도 어색하지만 처음보다는 많이 자연스러워진 혀 놀림으로 펠라치오 까지 해주었다.
그렇게 늦은 새벽이 되고 나서야 지나는 만족한 웃음을 지었다.
“이대로 이집트에 눌러 붙으면 안 돼요.”
“......”
“만약 오랫동안 모습을 비추지 않으면 내가 직접 찾으러 나설 거예요. 나 참을성이 그렇게 강한 여자 아니니까.”
가슴이 안기어 머리를 기댄 지나가 더욱더 그의 품으로 파고들듯 웅크렸다.
다음날 10시쯤에 지나를 대려다준 그날 오후 이만석은 7시가 조금 넘었을 때 하란이가 다니는 학원으로 향했다.
평소보다 일찍 학원을 나선 하란은 앞의 갓길에 정차 되어 있는 익숙한 아우디 차량을 보며 그곳으로 달려갔다.
똑똑똑!
새 번의 노크를 한 하란이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이만석에게 밝은 표정을 지으며 손을 흔들어 주었다.
그에 피식 웃은 이만석은 조수석의 문을 열어주자 조심스럽게 차에 올라탔다.
“많이 기다렸어?”
“조금 전에 왔어.”
“거짓말~!”
이만석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부정을 하는 하란이의 모습을 보며 웃음을 지우지 않은 채 시동을 키고 음악을 켜서 볼륨을 조절 한 후 천천히 갓길을 빠져나왔다.
이만석이 출발을 할 동안 어느새 안전벨트를 착용한 하란이 작게 한 숨을 내쉬었다.
“오빠를 보는 게 오늘로 마지막이네.”
“전화할게. 그리고 잠시 있다 오는 거야.”
“그래도...”
달래주는 이만석의 말에도 하란은 여전히 서운한 듯 말했다.
“최근에 오빠하고 많이 못 만났지만 그래도 한국에서 같이 있는 거 하고 외국으로 나가있는 건 확실히 느낌이 달라.”
일정 속도를 유지하며 차선을 바꾸어 달리던 이만석이 편안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가고 싶은 곳 있으면 말해.”
이만석이 이런 말을 해주길 기다렸던 것일까.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하란이 곧바로 생각했던 것을 입으로 말했다.
“한강에... 가고 싶어.”
“한강?”
“응...”
고개를 끄덕이는 하란의 얼굴은 무엇인가 떠올리는 모습이었다.
“이거... 거기서 오빠가 끼워 준거잖아.”
조심스럽게 손을 들어 왼 손에 내번째 손가락에 끼워져 있는 반지를 소중히 쓰다듬었다.
“오빠가 나에게 고백을 해준 그 장소에 오늘 한 번더 가고 싶어.”
이만석은 하란이가 무슨 감정을 느끼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이것과 비슷한 모습을 차이링에게서 보았던 것이다.
“알았어.”
그렇게 이만석은 하란이 원하는 그 장소로 가주었다.
아직 해가 완전히 지지 않은 상태라 하늘을 보면 노을이 지고 있는 모습을 볼 수가 있었는데 야경으로 바라보던 풍경하고는 또 달랐다.
“그때 생각난다.”
잠시 감성에 젖어 있던 하란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나하고 함께해서 행복하다는 오빠의 말...”
말을 하다말고 하란은 이만석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자 수줍은 듯 웃음을 지었다.
“혹시 그때 했던 말... 기억나?”
조심스럽게 물어오는 하란을 보면서 이만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내 여자로 만들겠다고 했었지.”
“응...”
고개를 끄덕이는 하란은 여전히 수줍음을 지우지 못 하고 있었다.
“나... 그때 너무 행복했어. 오빠가 나에게 고백을 해줘서.”
생각지도 못하게 흘러나온 고백은 하란으로 하여금 당혹스러움과 함께 부끄러운 마음도 들었다.
하지만 그와는 반대로 심장은 빠르게 뛰었고 무엇인가 벅차오르는 감정을 느꼈다.
“그리고 나 오빠에게 꼭 이 말을 해주고 싶어.”
가만히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이만석의 두 눈을 바라보며 천천히 떨림이 가미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내...남자친구가 되어줘서...정..말....고마워요.”
한 번씩 떨림으로 인해 말문이 막힐 뻔했지만 하란은 부끄러움을 무릅쓰며 자신이 전해주고 싶었던 말을 해주었다.
뺨은 붉혀져 있었고 부끄러워하는 것 같았지만 이만석을 바라보는 시선만은 돌리지 않고 계속해서 응시하고 있었다.
아무런 말도 없이 가만히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하란을 지켜보던 이만석이 손을 들어 앞 머릿결을 넘겨주었다.
“그렇게 생각해줘서 고마워.”
따뜻하게 웃어주는 이만석의 웃음에 하란은 너무나 가슴이 두근거려 미칠 것 같았다.
심정으로는 어디론가 숨고 싶었지만 그와는 반대로 도망쳐선 안 된다고도 생각했다.
남자친구의 앞에서 예쁘고 사랑스러운 여인으로 보이고 싶은 게 여자의 마음이고 하란이 또한 다르지 않았다.
이만석은 다음날 이집트로 떠나야 하지만 늦은 시간까지 같이 있어주었다.
이것저것 얘기를 나누면서 대화의 꽃을 피웠고 그동안 즐거웠던 일들도 얘기하며 추억에 잠기기도 했다.
그렇게 집 앞까지 바래다주었을 때 하란은 안으로 들어가려다 말고 몸을 돌려 대문 안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지켜보며 차 앞에 서있는 이만석을 바라보았다.
천천히 다시 걸어온 하란이 이만석앞에 섰을 때 망설이는 모습을 보며 이만석은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뺨을 어루만지면서 살며시 고개를 숙여 입을 맞추었다.
비록 짧은 키스 였지만 천천히 눈을 뜨는 하란의 얼굴엔 그제야 다시 행복한 웃음을 보였다.
“조심해서 가.”
“알았어.”
“내일 연락할게. 오빠.”
배웅을 나오고 싶어 했지만 이만석은 그러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대문 안으로 들어서는 하란의 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지켜보던 이만석은 다시 몸을 돌려 차에 올랐다.
다음날 인천공항에 도착한 이만석은 척 봐도 눈에 뛰는 인파에 살짝 인상이 굳어졌다.
“당신을 생각해줘서 나온 거니까, 이해해줘.”
작게 웃음이 나온 차이링이지만 곧 이만석을 향해 위로를 건네는 목소리로 설마하니 찾아올지 모를 불쌍한 어린양들에게 작은 구원의 손길이라도 내려주었다.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입안에 함박웃음을 지은 춘배와 이원종, 그리고 그 둘과 조금씩 거리를 두기 시작하며 걸어오는 모습을 보아 아무래도 평소보다 인상이 살짝 좋지 않다는 것을 느낀 것 같았다.
그들을 필두로 20명이 넘는 인원들이 떡하니 앞에 나열하고 섰다.
“감동받지 않으셔도 됩디다. 나오지 않아도 괜찮다고 했지만 우리가 이렇게 형님을 생각하고 있는 거 아니겠수?”
“흐응~ 춘배씨가 참 생각이 깊네요?”
분위기 전환겸 한 마디 한 차이링의 말에 춘배가 웃으면서 입을 열었다.
“그렇지요 누님! 자그 만치 먼저 이집트로 가시는 형님이신대 우리가 배웅을 하지 않을 수가 없지요. 안 그러냐 애들아?”
“맞습니다!”
우렁찬 목소리에 안 그래도 사내들이 몰려 있는 모습에 눈치를 보던 시민들이 슬슬 자리를 피했다.
“아주 고맙구나. 오지 않아도 괜찮다고 했는데 이렇게 우르르 몰려와줘서 말이다.”
“하하하 그렇지요?”
“영만이가 큰형님 말대로 가지 않는 게 좋겠다고 말하는 것을 나와 춘배가 열심히 설득을 해서 이렇게 왔지 아니면 쓸쓸하게 큰형님을 그냥 보냈을 거요.”
이만석의 칭찬에 기분이 더 좋아져서 일까 춘배가 호탕하게 웃었고 이원종이 침을 튀기며 자랑을 늘어놓았다.
“두 사람이 생각이 아주 깊어. 그리고 너희들도.”
“하하하... 생각이라는 거 까지 있수? 당연히 이렇게 오지 말라고 해도 마중을 나와야 의리고 사나이 아니겠수? 안 그러냐?”
“예! 맞습니다!”
또 다시 때창을 하듯 외치는 소리가 건물 안을 울렸다.
“내 너희들의 깊은 마음을 잘 이해했으니까. 이집트에 오면 특별히 더 챙겨주마.”
순간 입이 귀에 걸리려는 것을 억지로 참으며 춘배가 말을 이었다.
“아니오, 형님. 여기에 오지 않은 애들도 실은 오고 싶어 했는데 이원이 많으면 좀 그럴거 같아서 이렇게 뽑아서 온 거니 우리들만 특별취급 받을 수는 없수.”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를 하는 이원종의 모습에 이만석이 쓴웃음을 지어주었다.
“그래... 그 말도 일리가 있지. 역시 생각들이 깊어.”
“당연한 말을 했을 뿐이우.”
계속 되는 칭찬에 춘배는 물론이고 이원종, 뒤에 있던 애들까지 작게 웃음들을 터트렸다.
다만 안영만은 오히려 얼굴 표정이 좋지가 못 했다.
‘우리 보았을 때 전혀 감동받은 표정이 아니었어.’
이만석의 살짝 굳어졌던 표정을 이미 보아서 저 웃음과 말도 상당히 불안하게 다가왔다.
“차별을 두지 말고 그럼 모두를 공평하게 꼼꼼히 더 챙겨서 대해주라 이르마.”
“예 형님!”
“역시 큰형님이오!”
“감사드립니다!”
춘배와 이원종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다시금 때창이 들려왔다.
‘여기까지 왔는데... 빠질 수는 없겠지?’
이만석의 얼굴을 살피던 안영만은 이대로 다시 강원도로 돌아가면 어떨까 하는 감정이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순간이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