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7화 〉 147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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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차이링은 모처럼 받은 휴가를 잘 보내기 위해 아침 일찍 출근해서 자신이 없는 동안 별일 없도록 서류를 꼼꼼히 정리해 작성을 해서 넘겨주었다.
그리고 빠르게 검토를 해야 할 것들을 위주로 사무일을 보고 나중에 해도 되는 것들은 따로 분류해서 놔두었다.
시간에 쫓기듯 빠듯하게 행동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기분은 좋았다.
저녁 7시에 맞춰 퇴근을 하고 탈의실에서 미리 가지고 온 짧은 스커트와 옷가지를 갈아입고 나왔는데 입구에 차를 대고 서서 기다리고 있는 이만석을 보곤 웃음을 지었다.
“들어오지 않고 여기서 뭐하는 거야?”
그런 차이링의 물음이 이만석은 대답을 하지 않고 그저 조수석의 문을 열어 주고는 옆으로 비켜섰다.
“흐응~!”
그 모습을 보며 콧소리를 내며 바라본 차이링이 도도하게 걸어가 차에 올라탔다.
그러자 이만석이 조심스럽게 문을 닫고는 걸음을 옮겨 운전석에 올라탔다.
“안전벨트는 매셨습니까?”
“물론이에요.”
시동을 켜고 잔잔한 클래식 음악을 틀어 분우기를 잡은 후 이만석이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
“그럼 출발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갓길을 빠져나온 차량이 천천히 도로에 들어서 양평을 향해 출발했다.
고속도로를 달리며 주변 풍경을 바라보던 차이링이 창문을 바라보다 고개를 돌려 이만석을 바라보았다.
“당신하고 이렇게 가니까 기분 좋다.”
“거기 가서는 일 생각하지 말고 푹 쉬도록 해. 그러려고 휴가를 준 거니까.”
“응, 그럴거야.”
얼마 만에 가지는 휴가인가.
일성회에 들어가서는 아마도 처음 가지는 휴가일 것이다.
그동안 강원도의 일도 그렇고 대호방파에 종진파까지 아주 바쁘게 돌아다닌 것 같았다.
주말에 한 두 번 말고는 휴식을 취 한 적 없이 다 출근하거나 나가서 볼일을 봤으니 정말로 꿀맛 같은 휴가를 얻은 것이다.
‘정말로 기분 좋아.’
천천히 눈을 감은 차이링이 클래식 음악소리를 들으며 마음은 편안히 했다.
아직 도착하려면 멀었으니 조금은 눈을 붙여도 될 것이다.
“차이링.”
“으음...”
조심스럽게 자신을 부르며 깨우는 목소리에 눈 주변이 파르르 떨리더니 천천히 눈을 떴다.
어느새 해고 어둠이 깔리고 있었는데 창문 밖을 바라보니 익숙한 풍경들이 눈에 들어왔다.
“다왔네?”
차문을 열고 내린 이만석이 조수석으로 이동해 문을 열어 주었다.
바닥에 발을 딛고 내려선 차이링이 가볍게 기지개를 켜더니 이만석을 바라보며 웃음지었다.
“여기까지 오느라 고생했어.”
이만석은 운전을 하고 있는데 혼자서 잔 것이 미안했는지 따뜻한 목소리로 고마움을 표했다.
천천히 주변을 둘러본 차이링은 감회가 새롭다는 듯 바라보며 감상에 젖었다.
이곳에 오지 않아도 별장 관리사가 일주일에 두 번이상 관리를 하기 때문에 언제나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풀벌레 소리가 작게 들려오는 가운데 마당의 한 편에 정원이 눈에 들어왔고 꽃들이 피어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엔 작은 연못이 자리해 있어 자연의 풍경을 이루었고 주택 한 편에 자리한 햇빛을 막아주는 나무그늘엔 저번에 왔을 때와 마찬가지로 편히 앉아서 쉴 수 있는 휴식 터인 벤치가 자리하고 있었다.
“여기는 저번에 왔을 때와 그대로네.”
“들어갈까?”
감상에 젖어 있는 차이링의 옆에선 이만석이 어깨를 감싸며 말하자 살며시 고개를 끄덕였다.
걸음을 옮겨 별장으로 향해 열쇠로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니 깜깜한 응접실이 두 사람을 맞이했다.
스위치를 눌러 형광등을 키니 응접실 안의 풍경이 모두 들어오는데 역시나 저번에 왔 때와 그대로 언제든지 와서 휴식을 취 할 수 있도록 관리되고 있었다.
창가에 놓여 있는 화분들은 새롭게 바뀌어 있었지만 그 외에 티비나 그런 것들은 다 똑같았다.
마치 숲속의 오두막집에 있는 것 같이 친환경적인 장식들로 숲을 테마를 삼아 초록색의 싱그러움과 자연의 분위기를 그대로 살려 밖에서 들려오는 작은 풀벌레 소리에 마음마저 정화가 되는 것 같았다.
차이링의 손을 잡은 이만석이 그녀를 대리고 이끈 곳은 테라스 였다.
투명한 유리의 미닫이 문 위쪽엔 인공적이긴 하지만 풀과 나뭇잎들로 장식이 되어 있어 느낌이 산뜻했다.
조용히 옆으로 열어 테라스 밖으로 나오니 한 켠에 놓여 있는 흔들의자가 마음을 따뜻하게 만들어 주었다.
그리고 중앙의 나무의 원형 테이블에 꽃 병 하나가 언제나 시들지 않은 장미 한 송이가 장식되어 있는 곳으로 데려간 이만석이 살며시 손을 놓고는 의자를 빼주었다.
천천히 자리에 앉은 차이링의 뒤편에서 상체를 숙여 귀에 대고 작게 속삭였다.
“여기서 쉬고 있어.”
그리곤 조심스럽게 다시 응접실로 나갔다.
고개를 돌려 그런 이만석의 모습을 바라보던 차이링이 시선을 돌려 다시 테라스 밖의 풍경을 바라보았다.
별장 앞에 펼쳐진 넓은 마당과 연못, 그리고 그 앞에 펼쳐진 숲의 모습이어서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 산등성이들은 다시금 차이링 그녀의 감성을 자극했다.
해가 사라지고 하늘도 이젠 완전히 어둠을 찾아 가고 있는 시간대 였지만 옆 못 옆의 호롱불처럼 생긴 가로등에서 흘러나오는 불빛이 더욱더 운치를 자아내게 만들었다.
‘이렇게 자연속에서 조용히 사색에 잠기는 것도 좋은 거 같아.’
자신에게도 아직 이런 소녀감성이 남아 있었던 걸까.
그녀는 두근거림과 설레임을 안고 있는 10대 소녀로 돌아간 것 같아 행복한 기분이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모른다.
진한 커피향이 코로 스며들 때쯤 조심스럽게 문이 열리고 이만석이 차이링의 앞에 원두커피 한 잔과 마중가기 전에 미리 사놓은 케익을 차에서 꺼내와 한 접시를 덜어 접시와 포크를 함께 놔주었다.
“고마워.”
감상에 젖어 있던 차이링은 자신 앞에 놓아진 원두 커피 한 잔과 케익을 바라보다 이만석을 향해 웃음을 지어주었다.
맞은편의 의자를 빼내고 앉은 이만석을 바라보던 차아링이 의아해 하며 입을 열었다.
“그런데 당신은 안 먹어?”
“응.”
“같이 먹지. 나하고 나눠먹을까?”
“괜찮아. 너 먹으라고 준비한 거니까 나는 신경 쓰지 않아도 돼.”
“정말로 괜찮아?”
“그래.”
고개를 끄덕인 차이링이 조심스럽게 잔을 들어 코로 향을 마셨다.
그리고 이번엔 살짝 잔에 입을 대어 한 모금 마시니 입안으로 진한 향과 함께 깊은 맛이 전해져 왔다.
“맛있네.”
조심스럽게 잔을 내려놓은 차아링이 맞은편에 앉아 잠시 주변 풍경을 바라보고 있는 이만석의 얼굴을 빤히 처다 보았다.
“얼굴에 뭐 묻었어?”
풍경을 바라보다 다시 고개를 돌린 이만석은 자신을 빤히 처다 보고 있는 차이링을 보면서 농담을 던지며 쓴웃음을 지었다.
고개를 가로저은 차이링을 바라보며 이만석이 다시 입을 던졌다.
“그럼?”
“그냥... 이렇게 당신하고 이런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게... 그게 너무 행복한 거 같아서 그래.”
양손으로 조심스럽게 커피잔을 감싼 차이링이 고개를 돌려 이젠 완전히 어두워진 테라스 밖의 풍경을 바라보았다.
“고마워... 나하고 함께 해줘서.”
따스함이 깃든 그녀의 목소리에 이만석은 대답하지 않고 가만히 지켜봐주었다.
저녁은 간단히 먹고 진열되어 있는 위스키 한 병과 간단한 과일 안주를 준비했다.
응접실에 앉아 이것저것 이야기를 나누며 대화를 이어 갔는데 얼굴이 그렇게 즐거워 보일 수가 없었다.
그저 일상적인 이야기나 대화를 이어나가는 것뿐인데도 차이링은 중간 중간에 입을 가리며 크게 웃었다.
“오면서 봐둔 계곡이 있는데 괜찮아 보였어.”
“계곡?”
“발을 담그거나 가볍게 휴식을 취하면서 시간보내기 좋아 보이더군.”
“그럼 내일 거기 가보는것도 좋겠다.”
고개를 끄덕인 차이링이 잔을 들어 한 번에 술을 넘겼다.
그리곤 잠시 뭔가 생각을 하는 듯 하더니 작게 중얼거렸다.
“여기서부터 시작이었어.”
이만석과 이곳에 처음 와서 조용히 시간을 보내고 돌아간 후 차이링은 일성회에서 본격적으로 활동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참 시간이 빨리 흐른 것 같기는 하다.
“당신하고 첫 만남이 좋았다고 할 수는 없어, 그래서 이곳이 더 의미가 깊은 것 같아.”
그와 교감하고 함께 한 건 이곳에 오기 훨씬 전이었지만 제대로 마음을 열게 되어 그를 바라보게 된 시작점이 이곳이었다.
그래서 차이링에게 있어 이 별장은 아주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갑자기 납치를 당했을 때만해도 정말로 당혹스러웠는데.”
그때를 생각하면 아직도 어처구니가 없기는 했다.
레스토랑에서 만나 다툼을 벌이다 정신을 잃고 깨어나 보니 묶인 채로 바닥에 누워 있었다.
그때는 그저 끝났다는 생각에 어차피 돌아 갈 수도 없는 상황이라 반쯤 마음을 놓아버린 차이링이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때 자신이 그렇게 행동하지 않았다면 이런 관계까지 발전 될 수가 있었을까 하는 의문도 들었다.
“그거 아니?”
“뭐가.”
“지금의 당신을 보면 전혀 다른 사람 같다는 거.”
처음 차이링이 이만석을 보았을 때는 감정 기복이 심했고 어디로 튈 지 알 수 없는 그런 시한폭탄 같은 존재였다.
허나 지금 눈앞에 있는 남자는 그때 그 사람이 맞는가 의심이 될 정도로 감정의 기복이 크지 않았으며 어떤 상황에서든 침착함을 잃지 않았다.
때로는 그 모습이 상황이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여유로워 보여 이질적이기도 했지만 한 편으론 듬직해 보이기도 했다.
“나... 이곳에서 처음 당신과 가졌던 그때의 느낌을 다시 경험하고 싶어.”
한 순간에 빗장이 풀리듯 차이링은 이 소파에서 이만석과 그렇게 관계를 맺었었다.
“그때는 정말로 나 어떤 때 보다도 떨렸었어.”
이만석을 바라보는 그녀의 눈빛은 그윽했고 사심이 담겨 있었다.
여기엔 그 누구도 없이 단 둘뿐, 망설임 없이 손을 뻗은 이만석이 조심스럽게 자신을 바라보는 그녀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살며시 그의 옆으로 바짝 다가온 차이링이 그의 입술을 찾아 입을 맞추었다.
입술이 벌어지며 서로의 혀를 찾아 엉켜가는 혀들 속에서 차이링의 심장이 빠르게 두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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