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6화 〉 136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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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석이 이끄는 대로 아무 말 없이 따라가는 지나의 시선은 그에게서 떨어질 줄 몰랐다.
언젠가 나타날 줄 알고는 있었지만 설마하니 사람이 한적한 순간을 찾아 그렇게 앞에서 나타나 걸어 올 줄은 몰랐다.
도망가도 잡힐 것을 예상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이만석과 함께 갈 수 있는데 까지는 가려고 했던 지나는 꿈쩍도 하지 않는 이만석의 모습에 당황하고 말았다.
그 사이 어느새 앞까지 걸어와 나타난 경호원들은 아무래도 단단히 벼르고 온 것처럼 보였다.
그렇게 무례를 용서하라며 손을 뻗어 팔을 낚아채려던 것을 이만석이 막아서는 순간부터 지나는 그에게서 시선을 때지 못했다.
자신을 대하던 것처럼 여전히 차분한 모습이었지만 말부터 시작해 분위기가 달랐다.
보고도 믿을 수 없는 완력으로 180에 90이 넘어가는 거구를 위로 들어 올리는 모습은 충격을 주기에 충분했다.
그리곤 가차 없이 바닥에 처박듯 던져 버리는 행동에 이어 눈 깜짝할 사이에 폰을 빼앗아 버리고 부셔버리는 행동은 기가 질릴 정도였다.
그렇게 그 장소를 벗어날 동안 더 이상 앞을 막아서지 않았다.
그저 눈앞에서 사라질 동안 가만히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러는 사이 어느새 주차 해 두었던 차 앞에 도착했다.
운전석에 먼저 오르는 이만석에 이어 지나 또한 조수석의 문을 열고 탔다.
“그 사람들 때문입니까.”
“네.”
지나는 이만석의 질문에 숨김없이 대답 했다.
“아버지가 지시를 해서 보낸 사람들이에요.”
잠시 생각을 하는 듯 하던 지나는 그대로 아버지가 자신을 불러 했던 얘기들을 전부 털어놓았다.
그리고 저 사람들이 왜 자신을 데려가려 했는지와 어떤 처지에 놓이게 되었는지도 알려주었다.
“그러니까 집으로 가던 도중 그대로 도망쳐 나왔다는 말입니까.”
“그래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 지나가 똑바로 이만석을 바라보았다.
눈동자는 또렷했고 앙다문 입술은 고집이 엿보이는 모습이다.
“민준씨 말대로 도망칠 생각으로 순순히 따르는 척 했어요.”
자신을 바라보는 이만석을 향해 지나는 다시 말을 이었다.
“아버지의 모습에 반항적인 심정으로 그러기도 했지만,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에요.”
이미 이만석에게 아버지와 나누었던 얘기를 전부 털어놓은 후다.
망설일 이유도 없었고 긴장을 할 이유도 없었다.
“아버지는 민준씨가 위험하다고 절 만나게 하지 못 하게 하려 그런 거지만, 전 그 말에 따르지 않아요.”
“그렇게 되면 제 입장이 곤란해 질 수가 있겠군요.”
가만히 지나의 얘기를 듣고 있던 이만석이 침묵을 깨고 입을 열었다.
“지나씨를 그렇게 해서라도 절 만나게 하고 싶지 않아 할 정도면 지금쯤 상당히 날 벼르고 있을 걸로 예상이 되는데... 지나씨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건...”
이만석의 말이 틀린 것이 아니기 때문에 지나는 선뜻 대답하지 못 했다.
아버지 앞에서 엄포를 하고 나와 그대로 도망쳐 나왔으니 말이다.
이미 그 얘기는 아버지에게 보고되었을 것이 다분하고 그러니 자신을 찾아 부랴부랴 데려가려 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 이만석의 행동으로 아버지의 심기가 더 나빠졌을 수도 있었다.
“지나씨가 절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갑자기 막아서는 아버지에게 반발심이 들었겠죠. 전에 지나씨가 말 했던 것처럼 정석환 회장님은 지나씨를 너무도 사랑하는 딸이기에 크게 해코지를 하진 못 할 겁니다. 하지만 그와 반대로 전 다를 겁니다.”
“그렇지 않아요.”
“아니요, 맞습니다. 현호씨와 대화를 하고 이견이 맞아 끝냈다고 했지만 회장님 생각은 다를 겁니다. 원인을 저한테서 찾겠죠.”
이번에는 아까 와 같이 그렇지 않다고 할 수가 없었다.
전적으로 이만석의 말이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 하는 것도 아니에요. 하지만 이렇게 근신처분을 내린다는 건 심했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정말로 경호원들이 나타났을 때 아버지에 대한 화가 난거예요.”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모르겠어요.”
“이대로 계속 도망 다닐 수는 없는 일 아닙니까.”
“알아요. 하지만... 이대로 순순히 아버지의 말에 따르고 싶지 않아요.”
고집을 부리는 지나의 모습을 바라보던 이만석이 몸을 바로하고 차 시동을 켰다.
“일단 다른 곳으로 가도록하죠.”
“......”
천천히 차를 빼고 도로에 들어서 달릴 동안 잠시간의 침묵이 이어졌다.
이만석도 별다른 말이 없었고 지나도 딱히 뭐라고 할 말이 없었다.
“오늘은 같이 있어 주겠습니다.”
“네?”
옆에서 작게 들려오는 이만석의 말에 지나의 고개가 돌아갔다.
“내 앞에서 억지로 데려 가려한 행동도 마음에 들지 않고, 나 때문에 그런 일을 저질러 버렸으니 같이 있어주겠다는 겁니다.”
“민준씨...”
운전을 하며 시선을 돌리지 않은 채 감정의 기복이 없는 목소리로 말하는 이만석이었지만 지나는 전혀 기분 나쁘거나 그러지 않았다.
“고마워요...”
“......”
지나는 이만석이 자신에게 화를 낼 줄 알았다.
사실 따지고 보면 자신이 도망을 가고 사실을 말하지 않은 채 만남으로써 이만석을 곤경에 빠트린 거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었다.
그러한 사실을 털어 놓았을 때 지나는 이만석이 자신에게 화를 내도 당연한일로 받아드릴 참이었다.
‘그리고 미안해요.’
운전을 하는 그의 옆얼굴을 바라보는 지나의 눈가가 촉촉이 젖어들어 갔다.
“알고도 그런 것인가.”
혼잣말로 작게 말하는 목소리에 김태수는 눈치를 보았다.
그도 그럴 것이 지나를 찾아 데려오지 못 하고 눈앞에서 놓쳤기 때문이었다.
무엇 때문에 놓치게 되었는지 알게 되었을 때 김태수는 정석환 회장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렇겠지... 나 에게 기분 나쁘다 뭐다 할 정도이니 그 정도의 행동도 못 할라고.”
정석환 회장이 보기에 이만석은 확실히 배짱이 큰 것 같았다.
비록 정석환 회장이 직접 지시를 내린 것은 아니지만 의중이 반영 되었다고 할 수가 있었고, 분명히 근신처분을 내리고 경호원을 붙인 것도 말 때문이었으니 아니라고 할 수는 없다.
크게 다쳤다거나 그런 말은 없었지만 어찌되었든 딸을 데려가려던 것을 방해한 일이다.
“김비서.”
“예, 회장님.”
눈치를 보고 있던 김태수는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예의를 차렸다.
“그 일성회에 연락 좀 넣게. 그 쪽 보스와 내가 좀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알겠습니다.”
누구의 명이라고 의문을 표할 수 있을까.
일성회에 연락을 넣어 보라는 말에 속으로 좀 놀라긴 했지만 겉으로는 그런 모습을 내보이지 않았다.
“세진이라고?”
“김태수라는 자한테서 연락이 왔습니다.”
“김태수... 김태수라...... 들어 본적이 있는 이름인데.”
“정석환 회장의 수행비서입니다.”
황석진 비서실장의 말에 정인철 회장은 흠칫 놀란 듯 바라보았다.
세진에서 갑자기 연락이 온 것도 의외였는데 그 사람이 세진의 정석환 회장의 수행비서라니 보통의 사안이 아니었다.
갑자기 왜 황석진이 직접 자택으로 찾아왔는지 이해가 되었다.
“그 정도의 사람이 갑자기 연락을 했을 정도면 뭔가 사단이라도 난 모양이로군.”
“아직 왜 연락을 해왔는지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중요한 것은 그가 짧게 전한 말입니다.”
“뭐라고 했던가?”
“회장님과 대화를 하고 싶어 한다고 합니다.”
“대화?”
“그리곤 자신의 전화번호를 알려주고 이쪽으로 연락을 주면 된다고 하곤 끊었다고 합니다.”
누가 자신과 대화를 하고 싶어 했는지 말을 하진 않았지만 답은 나와 있었다.
그렇다면 확실히 보통의 일이 아님을 반증하는 증거다.
“시간은 말하지 않던가.”
“그건 없었다고 합니다.”
표정이 진지해진 정인철 회장이 고개를 끄덕이며 무거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걸어보게.”
폰을 꺼내든 황석진이 조심스럽게 어디론가 전화를 했다.
잠시 대화를 주고받는가 싶더니 조심스럽게 정인철 회장에게 폰을 건네주었다.
“여보세요?”
[그 쪽이 일성회의 보스요?]
폰을 통해 들려오는 굵직한 목소리는 대번에 누구인지 알 수가 있는 목청이었다.
“그렇습니다만...”
[그 쪽에 대해서 얘기는 많이 들었지. 나 정석환이라 합니다.]
“예, 반갑습니다. 정인철입니다.”
[요새 일성회가 아주 잘나간다던데 먼저 축하드립니다.]
“축하 받을 일 있겠습니까. 그저 열심히 노력한 덕분이지요.”
[거대한 조직을 움직이는 보스인데 겸손하시구만. 그러고 보면 성이 같은 정씨라 반갑기도 하네요.]
생각지도 못 한 인물과 통화를 하게 된 것만해도 복잡한데 덕담을 주고받기엔 마음도 편치가 않았다.
“그렇습니까?”
[암요~! 어쩌면 그쪽과 나하고 본가가 같을지도 모르지.]
계속해서 성씨에 대해서 얘기를 꺼내는 목소리에 정인철 회장은 인상이 살짝 찌푸려졌다.
하지만 얼굴만 그럴 뿐 목소리는 그런 것 없이 편안했다.
[내가 왜 그쪽과 대화를 하고 싶다고 한지 짐작이 가십니까.]
“글쎄요...”
[그래도 일성회의 보스시니 돌려 말하지 않고 바로 본론을 꺼내도록 하지요. 서민준... 그 친구에게서 손 때세요.]
“손을 때라니요?”
[그 친구 덕분에 일성회가 큰 기회를 잡은 것은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 하나 때문에 일성회의 운명을 걸 필요는 없지 않겠습니까?]
다짜고짜 이만석에 대해서 손을 때라는 말을 하는 정석환 회장의 말에 그대로 표정이 굳어졌다.
“이유를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내 딸아이와 도주를 했습니다. 그것도 내가 보낸 경호원들을 때려눕히고 말이오.]
“도주라니요?”
[말 그대로입니다. 딸을 아끼는 아비 된 입장에서 그걸 가만히 보고 있을 수는 없는 일 아닙니까. 내 일성회가 평탄해 지는데 필요하면 적극적으로 내 쪽에서 힘 좀 써 볼 테니까 서민준 그 친구에게서 이쯤에서 손을 때세요.]
자신의 딸과 도주를 했다니 정인철 회장은 알 수 없는 말들만 들려올 뿐이었다.
저 말이 사실인지 거짓인지를 떠나서 이만석을 포기하라는 말은 정인철 회장의 심기를 당당히 불편하게 했다.
“어떤 일을 벌이든 움직이지 말라는 말입니까.”
[그 말대로지. 아까운 인재라 생각 할 수도 있겠지만 나도 그렇고 그쪽도 조직을 위한 큰 결단을 내려야 할 때가 있는 법입니다. 듣기로는 이미 일성회가 한국에 제대로 자리를 잡은 것 같은데...]
“......”
[일성회의 보스정도나 되는 분이면 현명한 선택을 하리라 믿고 이만 전화 끊겠습니다.]
인사를 주고받을 것도 없이 그렇게 통화를 끝낸 정인철 회장의 얼굴은 상당히 좋지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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