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5화 〉 135화 마음
* * *
계속해서 얘기를 해 보라는 듯 침묵을 지키며 바라보는 이만석을 향해 챵이 마른침을 삼키며 다시 입을 열었다.
“우리 삼합회가 이렇게 야마구찌회가 당하고 몸을 사리고 있을 때 오히려 일성회에서는 아주 큰일을 해냈습니다. 진영회는 물론이고, 연동파마저 굴복시켜 강원도를 석권한 것은 물론, 종진파가 도끼파에 당하며 부산의 세력이 기울게 되었고, 대호방파가 무너진 것을 시작으로 일성회의 세가 급격히 높아진 것도 이유일 것입니다.”
종진파의 일은 조직세계에 있어 갑자기 박종진이 실종되면서 의외의 사단이 벌어진 것이지만 대호방파의 일만은 달랐다.
이만석이 직접 대전에 내려가서 권호식과 강두민을 손본 정도가 아니라 완전히 반병신으로 만들어 버렸기 때문이다.
물론 경고차원에서 보여주기 위한 목적도 있었지만 확실히 파급효과는 있었다.
“작년에 까지만 해도 일성회는 큰조직이긴 했지만 지부 내에선 해볼만하다고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동안 자리 잡기 위해 노력을 많이 했고 야마구찌회에 비교해서 우위에 서있었으니 그만한 자신감도 충분했습니다.”
이만석은 챵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삼합회가 한국 내에서 자리 잡는데 들인 노력은 차이링을 통해서 들어 알고 있었다.
그녀가 한국으로 들어와서 삼합회를 키우기 위해들인 노력은 지금은 작아 지긴 했지만 한국내에서 일성회를 위협 할 정도로 성장했다는 것만 봐도 대단한 일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지금 일성회 내에서 자신의 능력을 입증하고 있었다.
정인철 회장은 그런 차이링을 데려온 이만석을 두고 칭찬을 아끼지 않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야마구찌회의 지부는 몰락의 길에 들어섰고 기세가 눌려버린 지금 일성회는 믿을 수 없는 성장세를 보여 이젠 한국 내에선 어렵게 된 거 아닌가 하는 분위기입니다.”
“왕두만 주시하고 있는 건 아니겠군.”
“물론입니다. 상하이에서도 이쪽에 관심을 드러내고 있고 그건 야마구찌회라고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챵의 안색은 어두웠다.
십령방주중에 한 명인 왕두는 챵이 어찌해 볼 수 있는 수준의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상하이에서도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하지만 이미 이만석과 분쟁을 겪으면서 보았던 피해로 인해 상당히 경계를 하고 있어 쉽게 해동하지 않고 있었다.
다른 나라라면 몰라도 한국내에서 이젠 일성회의 후광을 업고 있는 이만석을 어찌 해보는 것은 힘들다는 생각이기에 그런 것이다.
혼자서 막무가내로 행동 할 때도 상당히 골칫거리였는데 거기다 제거하지도 못 한 상황에서 지금은 더 하면 더 했지 못 하지는 않은 상황이었다.
야마구찌회도 없는 마당에 혼자서 이만석과 일성회를 당해내기엔 삼합회의 입장에서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상하이에서는 일단 주인님 덕분에 관심을 가지고 있되, 직접적으로 행동을 나서기엔 꺼려하고 있습니다. 거기다 일성회의 세가 강해져서 더 그러한 상황인데 문제는 왕두 쪽에서 이쪽을 주시하는 게 예사롭지가 않습니다.”
딱히 행동으로 나서는 것은 아니지만 이미 챵에게 두 번이나 연락이 왔었고 지금 한국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에 대해서 물어보기도 했었다.
그리고 이만석이 이집트에 있을 때도 한 번 다녀갔지 않은가.
근심 걱정이 가득한 표정의 챵을 보며 이만석이 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그렇게 긴장 할 것 없다.”
“하지만...”
“지금의 상황에선 아무리 왕두라는 자가 일을 꾸민 다고해도 한국내에선 크게 손을 쓰지는 못 할 테니까.”
지금의 일성회는 마음만 먹으면 삼합회를 치고 밀어 붙일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러지 않는 것은 챵이 지부를 잡고 있음으로 해서 삼합회에서 허튼 짓을 모두 알게 된다는 것에 있었다.
지금처럼 챵은 삼합회 내에서 일어나는 정보들을 일일이 이만석에게 보고했다.
그것을 삼합회에서는 알지 못하고 있었으니 은밀하게 일을 벌일 수 있는 상황이 아닌 것이다.
“네가 걱정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을 테니 계속해서 지금처럼 일을 하기만 하면 된다.”
“예, 주인님.”
차분한 목소리로 말하는 이만석의 모습에 챵은 불안했던 감정을 지우며 고개를 숙였다.
챵과의 얘기를 끝낸 후 그곳을 빠져나온 이만석은 시간을 확인하곤 차를 끌고 약속장소로 향했다.
7시에 만나기로 했으니 아직 시간은 넉넉했으니 급하게 갈 필요는 없는 상황이었다.
초대를 받아서 식사를 하고 제대로 된 대화도 하지 않은 채 자리를 박차고 나간 입장에서 다시 지나를 만난다는 것에 조금은 정석환 회장을 생각과 걱정을 할 수 있을 법도 한 대 이만석의 모습을 보면 전혀 그런 것은 찾아 볼 수가 없었다.
편하게 음악을 들으며 약속장소로 향한 이만석은 예정시간 보다 10분 정도 일찍 도착했는데 의외로 지나가 먼저 기다리고 있는 모습에 쓴웃음을 지었다.
“약속시간 보다 빨리 왔네요?”
“기본적인 매너라고 해두죠.”
조수석에 올라탄 지나의 밝은 모습에 이만석이 차분히 응대해주었다.
“나 보고 싶지 않았어요.”
“얼마 전에 봤으니... 글쎄요.”
“뭐예요. 재미없게. 그때는 빈말이라도 보고 싶었다고 해주는 거예요.”
“그렇습니까?”
지나의 핀잔에 이만석은 가볍게 웃기만 할 뿐이었다.
“아직 식사 하지 않으셨을 테니 식당에 가도록 하죠.”
“사주시는 건가요?”
아무 말 않고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에 지나가 따라 웃었다.
“알겠어요.”
그렇게 이만석은 지나와 함께 식사도 하고 영화도 한 프로 보며 시간을 보냈다.
이것저것 얘기를 나누면서 재밌는 시간을 보냈는데 이만석은 한 번씩 주변을 살피는 지나를 보게 되었고 영화를 다보고 난 후에 카페에 갔을 때 물어보게 되었다.
“말 해보시죠.”
“네?”
갑자기 심문을 하듯 물어오는 이만석의 말에 지나가 반문을 했다.
“아까부터 도대체 무엇 때문에 그렇게 주변을 살피는 것인지.”
“주변을 살피긴요, 그런 거 없어요.”
이만석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지나가 아니라는 듯 대답했지만 이만석은 이미 짐작이 가는 것 있었다.
“정말입니까?”
“무, 물론이에요.”
마치 도둑질 하다 들킨 아이마냥 지나는 똑바로 바라보며 던지는 이만석의 질문에 조금은 어색한 모습으로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잠시 동안 바라보던 이만석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을 하자 지나는 속으로 안도의 한 숨을 내쉬었다.
‘이대로 계속 숨길 수는 없는데.’
하지만 조금 전의 이만석의 모습에 지나는 분위기를 봐서 속내를 털어놓으리라 마음먹었다.
‘정말로 그런 일을 저질렀을까.’
그러다 문득 자신의 이런 상황에 놓이게 된 이유에 대해서 떠올린 지나는 이만석의 원래 신분과 그가 대호방파에서 저지른 일에 대해서 생각이 났다.
이렇게 차분한 남자가 그런 일을 저질렀다는 것도 믿기지가 안았다.
“민준씨, 궁금한게 한 가지 있는데 물어봐도 될까요.”
“말 해보세요.”
고개를 끄덕이는 이만석의 모습에 지나가 다시 입을 열었다.
“정말로... 기자 맞아요?”
“이미 대답 해줄 걸로 알고있는데... 틀렸습니까.”
“맞아요. 들어서 알고 있어요. 하지만...”
말을 하다말고 멈춘 지나는 다음 말을 이어서 할 수 가없었다.
여기서 더 이어서 하게 되면 아버지와 있었던 일을 말 해줘야 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지나씨.”
말을 잊지 못하는 모습에 입을 연 것은 이만석이었다.
“내가 정말로 기자인지 이미 확인을 해봤을 거라 생각됩니다. 그런데도 그런 질문을 한다는 것은 이미 저에 대해서 알게 된 것 같은데 아닙니까.”
“......”
“그래서 저에 대한 생각이 변한 겁니까.”
“아니에요.”
이만석의 물음에 답하지 못했던 지나는 이번의 말은 끝나기가 무섭게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그에 이만석은 다시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
“난 지나씨가 세진그룹의 정석환 회장님의 딸이라고 해서 다른 여자들과 다르게 보거나 취급하지 않습니다. 지나씨가 저에게 접근을 했고 그에 응대를 해주는 상황에서 똑같이 한 여자로 바라볼 뿐이지 신경 쓰지 않습니다.”
“한 여자로 말인가요?”
“나는 지나씨를 만나고 있는 것이지 세진그룹을 만나는 게 아니란 말입니다.”
이만석이 하는 말에 지나는 얼굴이 붉혀졌다.
지금 이만석이 하려는 말이 무엇인지 확실히 와닿았기 때문이다.
그가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그게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그저 기자라고 생각했던 그를 거리낌 없이 만났던 것도, 아버지 앞에서 당당히 밝혔던 것도 다 이만석 한 사람을 보고 말한 것이지 그의 배경에 대해선 신경을 쓰지 않았었다.
“지나씨는 절 어떻게 바라보고 만나는 것입니까.”
잠시 동안 이만석의 얼굴을 바라보던 지나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당신이라는, 서민준이라는 한 남자로써 만나는 거예요.”
그가 대호방파에서 어떤 일을 했든 눈앞에 있는 이 사람은 아버지와 만나기 전과 지금, 전혀 달라진 게 없다.
언제나 똑같이 자신을 만나주고 응대를 해주며 미소 지어 주는 것이다.
“그러면 된 겁니다.”
지나의 말에 이만석은 편안한 웃음을 지어주었다.
그렇게 카페에 들어설 때와는 다르게 밖으로 나온 지나의 얼굴은 한결 편안해 보였다.
나란히 걸음을 옮기다 눈치를 보던 지나가 이만석의 손을 조심스럽게 잡으며 입을 열었다.
“고마워요.”
그에게선 별다른 말은 없었지만 지나는 정말로 이만석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조용한대로 가요. 저 당신에게 말해주고 싶은 게 있어요.”
지나는 지금 자신이 어떤 처지인지 이만석에게 말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아버지가 어떻게 나올지 모르니 자신들의 사이에 대해서도 알게 된 것을 이만석에게 숨기지 말고 말해줄 의무가 있었다.
그렇게 차가 주차 되어 있는 곳으로 걸음을 옮기다 말고 지나의 얼굴빛이 어두워졌다.
“우리 다른 곳으로 가요.”
걸어가는 길목에 익숙한 얼굴의 사람들이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그렇게 몸을 돌려 가려던 지나는 움직이지 않는 이만석의 모습에 당황한 듯 바라보았다.
그렇게 주춤되는 사이 어느새 두 사람의 가까이 접근한 남자들이 지나의 앞에 결국 서게 되었다.
“회장님이 걱정하십니다.”
“저, 가지 않을 거예요.”
노려보는 지나의 시선에 가만히 바라보던 남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무례를 용서하십시오.”
그리곤 그대로 지나의 팔을 잡아 도망가지 못 하게 막아서려는 듯 했는데 옆에 있던 사내는 그 사이 폰을 꺼내 어디론가 전화를 하려 했다.
“뭐하는 짓거리지.”
손을 뻗어 지나의 팔을 잡아채려는 것을 이만석이 막아섰다.
지금까지 이만석을 무시하고 있던 남자가 앞을 막아서는 모습에 표정을 굳혔다.
“비켜라, 그리고 너에 대해서 알고 있다. 그렇다고 우리가 손을 쓰지 못 한다고 생각하면 오산이야.”
“나에 대해서 알고 있다?”
“그래... 서민준. 아무리 네가 실력이 뛰어나다...컥!”
이만석을 바라보며 말을 잊다 말고 순식간에 목이 잡힌 사내가 위로 떠올라 바둥거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대로 옆으로 바닥에 처박듯 던져버렸다.
또 다른 남자는 전화를 걸다말고 한 손으로 180에 90이 넘어가는 동료를 들어 올리는 대단한 완력에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바라보다 처박 듯 던져버리는 행동에 입을 벌렸다.
그러는 사이 어느새 폰을 빼앗아 버린 이만석이 그대로 강한 힘으로 찌그러뜨리듯 말아 쥐자 그대로 폰이 부셔져 버렸다.
“너도 나에 대해서 알고 있나.”
이만석이 던지는 질문에 폰을 빼앗겨버린 사내는 아무 말 하지 못 하고 그저 고개만 끄덕였다.
노려보거나 그러지 않았지만 이미 이만석의 기세에 눌러버려 입을 열지 못한 것이다.
“허튼짓 하지 말고 그냥 가라.”
이만석의 말에 뭐라고 말하며 막아서야 했지만 지나를 데리고 그대로 지나쳐가는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기만 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