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1화 〉 131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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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아하니 넌 거기까지 모르고 만난 것 같은데...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정리 하거라.”
처음엔 보고서에 적혀 있는 두 사람의 서민준에 대해서 같은 사람이라 생각하기가 꺼림직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일성회의 서민준에 대한 얘기는 사실을 바탕으로 작성되었다고 하지만 보고도 믿기지 않을 만한 내용들이 주를 이루었기 때문이다.
일성회와 파란을 일으키고, 삼합회와 분쟁 속에서 살아남은 것은 물론 파격적으로 후계자의 자리까지 올라가다니 허무맹랑한 이야기들이었다.
어디 그 뿐인가 진영회라느니, 연동파, 그리고 최근에 일어난 일이라는 대호방파의 얘기들까지 실제로 보지 않는다면 믿기 힘들 얘기들이었다.
허나 정석환 회장은 자신에게 올리는 보고서를 가지고 장난질을 칠 간 큰 사원이 있을 것이라 생각지 않았다.
배우려면 알아야 하고, 알려면 자료와 그 분야나 회사에 대한정보가 있어야 한다며 추진하여 신설한 부서가 정보부였다.
정석환 회장이 역점을 두고 만든 부서이니만큼 그의 영향력이 아주 클 수밖에 없었다.
설사 그것이 아니라고 해도 그룹의 회장님한테 올리는 보고서를 가지고 허튼 수작질을 할 간 큰 사람이 있을지 의문이다.
“많이도 조사하셨네요.”
이만석에 대한 몰랐던 얘기를 들은 지나는 놀라서 잠시 동안 침묵을 지켰다.
하지만 조금의 시간이 지나자 다시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가 있었다.
“네가 알고 있던 서민준이라는 사내의 정보는 기자라거나 일반적인 정보들이 다가 아니더냐.”
“맞아요.”
현호가 알려준 것을 바탕으로 알아보았을 뿐이었다.
어디에 살고 있고 정말로 기자가 맞는지에 대해서 한번 더 알아보고 했으니 기본적인 정보들만 알고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이만석을 실제로 만나보면서 그가 자신에게 뭔가 숨기고 있지는 않을까 하는 의구심은 커져가고 있는 상황이었다.
“네가 현호와 헤어지겠다고 하는 것은 알겠다. 네가 정 그렇게 싫다고 한다면 억지로 결혼시키지 않을 생각이다.”
한 참 성장세를 이어가며 떠오르는 태양으로 불리는 주화였지만 억지로 결혼을 시킬 생각은 없었다.
지나와 결혼시킬 남자에 대해서 됨됨이를 많이 보는 정석환 회장은 현호를 두 번 정도 만나서 얘기를 나누어 보았는데 풍족하게 자란 청년 같지 않게 사람을 대하는 자세도 되어 있었고 생각하는 방식이나 가치관 또한 좋게 보였다.
남자에게 크게 관심이 없던 딸아이가 현호에게 호감이 있어 보여 한 번 만나보게 했는데 나중에 가선 약혼식에 대한 애기도 흘러나와 진행되던 판이었다.
따지고 보면 정석환 회장에게 있어 크게 아쉬운게 없는 입장인지라 지나가 싫다고 한다면 그렇게 따라줄 생각이었다.
하지만 왜 그런 생각을 해야 했는지 알아야 했고 그 이유를 알게 된 지금 걱정을 하지 않을 수가 없게 되었다.
“하지만 지금 네가 만나는 남자에 대해서는 회사 차원에서도 그렇고, 너에게도 좋지 않다고 생각이 되는구나.”
“절 보고 민준씨를 만나지 말라는 소린가요.”
“그런 셈이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하는 아버지를 바라보며 지나가 다시 입을 열었다.
“싫어요.”
“싫다고?”
설마하니 자신의 말에 이렇게 딱 잘라 거절 할 줄 몰랐던 정석환 회장이 반문을 하였다.
“민준씨가 어떤 일을 하는가에 대해서도 놀라웠지만 그렇게 높은 위치에 있다는 것도 상당히 놀라운 말이네요. 하지만 그 이유만으로 민준씨와 만나지 말라고 하신다면 전 아버지 말을 따르지 않을 생각이에요.”
“그러면 이 애비의 말을 듣지 않고 계속해서 그 사내를 만나겠다는 생각이냐.”
“잘 아시네요.”
보고서를 보고 이만석에 대해서 생각하며 머리가 아팠던 것이 다시금 도지는 것만 같았다.
“아버지가 무엇 때문에 민준씨와 헤어지라고 하는지 어느 정도는 느끼고 있어요. 절 걱정해서 그렇다는 것도 알아요. 하지만 그 사람에 대해서 더 알아가보고 싶어요.”
“그 서민준이라는 사내에게 여자친구가 있다는 것도 알고 있더냐.”
이대론 딸이 포기할 것 같지 않아보이자 정석환 회장이 다른 카드를 꺼내 들었다.
“알고 있어요.”
“그러면 그 여자가 윤정호 의원의 딸인 하란이라는 여자애라는 것도 알고 있느냐.”
“네, 그것도 알아요.”
“그러면서도 넌 그 남자와 계속해서 만나겠다고 지금 애비 앞에서 말하고 있는 거냐?”
기가 차다는 듯 말하는 정석환 회장은 처음으로 딸아이 앞에서 언성을 높였다.
이미 여자 친구가 있는 남자와 만나겠다고 하니 아버지가 된 입장으로써 어찌 기분이 좋을 수가 있겠는가.
그것도 어릴 때부터 공주님처럼 애지중지 키운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늦둥이 막내 딸아이를 말이다.
“네가 뭐가 아쉬워서 임자가 있는 남자를 만나려고 그러는 거냐? 너 정도면 만나겠다고 남자들이 줄이 설 테고 뭣 하면 잘생기고 능력 좋은 남자들 또한 이 애비가 직접 소개 시켜 줄 수도 있다.”
부모님이 세진그룹을 이끌고 있는 정석환 회장이라는 것을 두고도 외모만 봐도 꿀릴 것이 하나 없는 지나였다.
거기다 고려대 경영학과에 다니고 있을 정도로 공부 또한 못 하는 편이 아니어서 능력이 부족한 것도 아니었다.
“그 사람하고 있으면 즐거워요.”
“즐겁다고?”
“네... 이성을 보며 설레는 느낌이 뭔지 처음 알았어요. 그 사람과 만나면 웃음이 절로 나오고 기분이 좋아져요. 그리고 생각만 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두근거릴 정도에요. 지금까지 한 번도 그런 거 경험해 본적 없는데 너무나 새로워요. 그리고... 지금 내가 겪고 있는 이것들이 싫지가 않아요.”
“......”
정석환 회장은 지나가 하는 말을 듣고는 할 말을 잃은 듯 침묵을 지켰다.
“그 사람이 어떤 일을 하는지, 그래서 제가 걱정이 되어 만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아버지마음 다 이해해요. 하지만 전 이미 마음먹었어요.”
대화가 끝나고 지나가 서재를 나갔을 때 혼자 남게 된 정석환 회장은 작게 한 숨을 내쉬었다.
‘이거 생각보다 심각해.’
조금 전에 딸아이가 한 말은 정석환 회장에게 충격으로 다가왔다.
지금까지 남자에 대해 말하면서 딸아이가 저런 말을 한 것은 본적이 없었다.
호감이 있다는 현호에 대해서 얘기를 꺼낼 때도 마찬 가지다.
일성회에 대해선 정석환 회장도 알고 있는 조직이라 그곳의 다음 대 대를 이을 후계자라는 것이 기분을 뒤숭숭하게 만들었다.
거기다 여자 친구로 있다는 여자가 윤정호 의원의 딸이라지 않는가.
현재 여론조사를 보면 윤정호 의원에 대한 지지율이 최근에는 1위에서 내려선 적이 없는 상황이다.
이 노선을 끝까지 이어가게 된 다면 대선에서 승리하여 청와대에 입성하는 것도 꿈이 아니라는 소리다.
‘어쩌다가 저런 사내와 만나게 된 것인지...’
정석환 회장은 아직 지나가 이만석을 만난 것이 현호의 귀환을 축하하기 위해 마련된 연회장이라는 걸 알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거기에 보낸 것도 바로 자신이었다.
‘적어도 머리가 돌아가는 사내라면 말귀 정도는 알아 듣겠지.’
일성회를 이끌어 갈 후계자라고 하니까 바보는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좋게 대화를 한다면 지나가 벌이는 이런 불장난도 끝날 것이라 생각했다.
아니, 그렇게 되어야만 했다.
대호방파의 일이 있은 후 하루가 다르게 일이 순조롭게 진행되어 갔다.
연 평균 매출이 5000에서 7000억 사이었던 일성회는 최근 들어 야마구찌회가 무너지면서 인수하게 된 사업장을 새로 보수작업을 거치고 오픈하면서 한 참 열을 올리고 있는 상황이었다.
거기다 진영회와 연동파도 안정기에 접어들어 가면서 매출이 오르고 있는 실정이었는데 마음 놓고 사업 확장에 힘을 쏟을 수 있게 된 일성회에게 있어 올해엔 매출 7000억을 돌파하게 될 것이란 자신감으로 가득 차있었다.
이대로 간다면 내년엔 목표였던 1조를 넘기게 될 지도 모를 일이었다.
야마구찌회가 가지고 있던 이권이 작은 것이 아니어서 그것만 잘 관리해서 꾸려가도 10%이상의 매출은 올릴 수 있을 것이라 보았다.
야마구찌회가 무너지고 삼합회가 몸을 사리고 있는 지금 일성회를 막을 조직은 더 이상 존재치가 않았다.
상황이 그렇게 되니 더욱 바빠진 것은 정인철 회장보다 차이링이었는데 그녀는 강원도의 일을 넘어서 개편작업이 끝나는 대로 대호방파가 벌이고 있는 사업도 직접 손을 보려 벼루고 있었다.
지하경제 규모가 어마한 만큼 해외원정 도박이나 밀수, 그리고 불법토토와 같은 것들과 유흥주점은 글로벌 경기침체에다 불황이라는 현 상황에서도 전혀 침체기를 겪지 않고 있었다.
지금은 지방의 다른 조직들이 알아서 각자의 방식으로 운영을 하고 해외에 서버를 두거나 하는 방식을 통해 방만하게 운영을 하고 있는 실정이었는데 다는 몰라도 어느 정도만이라도 바로 잡게 된다면 그 파급효과가 어마어마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예전이라면 몰라도 지금의 일성회는 그럴 만한 힘이 있었고 상황도 충분해 투자와 노력만 들인다면 일정부분 체계는 잡을 수 있을 것이라 보았다.
일성회가 커갈 수 있는 길은 외국에서만이 아니라 한국 내에서도 그 방법은 많았다.
그렇게 일성회가 활기차게 바쁘게 돌아가고 있는 순간에 이만석은 한 사람의 인물과 만나서 대화를 나누고 있었는데 서울 외곽에 있는 한옥으로 조용한 분위기에 계곡을 끼고 있는 산속이라 주변시선에 신경 쓰지 않아 되는 정통 한식집이었다.
대를 이어서 하는 가계에다 아는 사람만 아는 곳이었기에 손님은 적었지만 가격이 일반 식당과 비교해서 많이 비쌌지만 그만큼 맛과 푸짐한 한상은 시선을 빼앗기 충분했고, 계곡물 흐르는 소리에 막걸리 한 잔 걸치면 신선놀음이 따로 없어 해마다 찾아오는 사람들이 손님의 대부분이었다.
“음식 솜씨도 좋고 조용히 쉬고 가기에도 괜찮은 것 같습니다. 이런 한식집이 있다는 것은 처음 알았네요.”
만족스러운 식사를 끝내고 차 한 잔을 마시며 만족한 듯 말했다.
그러자 그와 마주 앉아 있는 40대로 보이는 깔끔한 양복차림의 중년인이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아는 사람만 아는 곳이니까 모르는 게 당연합니다. 회장님께서도 일 년에 한 두 번은 직접 찾아오시는 곳이기도 하지요.”
나이로 보면 이만석이 한 참 어려 보였지만 그는 반말을 하지 않고 존댓말을 사용했다.
“그래서 이제 식사도 끝났고 저를 보고자 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만석은 자신을 이곳으로 초대한 이 사람이 누구인지 처음 들었을 때는 조금 의외라는 생각이 들었다.
설마하니 정석환 회장의 수행비서라는 남자가 직접 만나자고 할 줄은 몰랐기 때문이었다.
“아가씨 때문입니다.”
“지나씨 말입니까.”
“그렇지요.”
고개를 끄덕인 김태수가 다시 말을 이었다.
“잘 모르시겠지만 회장님은 아가씨를 아주 많이 아끼십니다. 그래서 말하기 힘들지만 그 때문에 여러 일도 있었습니다. 게다가 그쪽과 만나게 되면서 화목했던 부녀 사이가 소원해 진 것도 상당히 가슴 아파 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저에게 하고 싶은 말이 무엇입니까.”
가만히 얘기를 듣고 있던 이만석이 다시 질문을 던졌다.
“회장님께서는 그쪽이 아가씨와의 관계를 정리해 주었으면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만 해주신다면...”
“그렇게 한다면?”
“그 쪽에서 바라는 것 한 가지 들어주겠다고 했습니다.”
“한 가지를 들어 준 다라... 만약 제가 큰 거 한 장을 원한다면 그것도 들어주겠다는 말로 들리네요.”
“만약 관계를 정리해주는 대가로 돈을 원하신다면 그것도 들어 줄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아무래도 그에 대해서도 따로 얘기를 듣고 온 것 같았다.
순간 이만석의 입가에 쓴웃음이 지어졌다.
“뭔가 착각을 하고 있는 것 같군요.”
“예?”
돈 얘기를 꺼내기에 뭔가 얘기가 트지 않을까 생각했던 차에 갑자기 뜬금없는 말이 흘러나오자 김태수가 반문을 했다.
“난 지나씨를 사랑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게 무슨...”
“그러니 정리를 하느니 마느니 할께 아니란 소리죠. 그리고 이런 식으로 만나서 끝내라고 하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고 날 쉽게 본 것 같아 기분도 좋지가 않네요.”
말을 잊지 못하고 자신을 바라보는 김태수를 놔두고 자리에서 일어난 이만석이 문 쪽으로 걸어갔다.
“회장님에게 돌아가시면 전하십시오. 식사는 맛있었지만 이런 방으로 만나는 건 상당히 기분이 좋지가 않다고.”
그리곤 아무 말 하지 못하고 바라보고 있는 김태수에게 다시는 시선을 주지 않고 그 자리를 떠났다.
뭔가 대화를 제대로 시작하기도 전에 이런 식으로 이만석이 오만하게 자리를 뜰 줄은 몰랐던 김태수는 그동안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드려야 할지 당황스럽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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