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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에 나만이 유일한 마법사가 되었다-124화 (124/812)

〈 124화 〉 124화 마음

* * *

“약속시간보다 빨리 오셨네요”

“지나씨야 말로 일찍 나오셔서 놀랐습니다.”

차가 막히지 않아 약속시간보다 15분 정도 빨리 도착했는데 의외로 먼저와 커피숍에 자리를 잡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렇게 자리를 잡고 얼마 지나지 않아 종업원이 다가왔다.

“어떤 걸로 드시겠습니까?”

“카푸치노로 할 게요.”

고개를 끄덕인 현호는 곧 카푸치노 한 잔과 자신은 카페모카를 시켰다.

주문을 받은 후 물러나는 종업원을 뒤로하고 똑바로 바라보았다.

“지나씨가 먼저 보자고 할 줄은 몰랐네요.”

“그런가요?”

입가에 미소를 지은 지나는 커트를 친 단발머리에 귀고리, 그리고 짙은 화장으로 인해 세련된 도시녀의 느낌이 물씬 풍겼다.

현호 또한 깔끔한 정장 차림에 짧게 자른 머리에 왁스로 스타일링을 해서 훈훈한 느낌이 제대로 풍겨 보기만 하면 잘 어울리는 한 쌍이었다.

“전의 일도 있고 해서 당분간은 보지 못 할 줄 알았습니다.”

갑작스러운 교제 신청과 그것을 거절한 지나.

당연하게도 그 후로 별다른 연락을 하고 있지 않은 상황이어서 더 그러했는지 모른다.

“짧게 본 사이도 아닌데 그걸로 연락 하지 않겠다는 생각 같은 건 한 적 없어요.”

“하지만...”

“괜찮아요. 그때 현호씨의 마음이 어땠는지 자세히 알지는 못 하지만 힘들어 하고 있었다는 건 알고 있으니까요.”

하란이를 잊을 수 있을까 싶어서 지나에게 교제신청을 한 것이어서 지나에겐 미안한 감정을 가지고 있었다.

자신을 바라보며 저렇게 말해주는 지나에게 미안하면서도 고마운 감정도 느꼈다.

그리고 한 편으론 다시 상처를 입혀야 하는 것이기에 가슴이 쓰라렸다.

‘그렇다고 길게 끌어선 오히려 더 지나씨만 아프게 할 거야.’

하란이와 만남을 가진 후 현호는 확실하게 마음을 먹었다.

서민준이란 남자와 결혼까지 하게 되어 설사 자신에게 기회가 없을지 몰라도, 설사 미련하다는 말을 들어도 기다리겠다고 말이다.

그저 기다림이 이어지다 자신의 이 사랑이 끝날지도 모르지만 현호는 이제는 자신의 마음이 어떠한지 제대로 알게 되었다.

이대로 하란이를 잊을 수 없다는 것을.

‘말하자.’

그 후로 현호는 기회를 봐서 지나에게 말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아버지에게 크게 혼날지도 모르지만 이대로 지나와 어정쩡한 관계를 끌고 갈 수 없다는 생각이었다.

그렇게 되면 도리어 자신 때문에 지나가 상처를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정리하는 건 빠를수록 좋다고 생각했다.

“현호씨이게 할 말...”

“밝힐...”

막 입을 열었던 현호보다 지나의 말이 조금더 빨리 나왔는데 순간 둘은 멈칫하며 바라보았다.

“먼저 말 하십시오.”

웃음을 지은 현호가 지나에게 입을 열었다.

그러자 고개를 가로저은 지나가 현호를 향해 입을 열었다.

“전 그 후에 말해도 돼요. 밝힐게 있다고 말하려던 거였죠? 그게 뭐예요.”

호기심을 드러내며 바라보는 지나의 시선에 현호가 잠시간 침묵을 지켰다.

그러는 사이 종업원이 다가와 두 사람에 앞에 커피 두 잔을 놔 주었다.

인사를 올리고 종업원이 물러나고 잔잔한 음악이 흐르는 가운데 현호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지나씨가 저에게 연락을 하지 않았어도 제가 먼저 빠른 시일 안에 하려고 했습니다.”

“조금 전에 그것 때문이겠죠?”

“예.”

앞에 놓여있는 커피잔을 들어 한 모금 마신 현호가 다시 잔을 내려놓으며 입을 열었다.

“먼저 이런말 하게 되서 죄송합니다.”

“사과를 하는 걸 보니 좋은 얘기는 아니군요.”

좋은 얘기가 아님을 감지했으면서도 지나의 얼굴은 찌푸려지거나 굳어지진 않았다.

“집안 대 집안으로 성사된 이 만남을 그만두고 싶습니다.”

현호는 진지한 표정으로 지나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목소리는 낮았고 작았지만 또렷해서 그가 한 말 모두가 지나의 두 귀를 진동시키듯 고막을 울린다.

“그게 현호씨의 마음인가요?”

눈을 깜빡이며 바라보던 지나가 재차 질문을 던졌다.

“그렇습니다. 집안에서 우리 두 사람을 엮어주려 하고 약혼식 또한 예정되어 있다고 하지만 그것 또한 제 속마음을 아버지에게 말 하여 끝낼 생각입니다.”

지나가 이미 자신의 교제신청을 거절하긴 했지만 이건 다른 말이었다.

거절을 하긴 했지만 그건 엄연히 두 사람만의 얘기였고 달라진 것 없이 이대로 똑같이 지내는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현호는 약혼식까지 거절하며 정식으로 교제를 넘어 집안으로 엮어진 이 만남을 끝내자고 제안을 한 것이다.

“갑자기 이런 말을 하게 되서 미안하게 생각합니다.”

“하란씨 때문인가요?”

“예.”

현호는 말끝을 흐리거나 침묵으로 일관하지 않았다.

이번엔 똑바로 자신의 속내를 말해주었다.

“현호씨가 그렇게 생각했다면... 그렇게 해요.”

“정말...입니까?”

설마하니 이렇게 바로 응대해 줄줄은 몰랐던 현호는 이채를 띄며 지나를 바라보았다.

이 이야기는 자신의 아버지뿐만이 아니라 지나의 집안, 즉 세진그룹의 회장이라 할 수 있는 지나의 부모님과도 연관되어 있었다.

마음먹었지만 쉽게 접을 일이 아님을 잘 알고 있는 상황에서 지나는 전혀 망설임 없이 응대를 해준 것이다.

“현호씨가 그렇게 생각하고 마음을 먹었다면 끝난 것이겠죠.”

잔을 들어 커피 한 모금을 마신 지나가 작게 웃음지었다.

“이 얘기를 꺼내는 것에 얼마나 힘들었을지 짐작이 가니까 말이에요.”

“지나씨.”

당황하기보다 자신을 위로하는 지나의 모습에 현호는 미안한 감정을 느꼈다.

“그렇게 미안한 표정 짓지 않아도 돼요. 내가 현호씨에게 하려던 말이 그것이었으니까.”

“그것이었다니요?”

의문을 표하는 현호를 향해 지나가 다시 말을 이었다.

“현호씨가 저에게 마음이 전혀 없다는 것을 그때 알게 되었거든요. 그러니 아마도 집안을 보고 만남을 시작했다고 하지만 저 또한 이대로 약혼식을 하고 현호씨를 잡고 싶지 않아요.”

그녀가 하는 말이 무엇인지 알게 된 현호는 그대로 두 눈을 깜빡이며 바라보았다.

“놀랄 거 없어요.”

그런 현호를 향해 지나는 위로하듯 다시 입을 열었다.

“제 생각과 현호씨의 마음이 맞아 떨어진 것뿐이니까요. 현호씨가 고민을 한 만큼 저도 생각을 정리했어요.”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현호를 처다 보는 지나는 여전히 사람 좋은 미소를 지어 줄 뿐이다.

“일성회의 행보를 보면 대단하다는 말 밖에 못하겠군.”

작게 감탄사를 터트리며 찻잔을 내려놓은 윤정호 의원은 마주보며 앉아 있는 사내, 이만석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삽합회나 야마구찌회가 기를 펼 수 있었던 것도 이런 환경과 상황이 정리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죠.”

“그럴 수도 있겠군.”

일성회가 자리 잡기 전엔 서울에도 여러 조직이 자리 잡고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하나의 세력이 중심으로 커가기엔 정치인들 입장에선 꺼림칙했기 때문이다.

딱 쓰기 좋을 정도로만 세력을 유지하면 알아서 써먹고 버리기 쉽기 때문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일성회가 이렇게 자리 잡을 수 있었던 것은 더러운 일은 제대로 맡아서 처리해 주었던 일성회의 모습과 정인철 회장과의 만남을 가지며 좋게 생각한 윤정호 의원이 직접 후견인 역할을 해주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나중에 때가되면 처리해버리려 했지만 이만석의 등장으로 반향이 틀어지더니 결국엔 이 자리까지 오고야 말았다.

“확실히 자네는 참으로 대단한 친구야. 일성회의 후계자로 들어간 것부터 시작해서 내 일이 이렇게 잘 풀리게 된 것도 모두 다 자네 덕분이라는 생각이 들어.”

김철중 의원의 전화와 지지선언은 아직도 윤정호 의원을 놀라 게 만들기 충분했다.

최대의 정적이라 생각했던 인물이 돌연 자신을 지지하고 나서게 되니 어찌 놀라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차음엔 의중이 뭔지 몰라 골치께나 아팠는데 나중에 가선 정말로 그 양반이 자신을 지지하기로 마음먹었다는 것을 알게 되곤 다시 한 번 놀라게 되었다.

그 순간부터 지금까지 모든 일들이 마치 짜여 진 각본처럼 순조롭게 흘러가고 있었다.

이만석이 등장하고 난 후에 벌어진 일들이니 이만석을 안 좋게 보려 해도 볼 수가 없었다.

“그런데 한 가지 물어봐도 되겠나.”

“물어보시죠.”

고개를 끄덕이는 이만석을 두고 윤정호 의원이 다시 입을 열었다.

“하란이하고 혹시 무슨 일이라도 있었나?”

“아무일 없었습니다.”

“그래? 다름이 아니라 요 며칠 동안 하란이의 모습이 어딘가 조금 달라보여서 말이야.”

“걱정할 일은 없었으니 안심해도 됩니다.”

차분하게 다시 말을 받는 이만석을 보며 윤정호 의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자네가 그렇다면 그런 것이겠지. 한국에 돌아왔는데 제대로 얼굴보지도 못했으니 딸이 걱정 되서 물어 볼 겸 얘기 좀 나누고 싶어서 부른 거야.”

“대통령이 되시면 찾아뵙기 힘들어 질 테니 이렇게 보는 것도 나쁘진 않겠죠.”

“대통령이라니...”

이만석의 말에 쓴웃음을 짓는 윤정호 의원있어지만 내심 싫지는 않은 듯 보였다.

“아직 대선후보 선거도 치루지 않았는데 그렇게 말하다니 낯 뜨겁지 않나.”

“그렇습니까?”

“어쨌든 오랜만에 자네 얼굴을 보게 되서 기분이 좋아... 생활하는데 있어 내 도움이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말하게... 사위가 될 지도 모르는데 필요하다면 내 쪽에서 힘을 써야하지 않겠나?”

하란이가 얼마나 생각하고 있는지 알고 있고 다시 제자리를 찾게 된 것도 다 이만석 덕분이라 생각하고 있어 자신도 그렇고 딸인 하란이 한 테도 참으로 고마운 친구였다.

“남자가 살다보면 다른 여자와 만날 수도 있다는 것을 내 알고 있어. 특히 자네같이 그쪽 일을 하면 더 그렇겠지. 하지만 하란이가 자네를 계속해서 원하고 함께 있고 싶어 한다면 혹시 마음이 변하게 되더라도 내치진 말아주게. 나와 자네의 관계가 아니라 이건 아비로써 부탁하는 말일세.”

엇나간 딸을 자신은 잡아주지 못 했다.

그걸 이만석은 자신이 하지 못 한 일을 해낸 것이다.

하란이가 원한다면 아버지인 그로써는 들어주고 싶었다.

그게 딸아이에게 자신이 지은 죄를 조금이나마 값을 수 있는 방법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란이가 행복 할 수 있다면 아버지인 윤정호 의원은 그렇게 해주고 싶었다.

“12시를 넘겨버렸네...”

손목시계를 확인한 하란이가 자리에서 일어나 책을 정리했다.

독서실엔 몇 사람이 없어 한적했는데 이미 익숙한 일들이라 하란은 늘 하던 대로 정리를 하고 스탠드 조명을 끄고 의자를 조용히 밀어 넣었다.

독서실을 나와 학원을 나선 하란이가 1층으로 내려와 밖으로 나섰을 땐 순간 놀란 표정을 지었다가 반가운 듯 웃음 지으며 그대로 달려갔다.

“오빠!”

이만석의 가슴에 안겨든 하란은 작게 탄성을 내뱉었다.

“지나가던 사람들 다 처다보겠다.”

“아무도 없는데 뭐... 그보다 어쩐 일이야? 나 보고 싶어서 온 거야?”

“그래.”

“마음이 통했나보다... 나도 오빠 보고 싶었는데.”

귀엽게 웃으며 바라보는 모습에 이만석이 가볍게 이마를 ‘콩’하고 튕겼다.

“아야! 뭐야 오빠......”

살짝 눈을 찡그리며 바라보는 하란이를 보면서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귀여워서 그런다...”

“치... 귀여우면 꿀밤 먹여도 되는건가......”

“남자친구니까.”

“남자친구라고 다 그러는 거 아니야...!”

“나는 그러고 싶은데?”

“오빠 나 놀리려고 온 거지.”

삐진 듯 고개를 치켜 들어 노려보는 하란이의 시선에 이만석이 다시금 이마에 가볍게 ‘콩’하고 꿀밤을 먹여주었다.

“아얏! 씨...뭐야 오빠.....!”

이마를 어루만지며 바라보는 하린이의 모습이 피식 웃음지은 이만석이 손을 내밀었다.

“데려다줄게.”

다시 따지려던 하란이가 순간 그대로 멈칫 하더니 웃음을 지으며 자신을 바라보면서 손을 내민 이만석의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렇게 잠깐의 시간이 지나고 어느새 뺨을 붉히며 조심스럽게 뻗은 손을 마주잡았다.

그리곤 아까와 다르게 들릴 듯 말듯 한 작은 목소리로 목청을 연다.

“응...”

손의 온기가 가슴으로 전해져온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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