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1화 〉 121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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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마하니 지나가 가자고 한 곳이 놀이공원이라고는 생각지 못 했던 이만석이었지만 그녀가가고 싶어 하는 것 같아 빈말 없이 따라주었다.
굽이 있는 힐을 신고 있어 당연히 놀이공원을 오랫동안 걷기엔 불편했는지라 중간에 운동화를 사야했다.
놀이공원에서만 신을 거라서 비싼 걸 살 필요가 없어 근처 신발가게에 들러 착용감이 편안한 것으로 골라서 샀다.
자유이용권을 끊어서 안으로 들어가니 제법 손님이 있을 것으로 보았지만 의외로 한산했다.
주말이 아닌 금요일이 평일이라고해도 도심 속에 있는 놀이공원이어서 시민들이 편하게 즐길 수 있어 조금 의외였던 것이다.
하지만 그게 오히려 더 좋은 일이라 별로 나쁘게 보거나 그렇지는 않았다.
안으로 들어선 지나는 상당히 즐거운 모습이었다.
당당히 팔짱을 끼는 그녀의 모습은 밝아 보였고 이곳저곳으로 이만석을 이끌었다.
시민들이 많이 없어 놀이기구를 이용하는데 있어 그리 오래 기다리지도 않았다.
금방금방 빠져나가는 기구는 채 10분도 기다리지 않을 정도였다.
바이킹을 타고 잠깐의 휴식을 취하는 사이 이만석은 아이스박스의 얼음물에 담겨져 있는 두 개의 캔 음료를 사가지고와 지나에게 넘겨주었다.
“고마워요~!”
건네주는 음료를 받아든 지나가 캔을 따고 단번에 두어 모금 삼키더니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웠다.
“아~시원해라!”
탄산음료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이만석은 캔 커피를 사가지고 왔다.
한 쪽 팔을 벤치에 기대고 편한 자세로 캔 커피를 마시며 해가 기울어 노을이 지고 있는 하늘을 잠시 바라보았다.
“사람이 북적이지 않아 괜찮네요. 이 시간이면 금요일이기도하고 제법 있을 줄 알았는데 말이에요.”
“지금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건 맞아요.”
틀린 말은 아니었기에 지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 무슨 생각이 난 것인지 다시 이만석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우리 이거 다 마시고 야구공 던지는 거 하러가요!”
“맞춰서 떨어트리는 거 말입니까?”
“네!”
망설임 없이 대답한 지나가 그때의 일을 생각하는지 작게 웃음 소리를 내었다.
“훗... 저 얼마나 놀랐는지 알아요? 다트를 던질 때도 그렇고 야구공을 던져서 인형들 맞춰 떨어뜨리는 것도 얼마나 대단했는지......”
던지는 족족 맞아서 떨어지는 인형들이 너무도 신기했다.
가운데의 그 좁은 과녁에 정확히 맞추는 다트는 또 어떠한가.
그런 것은 처음 보는지라 너무도 신기했던 지나다.
“어떻게 하면 그렇게 던질 수 있는 거예요?”
“어려울 거 없습니다.”
“혼자만의 방법이 있어요?”
어렵지 않다는 이만석의 대답에 내심 뭔가 비법이 있지 않을까 해서 물어본 말이다.
“인형의 위치가 어디에 있는지 잘 보고 던지면 되는 겁니다.”
“네?”
남은 캔 커피를 한 번에 다 마셔버린 이만석이 힘으로 찌그러트리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멀리 떨어져 있는 원형 쓰레기통에 던졌다.
가볍게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간 깡통이 ‘캉!’하는 소리와 함께 안으로 가볍게 들어갔다.
“이런 식으로 말이죠.”
“뭐예요 그게.”
이만석이 자신을 놀리고 있다는 생각이 든 지나가 새침하게 바라보며 눈을 흘겼다.
“다 먹었으면 이만 가죠.”
그리고 걸음을 옮기는 이만석을 따라 지나도 자리에서 일어나 따랐다.
“너무하네요... 난 아직 다 안마셨다구요.”
“그렇습니까?”
쓴웃음을 지으며 말하는 모습을 잠시 노려보던 지나가 ‘풋!’하고 웃더니 입을 열었다.
“가지 말고 기다려요.”
그 자리에서 남아 있는 캔 음료를 단번에 비워버린 지나가 각도를 잡더니 그대로 살짝 힘을 주고 던졌다.
포물선을 그리고 날아간 캔이 이번에도 ‘캉!’하고 부딪치는 소리를 내었는데 아쉽게도 쓰레기통이 아닌 그 앞의 바닥에 떨어지며 부딪친 소리였다.
“나는 잘 안되네...”
아쉬운 듯 작게 중얼거린 지나가 서둘러 달려가 캔을 주워서 쓰레기통에 버리고 오더니 이만석의 팔을 감았다.
“이제가요!”
그렇게 팔짱하고 지나가 이끄는 대로 이만석은 별 말없이 따라가 주었다.
돈 계산을 끝내고 공 다섯 개가 든 바구니를 받은 이만석이 야구공 하나를 집었다.
“화이팅.”
작은 목소리로 옆에서 응원하는 목소리를 들으며 가볍게 길게 늘어서 있는 작은 인형들을 중에 바로 앞에 있는 곰인형을 향해 던졌다.
툭!
공이 인형이 부딪친 순간 바닥에 작은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그 순간 지나의 입에서 작은 탄성이 터져 나왔다.
이만석은 그것을 시작으로 연 달아 네 개의 공을 전부 던져 한 개도 빗나가는 것 없이 전부 맞추는 신기를 보였다.
옆에서 지켜보던 아저씨가 대단하다며 감탄사를 터트리며 열쇠고리가 든 상자를 내밀었다.
“상품 여기 있습니다.”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열쇠고리를 받아든 이만석이 다시 오천원을 건네주었다.
그에 입맛을 다신 아저씨가 바구니 하나를 건네주었다.
아무래도 실력이 좋아 보여 이번에도 다섯 개 모두 맞춰서 열쇠고리를 타가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 그런 것 같았다.
“한 번더 할 거예요?”
의아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지나의 말에 고개를 가로저은 이만석이 바구니를 넘겨주었다.
“지나씨도 해봐요.”
“저 잘 못하는데...”
“억지로 맞추려하지 않아도 됩니다. 재미로 하는 거니까.”
“음...”
잠시 생각하는 듯 하더니 곧 이만석이 건네준 바구니를 받아들였다.
“까짓것... 저라고 경품타지 말라는 법 있나요?”
그렇게 마음을 다잡은 지나는 자신감을 가지고 공을 하나 집어 거리를 가늠하곤 던졌지만 옆으로 비켜 맞고는 인형의 몸이 틀어지기만 했다.
“잘 안되네...”
안타까운 표정으로 중얼거리며 연이어 공을 던져보지만 이번에도 헛수고, 하지만 세 번째에 반쯤 틀어져 있던 인형이 톡하고 맞으며 아래로 떨어진 순간 절로 탄성이 터져나왔다.
“성공했어요!”
세 번째에 인형을 떨어트려서 경품을 받기에는 턱없이 부족했지만 그래도 기뻐보였다.
두 개의 나머지 공을 더 던지고 인형 하나를 더 떨어트려 그렇게 총 두 개의 인형만을 떨어트려서 경품은 타지 못 했다.
하지만 재미는 보았으니 그렇게 큰 아쉬움이 남는 건 아니었다.
그것 말고도 다트로 풍선을 터트리기나 고무총으로 깡통을 맞추는 것 등 여러 가지 게임을 더 했는데 발군의 실력을 선보이며 이만석은 하나도 빗나가는 것 없이 모두 맞추었다.
경품이라고 해서 대단한 것들은 없었지만 그런 것들 하나하나가 참으로 재밌어했다.
중간에 레스토랑에 들려 파스타도 먹는 등 시간가는 줄 모르며 보내다보니 어느새 밤 9시가 다되어가고 있었다.
“이렇게 노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네요.”
공원을 나서는 발걸음을 옮기면서 나란히 옆에 걷고 있는 이만석을 향해 지나가 한 말이다.
이만석은 별다른 말없이 나란히 걷기만 했다.
하지만 지나는 그것에 상관하지 않고 이어서 입을 열었다.
“가슴이 뻥 뚫리는 기분이에요.”
아무래도 이만석의 대답을 바라고 한 말은 아닌 듯 보였다.
그렇게 잠시간의 침묵이 이어지고 정문을 향해 걸음을 옮기던 지나의 귀에 주변에서 들려오는 소음 속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즐거웠다면 그걸로 된 겁니다.”
시선을 돌려 이만석의 옆얼굴을 슬쩍 바라본 지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주차장을 빠져나와 도로에 들어선 이만석은 지나를 데려다주기 위해 한남동으로 향했다.
잔잔한 음악이 차안을 채우고 밖의 풍경은 간판의 네온사인과 자동차의 전조등이 빛을 발했다.
지나가 살고 있는 저택의 근처까지 다다르도록 별다른 말은 없었다.
골목에 들어서 차를 정차 시켰을 때에서야 그 침묵은 깨어졌다.
“민준씨.”
지나는 안전벨트를 풀지 않고 그대로 앉아있었다.
그녀가 자신에게 할 말이 있다는 것을 알고는 이만석은 가만히 기다려주었다.
“저 오늘 정말로 즐거웠어요.”
말없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이만석에게 지나가 시선을 주었다.
“민준씨는 어땠어요?”
“저도 물론 즐거웠습니다.”
“그렇게 말해주니 다행이네요. 그런데 그거 알아요?”
똑바로 처다 보는 지나의 얼굴에 웃음기가 가셨다.
“저 가슴이 두근거렸어요.”
그녀의 목소리는 진지했고 또렷하게 들려왔다.
“누군가와 함께 한다는 것만으로 이렇게 두근거리는 건 처음이에요.”
이만석은 그녀가 하는 말에 입을 열지 않고 가만히 들어주었다.
“겨우 몇 번 만났다고 이런 말 하는 거 솔직히 말하면 웃긴 일이에요. 하지만 사실이에요. 그냥 당신을 생각하면 기분이 좋아지고 그래요.”
현호가 정식으로 교제하자던 그날 바에서 나서 차에 올라탄 지나는 문득 이만석이 떠올랐었다.
그때는 그저 그와 함께했던 놀이가 참 재밌었구나 하는 생각이라 기분이 좋은 것인 줄 알았다.
하지만 이상하게 그의 모습이 머릿속에서 아른거려 학교에서도 교수님의 강의가 잘 들어오지 않았다.
이런 적은 처음이라 상당히 심란함을 느낀 지나였지만 그렇다고 이게 누군가를 좋아하거나 사랑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지금까지 한 번도 그런 경험을 해본 적이 없으니까.
현호에 대해서 호감을 가지고 있고 그를 좋게 생각하고 있는 것이 어쩌면 그것도 좋아하는 감정일지 모른다고 생각했었다.
겨우 두 번.
단 두 번 만났을 뿐이다.
그것만으로 상대를 좋아하는 감정을 가지게 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 생각한다.
“내가 오늘 민준씨하고 만나고 싶었던 것은 이것 때문이었어요.”
이만석을 만나면 이 심란함을 떨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서 그와 만났다.
그를 다시 만나게 되었을 때 확실히 기분이 좋기는 했다.
함께하는 시간이 즐거웠고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도 모를 정도였다.
더불어 심장이 살짝 두근거리는 것이 묘한 긴장감도 느끼게 해주었다.
“그저 민준씨를 만나서 알아보고 싶었던 거예요. 내가 느끼는 이것들이 무엇인지.”
그렇게 말한 지나가 진지했던 표정을 풀고는 다시 웃음을 지었다.
“저 때문에 시간 내줘서 고마워요.”
안전벨트를 풀고 문을 열고나선 지나가 이만석에게 조심해서 들어가라는 말을 남기고 몸을 돌렸다.
그렇게 그녀는 백미러를 통해 바라보고 있는 이만석의 시야에서 서서히 사라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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