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0화 〉 120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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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격적인 이야기.
조직세계에 몸을 담아 이름 좀 알려봤다거나 이쪽에 몸을 오래 담고 있었다는 이들 중에 이 얘기를 듣고 충격에 안 빠질 사람은 없었다.
처음 이 얘기를 들었을 때는 소문을 의심해야했고 진실을 알았을 때는 믿을 수 없다는 빛이 다분했다.
일명 피바다 사건으로 불리는 이 얘기는 권호식에 대한 명성이나 그를 만나본 사람들은 특히 그 충격이 더 했다.
전국구로 이름을 알리며 다섯 손가락 안에 들었다가 조직을 일으켜 대전의 중심으로 자리잡은 대호방파를 일으킨 권호식은 확실히 대단한 인물이었다.
아직 싸워서 저본 적이 없다는 것과 그가 일으킨 대호방파는 대전을 넘어 다른 지방에 까지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조직으로써 절대 쉽게 볼 조직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랬던 대호방파가 무너졌다는 말이 나온 것이다.
사실 실질적으로 보면 무너진 것이 아니라 하나의 개편이 이루어 진 것이지만 이 얘기를 들은 이들은 끝장을 봤다고 보았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보스였던 권호식이 중태에 빠지고 이인자였던 강두민 또한 더 이상 조직생활이 하기 힘들 정도로 안면이 망가졌다는 것.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질 수가 있는지 그를 알고 있는 사람들은 특히 더 믿을 수가 없어했다.
처음엔 그저 소문으로 퍼져나갔지만 며칠이 되지 않아 그 일은 사실로 판명이 되어 진실임에 알려졌다.
병원에 입원을 했고 대호방파의 분위기가 어수선하고 조직을 떠나는 이들도 하나 둘 늘어났기에 소문이 진실로 퍼져나간 것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누가 권호식과 강두민을 쓰러트렸는지가 궁금 할 텐데 다행이 그 당사자에 대한 얘기도 대호방파의 이야기에 포함되어 있어 알아보지 않아도 되었다.
서민준.
요즘엔 권호식 보다 이 이름에 더 유명할게다.
서울을 중심으로 수도권을 잡고 있는 일성회와 단신으로 파란을 일으킨 인물.
처음엔 그 얘기를 들었을 때 웬 미친놈의 등장인가 했다.
수도권을 잡고 있는 대조직을 상대로 무식한 행동을 벌이는 그는 얻어맞는 정도를 넘어 죽지나 않으면 다행으로 보일 정도였다.
하지만 놀랍게도 자신을 잡으려고 보낸 이들을 믿을 수 없는 실력으로 쓰러트리거나 함정을 파놓고 이중 삼중으로 에워 싼 인파사이를 교묘히 빠져나가는 등 놀라운 일들을 연속으로 일으키며 무성한 화젯거리를 낳았다.
거기서 멈추지 않고 나중에 가선 삼합회와도 분쟁을 일으키더니 일을 크게 만들어 일성회화 삼합회간의 긴장감을 형성시켰다.
양대 세력의 사이에서 믿을 수 없게도 꿋꿋하게 살아남아 자신을 과시하며 요주의 인물로 떠올랐다.
처음인 이 서민준이라는 사내가 언제 소리 소문 없이 당하는가에 대한 얘기가 주를 이루었다면 나중에 가선 이일이 어떤 사단을 일으킬 것인가에 대한 얘기로 바꾸어버리게 된다.
일성회와 삼합회, 그리고 그 사이에 끼어있는 서민준의 모습은 참으로 묘했다.
하지만 놀라운 일은 거기서 끝나는 것이 아닌지 야마구찌회가 그런 가운데 의미심장한 움직임을 보여 왔다.
상황을 지켜보다 실리를 기회를 보고 행동하기 시작한 것이 아닌가 하는 얘기도 있었지만 중요한 것은 운이 따라주지 않았던 것인지 이시모토가 꼴사납게 복상사로 세상을 떠났고, 언론에 그동안 벌여왔던 치부가 탄로 나며 여론을 등에 업은 공권력에 무너져 내리게 되었다.
어디 그 뿐인가.
삽합회 또한 지부장이었던 차이링은 사라졌다가 일성회 쪽으로 붙어버렸고 크고 작은 피습사건들이 연이어 벌어지며 내부의 혼란을 겪었다.
일성회와 서민준이라는 사내와 시작 된 분란은 조직세계의 지형도를 완전히 바꾸어버리는 대격변을 일으켜버리게 된 것이다.
이일로 제일 이득을 본 것은 오히려 처음에 서민준으로 인해 고생했던 일성회였고, 삼합회는 내부의 혼란과 충격으로 자중을, 야마구찌회는 이시모토의 복상사와 언론의 직격탄으로 세력이 와해되어버리게 된다.
사람들은 이것을 두고 나비의 작은 작은 날개짓이 폭풍우와 같은 큰 변화를 몰고 온다는 나비효과로 표현하는 이들도 있었다.
일성회와 서민준 사이에 벌어진 작은 일이 결국엔 조직의 지형도를 바꾸어 버리는 결과를 일으켰다.
이시모토가 복상사를 한 것이나 언론의 직격탄을 맞은 야마구찌회의 운도 작용했겠지만 결과론적으론 그 작은 분란이 믿을 수 없는 결과를 불러일으킨 꼴이 된 것이다.
놀랄 일은 여기서 끝난 것이 아닌지 그 뒤로 정인철 회장은 오히려 일성회와 삼합회 사이에서 살아남아 당당히 제 목소리를 내는 서민준이라는 사내의 능력과 자신감을 높이 샀다.
그에 대해서 여러 가지 말들이 많았지만 그가 진정 자신의 힘을 보인다면 정식으로 후계자로 삼을 것이라는 충격적인 선언을 했고 실제로 그런 일이 벌어지게 된다.
혼자서 큰 조직들의 상대로 살아남아 당당히 자신을 과시하는 서민준을 두고 멋지다고 따르는 이들이 늘어나더니 강원도를 석권하는 믿을 수 없는 일을 벌였을 때는 우러러보는 이들이 생길정도였다.
그 현상은 일성회 내부에서 더 크게 일어났는데 여러 말들이 많았던 이들은 강원도를 다녀오고 난 후부터는 언제 그랬냐는 듯 애기가 잠잠해져 버리더니 정인철 회장의 안목에 대해 감탄하는 말들도 나올 정도였다.
믿을 수 없는 일과 행보를 이어간 그 서민준이 한동안 잠잠하게 지내더니 이번에도 아주 큰일을 저질러버린 것이다.
그중엔 아무리 서민준이라도 어떻게 대전으로 내려가 그런 대단한 일을 벌일 수가 있는지 충격이 컸다.
하지만 그 사이로 그가 강원도에서 벌였던 일들이 다시금 화자 되며 얘기가 나돌아 중심에 서기 됐는데 그 내용인 즉 호되게 당했던 진영회와 연동파의 얘기가 바로 그것이었다.
그의 냉정한 손속과 결단에 등골이 서늘할 정도였고 권호식이 이렇게 당할 수가 있는가 싶을 정도였다.
일성회의 가족으로 들어갔던 그가 왜 당했는지에 대해선 사람들은 의심할 여지없이 그가 나쁜 마음을 품었기 때문에 그랬을 것이라는 얘기가 나왔다.
사실 그럴 수밖에 없는게 일성회로 들어간 것이 머리를 숙인 것이 아니라 조직 때문에 그런 것이라는 말들이 많았고 만약 마음을 먹고 반기를 들면 골치께나 썩을 것이라는 내용의 골자였다.
그런 권호식을 뭉개버리고 대호방파를 흔들어 벌인 일은 등골을 서늘하게 만들기엔 부족함이 없었다.
이일을 두고 대호방파 쪽에서 일성회와 전쟁을 일으키는 것이 아닌가 하는 말들도 나왔지만 조직 총괄을 도맡고 있는 박만우로 인해 일성회에 발가벗겨진 채로 까발려진 대호방파는 별다른 힘을 쓸 수가 없었다.
첫 째로 서둘러 자신의 세력을 규합해서 밀어붙인 박만우의 발 빠른 행동이 있었고, 권호식과 강두민이 당해 세가 꺾여버린 것이 두 번째였다.
마지막으로 두 사람을 뭉개버린 이만석이 한 번더 휘저어 준 것이 조금이라도 대항해 보고자했던 사기를 꺾어버린 것이다.
이일을 두고 경찰 쪽에선 다시금 긴장을 하며 지켜보게 되었고 그 사단을 일으킨 이만석을 두고 행동에 나설 것이라는 말도 나왔다.
하지만 지켜보기만 할 뿐 행동으로 옮기지 않아 의아하게 만들었다.
그 일을 두고 이만석이 비호를 받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얘기도 나왔지만 집권여당의 실세이자 양대 세력을 잡고 있는 당대표인 윤정호 의원과 김철중 의원의 관계를 알지 못하니 의심만 할 뿐이었다.
거기다 신기하게도 언론 또한 이일은 마치 입을 닦은 것처럼 조용하기만 하니 놀라울 따름이었다.
박만우는 일성회에서 내려온 사람들과 협조를 해서 조직의 개편을 새롭게 짰다.
실익을 보고 자신을 따라 행동한 이들을 중심으로 물갈이했고 조직을 떠나지 않고 남겠다는 이들도 포용력으로 받아주었다.
권호식이 당하고 이인자였던 강두민 마저 없는 마당에 중심으로 뭉쳐서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었다.
결정적으로 처참한 꼴을 두 눈으로 확인한 이들은 이만석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게 되어 사기가 꺾여있었다.
대호방파에서 벌어진 일은 이쪽세계에 몸담고 있는 이들에게 또 다른 충격을 안겨주게 되었다.
“아주 흡족해.”
기다란 테이블을 두고 양옆으로 늘어서 착석해 있는 이들은 시선은 상석에 앉아 있는 정인철 회장에게 향했다.
이 자리에 있는 이들은 하나같이 가볍게 볼 수 없는 이들로 일성회를 이끌고 있는 핵심인물들이라 할 수가 있었다.
오른편의 채민섭 전무부터 시작해서 도박장 도난사건부터 시작해 여러 일들로 말석에 앉게 됐지만 영업부의 고중석 부장까지 일성회의 대소사를 논하는 자리가 바로 이곳이었다.
그런 이들이 모두 상석에 앉아 있는 정인철 회장에게 시선을 주고 있었다.
“강원도를 우리 일성회쪽으로 가져오더니 불안정했던 충청도마저 정리했어.”
이 자리에 참석한 이들 중에 대호방파의 일에 대해서 모르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이만석이 한 일이 놀랍기도 했지만 그만큼 대단하기도 한 것이다.
“조직의 물을 흐릴, 믿을 수 없는 싹은 단번에 절단 내야지. 그런 면에서 보면 서민준이는 아주 리더의 자질이 타고난 인물이야.”
정인철 회장은 조직이라는 말을 잘 사용하지 않는 편인데 이만석을 소개시켜준 그 자리에서 속마음을 밝힌 뒤로는 이젠 스스럼없이 조직이라는 이름을 입에 올렸다.
일반적인 조폭들과는 다른 길을 간다고 하지만 그 출발점은 일맥상통한다는 점에서 의를 둔 것이다.
“여기에 착석한 이들 중에 아직도 서민준이 우리 일성회이자 나의 후계자로 들어선 것에 완전히 의문을 지우지 못한 이들이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양 옆으로 길게 앉아 있는 이들의 얼굴을 한 명 한 명 시선을 마주치며 바라보았다.
“하지만 이번일과 같이 그는 우리의 별다른 도움 없이도 혼자의 힘으로 진영회와 연동파, 그리고 대호방파마저 굴복시키는 능력을 보였다.”
어느새 입가에 짓고 있던 웃음이 싹 가신 정인철 회장이 나직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여기에 있는 이들 중에 서민준이 했던 일을 똑같이 이룰 수 있는 사람이 있더냐.”
있을 리가 없었다.
진영회도 그렇고, 연동파, 그리고 대호방파는 일성회의 힘이라면 몰라도 혼자서 세력을 모아 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지방에 뿌리를 내린 조직이라 하지만 그들의 힘은 무시하지 못 할 정도인 것은 물론 대호방파의 권호식은 말할 필요가 없었다.
“그는 스스로 일성회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이 무엇인지 몸소 실천하여 보여주고 있다.”
서울과 수도권을 석권하고 충청도를 잡았다고 하지만 완전하지는 않았다.
거기다 삼합회와 야마구찌회의 견제로 인해 서서히 침체되어 갔는데 이만석의 등장으로 인해 그 틀이 깨져 버린 것이다.
“이번 일은 우리 일성회를 중심으로 일원화 되는 한국조직체계의 시발점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긴장된 분위기가 회의실의 공기를 바꾼다.
정인철 회장이 말하는 바가 무엇인지 이 자리에 참석한 이들 중에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할 이 대업에 더 이상 구설수와 같은 소란 없이 여기에 참석한 모두가 한마음으로 동참했으면 한다.”
일성회는 일개 조직으로써 안주하지 않을 것이다.
처음 일성회를 결성한 정인철 회장의 원대한 포부가 그러했고 거기에 매료되어 뭉친 이들의 꿈을 가지고 따른 이들도 그러했다.
하지만 지금에 이르러선 어느 정도 세력이 커지고 제일가는 조직으로 성장하게 되니 그 자리에 안주하는 이들이 하나 둘 늘어만 갔다.
하지만 그건 정인철 회장이 바라는바가 절대 아니었다.
“우리 일성회를 중심으로 완전한 통합을 이룬다.”
이 일로 인해 일성회는 또 한 번 도약 할 것이라 정인철 회장은 믿어 의심치 않았다.
“잘 지냈어요?”
차에 올라탄 지나의 물음에 이만석이 사람 좋은 미소를 지었다.
“언제나처럼 편안히 지냈죠.”
지나가 올라타고 천천히 갓길을 빠져 나간 이만석은 운전을 하며 대답을 했다.
“이렇게 시간을 빼줘서 고마워요. 미리 약속 잡은 것도 아닌데.”
“자니씨 정도면 없던 시간도 만들어야죠.”
“훗... 놀라지 말아요.”
이만석의 실없는 농담이 싫지는 않은 것인지 작은 웃음을 지었다.
“그런데 좀 의외긴 합니다.”
“의외라니요?”
“다시 저에게 연락 한 것 말입니다.”
“못 할 사람에게 한 건 아니잖아요.”
의아한 듯 바라보던 지나가 이만석의 말에 새침한 목소리로 바로 맞받았다.
“생각해보니 그런 것도 같군요.”
그러자 운전을 하며 이어서 하는 말에 무엇을 생각한 것인지 지나의 얼굴이 순간적으로 붉혀졌다.
허나 그것도 잠시 지나는 굳어진 표정으로 그대로 침묵을 유지했다.
운전을 하다말고 이만석은 갑자기 말을 멈춘 지나에게 고개를 돌려 바라보았다.
그리곤 아무일 없다는 듯이 다시 정면으로 시선을 돌리곤 잔잔한 음악을 틀어서 분위기를 편안히 해주었다.
“혼자서 가슴에 앓고 있으면 속만 더 답답할 겁니다.”
“네?”
잔잔한 음악과 함께 들려오는 이만석의 목소리에 지나가 고개를 들었다.
“가고 싶은 곳 있습니까?”
갑자기 뜬금없는 말을 내뱉는 이만석의 옆모습을 지나는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굳었던 표정을 풀고 입가에 작은 미소를 지은 지나가 닫혀 있던 입술을 열었다.
“놀이공원에... 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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