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9화 〉 119화 질서
* * *
“후우~!”
폐 깊숙이 들어간 담배연기가 코와 입을 통해 뿌옇게 뿜어져 나왔다.
술은 좋아하지만 애연가는 아니어서 담배는 많이 피지 않는 이만석이었지만 이렇게 잠깐의 타임을 가지는 것은 나쁘게 생각지 않았다.
“으으으...!”
얼굴이 뭉개진 채로 숨소리를 내뱉는 권호식의 함몰 된 코에선 피가 꿀렁꿀렁 되며 흘러나왔고 입에선 가래 끊는 소리도 뒤섞여 나와 듣기가 좋지는 않았다.
양주병이 깨질 정도로 강하게 강타 당할 정도면 당연하게도 밖에서 대기 중인 대호방파의 사람들이 들어와야 정상이겠지만 신기하게도 안으로는 아무도 들어오지 않았다.
꾀나 소리가 컸는데 어째서 아무도 들어오지 않는 것인지 의문을 가질 법 하지만 두 사람만 남게 되었을 때 이미 이만석은 앞으로 이어질 여러 상황을 두고 소리가 밖으로 새어나가지 않도록 차단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보조마법을 즐겨 쓰는 이만석에게 있어 일정한 공간의 소리차단은 크게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느긋하게 심지가 타들어가는 담배릴 깊숙이 빨아 꽁초를 태우고 바닥에 버려 발로 비벼껐다.
“끄르르...!”
가래 끓는 소리가 한층 깊어진 가운데 설마하니 치료라도 해주려는 것인지 이만석이 손을 앞으로 뻗었다.
허나 그것은 잘 못 된 생각으로 거침없이 권호식의 머리를 손으로 잡은 이만석은 메모리즈를 시전 해 그의 머릿속에 있는 정보들을 모두 훑었다.
“그래도 후한편이라 소문대로 신임은 받는 편인가보군.”
씀씀이가 커서 부하들의 신임을 받는다는 얘기를 들어 알고는 있었지만 권호식의 머릿속을 훑어보니 사실인 듯 했다.
그러나 씀씀이는 큰 편이어서 신임을 받는다고 해도 이만석에겐 그 뿐이었다.
권호식을 만나러 왔을 때 이만석은 소문이 나쁘지는 않아 결판도 지을 겸 얼굴을 한번 보기위해 내려왔다.
일성회의 가족에다 괜찮으면 좋은 쪽으로 쓰려고도 했는데 바라보는 눈빛이나 말투에선 거만함이 묻어나 있었다.
거기서 이 자가 자신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는지도 알아보았다.
간단히 노예로 만들어 사용 할 수도 있는 것이지만 이 일을 지켜보고 있는 이들이 많은 만큼 좋은 선례를 만들기로 결정을 내린 이만석은 그를 희생양으로 삼은 것이다.
메모리즈를 통해 알아보니 어느 정도 기반을 다지고 힘이 생기면 내분을 일으킨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여 불쌍히 여길 필요도 없었다.
스스로 자신이 어떤 위치에 있고 어느 정도의 영향력이 있는지 잘 알고 있었다.
노예로 만들어버리는 것도 좋지만 이걸 지켜보고 있는 지방의 조직들과 시선들에 경고를 해줄 필요성도 없잖아 있었다.
전국구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대다가 대전을 중심으로 충청도의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고 인지도가 있는 그는 희생양으로 좋은 안성맞춤이기도 했다.
물론 괜찮으면 데리고 있어 볼가도 했지만 자신을 바라보는 거만한 눈빛과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에서 이만석은 얘기해보려는 생각을 접어버렸다.
“점박이 보고 들어오라해라!”
이먼석이 밖을 향해 큰 소리로 외쳤다.
하지만 놀랍게도 이만석의 입에서 나온 목소리로 권호식의 목소리와 똑같았다.
잠시간의 시간이 지나고 노크 소리와 함께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며 권호식이 앉아 있던 쪽으로 인사를 올리는데 오른쪽 콧등 옆에 큰 점을 가지고 있는 박만우, 일명 점박이라 부르는 이었다.
“호출을... 허엇!”
들어서자마자 고개를 숙이고 인사를 올리며 입을 열던 그는 얼굴이 뭉개진 채 가래 끓는 소리를 내고 있는 권호식을 보며 경악한 표정으로 헛숨을 들이켰다.
문 뒤로 뭐라고 소리쳐야 하건만 비스듬히 열려있어 자신의 덩치에 가려 앞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이상하게 몸이 움직여 지지도 않고 놀란 그 상태로 입도 다물어지지 않았다.
경직이 된 것인지 알 수 없는 상황에 서있는 박만우 곁으로 걸음을 옮겨 다가온 이만석이 그의 뒤에 조금 열려 있는 문을 손으로 밀어 닫았다.
달칵!
“허어억!”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려옴과 동시에 다시금 숨을 크게 내쉰 그가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마치 마비 됐던 몸이 한 순간에 풀리며 힘이 빠지듯 다리의 힘이 풀리며 바닥에 주저앉아 버린 것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걸음을 옮겨 다시 자리에 앉은 이만석은 한 쪽에 놓여 있는 맥주잔을 자신 앞에 놔두고 얼음 양동이에서 병을 하나 꺼내 마개를 따버리고 잔에 따랐다.
믿을 수 없다는 시선으로 멍하니 권호식을 바라보고 있던 박만우는 고개를 이만석을 바라보았다.
평온해 보이는 그의 모습에 등골이 서늘해 지는 것을 느꼈다.
잔을 들어 한 모금 마신 이만석이 고개를 까딱이며 소파에 앉으라는 제스처를 보였다.
꿀꺽!
자신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킨 박만우는 힐끔 권호식을 바라보고는 천천히 몸을 일으켜 걸음을 옮겼다.
다리가 다 떨려 걸음을 옮기는 속도는 늦었지만 이만석은 별말 없이 차분히 안주를 짚어 먹었다.
“네가 권호식이의 비자금을 관리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
이만석의 말에도 박만우는 아무런 말도 못하고 긴장 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강두민이가 이인자라고 하지만 권호식은 널 더 신뢰하고 영향력 또한 더 있다는 걸 알고 있지.”
경남 통영출신의 강두민은 187에 스포츠 머리로 일명 눈깔로 통했는데 손속이 잔인하고 싸운 상대의 눈을 찔러 장애인으로 만들어버리는 것으로도 악명이 자자해서 붙은 별명이었다.
하지만 실력 또한 뛰어나서 부산의 도끼파로 가려던 것을 권호진이 직접 찾아가 데려왔는데, 1년 안에 자신의 입지를 다지더니 3년도 채 되지 않아서 대호방파의 이인자로 거듭나게 된 것이다.
지금은 행동대장으로 현장 업무를 총괄하고 있지만 그의 입김은 무시하지 못 할 정도였다.
하지만 권호식을 잘 따르고 있고 별다른 충돌이 없어 잘 지내고 있는 편이지만 20대 시절부터 데리고 다닌 박만우만큼 신뢰를 하는 편은 아니었다.
그래서 그런지 이인자로 올라선 강두민 보다는 비자금과 조직 총괄을 맡고 있는 점박이 박만우가 조금 더 힘이 있는 편이어서 묘한 긴장감이 현성도기도 했던 것이다.
눈깔 강두민을 거론하며 비교하는 이만석을 두고 박만우는 다시금 힐끔 고개를 돌려 권호식이를 살펴보았다.
이젠 정신을 반쯤 놓아버리고 숨이 넘어 갈 것처럼 헐떡이는 게 상태가 별로 좋아 보이지가 않았다.
그러는 사이 품에서 담배를 꺼내든 아민석이 다시 한 개비를 입에 물었을 때 박만우가 자기 호주머니에 손을 넣더니 라이터를 꺼내 조심스럽게 불을 붙여주었다.
“오른편에 앉아 있던 놈이 강두민인가.”
“예.”
눈치를 보며 조심스럽게 대답한 박민우가 다시 힐끔 권호식을 살펴보았다.
“데려와.”
“예.”
자리에서 일어난 박민우가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하더니 그대로 문 밖으로 나갔다.
“지켜보면 알겠지.”
밖으로 나간 박민우를 보며 이만석이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문 밖에서 대기 중이던 애들이 다시 밖으로 나온 박민우를 의아한듯 바라보았다.
“강두민이 불러.”
“지금 말입니까?”
“형님이 찾으시니까, 빨리 행동해.”
입을 열었던 사내가 몸을 돌려 움직일 때 지키고 서있는 나머지 인원들을 바라보며 박민우가 다시 말을이었다.
“니들은 안가?”
“저희들은 여기서...”
“닥치고 찾아.”
살벌하게 바라보는 박만우의 시선에 뭘 말대꾸도 하지 못 하고 몸을 돌려 가야했다.
순식간에 애들을 모두 물린 박만우는 그제야 작은 한 숨을 내쉬며 이마에 맺혀 있는 식은땀은 손바닥으로 닦아냈다.
5분도 되지 않아 터덜터덜 걸어오는 강두민은 앞에 서있는 박만우를 보고는 입을 열었다.
“형님이 날 찾았다고?”
“그래...”
“뭔 일로?”
“가보면 알아.”
자신보다 키가 한 뼘 작은 박만우를 내려다보던 강두민이 입가에 조소를 짓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가보면 알겠지.”
그리곤 박만우를 지나쳐 문 쪽으로 향했다.
“가봐.”
강두민을 데려왔던 사내들이 박만우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 전의 조소를 보면 저번처럼 언제 자신들에게 불똥이 튈지 몰라 별말 없이 따르는 게 산책 이었다.
이걸 대비해서 앞서 나와 있던 박만우는 애들을 물리고 문 앞까지 당도한 강두민의 뒤로 서둘러 걸어갔다.
“이게 뭐야?”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선 강두민은 얼굴이 뭉개져 있는 권호식을 보곤 놀란 듯 바라보왔다.
순간 뒤따라오던 박만우가 그대로 강두민의 등을 밀치며 안으로 들어와 문을 닫아버렸다.
“점박이 너 이 새끼...!”
놀랐던 강두민이 자신을 밀치고 들어와 문을 닫아버리는 박만우의 행동에 순식간에 안색이 굳어졌다.
단 번에 이게 어찌된 상황인지 어느 정도 인식을 한 까닥이다.
“네놈이 눈깔인가.”
“눈깔? 지금 나보고 눈깔이라고 했냐.”
박만우를 노려보던 강두민이 이만석에게 고개를 돌렸다.
“맞는가보군.”
편안한 자세로 소파에 앉아 있던 이만석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내려다보던 강두민과 엇비슷한 키가 되었다.
그리곤 테이블 옆으로 걸어오는 이만석의 모습을 노려보던 강두민이 순간적으로 앞으로 달려 나가더니 테이블 위의 젓가락을 집어 들고는 그대로 이만석의 왼쪽 눈을 향해 찔러갔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었고 큰 덩치와 다르게 상당히 민첩한 모습이었다.
“헉!”
그 모습에 박만우는 당황한 듯 헛숨을 내쉬며 바라보았는데 순간적으로 일어난 일이라 그대로 눈이 찔릴 판이었다.
잔혹한 손속에 상황에 맞춰 허점에 파고드는 강두민은 이런 식으로 상대의 눈을 공격한 후 그대로 사정없이 패버리는 게 주특기였던 것이다.
눈알이 튀어나오고 신경 줄이 딸려 나온 적도 있어 그의 잔혹한 손속은 조직 내에서 소문이 파다할 정도였다.
순식간에 이어진 날벼락에 박만우는 참지못하고 순간적으로 눈을 감았다.
젓가락이 눈알에 꼽히는 모습은 상당히 역겨운 모습이라 보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와드득!
“아악!”
하지만 뭔가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들려온 비명은 이만석의 목소리가 아니라 강두민의 것이었다.
그에 다시 눈을 뜬 박만우에게 펼쳐진 풍경은 바닥에 엎어진 채 반대로 꺾여버린 손목을 잡고 고통스러워하는 강두민의 모습이었다.
퍼억!
바닥에 쓰러져 있는 강두민의 배를 사정없이 걷어 차버린 이만석이 테이블이 밀리며 안주가 담긴 쟁반이 바닥에 엎어지는 가운데 멀쩡한 왼팔의 손을 그대로 발로 밟아버렸다.
우드득!
또다시 뼈가 어긋나듯 부서지는 소리가 작게 들려온 순간 강두민의 입에서 비명이 터저 나왔다.
“아아아아악!”
강하게 배를 걷어 차여 웅크려 있던 자세 그대로 남은 왼손마저 아작 나 버리자 제대로 정신을 차리기 힘들었다.
그리곤 믿기지 않는 완력으로 거구의 강두민의 머리를 한 손으로 잡고 일으켜 새운 이만석이 그의 얼굴에 그대로 주먹을 꽂아 넣었다.
퍼어억!
주먹이 얼굴에 강타하는 순간 얼굴이 함몰되며 양쪽 눈알이 돌출되었다.
몸을 부르르 떨며 축 늘어진 강두민을 바닥에 던져버린 이만석이 소파에 엎어져 있는 권호식의 옷에 손에 묻은 피를 닦았다.
“네가 대호방파를 이끌어라.”
파랗게 질린 얼굴로 멍하니 바라보고 있던 박만우는 이만석의 말에 90도로 허리를 숙였다.
“아, 알겠습니다...”
미칠듯하게 심장이 두근거리고 입안이 바짝 마르며 손으로 닦았던 이마엔 다시금 땀이 송골송곳 맺혔다.
이만석에 대한 명성과 소문은 들어 알고 있었지만 지금 제대로 이 남자가 어떤 인물인지 몸소 실감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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