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0화 〉 110화 질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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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석은 지나가 이끄는 대로 따라주었다.
어떤 발칙한 생각으로 이런 행위를 벌이는지 구체적으로 알 수는 없었지만 이 모든 행동들을 흥미롭게 바라 볼 소재거리는 되었기 때문이다.
신발매장에 들어서 아까와 마찬가지로 직원들을 불러 말하더니 요즘 잘나가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서 신상에 이르기까지 셋 켤레의 구두가 추천되었다.
디자인부터 시작해서 광택에 반짝이는 구두들은 하나같이 보기에도 다 괜찮아 보였다.
직원 들은 지나가 어떤 여자인지 알고 있는 상황에서 어수룩한 구두를 내 보일 수는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번에도 아까와 마찬가지로 셋 켤레 다 구매해버리는 능력을 보여주었다.
상황이 이렇게 되니 짐이 많이 늘어나 다 들고 갈 수 없는 일이어서 점장에게 전화를 걸 수밖에 없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한 명의 직원이 따라붙었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이번엔 벨트와 속목시계까지 마치 세트로 맞추려는 듯 선물해 주었다.
그녀가 쓴 돈만해도 1500은 넘어갈 정도였는데 그런 큰 거금을 짧은 시간 안에 써버린 것이다.
쇼핑백을 가지고 주차장으로 내려와 한쪽에 놔둔 사이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이 많은걸 전부 차에 실을 수는 없으니 따로 가져다 줄 사람이 올 거예요.”
물어보지 않아도 친절하게 설명하는 모습에 이만석은 아무런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가보셔도 돼요.”
지갑을 꺼낸 지나가 오만원권 두 장을 빼내 넘겨주니 난처해하는 모습에 접어서 손에 쥐어주었다.
“수고비니까... 받아둬요.”
“예, 예...”
이렇게 손에 쥐어주는데 또 거절 할 수는 없는 일인지라 어정쩡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받아들였다.
“그, 그럼 가보겠습니다.”
고개를 숙이고 인사를 한 직원이 물러나자 지나가 이만석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이정도면 차려입는데 당분간 별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거예요.”
“일단 받아들이긴 했는데... 이 모든 것이 저에 대한 관심 때문이란 말입니까?”
“네... 맞아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 지나가 입가에 웃음을 지은 채 입을 열었다.
“이런 기회는 흔치 않아요. 그리고... 저의 관심을 받는 남자또한 아주 드문 경우죠.”
그녀의 얼굴엔 웃음기가 깃들어 있었고 눈동자는 또렷했다.
“그러니까... 당신은 행운아라는 거예요.”
여운이 남는 듯 한 묘한 목소리로 말하고는 고개를 돌려 출구 쪽을 바라보았다.
‘진심인가.’
이만석은 지나가 자신에게 말한 것 처럼 단지 관심 때문에 이런 것인지 생각해 봤지만 아직 뚜렷하게 알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한 가지 말 할 수 있는 것은 지금 그녀는 이 상황을 정말로 즐기고 있다는 것이다.
얼마의 시간이 지나지 않아 한 대의 승용차가 주차장으로 들어섰는데 20대 후반으로 보이는 남자가 주차시킨 차에서 내려섰다.
그리곤 곧장 지나를 향해 다가왔는데 행동거지는 조심스러웠다.
“이런 일로 불러서 죄송한데... 보시다시피 짐이 좀 많아서요.”
쇼핑백이 한 아름 놓아져 있는 것을 보곤 고개를 끄덕이곤 입을 열었다.
“집으로 가져가는 것입니까?”
고개를 가로저은 지나가 이만석을 바라보았다.
그녀가 자신을 바라보며 할 말이 무엇인지 듣지 않고도 알아들은 이만석이 오피스텔에 대해서 설명해 주었다.
그리곤 도어록 비밀번호를 알려주곤 현관 안쪽의 한 켠에 놔두면 된다고 일러두었다.
짐들을 들고 뒤 좌석에 전부 실은 후 지나에게 인사를 한 사내가 그대로 차를 몰고 다시 주차장을 빠져나갔다.
“센스가 있으시네요.”
“딱 보이는 눈빛이 집에 대한 것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차분한 목소리로 대답하는 이만석을 두고 지나는 살짝 고개를 끄덕이곤 자연스럽게 그의 팔을 끌어안으며 입을 열었다.
“그럼 우리도 가요.”
너무도 자연스럽게 팔을 끌어안는 지나의 행동에 놀랄 만도 하련만 이만석은 전혀 당황하는 기색 없이 걸음을 옮겼다.
차 앞에 도착했을 때 차문을 열어주는데 그 행동에 지나는 기분 좋은 듯 응대해주었다.
“이런 매너 좋아요.”
가볍게 눈 인사를 건넨 후 걸음을 옮겨 반대편 문을 열고 올라타는 사이 먼저 올라탄 지나가 안전벨트를 하고 차 시동을 걸었다.
경쾌한 엔진소리가 들려오면서 선글라스를 쓰고는 유유히 주차장을 빠져나갔다.
구름 한 점 없는 날씨라 드라이브하기에 나쁘지 않았다.
서울 톨게이트를 빠져나와 고속도로를 달리며 도시를 벗어났다.
휴게소도 들리고 소소한 군것질도 하며 목적 없는 여행을 즐겼는데, 지나는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자신의 돈으로 계산 하며 이만석에겐 한 푼도 쓰지 못하게 했다.
그렇게 돌아다니다보니 서서히 해가 기울기 시작하는 오후쯤에 서해안 바다가 눈앞에 보이는 적당한 언덕길에 차를 정차시키곤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가슴이 확 트이는 거 같지 않아요?”
팔을 크게 벌리며 심호흡하듯 들이마셨다가 다시 내뱉는 그 모습은 아침부터 지금까지 보여 왔던 그녀의 모습과는 조금은 달랐다.
“한 번식 이렇게 바닷바람을 맞으며 자연을 느끼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요.”
여운이 담긴 목소리로 말하며 눈을 감은 채 크게 숨을 마셨다가 내쉬는 모습은 어딘가 가녀려 보이면서도 수수해 보이기도 했다.
“민준씨.”
천천히 눈을 뜬 지나가 여전히 시선은 앞을 향한 채 작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오늘 하루 시간내준 거 고마워요.”
“전 한 푼도 쓰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선물을 받은 제가 고맙다고 해야겠죠.”
“그런 말 하지 않아도 돼요.”
고개를 가로저인 지나가 다시 말을 이었다.
“당신은 무작정 찾아온 나에게 시간을 투자해 주었어요. 그 정도면 고마워해야 할 것은 나인 거예요.”
“그렇습니까?”
천천히 몸을 돌린 지나가 아무 말 없이 잠시 동안 이만석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여전히 한결 같네요.”
무엇을 두고 저런 말을 하는 것인지 이만석은 물어보지 않았다.
그저 지나가 다음 말을 하기를 기다리는 것이 다였다.
“아침에 저를 만났을 때도 그렇고... 백화점에서, 그리고 지금까지... 당혹스러워 하거나 그런 모습은 본적이 없어요.”
“아쉬운 모양이군요.”
“네, 맞아요.”
고개를 끄덕인 지나가 숨김없이 말을 이어나갔다.
“솔직하게 말하면 부담을 느끼거나 당혹스러워 하는 마음을 속으로 감추고 있는 줄 알았거든요.”
이만석이 윤정호 의원의 딸인 하란이와 사귄다고 하지만 이런 생활을 하거나 경험한 적이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여자 쪽에서 이렇게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도 드문 마당에 레스토랑을 전세내거나 스스럼없이 액수에 상관하지않고 선물을 해온다면 당연히 남자 쪽에선 부담을 넘어 당황스러울 것이다.
거기다 대놓고 관심이 있다고 드러낸 마당에 조금이라도 부담을 느끼지 않는다면 그건 말이 되지 않는다고도 생각했다.
헌데 지금까지 이만석과 함께 돌아다니면서 시간을 보내며 지켜보니 그의 모습은 아침에 만났을 때와 전혀 달라진 것이 없었다.
차분해 보이는 것도 똑같고 자신을 대하는 말투나 행동도 전혀 달라진 것이 없었다.
“크게 이유가 있다 생각지는 말아요. 그저 자신감 넘치는 그 얼굴이 찡그려지는 모습을 보고 싶었을 뿐이니까 말이에요.”
“음... 그 말을 들어보면 내 마음을 가지고 놀려고 했던 것 처럼 들리는데... 맞습니까.”
“관심이 갔던 것은 사실이니까 그렇게 생각지는 말아주세요. 하지만 그런 마음도 없잖아 있었던 것도 사실이니 부정하지는 않겠어요.”
평범한 일상과 다른 기적 같은 일이 한 번쯤 자신에게 일어난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보지 않아도 알 수가 있다.
자신에게 일어난 일에 대해 놀랄 수도 있고 당황하거나 곤혹스러워 할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런 일을 만들어 주었는데 기대했던 얼굴은 전혀 볼 수가 없었다.
‘하란이라는 그 여자 때문인가.’
윤정호 의원의 딸이라면 자신과 비교해도 크게 떨어지지 않는 배경이었다.
그녀의 아버지가 대선후보로 거론되고 있는 마당에 자신 앞에서 위축 될 일이 생각해보면 없는 것이다.
그녀에 비해 외모가 꿀리지 않는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벌인 일이 선물공세와 므흣한 분위기 였는데, 짧은 시간이지만 레스토랑까지 전세내면서 힘썼던 것이 지금에 와선 먹히지 않았다고 느끼고 있었다.
어찌 됐건 이 남자는 뭐 하나 놀라는 것이 전혀 없었다.
늦은 밤이 되어서야 오피스텔에 도착한 지나가 이만석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그래도 오늘 하루 즐거웠어요.”
“선물도 그렇고 받기만 했으니 내일 오후엔 제가 대접해 드리죠.”
“네?”
생각지도 못 한 말에 지나가 반문을 했다.
“한 푼도 쓰지 않고 얻어먹기만 했으니 내일 제가 대접하겠다는 말입니다.”
“그러지 않아도 돼요.”
이만석이 돈이 있으면 얼마나 있을까 싶어 지나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거절했다.
오늘 자신이 쓴 돈을 생각하면 아무래도 내일 무리를 하려는 것 같은데 전적으로 자존심이 상해 놀려주려 했던 일이니만큼 그러지 않아도 된다 생각했다.
“무작정 찾아온 그쪽이 하자는 대로 따랐으니 나에게도 그런 권리가 있다 생각합니다.”
한 번더 거절을 하려던 지나는 가만 보면 이것도 이 남자의 방식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말 그대로 자신에게 받기만 했으니 이대로 끝이 난다면 자존심이 상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자신만 해도 그럴 진데 이만석이라고 다르지 않을 것이라 보았다.
‘이런 점은 그래도 좀 마음에 드네.’
받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에게 보답하려는 행동이 괜찮아보였다.
설사 그것이 작고 초라한 것이라 해도 행하려는 행동이 중요한 것이다.
“그렇게 말하니 내일 저녁에 시간 내볼게요. 그렇다고 무리하지는 마세요.”
“명심하죠.”
그리곤 차문을 열고 내린 후 가볍게 인사를 한 후에 뒤로 돌아보지도 안으로 들어가 버리는 모습에 지나는 작게 한 숨을 내쉬었다.
‘어쩌면 저런 모습에 하란이라는 그 아가씨가 반했는지도 모르지.’
자신 앞에서도 전혀 놀랄 것 없이 편안하게 행동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혼자서만 설친 것 같았다.
그렇게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한 채 골목을 빠져나가는 지나 였다.
다음날 아침 이만석은 차이링과 같이 일성회로 출근했다.
아무래도 앞으로의 일에 대해서 상의할 것이 있어 그런 것인데, 거기서 나누었던 얘기는 차이링이 잘 얘기했다고 했으니 충청도를 정리하고 나머지 지역을 어떤 식으로 처리 할 것인가에 대해서도 애기해야 했다.
지역 전체를 석권하고 안정을 찾아야 집중해서 국외로 세력을 확장시켜 나갈 수 있는 것이다.
그에 대해선 정인철 회장도 찬성하는 바여서 얘기는 수월하게 흘러갔다.
이미 차이링에게 들은 것도 있고 해서 따로 설명 할 것 없이 애기는 잘 진행되었다.
“자가용은 있었나 보네.”
자신보고 차를 끌고 나오지 말라던 이만석의 말에 기사를 불러 약속장소 앞에서 내리고 돌려보냈다.
어제와 마찬가지로 자신의 차를 끌고 나오려 했는데 저렇게 말하니 따라준 것이다.
자기가 대접하겠다는데 차를 끌고 나온다면 그걸로 남자들의 자존심이 상한다는 것을 지나 또한 잘 알고 있었다.
이런 때는 리드하고 싶은 것이 남자들의 마음인 것이다.
그렇게 손목시계를 확인하며 기다리고 있는데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이쪽을 힐끔거리는 시선을 즐기며 지루함을 달랬다.
170에 가까운 키에 그동안 관리해온 늘씬한 몸매에 또렷한 이목구비의 외모를 가진 그녀는 자신감 또한 자연스럽게 묻어나있어 눈길이 갈만큼 뛰어난 미모를 가지고 있었다.
당연하게도 어렸을 대부터 남다른 발육으로 그런 시선을 받고 커온 그녀여서 이젠 자연스럽게 그런 눈길을 즐기는 경지에 올라서게 되었다.
‘너무 빨리 나왔나?’
이런 때는 남자들 쪽에서 제시간 보다 대부분 빨리 도착하는 것을 알고 있어 생각해서 일찍 나왔는데 아무래도 기다리는 것은 별로였다.
그렇게 3분정도의 시간이 흘렀을까.
한 대의 아우디 차량이 천천히 바로 앞의 갓길로 들어서더니 멈췄다.
‘헌팅인가.’
예전에 몇 번 당해본적이 있어 이번에도 그럴 것이라 생각했다.
‘아우디나 벤츠를 끌고 온다고 다 넘어가는 줄 아나보지.’
재력을 과시하며 헌팅을 하는 부류가 있다던데 아마도 그런 쪽인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런 모습은 지나에게 있어 먹히지도 않을뿐더러 오히려 같잖아 보이기도 했다.
역시나 자신의 예상이 맞았다는 듯 창문이 아래로 내려갔다.
“생각보다 일직 나왔네요.”
냉소를 지으며 한 마디 해주려던 지나는 조수석 옆의 운전대를 잡고 앉아 있는 사람을 보고는 하려던 말이 속으로 다시 들어갔다.
“타시죠.”
이쪽을 바라보며 다시 입을 여는 이만석의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던 지나가 걸음을 옮겨 문을 열고 조수석에 올라탔다.
그리곤 안전벨트를 착용하더니 고개를 돌려 잠시 이만석을 바라보았다.
별 말 없이 갓길을 빠져나가는 모습을 지켜보던 그녀가 작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무리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잖아요.”
“뭐가 말입니까.”
“이렇게까지 렌트를 해서 올 필요는 없었어요.”
그녀가 무엇 때문에 자신을 빤히 바라보았던 것인지 알게 된 이만석은 쓴웃음을 지었다.
“아무래도 그쪽이 착각을 한 모양이네요.”
“뭘 착각을 했다는 말이죠?”
“이차 렌트한 차량 아닙니다.”
“네?”
“그쪽에서 생각하는 그런 거 아니란 얘기입니다.”
그제야 이만석이 하는 말이 무엇인지 알아들은 지나가 놀란 듯 바라보았다.
그녀가 놀라거나 말거나 이만석은 더 이상 다른 말은 하지 않고 능숙하게 속력을 내며 도로에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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