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8화 〉 108화 질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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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합과 번영, 나아가 하나로 통합된 강원도의 모습에서 이루어진 파티는 잔잔한 웃음이 흘러나오며 기분 좋게 이어졌다.
그도 그럴 것이 생각지도 못한 인물이 찾아오게 되었으니 어찌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만석의 심복임을 자처하는 조영무와 고복수나 직접 그 모습을 보았던 이들이 아니라도 이미 진영회나 연동파 내부에서는 하나의 전설처럼 통하는 이야기였다.
오랫동안 이권을 두고 치고 박고 싸우던 두 조직의 싸움을 종식시킨 것은 물론 강원도 지역 전체를 석권해버린 이만석은 지역에 몸담고 있는 작은 조직원들 사이에선 전설로 통할 정도였다.
이미 서울에서의 일 때문에 소문과 얘기가 파다하게 퍼져 있었지만 자신들의 터전이나 조직에서 일어난 일이라 더 그러했기 때문이다.
거기다 일성회의 도움 없이 스스로 자기 힘을 이용하여 이룬 것이니 더욱 놀랄 일이나 다름없는 것이었다.
“고, 고맙습니다!”
이만석이 따라주는 맥주 한 잔을 긴장 된 표정으로 공손히 받는 사내의 모습은 말 그대로 황송하다 못해 몸이 뻣뻣하게 굳어있었다.
“이 녀석 봐라... 몸 굳었다.”
취기가 조금 올랐는지 뺨이 불그스럼한 이원종이 작게 웃음소리를 내며 놀리듯 말했다.
“형님을 처음 보니까 그런 거지... 다른 애들 봐라. 아직도 긴장하고 있잖아.”
안영만이 피식 웃음을 지으며 말을 잇자 이원종이 반쯤 남은 맥주를 단번에 비우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흐흐... 하긴... 네 말이 맞겠네. 얘기만 들었지 언제 이놈들이 형님을 보았겠어.”
그러다 고개를 돌린 이원종이 양주를 세팅해두고 마시고 있는 춘배를 보더니 인상을 찡그렸다.
“이놈아... 넌 형님이 한국에 왔으면 귀띔이라도 해줄 것이지 혼자서만 알고 있었냐?”
그러자 춘배가 뭘 모른다는 듯 이원종을 향해 핀잔을 주었다.
“네놈이 뭘 몰라서 그런데 원래 이런 식으로 깜짝 놀래 켜 주는 것이 기쁨이 두배 인 거여. 아까 네 표정 보니까 좋아죽으려고 하더만?”
“햐~ 이놈 봐라... 형님 옆에 제일 먼저 붙었다고 이젠 저렇게 헛소리까지 한다.”
자신에게 같이 좀 까자고 말을 걸어오는 이원종의 행동에 안영만은 고개를 끄덕이기만 할 뿐 별달리 대꾸는 하지 않았다.
둘이 만나면 티격태격 하는 것을 한 두 번 본적이 아니어서 이젠 그러려니 하는 것이다.
파티라고 해봐야 그렇게 거창하고 큰 것은 아니었다.
이젠 앙금을 풀고 한 가족으로 되어가는 과정이었으니 새롭게 시작하자는 차원에서 벌인 파티였다.
그랬던 것이 이만석의 등장으로 인해 그 목적이 배 이상은 크게 달성 할 것 같았다.
양대 조직이 이렇게 뭉칠 수 있었던 것은 엄연히 이만석 덕분이었으니 이렇게 자리에 참석해 주는 것만으로도 그 목적은 달성했다고 볼 수가 있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새벽시간대가 되었을 때 이만석은 조영무와 고복수 그리고 차이링 이렇게 넷이서 따로 한 켠에 자리했다.
“차이링에게 얘기는 들어서 알고 있다. 둘 다 마음을 크게 먹었더군.”
“형님덕분에 찾은 조직입니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할 뿐입니다.”
그러자 고개를 끄덕인 조영무가 다시 말을 이었다.
“고형의 말이 맞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제 한국의 조직세계도 서로 물고 뜯는 것이 아닌 미래를 내다 볼 수 있는 환경으로 변화되어야 한다고 느꼈습니다.”
차이링이 밝힌 얘기들과 이만석의 포부에 대해서 알고 있는 두 사람은 한 번더 생각을 해보고 돌아보는 계기를 가지게 되었다.
다른 지역들도 그렇지만 강원도만 두고 봐도 크게 진영회와 연동파, 그리고 주변의 작은 조직들이 존재했다.
진영회와 연동파는 힘이 있어 자리를 잡고 이정도 커올 수 있었지만 작은 조직들은 생겨났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하는 양육강식이었다.
대부분 진영회와 연동파에 찾아와 인사를 올리는 등 밑으로 들어갈 것을 자처하지만 살아남기 위한 암투로 인해 보스가 바뀌는 등 채 5년 이상 가지 못하는 조직들이 태반이었다.
그건 비단 강원도 뿐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지역이 다 그러했다.
만약 서울의 일성회가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며 나타나 주지 않았다면 삼합회와 야마구찌회를 체계적으로 상대 할 수 있는 조직은 국내에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런 조직생태계에 대해서 조영무와 고복수는 차이링을 통해서 확실히 와닿을 수가 있었다.
그녀가 삼합회의 지부장으로써 어떤 목적으로 한국에 왔었는지, 그리고 어떤 식으로 일성회를 상대하며 느꼈던 것과 만약 일성회가 존재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 지에 대한 말을 들었을 때는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삼합회와 야마구찌회가 서울을 중심으로 크게 경기도 밖으로 벗어나지 않고 역량을 집중했던 것은 모두가 일성회가 자리 잡고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었기 때문이다.
만약 그렇지가 않았다면 최악의 상황엔 자신들은 삼합회와 야마구찌회의 말이 되어 아직도 치고 박고 싸우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들의 가진바 힘과 역량을 집중하면 못 할 것이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이제 본격적으로 견제하는데 들어가던 비용을 투자로 돌릴 수 있게 되었으니 기분이 좋습니다.”
“저희들이 싸우면서 이득을 취했던 업자들이 생각보다 많아 좀 놀라기도 했습니다. 나가지 않아도 될 돈이 줄줄 새고 있었던 것이죠.”
두 사람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이만석은 다시 입을 열었다.
“생각보다 좋게 진행되고 있는 것 같아 움직일 생각이다. 일성회에서도 그렇겠지만 너희들도 따로 애들을 뽑아라.”
“애들을 말입니까?”
“빠른 시일 내에 충청도 전체를 한 번 다독여 주고 나머지 지방의 전체를 다잡을 생각이다.”
“빠른 시일이라면 언제쯤이신지...”
“늦어도 다음 달.”
“다음 달 말씀입니까?”
이만석의 말에 조영무와 고복수는 물론이고 차이링까지 조금은 의외라는 듯 바라보았다.
“너희들도 느꼈겠지만 내부가 안정이 되어야 마음 편히 역량을 집중 할 수가 있는 법이다. 그리고 선발조를 뽑아 움직이게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지게 될지 알 수가 없는 일이니 내부가 더욱더 안정적이고 단단해져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선발조라 하심은...?”
갑작스러운 말에 조영무가 조심스럽게 질문을 던졌다.
“이집트로 보낼 애들을 말하는 거다.”
“이집트 말입니까?!”
고개를 끄덕인 이만석은 대충 그곳의 생태계에 대해서 알려주었다.
지금의 이집트의 상황과 무바라크 장기 집권으로 인해 조직이 클 수 없었던 상황에 아직 이렇다 할 이들이 존재하지 않았다.
물론 테러단체를 자처하는 이들이나 그런 위험한 존재들이 나타나고 있긴 했지만 지지도가 떨어지며 불안해진 투랍 대통령이 그간 치안을 모적으로 공권력을 동원한 덕분에 그렇다 할 조직들은 아직 없었다.
거기다 뒤에선 CIA와 이집트 정보국의 합동작전을 통해 관리를 해왔으니 더욱 그러했다.
“하지만... 오히려 투랍 대통령이 물러났으니 정국을 안정시키려 더 힘쓰는 거 아니겠습니까?”
시끄러운 정국을 안정시키려고 리자 아마사피 총리가 움직이지 않겠냐는 얘기였다.
“그에 대한 구체적인 얘기는 아직 해줄 수는 없지만 적기에 맞춰 움직이려면 하루빨리 내부가 안정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이쪽에서도 그에 대한 준비를 해야겠습니다.”
“학력부터 시작해서 훑어봐야겠군.”
한국 내에서라면 몰라도 이만석의 말에 따라 다른 나라에 가게 된다면 어느 정도 영어는 할 수 있어야 했다.
그것 뿐만이 아니라 다른 것들도 교육을 시켜야 될 판이니 뽑는 대만도 시간이 거릴 것이었다.
“따로 선발조가 뽑히면 서울에서 준비기간을 거치게 될 거야. 숙소는 물론이고 강사도 고용해서 공부를 시킬 생각이니 머리가 빠릿한 놈들을 중점으로 모아야 돼.”
이에 대한 구체적인 얘기는 정인철 회장과 얘기를 나누어 봐야 겠지만 전적으로 수용할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그렇게 행하기 위해선 먼저 주변을 정리해야 할 필요성이 있었고 내부의 안정이 먼저였다.
“당신 괜찮아요?”
술기운 때문에 뺨이 살짝 붉혀져 있는 차이링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이만석에게 말했다.
“괜찮아.”
“하지만 제법 마신 것 같던데...”
음주운전으로 인한 걱정으로 차이링은 이만석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내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니까 눈 좀 붙여.”
서울로 돌아가는 차안에서 이만석은 차분한 표정으로 운전했다.
뒷 자석에 타고 있는 춘배는 이미 취기로 인해 골아 떨어져 있었다.
“한 명 따로 붙여준다고 했을 때 받아들였으면 좋았을 텐데...”
돌아가는 길에 배웅을 나선 이만석에게 기사 한 명을 붙여준다는 것을 이만석은 거절했다.
“도착하면 깨워 줄 테니 쉬어.”
팔을 뻗은 이만석이 차아링의 작은 손을 감싸 쥐었다.
그리고는 눈치 채지 못 하게 슬립을 걸어 잠속으로 빠져들게 만들었다.
갑자기 무거워지는 눈꺼풀에 차이링이 자신도 모르게 잠이 들었을 때 이만석은 음악의 볼륨을 줄였다.
술로 인한 취기는 이미 날아가 버린지 오래다.
가볍게 마나를 통해 몸속 내부의 기혈을 순환시키는 것만으로도 알코올성분이나 몸속의 탁기는 한 번에 날려버릴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이만석은 서울에 도착할 때까지 차이링은 물론이고 춘배도 깨우지 않았다.
다음날 집을 나서는 차이링을 배웅 해주고 돌아와 시원한 물에 샤워를 끝내고 머리를 닦으며 나왔던 이만석은 폰에서 울리는 벨소리에 들어서 확인해보니 모르는 번호였다.
‘누구지?’
처음 보는 번호로 걸려온 전화에 의아한 듯 받아든 이만석은 곧 들려오는 목소리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민준씨 폰인가요?]
“그렇습니다만?”
[그동안 잘 지내셨어요?]
뜬금없이 아는 채를 해오는 목소리에 누군가 싶어 잠시 생각해보던 이만석은 곧 하나의 인물을 떠올릴 수 있었다.
“제 전화번호는 어떻게 아셨습니까?”
[어머! 제가 누군지 아셨나 봐요.]
“별 할 말 없으면 이만전화 끊겠습니다.”
[잠깐만요. 그렇게 무례하게 끊는 법이 어디 있어요?]
“그쪽에서 마음대로 전화를 걸었으니 제 마음 아니겠습니까.”
[그보다 집인가요?]
“......”
별다른 대답이 들려오지 않자 폰에서 다시 음성이 들려왔다.
[말 해봐요... 집 맞아요?]
“그렇습니다만.”
[다행이네요. 신문사에 전화해보니까 당신 아직 출근하지 않았다고 하더라구요. 저 지금 그쪽으로 가고 있으니 기다려요.]
“예?”
[어디가면 안 돼요. 거의 다와 가니까.]
그리곤 전화를 끊어버리는 행동에 이만석은 조금 어이가 없다는 듯 잠시 폰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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