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5화 〉 105화 질서
* * *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와줘서 고맙습니다.”
“아닙니다. 저야말로 이런 유명인사 들이 많은 멋진 연회에 초대해 주셔서 감사할 따름입니다.”
이만석이 돌아오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인사를 하며 악수를 나눈 현호가 하란이를 바라보았다.
“여기에 온 거 즐겁게 즐기고 갔으면 좋겠다. 그리고 불편한 거 있으면 말해.”
“응...”
“그럼...”
다시 한 번 이만석에게 눈인사를 건넨 현호가 몸을 돌렸다.
좀더 얘기를 나누고 이만석에 대해서 알아보고 싶은 현호였지만 이곳이 자신을 축하하는 자리고 다른 이들의 시선도 있어 이쯤에서 물러나야했다.
‘서민준이라...’
어떤 집안의 남자인지 알 수 없었다.
자신 말대로 집안이 평범하다고 해도 첫 만남에서 느낀 건데 배경은 그렇다고 해도 서민준이라 밝힌 저 사내는 가벼워보이지가 않았다.
다른 건 다 제쳐두고라도 외모만 두고봐도 잘생겼다는 연예인을 두고서도 자신이 전혀 꿀릴 것 하나 없다고 생각하고 있는 상황에서 그 이점이 완전히 상실된 기분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앞에서 지지않는 당당함과 자신감이란.
‘알아볼 필요성은 있겠는데.’
하란이가 사랑하게 되었다는 남자가 누구인지 너무도 궁금했다.
그래서 초대를 한 것인데 이렇게 보게 되니 서민준이란 남자에 대한 의구심이 오히려 더 커지기만 했다.
일반적인 가정에서 태어나 자기 말로는 별달리 내세울 것도 없다고 하는데 저런 자신감은 어디서 나온다는 말인가.
그가 보기엔 하란이 앞이라고 허세를 부리는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현호는 걸음을 옮기다 말고 잠시 멈춰 고개를 돌려 와인 잔을 들고서 입가에 잔잔한 웃음을 머금고 있는 이만석을 바라보며 입맛을 다셨다.
연회는 기분 좋게 마무리되었다.
별달리 큰 실수 없이 기분 좋은 덕담이 오고가며 좋은 얘기들이 오고 갔던 것이다.
자신감이 엿보이는 모습이나 차분한 현호의 모습은 오너가의 장남으로써 부족함이 없는 모습을 보여주었고 스스로 밝힌 비전이나 마음가짐은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었다.
사실 주성민 회장은 좀 걱정이 없는 건 아니었는데 생각 외로 연회가 좋게 마무리되자 어제 있었던 일에 대해서는 크게 얘기를 꺼내지 않았다.
그리고 하란이가 이곳에 왔다고 하니 한 번쯤 만나보는 것은 당연한지라 현호를 통해 부르게 되었다.
“오랜만에 만나는구나.”
“네...”
“윤정호 의원님은 잘 계시더냐?”
“회장님께서 생각해주시는 덕분에 큰 일없이 지내고 계세요...”
“내가 한게 무엇이 있다고...”
입가에 작은 웃음을 지은 주성민 회장이 고개를 돌려 하란이의 옆에 서있는 사내에게 시선이 돌아갔다.
“그런데 하란이 네 옆에 있는 저 친구는 누구지?”
“......”
얼굴을 붉히며 별다른 말이 없자 다시 질문을 던지려던 주성민 회장에게 곧 이만석이 인사를 올리며 입을 열었다.
“서민준이라고 합니다. 주화그룹의 회장님을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참 잘생긴 친구로구먼...”
예의바른 모습과 차분한 모습에 첫인상이 나쁘지 않은 주성민 회장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런데 자네는 여기 있는 하린이와 어떤 사이인가? 애 모습을 보면 보통 사이는 아닌 것 같은데?”
아무래도 당황하며 뺨을 붉히는 하란이를 보고 의구심을 표하는 것 같았다.
“아마 회장님 앞이라 제가 남자친구인걸 밝히는 게 수줍었나 봅니다.”
남자친구라는 말에 주성민 회장은 조금 놀라는 듯 하더니 곳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그랬군... 하긴 어렸을 때부터 수줍음이 많던 아이였으니 말하기 힘들었을거야.”
이해한다는 듯 대답하면서 잠시 이만석의 모습을 살펴보았다.
훤칠한 키에 깔끔한 정장을 차려입었으며 얼굴은 시원스럽게 생긴 호남형의 잘생긴 얼굴이었다.
눈동자는 또렸 했고 생기가 충만했으며 자신감을 엿 볼 수 있었다.
‘어디서 이런 사내를 만났을까?’
이렇게 생기를 띤 눈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참으로 오랜만에 보는지라 주성민 회장은 관심을 가지며 바라보았다.
“괜찮은 친구로군.”
그렇게 이만석을 잠시 바라보다 작은 목소리로 말문을 때었다.
“자네 혹시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물어봐도 되겠나?”
주성민 회장이 이만석에게 관심을 드러내자 하란이는 물론이고 옆에 조용히 서있던 현호가 이만석이 어떤 말을 할지 지켜보았다.
“기자입니다.”
“기자?”
생각 외의 직업이 입에서 거론되자 주성민 회장은 물론이고 현호 또한 의외라는 심정으로 바라보았다.
그 두 사람 뿐만이 아니라 하란이 또한 조금은 의아했는데 그녀가 알기로 이만석은 기자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유가 있을거야.’
하지만 곧 그런 의구심을 지워버리고 이만석이 저런 말을 하는대에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기자라니... 솔직히 좀 놀라워.”
속내를 숨기지 않고 그대로 말한 주성민 회장이 곧 이만석을 바라보며 다시 말을 이었다.
“그쪽에 꿈이 있으니 그 일을 하고 있는 것이겠지... 어쨌든 만나서 반가웠네.”
“저야말로 반가웠습니다.”
가볍게 인사를 나누고 고개를 돌려 하란이를 바라보았다.
“연회에 와줘서 고맙구나... 그리고 좋은 사랑하거라.”
“네...”
수줍게 대답하는 하란이를 바라보며 현호는 그 모습을 보면서 전혀 웃음 지을 수 없었다.
연회가 끝이 나고 집으로 돌아온 현호는 곧장 아버지가 자신을 찾는 다는 말에 안방으로 향했다.
어머니가 건네주는 마이를 받아 방을 나간 사이 넥타이를 풀고 있던 주성민 회장이 현호를 향해 입을 열었다.
“그 아이에게 남자친구가 있을 줄은 몰랐구나.”
“......”
“대답이 없는 걸 보니 아무래도 넌 알고 있었던 것 같은데?”
“저도... 안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낮은 목소리로 대답하는 현호를 향해 주성민 회장이 다시 말을 이었다.
“장차 주화그룹을 이끌어 갈 남자라면 사랑보다는 미래를 봐야 하는 거다. 하란이의 아버지인 윤정호 의원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건 당연한 일이지만 우리는 정치집단이 아니야. 회사의 미래를 보고 생각해야 돼.”
“그게 지나와 저를 이어주려는 아버지의 생각입니까?”
“그래... 많이 성장하였다고 해도 세진 쪽과 비교하면 부족한 게 사실이지. 그쪽이 바라보는 우리 기업의 가치와 시장을 개척하고 글로벌 기업으로써 우뚝선 세진의 저력을 우리 것으로 만들 수만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네 가치는 아주 크게 중명한 것이 돼.”
한국 내에서 수위를 다투는 기업이 세진이었다.
거기서 멈추지 않고 글로벌 시장에서도 전투적인 자세로 마케팅과 사업전반에 뛰어들더니 당당히 매출 200조의 성과를 달성했다.
가전제품은 물론이고 반도체 분야에서는 한 발 넘어 두발을 앞서 나가는 상황이었고 스마트폰 시장에서도 상승세는 꾸준하게 이어지고 있었다.
“오히려 잘 되었다.”
거울을 바라보며 외이셔츠 단추를 풀어가던 주성민 회장이 말을 이었다.
“하란이도 행복해하는 것 같고 남자친구가 있으니 깔끔하게 포기 할 수 있지 않겠느냐?”
“......”
말 없이 서있던 현호가 곧 몸을 돌렸다.
“나가보겠습니다.”
걸음을 옮겨 문손잡이를 돌리려는 그때 뒤에서 다시 주성민 회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친구...”
“......”
“아주 좋은 눈을 하고 있더구나. 제대로 얘기를 한 번 나누어 보고 싶을 정도로 말이다.”
잠시 멈칫했던 현호는 그렇게 별 말없이 문을 열고 거실로 나섰다.
계단을 따라 2층으로 올라서 자기 방으로 들어온 현호는 아무말 없이 옷을 주섬주섬 갈아입었다.
{좋은 눈을 하고 있더구나...}
조금 전에 아버지의 말이 현호의 머릿속에 맴돌았다.
‘안개 속에 있는 것 같이 흐릿한 기분이야...’
이만석이 누구인지 알아보려 초대를 한 것인데 그를 만나고 난 지금 오히려 호기심과 궁금증만 올라가는 꼴이 되었다.
‘아버지가 칭찬을 한 사람은 정말로 오랜만에 본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버지의 입에서 누군가를 거론하며 칭찬을 하는 것은 거의 본적이 없는 현호였다.
거기다 한 발 더 나아가 제대로 얘기를 나누고 싶다는 말은 제대로 아버지의 눈에 들었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었다.
‘정말로 기자일까?’
현호는 자신을 기자라고 소개한 서민준이라는 남자에 대해서 의구심을 지울 수 없었다.
무엇보다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그 분위기란 상대방으로 하여금 가볍게 볼 수 없도록 만든다.
서민준이라는 남자에 대해서 생각만 하면 안갯속에 가려져 흐릿한 것만 같았다.
“오늘 고마웠어.”
집 앞까지 데려다준 이만석을 향해 하란이 미소를 지은 채 말했다.
“들어가서 푹 쉬어.”
“응...”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을 하곤 살며시 눈을 감았다.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고 있는 이만석은 망설이지 않고 하란이의 입술에 가볍게 키스를 해주었다.
“조심해서가, 오빠.”
문을 열고 차에서 내린 하란이가 밝은 표정으로 손을 흔들었다.
그렇게 골목을 빠져나가는 차량이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하란이는 그 자리를 떠나지 않고 끝까지 지켜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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