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0화 〉 100화 질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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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찌개 잘 끓였네~!”
수저를 들어 조심스럽게 한 숟갈 떠먹어본 이만석이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답했다.
“내 실력이 어디가겠어?”
요리를 하는데 있어 최고의 기쁨이란 상대가 그것을 아주 맛있게 먹어주는 것에 있다고 한다.
그만큼 요리를 하는데 보람도 있을 것이고 그 상대가 자신에게 특별한 사람이라면 당연히 더욱 그러 할 것이다.
늦은 저녁이라 할 수 있지만 가릴 것 없이 순식간에 밥 한 공기를 뚝딱 비워버린 이만석이 말없이 밥그릇을 내밀었을 때 차이링은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수북이 담아서 앞에 놔주었다.
“넌 안 먹어?”
늦은 시간이라도 맞춰서 저녁을 차려 주겠다던 차이링이어서 이만석은 자신은 먹지 않고 그저 바라보기만 하고 있는 그녀를 두고 의아하다는 듯 말했다.
“당신 거 차려주기 전에 혼자서 간단히 먹었어.”
“이왕 차리는 거 같이 먹었으면 좋았을 텐데.”
“관리중이어서 채소위주로 식단조절하고 있어.”
관리중이라는 말에 이만석은 차이링의 몸매를 곁눈질로 위아래로 살펴보았다.
체중이 늘어서 관리를 한다는 것인데 차링의 몸매를 대충 살펴본 이만석의 대답은 하나였다.
“뺄 것도 없어 보이네.”
“이것도 다 관리해서 그런 거야.”
그러면서 슬쩍 팔을 오므리며 육감적인 가슴을 어필하는데 가슴골 사이의 계곡이 묘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이거다 나 좋으라고 하는 거 아니야. 당신...때문이지.”
야릇한 시선을 보내며 눈을 찡긋하는 차이링의 모습에 이만석은 쓴웃음을 지을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식사를 끝내고 냉장고에서 캔 맥주를 하나 꺼대든 이만석이 침대에 걸터앉아 텔레비전을 볼 동안 차이링은 설거지를 했다.
정리를 끝낸 후에 옆으로 다가와 몸을 앉히는데 어느새 자연스럽게 이만석의 옆구리를 끌어안은 채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밖에서는 그렇게 도도하며 차분해 보이더니 다른 사람들이 이 모습을 보면 깜짝 놀라겠군.”
자신의 품에 엉겨붙는 차이링을 받아주며 가볍게 농을 던진다.
“흐응~ 내가 그랬나?”
시치미를 때듯 콧소리가 섞인 애교로 대답한 차이링이 옆으로 살짝 고개를 돌려 바라보았다.
“그보다 연락했어?”
“응.”
“그러면 내일 만나러 나가겠네.”
“아침에 찾아갈 거라고 일러뒀어.”
“흐응~ 우리 꼬마아가씨가 상당히 좋아했겠는 걸?”
흥미로운 듯 말하는 차이링을 두고 이만석은 리모컨으로 티비를 끄며 입을 열었다.
“처음엔 차이렁 너하고 이런 관계가 될 줄은 몰랐는데... 아무런 감정이 없어?”
“감정이라... 당신하고 꼬마아가씨가 사귀는 사이라는 거?”
“응.”
차이링이 자신에게 어떤 감정을 가지고 있는지 숨김없이 드러내고 있는 상황에서 자신이 먼저 하란이의 얘기를 꺼내며 흥미를 보이는 것에 이만석은 조금은 거기에 대해서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가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이만석도 잘 알고 있었다.
좋아하는 남자 곁에 다른 여자가 있는데 과연 기분이 아무렇지도 않을까.
“나도 여자이고 사랑하는 이가 나만 바라봐주었으면 하는 감정이 없다고 하면 그건 거짓말이겠지. 하지만 어렸을 때부터 평범한 삶보다는 삼합회에 몸담아서 험하게 살아오다보니 사랑이라는 것에 대해서 좀 생각하는 방식이나 내 주변에서 많은 일들도 보고 겪어봤기 때문에 그렇게 얽매이거나 하진 않아. 그중에 제일 큰 이유를 든다면 아무래도 당신이 바라보는 감정 때문이라고 할 수 있겠지.”
“내 감정아리고?”
고개를 끄덕인 차이링이 나긋한 목소리로 이만석에게 다시 말을 이었다.
“당신이 나를 바라보는 시선과 꼬마아가씨, 즉 하란이라는 그 애를 바라보는 시선이 전혀 다르다는 거야.”
계속 말해보라는 듯 바라보는 이만석을 두고 차이링이 질문을 던졌다.
“민준씨... 당신...... 나 사랑해?”
“그래.”
망설이지 않고 대답하는 이만석을 보며 차이링이 기분 좋은 듯 작은 웃음소리를 냈다.
이런 대답은 자연스럽게 웃음이 나올 수 밖에 없다.
“후후훗... 그렇게 말해주니 기분 좋네.”
잠시 동안 그렇게 미소를 짓던 차이링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러면... 거기에 나와 하란이를 두게 된다면 당신은 어떻게 할 거야?”
“......”
“내가 당신보고 우리 둘 중에 누구 하나를 택하라고 한다면 당신은 누구를 택할 거야? 지금 말해 줄 수 있어?”
아까와 같이 대답을 하지 못하는 이만석을 두고 차이링이 또다시 웃음소리를 냈다.
이건 예상했던 모습이기에 가볍게 웃을 수가 있는 것이다.
“후후훗~! 말 해줘도 괜찮아. 이미 나는 당신이 그런 상황에 놓이게 된다면 꼬마아가씨를 택할 것이라는 걸 잘 알고 있으니까.”
차이링의 말에 이만석은 긍정도, 그렇다고 부정도 하지 않았다.
“당신에게 잡혀서 그동안 가까이 붙어 지내며 그 애를 얼마나 좋아하고 있는지 느낄 수 있었어. 나를 대할 때의 당신의 모습보다 옆에서 통화하거나 메시지를 주고받을 때 입가에 짓고 있는 그 미소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거든.”
하란이에 대한 얘기를 꺼낼 때 그의 모습과 얼굴에 짓고 있던 웃음은 그냥 지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좋으니 저절로 웃음을 짓게 되는 것이다.
그동안 이만석과 자신의 관계가 무척이나 가까워 졌다고 하지만 차이링은 그가 자신을 바라볼 때의 모습에서 그런 진실 된 웃음을 본적이 있는가 생각해 보았을 때 슬프지 않을 수 없는 일이었다.
“거기다 당신과 꼬마아가씨는 사귀는 사이고 연인관계야. 하지만 나와 당신과는 그렇지가 않아.”
엄밀히 따지면 그의 여자친구는 꼬마아가씨라 할 수가 있었다.
“차이링...”
차이링의 말을 이만석은 전혀 부정하지 않았다.
그녀의 말이 전부 맞는다고 할 수는 없지만 어느 정도는 사실이었으니까.
“그렇게 볼 것 없어. 아까도 말했지만 내가 당신을 사랑한다고 해서 거기에 대해 갈구하며 얽매이게 할 생각은 없으니까.”
그러면서 이만석의 허리를 더욱 강하게 끌어안으며 살짝 몸을 틀어 이쪽을 바라보고 있던 이만석의 가슴에 머리를 파묻었다.
“내가 당신을 사랑하게 된 것 뿐이야. 이렇게 끌어 안을 수 있고, 바라 볼 수 있고, 말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니까.”
이만석이 하란이를 더 사랑하고 있다고 해서 질투를 가지지 않으려 했다.
자신이 이만석을 사랑하는 것 만큼 그도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더 아껴 줄 수 있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말한 것처럼 차이링 자신이 진심으로 이만석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과 옆에서 바라 볼 수 있다는 것, 그거면 된다고 생각했다.
“......”
“내일 오랜만에 만나는 건데 나 때문에 괜히 신경 쓰지 말고 기분 좋게 만나.”
“......”
이만석에게 아무런 대답이 없자 차이링이 고개를 들었다.
“그래 줄 수 있지?”
“......”
이번에도 대답이 없자 차이링이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당신 대답하지 않으면 앞으로 절대 내 몸 손대지 못하게 할 거야.”
“알았어.”
“이제야 말하네... 남자들이란 이래서 별 수 없다니깐......”
이만석은 그런 차이링의 모습에 피식 웃을 수 밖에 없었다.
다음날 깔끔하게 차려입고 집을 나선 이만석은 차를 이끌고 하란이를 데리러 향했다.
8시 30분까지 도착한다고 일러두었고 예상보다 5분정도 더 일찍 가게 되었는데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 하란이가 눈에 들어왔다.
“올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어?”
“응... 집 앞이니까.”
“이럴 줄 알았으면 더 일찍 나올걸 그랬네.”
이만석의 대답이 끝나기가 무섭게 놀란 표정으로 고개를 크게 가로저었다.
“아니야~! 내 마음대로 나와서 기다렸는걸!”
그 모습이 귀여웠던지 웃음을 지은 이만석이 입을 열었다.
“그럼 출발한다~!”
“응!”
어느새 안전벨트를 착용한 하란이의 대답에 천천히 골목을 빠져나갔다.
“오랜만이지?”
도로에 들어 운전하면서 작게 질문을 던진 이만석이 대답이 들려오지 않자 다시 입을 열었다.
“보니까 영화가 재밌는 거 많이 개봉했던데 보고 싶은 거 있어?”
이번에도 대답이 없자 이만석은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하란아?”
“응?”
순간 자신도 모르게 반문한 하란이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이런~ 만난지 얼마나 되었다고 벌써 딴생각 하고 있었어?”
“아, 아니... 그게 아니라......”
얼굴을 붉히며 당황하는 하란이의 모습에 이만석은 결국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
“가, 갑자기 왜 웃어 오빠...!”
“네 모습이 귀여워서 그런다.”
마치 자신을 놀리는 거 같은 모습에 더욱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다.
그동안 공부하느라 못 했던 치장과 신경 써서 꾸미고 나온 하란이는 오랜만에 만나서 그런지 너무 가슴이 두근거려 자신도 모르게 운전하는 옆모습을 잠시 동안 멍하니 바라보았던 것이다.
‘오빠에게 예쁘게 보이고 싶었는데...’
오랜만에 만나는 거라 좋은 시간을 보내려던 것을 처음부터 이렇게 되니 조금은 속상한 하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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