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9화 〉 99화 질서
* * *
“오빠한테...?”
“10년 만에 너 보는 거고... 남자친구가 생겼다니까 좀 충격이긴 해. 그래서 어떤 사람인지 한 번 보고 싶어서.”
“지금 한국에 없어.”
이번에도 뜻밖의 말에 현호는 다시 반 문 할 수 밖에 없었다.
“한국에 없다니?”
“일 때문에 잠시 외국에 가있거든... 나중에 오면 한번말해......”
말을 하다말고 갑자기 울리는 폰 벨소리에 하란이는 작게 탄성을 내뱉었다.
“오빠?”
[바로 전화 받네?]
전화벨소리는 당연하게도 이만석이었다.
지정벨소리라 자신도 모르게 바로 받아버린 것이다.
[집이야?]
“으, 응... 집 앞이야. 이제 들어가려고.”
긴장한 하란이 옆에 서있는 현호의 눈치를 보며 대답했다.
[그래? 시간도 늦었는데... 그보다 하란아 나 어제 입국했다.]
“입국?”
[한국에 돌아왔어.]
“저, 정말...?!”
순간 놀란 나머지 옆에 현호가 있다는 것도 잊어버린 하란이는 자신도 모르게 기쁨의 탄성을 터트렸다.
“저, 정말로 오빠 한국에 온 거야?!”
[그래... 너 시간 괜찮으면 내일 중으로 보고싶은데... 어때?]
“응...! 괜찮아!”
[하하하~ 생각 이상으로 반응이 좋은데? 혹시 다른 일 있는데 내가 한국에 왔다는 소식에 흥분해서 그런 거 아니지?]
“아, 아니야! 오빠는 날 뭘로 보고...”
속마음이 다 들킨 것 같아 하란이의 볼이 그대로 붉혀졌다.
[그럼 내일 보는 거다? 아침에 데리러 갈게.]
“응.”
그렇게 통화를 끝낸 하란이가 숨을 크게 내쉬었다.
‘오빠가... 왔구나......!’
가슴이 두근거려 주체를 못 할 지경이다.
아직 한국에 오려면 더 시간이 지나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그렇지가 않았다.
생각지도 못한 일이라 정말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아무래도 하란이 네 남자친구가 한국에 온 모양이네?”
두근거리며 이만석을 생각하던 하란이는 순간 들려오는 목소리에 정신을 차리곤 곧 다른 의미로 얼굴을 붉혔다.
“잘 됐네... 내일 만나서 잘 얘기해봐...”
“내일?”
“혼자 오라는 소리가 아니야. 때마침 연회도 있겠다 하란이 너하고 네 남자친구 이렇게 두 사람 다 초대 할 테니까 같이 와.”
“......”
예상 밖의 제안에 하란이는 순간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방금 전에 네 모습 보니까 네가 그 남자를 얼마나 생각하는지 알겠더라.”
“오빠...”
“내가 옆에 있다는 것도 잊어버린 것 같던데? 그렇게 기뻐하며 환하게 미소 짓는 모습을 나나 아저씨 말고 다른 남자에게 볼 줄은 상상도 못 했어.”
“나... 이만 들어가 볼게. 태워다 줘서 고마워.”
“응.”
“조심해서가 오빠.”
“그래...”
그렇게 안전벨트를 풀고 차에서 내린 하란이가 대문 안으로 들어갈때까지 지켜보던 현호가 조용히 골목을 빠져나갔다.
“떠나기 전과는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어.”
“주, 주인님을 뵙습니다!”
의자에 기대에 담배를 입에 물고 피워 올리던 챵은 갑작스럽게 눈앞에 모습을 드러낸 이만석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라며 자리에서 일어나 무릎을 꿇었다.
오랫동안 연락이 없다 갑작스럽게 나타나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너를 만나러 오기 전에 대충 이곳 분위기를 살폈다.”
“예...”
긴장된 낯빛으로 고개를 숙인 채 황송해 하는 챵을 두고 이만석은 걸음을 옮겨 소파로 이동해 몸을 앉히며 입을 열었다.
“차분해 보이는 게 괜찮아 보여.”
“이, 이게다 전부 주인님의 은덕 덕분입니다.”
아부 섞인 발언에 피식 웃음지은 이만석은 자리에서 앞에 앉으라고 말하니 조심스럽게 무릎을 바로 피며 일어선 챵이 눈치를 보며 자리에 착석했다.
“그래... 그동안 어떻게 돌아갔는지 한 번 들어나볼까?”
“예.”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 챵이 이만석이 떠나고 삼합회에내에서 벌어졌던 일들을 하나하나 전부 알려주었다.
야마구찌회가 무너지고 공권력이 세진 가운데 불똥이 튀지 않게 몸을 사리며 내부를 추수르는데 공을 드렸던 노력, 그리고 상하이에서 보내온 공문과 일성회의 동향, 그리고 십령방주중에 한 명인 왕두가 또 한 번 찾아온 것 까지 알려주었다.
“왕두라면 나를 포섭하려고 했던 그자 아닌가?”
“예... 그때 일도 있고 해서 신경이 쓰이는 것인지 직접 이곳에 찾아와 전반을 살펴보고 돌아갔습니다.”
“나에 대해서 물었을 텐데?”
포섭하려다가 못난 꼴을 보이고 돌아간 상황에서 자신에 대해서 신경을 쓰지 않은 게 이상한 일이다.
“일단 이쪽에 소문이 나있는 대로만 알려드렸습니다. 그리고 이곳 한국의 상황이 얼마나 긴장감이 도는지. 경찰이나 검찰 쪽에서 주시를 하고 있다는 것부터 시작해 과장을 보태서 알려드렸습니다.”
“기분이 좋지는 않았겠군?”
“예... 자신에게 굴욕감을 안겨준 존재가 잘나가니 더 그럴 겁니다. 하지만 자기 딴에 전반을 살펴보려 이곳에 왔지만 이미 제가 지부장으로써 일임을 받고 측근들을 불러들여 관리를 하고 있는 상황이어서 큰 소득 없이 돌아갔습니다.”
“그 양반이 참 욕심이 많아... 그러면 제명에 못 사는 법인데.”
제명에 못 산다는 말에 챵은 등골이 서늘하게 식는 것을 느꼈다.
다른 사람이 이런말을 하면 어처구니 없어 했겠지만 그 상대가 인간같지도 않은 이만석이라 그냥 웃어넘길 수가 없었다.
“그러면 지금까지 한 일들을 전부 욿어보도록.”
마치 사업전반에 대한 보고를 하듯이 챵은 한국내에서 삼합회가 벌인 일들을 전부 알려주었다.
그 내용을 놓고 보면 주로 일성회와 겉으로는 견제를 하는 듯 보이면서도 속내를 보면 굳건한 자기만의 성을 구축해 가고 있었던 것이다.
거기서 별다른 충돌 없이 안정을 찾아가며 정리가 되어가니 상하이에서도 신임을 보내왔고 보고서를 보낼때는 되도록 교묘히 불리한 형식으로 말을 비틀어서 보내었던 것이다.
그렇게 처지지 않게 지원이 오는 대로 자신의 직위를 다지는 것에 힘을 썼고 야마구찌회가 무너지면서 흔들렸던 그쪽의 이권도 일성회보단 약하지만 야금야금 빼앗아 가면서 하나하나 추슬러 같다.
“야마구찌회가 그렇게 무너지고 민감도가 높은 만큼 일단은 분위기를 몰아서 일성회와 당분간 제휴를 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고 있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그놈들은 그대로 따를 것이고?”
“예.”
챵이 인재로만 알고 있지 이만석의 심복이 되었다는 것을 전혀 알지 못하는 상황에선 이대로 제휴를 맺게 될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거기엔 그 속내를 보자면 야마구찌회에서 그래도 조금이나마 빼앗아온 이권을 절차에 따라 일성회로 넘기는 일을 느리지만 결국엔 진행될 것이라는 것을 안다면 거품을 물고 죽이려 들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자신들의 자본을 들여 빼앗아온 것을 일성회로 넘기는 꼴이니 이 얼마나 웃긴 상황이란 말인가.
그 웃기지도 않은 상황이 지금 벌어지려 하고 있었다.
“이렇게 일을 잘하는데 그쪽에서도 신임을 안 할 수가 있나?”
“감사합니다.”
챵은 이만석이 상하이에 있을 삼합회의 윗선을 비꼬는 것임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하도록...”
“예!”
고개를 숙이며 인사한 챵이 다시 고개를 들었을 때 어느새 이만석은 눈앞에서 사라지고 없었다.
“하아...”
그제야 긴장의 끈을 놓으며 한숨을 내쉰 챵은 몸에 오한이 이는 것인지 식은땀이 나고 떨렸다.
자신의 이 위치에 올라선 것은 그 덕분이지만 그가 가진 능력과 냉철함을 생각하면 간담이 서늘해지는 게 이상한 게 아니다.
앞으로 그가 시키는 일을 잘 해야 지금처럼 흘러갈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전에 경험했던 그와 같은 일을 또 겪게 될 수도 있었다.
“후후훗...!”
조심스럽게 김치찌개를 떠서 한 입 맛본 차이링은 연신 웃음을 잃지 않으며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그를 위헤서 요리를 한다는 건 정말로 즐거운 일이다.
“조금 싱거운거 같은데.”
미연을 첨가해서 다시 맛을 본 차이링은 그제야 만족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야 부족한 부분이 채워진 것 같았다.
그녀와 어울리지 않게 새색시마냥 앞치마를 두르고 있는 차이링은 조심스럽게 김치찌개를 식탁에 놔두고 반찬들을 하나하나 놔두며 시계를 바라보았다.
“올 시간이 되었네...”
12시가 다되어가는 시간이어서 너무도 늦은 저녁이었지만 차이링은 귀찮은 기색 하나 없이 생기띤 눈동자로 이만석을 기다렸다.
“어쩌다가 내가 이렇게 됐을까?”
한 남자를 위해 앞치마를 두르고 밥을 차리고 기다리고 있다니 삼합회에 있었을 땐 전혀 생각지도 못한 삶이었다.
“이런 생활도 나쁘지 않으니까... 후후훗.....!”
혼자서 오피스텔에서 지내오다 이제 이만석이 돌아와 너무나 기뻤다.
그의 향기와 흔적들이 그대로 간직한 곳이어서 더 그리웠지만 이젠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이다.
이제 그를 다시 만날 수가 있다.
정말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두근거리고 설레게 하는 남자가 또 있을까.
“그이가 빨리 왔으면......!”
식탁에 앉아 턱을 괴고 현관문을 바라보는 차이링은 낭군님을 기다리는 아녀자의 모습과 다를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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