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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에 나만이 유일한 마법사가 되었다-98화 (98/812)

〈 98화 〉 98화 질서

* * *

“그래도 기억은 하고 있었나 보네?”

눈을 크게 뜨고 놀란 듯 바라보는 하란이를 보면서 현호라 불린 사내의 입가에 작은 미소가 지어졌다.

“오, 오빠가 여기엔 어쩐 일이야?”

10년이란 시간 동안 연락 없이 잊혀 지내오다 갑작스럽게 이 앞에 모습을 드러내니 하란이로써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사실 현호가 한국에 돌아왔다는 것 자체가 눈 앞에 나타난 것 보다 더 놀랄 일이었다

“너 만나러 왔지. 그보다 정말로 못 본 사이에 숙녀가 다 됐네?”

물방울이 새겨진 짧은 치마에 줄무늬 티셔츠에다 얇은 가디건을 입고 있는 하란이의 모습은 풋풋한데다 동안이라 소녀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거기에 연갈색의 웨이브 진 긴 머리는 소녀감성에서 성숙미를 풍기게 했고 또렷한 눈동자와 반듯한 콧날, 갸름한 턱선의 이목구비는 현호가 감탄하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는 미모였다.

“기사한테는 내가 들어가라고 얘기했어.”

보냈다고 했을 때 그런것 같았는데 다시 제차 확인시켜주는 말을 해주니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었다.

“타... 데려다 줄 테니까.”

조수석 문을 열어주며 말하는 현호는 여전히 미소를 잃지 않고 있었는데 그 모습을 잠시 바라보던 하란이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조수석에 올라탔다.

살며시 문을 닫고 걸음을 옮겨 운전석으로 이동한 현호가 차문을 열어 올라타 안전벨트를 착용했다.

시동을 키고 잔잔한 음악을 틀은 후 조용히 갓길을 빠져나가는 그때까지 하란이는 별 말 없이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아저씨한테 들었어.”

잠시 신호에 정차되어 있는 사이 침묵을 깨고 현호가 입을 열었다.

“들었다니?”

“매일 같이 아침부터 새벽까지 공부에 매진한다며?”

“응...”

“다니던 학교 관두고 수험생 생활하는 거 쉬운일 아닐텐데...”

“별 생각 없이 간 학교였으니까.”

“계기가 있었던 거야?”

운전을 하며 질문을 던지는 현호에게 하란이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응... 좀..... 있었어. 그보다 오빠 한국엔 언제 온 거야?”

“일주일 전에 왔어. 유학생활 끝내고... 이제 완전히 돌아온 거지.”

“그렇구나...”

16살에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으니까 26살인 지금의 현호를 보는 건 10년만이다.

그때는 소년티를 벗지 못한 모습이었는데 지금은 어엿한 한 사람의 청년으로 하란이의 눈 앞에 나타난 것이다.

그것도 몰라보게 듬직한 외모에 큰 키의 멋진 모습으로.

“네가 집에 들어오는 시간이 11시 넘어서라고 아저씨한테 들었어...”

“무조건 그 시간에 나오는 건 아닌데......”

“늦는다면 더 기다리면 되는 거지... 문제 있겠어?”

능청스럽게 대답하는 현호를 보면서 하란이는 웃음을 지었다.

“아버지 밑에서 승계수업을 받기 전에 전략기획실에 들어가 경력을 쌓고 업계의 현황을 돌아볼 참이야.”

“완전히 한국으로 돌아온 거네?”

“그런 셈이지...”

현호는 재계서열 50위 안에 드는 주화그룹의 오너가의 아들로 주성민 회장의 장남이었다.

주화전자를 필두로 주화건설, 주화칼텍스, 주화생명 등 여러 계열사들을 거느리며 재계서열 100권에서 50위권 내로 3년 전에 진입하며 떠오르는 신성으로 불리는 기업이었다.

특히 주성민 회장은 신흥 먹거리를 찾아 계발하는 것에 주저함이 없었고 올해에만도 R&D 연구개발 투자에만 1500억을 책정하며 작년보다 13%정도의 200억 오른 상황이었다.

요즘 들어 글로벌 경기침체라 불리는 이때에 주성민 회장은 위기는 곧 기회라 천명하며 전투적인 지원과 투자를 아끼지 않는 것이다.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단계지만... 분위기는 나쁘지 않다는 게 내 생각이야.”

성공적인 승계수업을 받아 차세데 리더로써 자리를 매김 하려면 출발선이 나쁘지 않아야 하는데 현호는 그럴만한 자신감이 충분했고 그랬기에 한국에 입국을 한 것이다.

“오빠라면 잘 할 수 있을 거야...”

어렸을 때 봐왔던 현호는 뚝심 있는 성격에 오너가의 장남으로써 리더십도 뛰어나 초등학교는 물론이고 중학교 때도 전교학생회장도 지냈었다.

그때의 모습들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있어 응원해 주었다.

“데러다 줘서 고마워.”

집아에 주차에 감사의 인사를 표한 하란이를 보며 현호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고맙긴... 내 마음대로 찾아 간 건데... 그보다 이번 주 토요일에 시간 있어?”

“토요일에?”

“아버지께서 유학생활을 끝내고 한국에 다시 들어온 것을 축하하며 이번에 재계 인사들과 청년사업가들을 초청하여 작년에 개장한 우리 주화호텔에서 토요일에 연회를 가지려고 하거든... 거기에 하란이 네가 와주었으면 좋겠어.”

뜻밖의 제안에 하란이는 아무런 말도 못 하고 눈을 꿈벅이며 바라보아야 했다.

“선약이 잡혀있어?”

“아니... 그런 건 없는데......”

“그럼 오는 거다?”

“......”

아무런 말도 못 하고 머뭇거리던 하란이는 곧 입을 열었다.

“미안해 오빠... 확답을 못 하겠어.”

“왜 그래?”

응할 줄 알았던 하란이이가 도리어 가지 못 할 것 같은 뉘앙스를 풍기는 대답에 현호는 재차 반문할 수 밖에 없었다.

아무 약속이 없다고 하면서 나오지 못 할 것 같다니 도대체 그 이유가 무엇 때문인지 궁금했다.

“이런 일은 나 혼자 결정내리면 안 될 것 같아.”

“혼자 결정이라니? 아저씨에게 어제 말했어. 하란이 네 결정에 맡긴다고 했으니 그리 걱정하지 않아도 돼.”

하란이가 아버지인 윤정호 의원을 잘 따른다는 것을 알고 있어 그런 것이다.

아버지인 윤정호 의원이 왜 그렇게 하란이를 아끼는지, 그리고 유독 어머니와 오빠들의 차가운 냉대에 대해서도 알고 있는 그로써는 하린이가 저런 말을 하는 것도 이해 할 수 있었다.

‘사실을 알고도 하란이가 아저씨를 잘 따를 수 있을까...?’

1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으니 어쩌면 그 사이에 하란이 또한 자신에 대한 얘기를 들었을지 모른다.

왜 그렇게 여동생에 대해서 모질게 구냐고 참다 못 해 따진 적이 있었던 현호는 아직도 그때 들은 말은 잊지 못하고 있다.

{너라면 바람을 피워 낳은 자식을 네 여동생으로 받아들일 수 있겠어?}

라고 말하며 반대로 자신에게 냉소를 짓던 그 말을 잊지 않았다.

어린 마음에 상당히 충격이 컸던 현호는 그제야 왜 아주머니와 오빠들이 하란이에게 냉대를 하는지 이해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얘기를 본인에게 그때 현호는 차마 해줄 수가 없었다.

그나마 자신을 사랑하고 아껴주시는 아버지를 따르며 지내왔는데 거기에 대고 어떻게 그 얘기들을 해줄 수 있단 말인가.

하란이의 명망 있는 변호사로써 활약하던 할아버지 때부터 현호의 집안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며 가까워졌는데 그덕분에 자연스럽게 만나 친해지게 되어, 귀엽고 인형같이 생긴 여자애가 친오빠처럼 잘 따라서 남동생 둘에 여느 재벌가의 집안처럼 특별한 일 없으면 별 대화없이 자기 할 일만 하고 지내온 현호에겐 신선한 기분과 더불어 귀여운 여동생이 하나 생긴 것 같아 무척 귀여워해주었다.

냉대를 대하는 어머니와 오빠들의 눈치를 보면서도 괜찮다며 애써 미소 짓던 하란이가 참 안되어 보였었다.

자신이 잘하면 된다고, 노력하면 예뻐해 주실 거라고, 다 자신이 잘 못해서 그런 거라며 순진한 건지 바보인건지 그런 하란이의 모습을 보다 못해 따졌었던 것이다.

1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지만 현호는 하란이를 잊지 않고 있었다.

미국으로 가기 전에 눈물을 흘리며 자신을 배웅하던 그 모습을 현호는 잊지 않았다.

“네가 허락만 하면 아저씨가 전적으로 따른다고 했으니 걱정 하지마.”

“그게 아니라...”

잠시 말을 전부 잊지 못하고 흐리는 하란이의 모습에 현호는 의아하다는 듯 바라보았다.

“숨기지 말고 말 해봐...”

“아무리 현호오빠와 내가 어렸을 때 친오빠와 동생처럼 사이가 무척 가깝게 지냈다고 해도 내 마음대로 결정할 일이 아니야.”

이해 할 수 없는 말에 뭐라고 말하려던 현호는 곧 하란이가 왼손을 들어올리는 모습에 말문을 멈췄다.

“나... 사랑하는 사람 있어...... 그 사람이 모르는 상태에서 아무리 가족처럼 가깝게 지내온 현호오빠라도 남자의 초대를 받아 혼자 결정내리고 가는 건 아닌 것 같아.”

“남자친구가 있었구나...”

“응.”

“......”

고개를 끄덕이는 하란이의 모습에 현호는 순간 말문이 막혀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그래... 그렇겠지..... 10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는데... 옛날 일만 생각하고 덜컥 와달라고 말 한 것 같다.”

10년이라는 시간이다.

그 사이 하란이가 남자친구를 사귀지 말라는 법이 어디 있단 말인가.

표정이 어두워지는 현호를 보면서 하란이는 미안해 하며 입을 열었다.

“나도 오빠를 보게 돼서 반갑고 기분이 좋은데... 이건 나 혼자 결정할 일이 아니어서...... 정말로 미안해 오빠.”

10년만에 자신을 놀래 켜 주려고 찾아왔는데 이런 말을 하게 되서 얼굴 보는 게 미안해서 그만 인사를 하고 차에서 내리려 했다.

“하란아.”

“응?”

“그 남자... 나한테도 보여 줄 수 있어?”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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