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5화 〉 95화 질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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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석을 태운 차량이 일성회 서초동의 본사 건물 앞에 멈추어 섰을 때 건물을 드나들던 사람들의 시선이 모였다.
그도 그럴 것이 뒷좌석에서 내리는 인물이 잘생긴 것은 뒤로하고 상당히 젊은 사내였기 때문이다.
조수석에서 나와 뒷좌석의 문을 열어주자 내려선 이만석은 잠시 고개를 들어 일성회 본사의 건물을 한 번 올려다보곤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그 뒤를 따라 춘배가 걸음을 옮기는데 나머지 인원들은 조용히 이만석을 향해 인사를 올릴 뿐이었다.
“저분 누구야?”
정문을 나서던 30대 초반의 회색 양복차림의 남자가 이만석이 타고 온 벤츠를 운전했던 사원에게 질문을 던졌다.
“강대리님 오셨습니까.”
“춘배가 저렇게 조용히 따르는 것 보니까 예사롭지 않아 보이는데...?”
인사에 살짝 고개를 끄덕였던 강대리라 불린 남자가 의미심장하게 바라보더니 곧 눈을 크게 떴다.
“가만... 설마 저사람......!”
“예... 강대리님이 생각하시는 그분 맞습니다...”
“이런 씨불... 눈도장을 찍을 절호의 기회였는데......”
하지만 놀란 것도 잠시 강대리의 얼굴엔 안타까움과 더불어 이미 모습을 감추어버린 춘배를 너무도 부러워하듯 문을 바라보았다.
“춘배 이자식 오면 온다고 말해 달라고 했건만...”
아쉬움에 입맛을 다신 강대리가 다시 입을 열었다.
“어떻든......”
“예?”
“네가 태우고 운전해 왔으니까 뭔가 느낀 게 있을 것 아니야.”
갑작스러운 질문에 반문하며 바라보았다가 이어서 하는 말에 이만석을 한 번 떠올리면서 입을 열었다.
“혼자서 그 대단한 일들을 저질렀다고 믿기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찍어누르는 듯한 강한 기세나 그런 것 보다는 뭔가 친근하면서도 소탈해 보이기도 했습니다.”
“그래?”
“예...”
차안에서 나누었던 농담이나 모습들은 확실히 위압적이기 보다는 뭔가 친근한 분위기에 가까웠다.
“하지만 그렇다고 너무 가벼워 보이지도 않았습니다.”
“그렇겠지... 일단 외모로 저렇게 시선을 잡아버리는 남자인데...”
여리여리한 외모보다는 호남형의 시원하게 생긴 이목구비에 당당한 눈빛은 샌님과 같은 스타일은 거리가 멀었다.
“황태자의 귀환인가...”
작게 중얼거리는 강대리는 이만석을 황태자로 칭하고 있었다.
혜성처럼 등장해 파란을 불러일으키고 놀라운 일들을 벌인 것은 물론 이제 당당히 일성회의 후계자로 올라선 이만석을 두고 뒤에서 황태자로 칭하고 있었다.
“오랜만이야...”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는 이만석을 두고 정인철 회장이 반가운 표정으로 그를 맞이했다.
“그간 잘 계셨습니까?”
“나야 잘 지냈지 않겠나...”
정인철 회장이 권하는 자리에 이만석이 몸을 앉히자 말하지 않아도 황석진 비서실장이 조용히 물러났고 춘배 또한 그 뒤를 따랐다.
문을 닫고 나간 후 단 둘만 남게 되었을 때 정인철 회장이 궁금하다는 표정으로 말문을 열었다.
“이집트가 상당히 시끄럽더군... 그런 곳에서 과연 자네가 무엇을 했을지 너무도 궁금해.”
거기서 관광만 하다 오지 않았을 것이 분명하니 그게 무엇인지 알고 싶어 했다.
“가서보니 상당히 일이 재밌게 돌아가던 것 같았습니다. 투랍대통령과 아마사피 총리의 관계나 그 속에 얽혀있던 이들까지... 일단 생각처럼 좋게 되었으니 적절할 때에 선발을 뽑아서 데려가 교육을 시킬 참입니다.”
“선발을 뽑는다?”
“판을 짜놓았으니 수월하게 갈 수 있다는 뜻입니다.”
“자리를 잡는 데는 일단 큰 지장은 없을 거라는 말인가?”
이만석이 뜻하는 말이 무엇인지 알아들은 정인철 회장이 궁금하다는 듯 바라보았다.
“대통령이 사퇴를 하고 물러서서 정국이 불안정 할 텐데 어떤 식으로 판을 짜놓았다는 말인가? 무장단체의 위세가 강하다고 들었는데...”
뭔가 이유가 있으니 판을 짜놓았다고 할 테지만 한나라의 총리까지 암살하려했던 큰일이 벌어지지 않았던가.
그런 상황에서 이만석이 마련해놓았다던 발판이 무엇인지 심히 궁금했다.
“화징님이 걱정하는 게 무엇인지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무장단체도 아닐뿐더러 그 덕에 아마사피 총리와 가까워졌으니 나쁘게 생각지는 않습니다.”
아마사피 총리와 가까워졌다는 말이 정확히 무슨 뜻인지 알 수 없었지만 하나의 생각은 유추해 낼 수 있었다.
“극적으로 빠져나가 살았다던데... 설마 그게 자네의 도움이었다는 말인가?”
“극적인 것 까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됐습니다.”
“믿을 수가 없는 말이구만...”
자택을 피습을 당하고 겨우 빠져나갔다는 리자 아마사피 총리에 대해 여러 가지 말들이 있었다.
그래도 한 수는 있었다느니 그의 주위에 숨은 인재들이 많다던가 하는 얘기들이 한 동안 돌아다녔었던 것이다.
물론 정인철 회장은 그에 대해 운이 좋은 친구정도로 생각했는데 이만석의 입에서 뜻밖의 얘기를 듣게 되자 믿을 수가 없었다.
“얘기가 조금 복잡해서 전부 말씀드릴 수 없는 점에 대해서 양해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 말해 드릴 수 있는 건 리자 아마사피 총리가 건재한 이상 그쪽과 마찰이 벌어질 일은 없을 거라는 것입니다.”
무엇이 복잡해서 말하기 어렵다는 것인지 알고는 싶었지만 예사롭지 않은 일들인 것만은 분명해 보였다.
“대통령이 물러나고 총리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는데 그와 관여된 일이라면 자네 말보다 더 복잡한 일이겠지...”
그 또한 살아온 인생이나 일성회를 이끌어온 회장으로써 생각의 깊이와 안목이 절대 가볍지가 않았다.
그 쪽에서 밝히기 꺼려한 일이 있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이만석의 말을 들어보면 아무래도 깊이 관여되어 있는것 같으니 지금은 물어보지 않기로 한 것이다.
“가만 보면 자네는 목숨이 두어 개는 되는 것 같아 보여.”
“그렇습니까?”
“내가 아무리 혈기왕성하던 때로 돌아간다고 해도 자네처럼 이집트로 가서 그런 일을 저지르진 못 할 거야.”
정인철 회장이 보기엔 이만석은 확실히 난 놈이었다.
“자네가 원하는 것을 그대로 추진해봐. 확실히 밀어줄 테니까.”
“밀어주신다고 하니 기분이 좋군요.”
“어디 밀어준다 뿐인가... 원한다면 회장직을 바로 물려 줄 수도 있어.”
정인철 회장이 농담처럼 하는 저 말이 농담이 아님을 알고 있는 이만석이 쓴웃음을 지었다.
“아직은 제약이 없는 지금이 좋습니다.”
“하지만 언젠간 올라서게 되겠지.”
“저보다 회장님이 더 원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래 보이나?”
이만석을 바라보는 정인철 회장의 눈빛은 신뢰가 가득했다.
“차이링이 일을 아주 잘 해주고 있어.”
“능력이 있는 여자지요.”
“자네가 아니었으면 삼합회를 아직도 이끌고 있었을 텐데... 우리 쪽에선 힘들었을 거야.”
옆에서 그녀의 일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 정인철 회장으로썬 차이링에 대해서 정말로 다시 보게 되었다.
“전화를 주지 않았다고 하던데?”
“그녀라면 착실히 알아서 잘 할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바쁜 일 없으면 기다렸다가 같이 가도록하게.”
“이곳으로 오는 중인가 보군요?”
고개를 끄덕인 정인철 회장이 다시 입을 열었다.
“아무 말은 하지 않지만 상당히 보고 싶어 하는 눈치더군.”
“그렇습니까?”
“전화를 한통도 해주지 않은 건 좀 너무했어.”
정인철 회장이 이런 말을 할 줄은 몰랐던 이만석은 다시금 쓴웃음을 지었다.
“하란이 한테는 연락했나?”
“한국에 온다고 하진 않았습니다.”
“그래도 안부 전화는 몇 번 했겠지?”
“물론입니다.”
“그 애와 사귀는 사이고 둘 다 살아온 환경이 다르다곤 하지만 이왕이면 차이링에게도 신경을 좀 써주게... 여자의 마음은 그렇지가 않으니까.”
“좀 의외의 말씀이네요.”
“나도 자네만큼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아왔다고 자부한다네... 당연히 여자문제도 좀 복잡했었고.”
그리곤 정인철 회장은 이만석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이 자리까지 올라서는데 무엇을 경험 못해 본 일이 있겠나?”
또각 거리는 하이힐 소리를 내며 엘리베이터로 걸음을 옮기는 차이링의 뒤를 6명의 사내들이 따랐다.
그들은 정인철 회장이 따로 붙여준 경호원들로 안전부 내에서도 손에 꼽히는 실력자들인 것이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갈 동안 마주쳤던 이들은 모두 그녀에게 인사를 건네는데 그도 그럴 것이 이젠 그녀의 내력과 정인철 회장이 뒤에서 봐주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그런 것이었다.
그 뿐만이 아니라 그녀가 보여준 추진능력이나 성과를 두고 일성회 내에서도 이제 그녀를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거기다 외모 또한 너무도 아름다우니 사내들이 많은 일성회 내에서 그녀를 흠모하는 이들까지 생겨나고 있는 추세였다.
“여기서 부터는 혼자서 갈 테니 이제 가셔도 돼요.”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화징실로 가기 위해 엘리베이터를 갈아타려는 차이링이 경호원들을 물리고 혼자 올라섰다.
25층을 누르고 기다리는 동안 차이링은 정인철 회장에게 보고할 서류를 꺼내서 다시금 훑어보며 점검했다.
그러는 사이 엘리베이터가 도착하는 알림이 들리며 문이 열리자 파일을 닫고 걸음을 옮겨 복도로 나섰다.
“도착했다고 말씀드려요.”
정인철 회장과 만나기 전에 먼저 비서실 앞에 마련된 데스크의 경리에게 알려야했다.
차이링이 오는 것을 보고 인사를 올린 여직원이 곧이어 비서실 안으로 연락을 취했고 잠시 후 의외의 인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춘배?”
그녀의 앞에 모습을 드러낸 인물은 다른 누구도 아닌 춘배였기 때문이다.
“안녕하십니까, 누님.”
“네가 여기에 왜 있어?”
바쁜 일 때문에 오늘은 따라가기 힘들다던 춘배여서 갑작스러운 등장에 조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어제 말씀드렸던 그 일 때문에 있는 겁니다.”
“그일?”
“일단 이쪽으로 들어갑시다.”
그러면서 비서실 문을 열어주는데 차이링은 의아한 듯 바라보았지만 들어가보면 알 것이라 생각하고 발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춘배가 안내한 곳은 황석진이 있는 비서실장실로 통하는 안쪽의 문이였다.
조심스럽게 노크를 하고 문을 열고 옆으로 비켜주자 차이링이 안으로 들어섰다.
“일은 잘 끝나셨습니까?”
자리에서 일어난 황석진 비서실장이 사람 좋은 얼굴로 차이링을 맞이해 주었다.
“네... 그런데 무슨 일이죠?”
이런 적이 없었던 차이링이어서 곧바로 황석진 비서실장에게 질문을 던졌다.
“지금 화장님께서 중요한 손님을 맞이하고 계셔서 말입니다.”
“중요한 손님이요?
자리에 앉고 얼마 지나지 않아 노크 소리와 함께 여직원이 들어와 두 잔의 커피가 조심스럽게 앞에 놓여졌다.
“앞으로 일성회가 가야할 반향에 지대한 영향을 줄 정도로 중요한 분이죠.”
잔을 들어 한 모금 마신 차이링이 다시 놔두며 흥미로운 시선으로 입을 열었다.
“지해한 영향을 줄 정도의 인물이라... 그렇게 말하니 더 궁금하네요...”
일성회에서 일을 하면서 그 정도의 인물은 본적이 없기 때문에 차이링이 흥미를 드러내는 것은 당연했다.
차분해 보이면서도 초승달처럼 휘어진 눈매에 도도해 보이는 그녀의 표정을 보며 황석진 비서실장은 속으로 웃음 지었다.
“차이링 아가씨께서도 잘 아시는 분입니다.”
“내가 아는 사람이라뇨...?”
이해 할 수 없는 말이어서 의문을 표했던 차이링의 흑요석 같은 눈동자가 순간 살짝 떨렸다.
그녀의 머릿속에 조금 전의 춘배의 모습과 말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이... 인가요?”
황석진 비서실장은 말이 없었다.
“맞..군요.”
하지만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너무도 잘 알고 있어 그녀의 동공이 크게 흔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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