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3화 〉 93화 질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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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담가지지 않아도 돼.”
음식을 두고 가만히 바라보는 안나에게 이만석이 쓴웃음을 지었다.
나이프와 포크를 이용해 스테이크 한 조각을 썰어서 집어 먹은 이만석이 입안에서 퍼지는 육즙과 식감에 만족스러운 듯 씹어 먹었다.
“부담 같은 건 없어.”
“맛있는 음식을 앞에 두고 먹지 않는 짓은 예의에 어긋나는 행동이야.”
장난스럽게 중얼거리며 다시 한 점 썰어서 집어먹는 사이 안나가 그런 이만석을 다시 가만히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이제부터 뭘 하면 되는 거지. 이유가 있으니까 나와 거래를 한거 아닌가.”
“거래보다는 고용이 듣기 좋다고 했잖아.”
와인 잔을 들어 입술을 한 번 축인 이만석이 조심스럽게 입술 주변을 닦아내곤 다시 말을 이었다.
“엔더슨은 가버렸고 CIA쪽에서 일단은 이 사태를 지켜보는 쪽으로 정한 것 같더군. 갑작스럽게 실종된 엔더슨은 아직 그의 흔적이나 행방은 전혀 찾을 수가 없는 상태고. 투랍 대통령은사임을 한 대다 세상의 이목이 집중되어 있으니까. 이런 때에 CIA와 투랍 대통령 간에 조금이라도 연관이 되어 있다는 것이 드러난다면 그 파장은 엄청난 일이지. 더불어 투랍 대통령의 사임을 두고 미국 쪽에서도 긍정적인 쪽으로 입장을 내보였으니.”
대국민담화를 통한 투랍 대통령의 사임은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기에 충분했다.
제2의 자스민 혁명이라 칭하는 국가도 있는 반면 이집트 국민들이 이젠 정말로 제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는 얘기들이 쏟아져 나왔던 것이다.
탄압으로 비춰지는 압수수색과 그간의 행태에 미국과 같이 서방국 들은 우려를 표하기도 했었다.
“이제 이 나라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게 되겠지. 리자 아마사피 총리를 중심으로.”
“날 어디에 써먹으려는 거지. 그래서 거래를 한 거잖아. 네 말대로라면 고용이겠지만.”
리자 아마사피 총리가 거론 되는 순간부터 안나는 이 모든 일의 내막이 눈앞에 있는 이만석이 주도했음을 바로 알아차렸다.
그간에 일어났던 일들, 그리고 지금의 상황까지 그가 벌인 것들이었다.
“전에도 말 했지만 너에게 흥미로운 점이 많아서 그랬어. 실력도 출중한 대다 외모도 합격점이고. 그리고 무엇보다 네 생각방식과 성격... 그 모든 것들이 거기에 포함되어 있는 거야. 거기다 네 말대로 써먹으려는 목적으로 한다면 의외로 많기도 해. 실력이 출중하니까. 그래서 말인데...”
천천히 고기 한 점을 썰어서 집어 먹은 이만석이 품에서 스마트폰 하나를 꺼내더니 안나의 앞으로 놔주었다.
“투랍 대통령이 사임하고 한 달동안 좀 바쁘게 돌아다녔어. 폰을 보면 안나 내가 갈 장소의 지도가 나와 있을 거야. 그리고 그 이유와 목적도 메모되어 있으니까 열어서 읽어봐.”
무슨 목적인지는 모르겠지만 폰에 들어 있는 정보를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라는 말에 조용히 넘겨받았다.
식사가 끝나고 호텔로 돌아온 안나는 방으로 들어가 자리를 잡고 이만석이 다시 찾아준 가방의 열어 m200 체이탁을 점검했다.
구경 10. 4mm의 이 저격총은 대인저격용중엔 으뜸이었고 이제 그녀에게 너무도 익숙한 총이기도 했다.
요인 암살용으로 여러 네임드의 총을 사용하긴 했지만 최근엔 이것만 애용했던 것이다.
이만석이 엔더슨을 데려오면서 이것 또한 같이 챙겨준 것이다.
가방을 내미는 모습에 얼마나 놀랐던지 잠시 동안 그대로 서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도망쳐 나오면서 챙기지 못 한 것 있느냐는 그의 질문에 흘러가듯 한 번 말은 했지만 정말로 찾아와 줄줄은 기대도 하지 않았었다.
받은 것이 있어야 무엇을 들어주는 것이지 자신은 그에게 준 것이 아무것도 없기에 그랬다.
빚을 지는 것을 싫어하는 그녀이기에 이만석의 선심에 찝찝하긴 했지만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대놓고 감정을 드러내는 성격이 아니어서 말을 전하진 못 했지만 사실 그녀는 속으로 고마움도 느끼고 있었다.
딱히 고장이 난것이나 이상이 있지는 않아 떠나기 전의 점검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넌 어떻게 할 거지?”
다시 총을 가방에 넣어두고 마무리 한 안나가 창가에 서있는 이만석을 바라보며 질문을 던졌다.
“어느 정도 이곳 상황을 정리 했으니 한국에 잠시 돌아가 봐야지. 이집트에 온지도 제법 시간이 지났으니. 그리고 애들을 만나서 할 이야기도 있고.”
“......”
다시 한국으로 돌아간다는 말에 안나는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생각해보지 않은 일이라 이만석이 한국으로 돌아간다는 말이 안나에게 조금은 놀랄 법 하건만 그런 모습을 보이진 않았다.
“한국으로 돌아간다고 해도 조만간 다시 보게 될 테니까, 아쉬워 하지마.”
여전히 창밖에서 시선을 돌리지 않은 채 말하는 이만석의 대답에 안나의 입에선 고저 없는 음성이 흘러나왔다.
“그런 거 없어.”
“조금은 섭섭한 대답이네?”
여전히 창밖에서 시선을 돌리지 않은 채 작지만 장난기 섞인 이만석의 감미로운 목소리가 방안을 조용히 울렸다.
안나의 성격을 이젠 어느 정도 알고 있는 이만석이어서 그녀의 말에 별로 신경 쓰는 것 같지도 않았다.
“......”
별다른 응답이 없는 안나에게 이만석이 나직이 말을 이었다.
“계속 냉기만 풍기는 차가운 얼굴 말고 가끔은 웃는 모습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천천히 시선을 돌린 이만석은 아무 말 없이 그저 옆모습을 응시하고 있던 안나의 두 눈과 마주쳤다.
묘한 분위기 속에 침묵이 흐르고 그렇게 서로의 눈빛을 교환하던 이만석이 입고리를 말아 올렸다.
“넌 매력 있는 여자니까. 안타까워서 하는 말이야.”
그리곤 더 이상 할말 없다는 듯 걸음을 옮겨 방을 빠져나가는데 안나는 그런 뒷모습을 자신답지 않게 여전히 시선을 때지 않고 바라보다 이내 고개를 돌렸다.
‘이정도의 거리면... 충분해.’
안나는 이만석이 보통의 사람들과 다르다는 걸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가 보여준 능력이나 모습들을 두 눈으로 보았으니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다르게 볼 것은 없다.
CIA쪽에서 자신을 키웠고 훈련시켰으니 맡겨진 임무나 일에 충실히 해왔다.
별 일이 없으면 계속해서 그렇게 살아갈 것이었고 그게 안나의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제 상황은 완전히 바뀌었고 그 상대가 CIA에서 이만석으로 변했다.
그렇다고 일정한 거리 이상 가까워질 필요가 없는 일이다.
그게 그동안 자신이 살아왔던 방식이고 냉혹한 현실에서 그나마 상황이 잘 못 되어 죽더라도 비참한 심정으로 생을 마감하지 않을 수 있다.
지금은 그가 말하면서 건네준 스마트폰에 있는 정보에 따라 움직이면 된다.
잡생각이나 사적인 일들은 사치에 지나지 않았고 전혀 자신에게 어울리지 않는 것들이었다.
그렇게 안나는 이만석에 대한 생각을 머릿속에서 지웠다.
“네놈은 뭐가 그리 기분이 좋아서 싱글벙글 인거냐?”
신문을 펼쳐든 김철중 의원이 마음에 들지 않는 다는 듯 혼자서 헤실 거리는 박동구를 나무라듯 말했다.
“흐흐흐... 당연히 기분이 좋죠. 안 그렇겠소 장인어른? 내일이면 그분이 다시 한국으로 오는데...”
“으음...”
“그리고 장인어른이 보고 있는 그 신문기사를 보면 그분의 위대함이 어느 정도인지 아주 체감이 될 것인데 그렇지가 않는 거요?”
박동구는 연일 뉴스를 통해 화제가 되고 있는 제2의 아랍의 봄이라 일컬어지는 이집트에서 벌어진 사건을 두고 그 이면엔 이만석이 있을 것이라는 것에 전혀 의심을 품지 않았다.
이만석의 능력을 두 눈으로 목격한 것도 모자라 직접 체감한 인물이 바로 박동구여서 이집트에 갔으면 그저 가만히 앉아서 구경만 하고 있지는 않았을 것이고 어떤 식으로든 개입해서 일을 벌였을 것이라 보았던 것이다.
“이집트의 일이 어느 정도 정리되는 시점에 이렇게 다시 한국에 온다는 것을 본건데 내 장담 컨데 이번 결과를 두고 그분의 의중이 아주 크게 반영되어 있다는 것에 내 장인어른의 손모가지를 걸겠소.”
“이놈아! 걸려면 네놈의 손모가지를 걸 것이지 왜 가만있는 내 손목을 가지고 지랄이야!”
순간 불같이 화를 내며 쏘아 붙이는 김철중 의원의 잔소리에 예전 기가 눌려 살 때의 기억이 떠올라 움찔한 박동구가 변명하듯 말했다.
“농담을 한 것 가지고 뭘 그렇게 화를 내시는 겁니까? 웃자고 한 말인데...”
“내가 잘 알고 있는데 네놈은 정말로 내 손모가지를 걸라고 하면 걸 놈이 확실하다. 그래서 더 화가 나는 게야!”
“험험...!”
정곡이 찔려서 일까.
순간 박동구가 시선을 돌리며 목을 가다듬는 소리를 냈다.
‘이런 놈을 믿고 사위로 받아들여 키윘으니... 쯧쯧쯧......!’
꼴 보기 싫다는 듯 고개를 숙인 김철중 의원이 신문1면에 실려 있는 기사를 보고 두려움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었다.
거기엔 권한대행을 맡아서 임시로 국정을 맡아서 이끌고 있는 리자 아마사피 총리에 대한 기사와 사진이 실려 있었다.
이집트의 일련의 과정들과 사건은 이곳 한국에서도 화제 거리였기 때문이었다.
‘절대 벗어날 수 없겠지...’
이집트의 일이 정말로 이만석이 관여해서 지금의 결과가 드러난 것이라면 이건 정말로 한나라의 대통령을 끌어내린 사건으로 너무도 무서운 일이었다.
‘어쩌다 내가 이렇게 두려움에 떨며 목숨을 구걸하는 꼴이 되었는지...’
정치계의 거물로써 세상 두려울 것이 없었던 그 마음은 이제 다시는 가질 수 없을 것이었다.
이미 그와 마주해 호되게 당하여 제약이 걸렸을 때부터 김철중 의원은 끝났다는 생각을 했었다.
도저히 인간이라 생각되지 않는 그 존재를 어떻게 벗어날 수 있단 말인가.
그저 하늘이 원망스러울 따름이었다.
여러 사람들이 오고가는 공항, 그 중에서도 인천국제공항은 한국에서도 제일 큰 공항으로 당연히 입 출국하는 내국인들이나 여행객들, 그리고 외국인들 또한 국내의 공항들 중에 유동인구가 제일 많다.
그런 곳에서 한 무리의 사람들이 주변사람들을 긴장하게 만들었데 그도 그럴 것이 검정색 양복의 차림새도 비슷했고 인상이 상당히 불만(?)스러워 보이는 이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민준님이 좋아할까요? 전해 받은 대로 조용히 애마만 대기시켜 놓고 가는 것이 더 좋았을 것 같은데 말입니다.”
사람들이 힐끔거리는 시선에 190에 가까운 큰 키에 곰 상을 연상시키는 남자에게 한 사내가 꺼림칙한 표정으로 말했다.
“네놈이 몰라서 하는 소리다... 형님이 말씀은 그렇게 하셨지만 이렇게 내가 직접 마중 나오신 것을 보면 아주 기뻐하실거야. 그리고 장차 일성회를 이끌 다음대 회장님이신데 혼자서 입국하게 할 수는 없는 일이지... 암......!”
말 같지도 않은 소리는 하지 말라는 듯 곰상의 남자, 춘배가 딱 부러진 표정으로 말을 했다.
“대리님 말대로 그렇기는 한데 아무리 그래도 이건 좀...”
주변을 둘러본 사내는 작게 한 숨을 내쉬었다.
그도 그럴 것이 신분도 신분인 만큼 옥체(?)가 상할까 안전히 모셔야 한다는 명목 하에 데려온 경호인력들의 형색은 마치 나 밤일하는 사람이요라고 자랑하는 것 같았다.
“네가 뭘 몰라서 그런데... 기선을 제압 하는 게 중요한 거야... 먼진 몰라도 분명히 큰일을 하시고 돌아오는 형님인데 그에 맞게 환영식 차원으로 급이 되는 애들을 데려와야 하는거야.”
이곳에서 따로 기선을 제압해야 할 일들이 있겠느냐만은 저렇게 확고히 말하는 춘배의 말에 더 이상 뭐라 대답 할 수가 없었다.
‘춘배녀석...’
그렇게 시간이 흘러 드디어 인천공항에 도착해 입국수속을 마치고 기분 좋게 들어섰던 이만석은 한국에 돌아온 감회에 젖기도 전에 춘배와 일당들을 보곤 웃음을 지었다.
그저 자신이 타고 갈 차 한 대만 대기시켜 놓으면 된다고 했는데 이렇게 마중 온 것이다.
그것도 덩치도 산만한 놈이 꽃다발을 들고.
“무사히 귀국 하신 것에 축하드리우. 형님!”
“축하드립니다!”
이만석이 입가에 웃음을 지은채 반갑게 다가와 앞에 서자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우렁찬 목소리로 인사를 올리며 꽃다발을 내미는 춘배에 따라 그 뒤에 있던 사내들까지 단체로 쩌렁하게 합창하는 순간 입가에 짓고 있던 반가운 웃음은 어느새 사라지고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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