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9화 〉 89화 거래가 아닌 고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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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더슨이 사라진 것을 알아차리게 된 것은 그를 깨우기 위해 방안으로 들어갔을 때였다.
7시에 맞춰 깨워달라고 했던 그의 부탁이 있어 손목시계를 확인하고 노크를 하며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니 고요한 적막감만이 감돌았다.
침대에 곤히 잠들어 있어야 할 그의 모습이 어디에도 보이질 않자 잠시 당황했지만 곧이어 비상을 알리고 곧장 중앙 통제실로 연락을 취했다.
갑자기 사진 엔더슨을 찾기 위해 순식간에 비상체재로 돌입하고 수시로 연락이 오고갔다.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을 유추하고 납치 되었을 수도 있다는 가정 하에 방법을 동원하여 찾아 나서게 되었는데 용의 선상에 오른 인물들 중에 ‘안나’또한 포함되어 있었다.
열려 있다면 어떤 가정이라도 넣고 생각하고 행동을 해야 하는 게 요원들의 자세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숙소 주변을 교대로 지키고 있는 요원들의 시선을 피해서 그만을 데리고 사라진 것이 이해 할 수가 없는 일이었는데, 대기하고 있던 인원들 까지 포함해서 모두가 쥐새끼하나 지나가는 것 까지 감시하기 위해 철저한 보안을 뚫고 데려갔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상황이었다.
갑작스러운 엔더슨의 실종에 당혹스러움에 빠져있는 때에 엔더슨의 보좌역을 맡고 있던 한스는 이 소식을 바로 알려야 하는지 고민을 했다.
30대 중반의 중후한 인상의 그는 말수가 적은 편으로 들어오는 정보들을 바탕으로 분석하는 능력과 정황을 파악하는 능력이 뛰어나 엔더슨이 보좌역으로 데리고 있었지만, 지휘와 통제를 두고 책임자의 자리에서 일을 하기보다는 정보를 걸러내고 더 나을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하는 쪽이어서 누굴 통솔하기보다 보좌역 역할을 수행했던 것이다.
하지만 엔더슨이 그를 보좌역으로 데리고 있었던 것은 그의 능력들 보다는 말수가 적고 시킨 일에만 긴말 없이 곧잘 따르는 편이라 옆에 두기 괜찮아서였다.
보좌역이면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그만큼만 하면 된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고 한스는 수동적인 자세로 엔더슨과 부딪치는 일 없이 그동안 따라갔던 것이다.
하지만 엔더슨은 실종되었고 이제 그가 없는 빈자리에서 결정을 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되어 고민에 빠진 것이다.
사실 이집트 쪽을 책임지고 있던 그가 실종 되었기에 곧장 체계에 따라 연락을 취하는 것이 맞는 것이겠지만 마치 안개에 뿌옇게 가려져 있는 것 마냥 뭔가를 놓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그를 고민하게 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의 생각은 길어지지 않았고 엔더슨의 실종 소식을 알리는 것으로 바로 잡았다.
하루가 지나지 않은 상태이지만 매뉴얼과 체계에 맞춰 행하는 것이 맞을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그게 지금까지 한스라는 남자가 살아왔던 방식이고 별 탈 없이 조용히 이 자리에 까지 오개 만든 그의 인생관이기도 했다.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것이 세상이고 삶인 것을... 이것도 흘러가는 인생사 중에 한 장이 아니겠소?”
이제 60대 중반이 되어가는 알리아마 칸죠는 제법 흰수염이 보이는 수북한 수염에 큰 눈의 그을린 피부의 푸짐한 체격을 하고 있었는데 무슬림 전통복장에 터빈을 둘러쓰고 있는 전형적인 아랍인이었다.
그가 바로 무슬림국민당의 대표이자 지도부를 이끌고 있는 실질적인 핵심인물이기도 한 것이다.
이슬람 원리주의자이기도 한 그는 무바라크 정권의 몰락하는데 공을 세웠던 인물들 중에 한 명이며 당을 통합하고 개혁을 통해 총선에 승리로 이끈 인물이기도 했다.
거기다 투랍 대통령의 당선에 실질적인 역할을 하기도 했던 그였지만 지금에 상황을 보자면 그의 말대로 세상의 앞은 한 치도 알 수 없는 것인 듯 했다.
누가 알리아마 칸죠가 투랍 대통령과 척을 질 것이라 생각했으며 다른 노선을 탈 것이라 생각을 했겠는가.
투랍 대통령을 당선시키기 위해 적극 지원유세는 물론 한 발 앞서 판을 짜고 뛰어들었던 사람도 그였으니 말 그대로 인생사는 모를 일이었다.
“무바라크 정권이 무너지고 역대 최고치의 지지율 속에 입성해 여파가 큰 것이 사실이니 당 차원에서도 손을 쓸 때가 된 것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말을 받는 50대 중반의 말숙 한 차림의 카무트는 당 최고위원이자 한때 원리주의를 따르기도 했던 사람으로 지금은 아니지만 여전히 알리아마 칸죠와 함께 그가 깐 노선을 바탕으로 선두에 섰었던 핵심인물들 중에 한 명이기도 한 사람이다.
그 말고도 당 핵심 지도부와 원내대표까지 착석한 이 자리는 발표문이 있고 난 후에 논의를 위한 자리를 가지는 것인데, 그 중심 내용은 사실 당 차원의 정책논의와는 거리가 좀 멀었다.
투랍 대통령을 둘러싼 진실규명과 아사드 치안국장의 순직에 숨어 있는 의문들은 물론 주요 언론사들에 대한 정부의 대응과 야당들과의 대화를 통한 미래대책까지 발표문이 몰고 온 파장은 적지 않았다.
그런 발 빠른 대처와 발표문이 있기까지 그 중심엔 당 지도부가 있었고 중심축인 알리아마 칸죠 무슬림국민당 대표가 있었다.
이건 야당들 쪽에서도 전혀 정보를 접하거나 알지 못한 사안들로 그쪽에서도 발표문을 들고 비상대책 회의를 가지거나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는 입장이었다.
그중에 제일 충격을 받은 것은 국민들도, 그리고 야당들도 아닌 투랍 대통령 그 당사자일 것은 당연한 사실이다.
“대통령께서 국민들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 한 것도 있지만 거기에 대한 대처도 사실 좋지가 못했습니다.”
카무트가 투랍 대통령을 질책하고 나서자 알리아마 칸죠 당 대표가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맞는 말이요. 모하메드의 건도 그렇고 너무 그들에게 끌려간 것 또한 문제라고 봅니다.”
"CIA라고해서 자신의 자리를 완전히 보장해 주는 것도 아닌데 너무 그들을 의지한 겁니다.“
역시나 무슬림 전통 복장의 차림에 당 지도부이자 정책 자문역을 도맡고 있는 탄 라이모또한 말을 거들고 나섰다.
그들의 이야기는 주로 투랍 정부의 불안정한 시국에 대한 대처능력과 CIA와의 관계, 그리고 희생된 모하메드 국장에 대한 안타까움과 그 책임을 다시 투랍 대통령에 대한 질타로 이어졌다.
하지만 불과 한 달 전까지만 해도, 아니, 삼주 전까지만 해도 이들은 이렇게 투랍 대통령을 질타하거나 정부의 전략과 정책실패를 비난하지 않았다.
반대로 당 차원에서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갈 것인지를 두고 논의를 가졌고 방향 또한 정부 중심으로 정국 안정을 도모한다는 방향도 제시한 것을 고려하면 너무도 어처구니없는 대화들이 아닐 수 없었다.
이들이 이렇게 여당의 위치에서 정부에 들을 돌리고, 투랍 대통령을 질타하는 대에는 사실 그들의 기득권과 생존과도 직결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들이 이렇게 변한 대에는 사실 이만석이 행한 이들이 그 원인이었는데 그들이 그동안 저질렀던 비리들이나 증거물을 확보하고 녹취록까지 따로 만드는 등 귀찮은 일일 수도 있지만 일일이 꼼꼼하게 챙겼던 것이다.
메모리즈를 통해 그들의 비리를 캐내고 그것을 바탕으로 획득한 증거물이나 진술들은 아주 크게 작용하였다.
자신들도 모르게 술술 불게 된 진술들을 들었을 땐 잠시 동안 패닉에 빠졌었고 아직도 잊을 수 없는 그 끔찍한 고통이 수반된 고통은 그들을 지옥의 나락으로 밀어 넣는 상황을 만들었던 것이다.
지금까지의 삶 중에서 예배를 올리며 마음속으로 찾았던 ‘알라 신’의 세월보다 고통 속에 허우적거리며 마음속으로 부르짖었던 그 순간이 가장 컷을 정도였다.
절대 현실에선 이루어 질 수 없는 일들이 그들을 덮쳐왔을 때, 그들은 현생의 지옥을 맛보았다.
다행이 이 자리에 올라서면서 살아온 노하우와 지혜가 그들을 도왔던 것인지 어떤 식으로 움직이고 대응을 해야 하는지 깨달았다.
거기서 얻을 수 있는 이익을 손익계산 하였고 마음을 굳혔던 것이다.
주요언론사들마저 그에게 제갈이 물린 마당에 자신들의 치부가 하나도 빠짐없이 낱낱이 파헤쳐져 기사로 긴급속보마냥 까발려 지는 건 죽어도 싫었고 기득권을 내려놓는 것은 물론이고 다시 한 번 미칠 듯 한 고통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건 더더욱 싫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누구에게 붙어야 하는지, 이젠 어떻게 행동해야 살아남고 기회를 잡을 수 있는지 알게 된 마당에 더 이상 망설임이란 있을 수가 없는 순간 이기도 했다.
오늘의 적이 내일의 동료가 될 수도 있고, 이해타산에 얽혀 물고 물어뜯는 곳이 정치판인데 자신 들의 기득권과 권력, 그리고 직위가 보장 된다면 고쳐먹을 수 있는 것이다.
더러운 일이지만 그게 현실이고 강자만이 살아남는 양육강식의 세계인 것이다.
이만석은 채찍으로 길들이고 기력이 빠진 그들에게 보충 할 수 있도록 달콤한 꿀이 발라진 당근으로 그들을 유혹했다.
방법이 없어 먹기 위해 받아든 당근이라 할 수 있지만 어쩌면 이 불안정한 정국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확실한 카드가 그들 앞에 나타난 것이나 마찬가지여서 아이러니한 일이기도 했다.
“국민들이 분노하고 타흐리르 광장으로 모여드는 시민들이 늘어나도 결단을 내리지 않는다면 결국엔 우리가 나서야겠지요...”
“당연한 말씀입니다.”
“옳습니다.”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하는 당 지도부들은 물론이고 원내대표까지 모두의 시선이 당 대표인이자 이들의 수장인 알리아마 칸죠에게 모였다.
“그 방법 밖에 없다면 실행해야지...”
작게 진중한 목소리로 말하는 그의 목소리엔 힘이 있었다.
알리아마 칸죠가 말한 방법 그것은 바로 ‘탄핵소추안’이었다.
“이게 어떻게 돌아가는 상황인지 나에게 설명 좀 해주겠나?”
의자 등받이에 깊숙이 등을 기대고 앉아 있는 투랍 대통령의 목소리는 크지도, 작지도 않았다.
무하마드는 어찌 하지 못하고 그저 자세를 바로하며 그 자리를 지키고 서있을 뿐이었다.
현 상황에서 제일 속이 타들어가는 인물을 꼽으라면 당연 1순위는 당사자인 투랍 대통령일 것이었다.
타흐리르 광장을 몰려든 시위대의 크기는 더 커져만 갔고 주요언론사들을 통해 나온 기사들로 인해 국민들의 질타와 비난도 날로 높아져만 가는 상황이었다.
거기다 한 발 더 나아가 든든한 우군이라 생각했던 집권여당인 무슬림국민당은 대변인을 통해 자신의 잘 못을 지적하고 오히려 논란의 불씨를 키워 불난 집에 기름을 끼얹는 격으로 자신의 뒤통수를 쳐버리니 말 그대로 기운이 쫙 빠지면서 머리가 멍해졌다.
그 발표문이 있고난 후에 어찌 된 영문인지 연락을 취해 알아보려 해도 어쩔 수가 없었다거나 죄송하다는 말만 반복할 뿐 달래도 보고 역정을 내보아도 똑같았다.
마치 이집트라는 나라 잔체가 합심하여 자신의 숨통을 조이는 것 같은 형국이라 자신이 대통령이 맞는가에 회의감도 들 정도였다.
“엔더슨... 그 친구가 왜 연락이 안 되는지 알아보았나?”
“그것이...”
“말 해보게.”
말하기 꺼려하는 듯 보이는 행태에 눈살을 찌푸린 투랍 대통령의 인상에 어두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여기에 없습니다.”
“그게 무슨 소린가.”
잠시 주저하는 듯 하던 무하마드가 다시 입을 열었다.
“사라졌다고 합니다..”
“사라져?”
자신이 잘 못 들은 것인가 싶어 다시 질문을 던진 투랍 대통령에게 무하마드가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그렇습니다. 현재로썬 그가 어디에 있는지 알지 못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납치되었을 지도 모른다는 얘기도...”
“그럴 리 없다!!”
순간 투랍 대통령의 입에서 커다란 언성이 터져 나왔다.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는가?! 사라지다니?! 일을 이지경으로 만들어놓고 혼자 어디로 사라진단 말인가!”
눈의 흰자까지 충혈이 되어 언성을 높이는 투랍 대통령은 정말로 화가 많이난 듯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이 모든 일의 원흉이 모하메드 국장의 피살부터 일을 틀어버린 엔더슨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자기가 맡은 일만 잘 했다면, 아니 책임을 졌다면 일이 이렇게 되지도 않았을 것이고 자신이 이런 상황에 처하지도 않았을 것이라는 게 투랍 대통령의 생각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연락이 안 되더니 이젠 엔더슨이 사라졌다고 말을 한다.
“그놈이 분명히 내 뺀 것이 분명하다. 납치되었다는 그 얘기도 그 쪽에서 퍼트린 것이 분명해 상황이 여의치 않자 어디론가 빼 간 것이 분명하다. 책임자인 그놈이 일에 얽매여 잡히면 아주 큰 사단이 벌어질 것이 뻔 하니 빼간 것이 분명해...!”
그 쪽에 비선을 통해 전화를 걸어 책임을 물은 지 얼마나 되었다고 그를 아무 소리 없이 타국으로 빼갔단 말인가.
분명히 돌아가는 상황을 보고 좋지가 않으니 발을 뺀 것이 분명하다는 게 투랍 대통령의 생각이었다.
“이 미국 놈들... 내 이놈들을 믿는 게 아니었다......!”
모든 것이 그에게 절망적인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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