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5화 〉 85화 거래가 아닌 고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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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크게 뜨고 자신을 바라보는 아사드의 시선에 이만석은 걸음을 옮겨 다가가 목을 잡고 그대로 들어올렸다.
90kg가 넘는 거구를 한 손으로 목을 잡고 들어 올리는 괴력은 분명히 놀라운 모습이지만 그 보다는 아까와는 정 반대로 숨통이 막혀버린 아사드는 바동거리며 어떻게 해서든 이만석의 손에서 벗어내려 애썼다.
하지만 아무리 팔을 떨치려 양손을 휘두르고 반항해 보려해도 전혀 꿈쩍도 하지 않아 미칠 노릇이었다.
“버러지를 바라보듯이 거만한 시선으로 저들을 내려다보니 자신이 뭐라도 된 것 같던가?”
“커억!”
“치안국장이라는 지위가 그래도 된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심어주었나?”
평온한 목소리로 질문을 던지는 이만석의 모습은 이질적이기까지 했다.
얼굴이 붉어지고 숨도 하나 제대로 쉬지 못 하는 상황에서 바동거리고 있는데 어떻게 대답을 할 수 있단 말인가.
“네놈이 어찌 생각하든 나야 상관없긴 하지만.”
그리곤 그대로 옆으로 던져버리는 이만석이었다.
우당탕!
의자와 부딪치며 요란한 소리를 내며 넘어진 아사드가 고통스러워하며 숨을 격하게 내쉬었다.
입에선 침이 흘러내렸고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가 내쉬며 호흡을 골랐다.
“누, 누구의 사주를 받고 이런 일을 하는 거지?”
목을 쓰다듬으며 이만석을 노려보면서 내뱉은 말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아사드는 이 사내가 어떻게 소리 소문 없이 이 안으로 들어왔는지에 대한 의구심이 들었다.
“어떻게 이안에 들어온 거냐? 배치되어 있는 경찰들의 시선을 피하지 못 할 것인데... 그보다 이런 일을 벌이고도 네놈이 무사할 것 같으냐?!”
다른 누구도 아닌 치안국장을 맡고 있는 자신을 건드렸다.
치안국장을 폭행한 사건으로 아주 큰 일 임은 물론이거니와 평생 감옥에서 죄인으로 썩게 만들거나 처형을 시킬 수도 있었다.
또각 또각...!
대리석 바닥과 부딪치며 울리는 구두소리가 고막을 간질이며 천천히 걸음을 옮겨 다가온 이만석이 발로 가슴을 짓눌렀다.
“이, 이게 뭐하는... 아악!”
굴욕적인 처사에 분노를 표출하려던 아사드는 가슴에서 느껴지는 강한 통증에 비명을 내뱉었다.
“네가 짓거리는 헛소리를 들어줄 생각은 없으니 이걸로 끝내지.”
“아, 안돼...!”
끝낸다는 말이 무엇인지 직감한 아사드의 안색이 파랗게 질렸다.
머릿속으로는 치안국장인 자신을 죽일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몸에서 느껴지는 공포심은 전혀 그렇지가 않았다.
그에 응답하듯 가슴을 강하게 짓누르던 발을 때어낸 이만석이 망설이지 않고 아사드의 목을 한 번에 끊어 찼다.
빠각!
순식간에 목이 옆으로 꺾이며 무엇인가 부러지는 소리가 들리더니 그대로 아사드의 두 눈에서 생기가 사라져갔다.
“너의 운명이라 생각해라.”
잠시 동안 아사드를 바라보던 이만석은 그의 몸에 묻어 있는 흔적들을 없애버리곤 그대로 그 자리에서 모습을 감추었다.
“아사드가 죽어?”
눈살을 찌푸린 엔더슨은 의문을 표하며 바라보았다.
“목뼈가 부러진 체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조사는 벌이고 있다고 하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복도의 감시카메라는 물론이고 어디에도 누군가의 침입흔적이 발견되지 않았다 합니다.”
“그럼 유령이라도 나타나 그를 죽이고 사라졌다는 말인가? 무능한 놈들이군.”
아사드의 죽음도 놀라운 일이긴 하지만 어디에도 그를 죽이기 위해 침입한 이의 흔적이 하나도 발견되지 않았다는 말에 한 편으론 어이가 없기도 했다.
“아직 조사를 더 한다는 방침이지만 이일에 대해선 마무리 되는대로 대통령이 직접 공식발표를 한다고 합니다.”
“그렇겠지... 모하메드에 이어 치안국장인 아사드까지 죽임을 당했으니. 그쪽에겐 슬픈 일이긴한데... 언론을 통해 이용을 한다면 이득을 볼 수도 있겠지. 여러 소문이 나도는 이런 때엔 특히... 하지만 보통 심각한 일이 아니군.”
아사드의 죽음으로 인해 그동안 외신에서 다루던 기사를 잘 이용만 하면 반박 할 수 있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이쪽으로 유리하게 여론을 이끌 수도 있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하지만 한 편으론 아사드를 죽일 정도의 세력이나 인물에 대해선 그로서도 심각하게 받아드리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서민준에 대해선 어떻게 됐지?”
호텔로 잠입해 들어갔다고 소리 소문 없이 모습을 감춘 요원을 떠올린 엔더슨이 그에 대한 입을 열자 그동안 알아 본 것에 대해서 말하기 시작했다.
“한국에서의 그의 행적을 살펴보았는데 역시 특별한 것은 없었습니다. 다만... 이상한 점이 하나 발견되긴 했는데...”
“이상한 점?”
의문을 표하는 엔더슨에게 양해를 구한 남자가 걸음을 옮겨 하나의 자료를 들고와 넘겨주었다.
받아든 엔더슨은 그에 대해 하나하나 넘겨보며 읽고는 이채를 띠었다.
“확실히 이상하군... 이 두 사람이 같은 사람일수도 있다 그 소린가?”
“단정 지을 수는 없지만 생긴 것이나 이름이 이렇게 같을 수는 없다고 보기에 그에 대해 좀 더 알아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음...”
다시 첫 장으로 넘어와 두 사람의 인상착의에 대한 것을 다시 읽어본 엔더슨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두 사람이 같은 사람이라고 해도 놀랍고... 아니라고 해도 믿을 수가 없는 애기들이야...”
엔더슨이 들고 있는 자료엔 한국에서 일어난 조직세계에 대한 흥미로운 얘기들이 적혀 있었다.
거기서 단신으로 나타나 당당히 제패하다시피 세 조직을 뒤흔든 한 사내의 일대기가 간략하게 적혀 있었다.
“무슨 일 생기거든 곧장 연락해.”
“아겠습니다.”
밤11시가 넘어서 대통령궁을 빠져나가는 알 라이마라는 작게 숨을 내쉬었다.
요즘 투랍 대통령의 심기가 좋지 않은 상황에 아사드의 사망소식은 큰 충격을 안겨주기에 충분했다.
그 때문에 경호 인력을 더 많이 배치하고 이중 삼중으로 보안을 더 철저하게 바뀌게 되었다.
그에 대한 총 책임을 맡고 있는 경호실장 알 라이마라는 대통령의 최 측근이자 외가 쪽의 사람이기도 했다.
그렇게 대통령궁을 나선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그는 폰을 꺼내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곧이어 들려오는 목소리에 알 라이마라는 작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만나도록 하겠소.”
[잘 생각 한 겁니다.]
“약속장소는...”
[제가 그 쪽으로 찾아가도록 하죠.]
“찾아온다니...?”
하지만 그것으로 끝이었다.
통화가 끊긴 소리만이 작게 이어서 들려올 뿐이었고 그에 알 라이마라는 눈살을 찌푸릴 뿐이었다.
‘목소리로 보아 상당히 젊어 보이는데... 거만한 것인가... 오만한 자인가.’
집으로 돌아가는 그의 가슴은 상당히 답답하기만 했다.
“차한 잔 내어드려요?”
그렇게 자택에 도착한 알 라이마라는 옷을 갈아입고 샤워를 한 후 아내가 건네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신의 개인 집무실에 들어섰다.
창밖으로 들어오는 거리 풍경과 네온사인에 잠시동안 바라보다 조심스럽게 차 한잔을 탁자에 놔두고 물러가는 아내에게 돌아보지 않고 고맙다는 말을 내뱉은 후 조금 더 그렇게 창밖을 바라보았다.
‘그 자는 정말로 아사드를 없애버렸다. 나라고 그렇게 되지 말라는 법이 없는 상황에선 이게 최선이라 할 수 있을까.’
처음엔 헛소리인줄만 알았다.
하지만 그자는 정말로 아사드의 목숨을 끊어버렸고 정말로 어디에도 흔적을 남기지 않았다.
그저 목이 부러져 죽었다는 것 밖에 현재로썬 밝혀낸 것이 없기 때문이다.
“하아...”
작은 한 숨을 내쉬며 몸을 돌린 알 라이마라는 순간 그대로 몸이 경직되고 말았다.
“생각이 길면 좋을 게 없는 겁니다.”
언제, 어디서 나타난 것인지 다리를 꼬우고 소파에 앉아 있는 20대로 보이는 호남형의 사내가 앉아 있었다.
유창한 아랍어로 말하는 그는 척 봐도 동양인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다, 당신이...?”
“일단 앉으시죠.”
당황하며 던지는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반대로 자리를 권하는 어정쩡한 상황에서 알 라이마라는 마른침을 삼키며 걸음을 옮겨 몸을 앉혔다.
“나에게 전화를 한 것은 잘한 일입니다. 그 한 번으로 당신은 아사드와 같은 길을 걷지 않아도 된 것이니.”
사내의 말에 순간 등골이 오싹해진 알 라이마라였지만 그 보다도 이 현실과 동떨어져 보이는 이 여유로운 미소를 짓고 있는 사내가 누군지 궁금하기만 했다.
“당신은 도대체 누구요?”
조금 전과 마찬가지로 떨리는 음성으로 질문을 던지는 알 라이마라였지만 정말로 이 사내의 정체에 대해서 궁금하기만 했다.
“한국에서 온 기자로만 해두죠.”
“기자라고?”
기자라는 소리에 믿을 수 없다는 듯 중얼거리는 그에게 더 이상 대답을 하지 않고 사내 이만석이 다른 말을 꺼냈다.
“당신이 해줘야 할 일은 어려운 게 아닙니다. 그저 대통령궁에 대해서 상황에 맞춰 별다른 이상한 행동을 벌일 수 없게 잘 통제만 해주면 되니까.”
“......”
막상 투랍 대통령의 등을 돌리는 얘기가 흘러나오자 알 라이마라는 뭐라 입을 열수가 없었다.
“이 나라가 어지러운 상황에 처하지 않게 일조한다고 생각하십시오. 그리고 그것 밖에 당신이 갈 길이 없으니까.”
당연하다는 듯 말하는 이만석의 말에 알 라이마라는 그저 침묵을 지킬 뿐이었다.
“쉽게.. 물러날 분이 아니요.”
아마도 투랍 대통령에 대해서 하는 말이리라.
“그건 당신 생각입니다. 내가 보기엔 그자는 이미 대통령자리에서 물러난 것이나 같으니까.”
어떻게 그리 장담하느냐는 말이 목구멍 밖으로 나오려다 다시 들어가는 알 라이마라였다.
“아사드의 목숨을 끊은 자에 대한 흔적이 왜 없을 것 같습니까.”
“그게 무슨...?”
갑자기 뜬금없는 소리에 알 라이마라가 의문을 표했다.
“내가 여기에 있는 것 또한 당신 말고는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을 것 같은데 그에 대해선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곧이어 이만석이 하는 말을 들은 알 라이마라는 그제야 그가 무엇을 말함인지 대번에 알 수가 있었다.
‘그러고 보니 이 자가 어떻게 이곳에 들어오게 된 거지?’
아무리 대통령궁에 비하면 허술하다고 하지만 아사드의 일이 있고 난 후부터는 나름대로 신경을 쓰고 있는 그였다.
거기다 경호실장을 맡고 있는 그여서 침입경로까지 일일이 다 찾아내고 파악하여 방비를 해둔 상태였다.
순간 솜털이 곤두서며 등골이 서늘해지면서 식은땀이 흐르는 기분을 그를 엄습했다.
“당신은 아사드가 아니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알 라이마라는 자신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이 자구나...’
그리고 직감했다.
아사드의 목뼈를 부러뜨린 인물이 바로 눈앞에 있는 이 동양인 청년이라는 것을.
알 라이마라와의 짧은 만남을 뒤로하고 호텔로 돌아온 이만석은 편안 마음으로 욕실에 들어가 뜨거운 물에서 피로를 풀었다.
사실 큰 피로를 느껴서 탕 속에 들어간 것은 아니지만 이렇게 여유로인 시간을 가지는 것을 말 그대로 만끽하는 것이다.
30분 정도 탕욕을 즐기고 나와 간단히 샤워를 끝낸 후 몸을 닦고 팬티 하나만 걸치고 문을 열고 나온 이만석은 그대로 쓴웃음을 지었다.
“이건 뭐... 관광지도 아니고 여러 손님이 찾아오는데...?”
수건으로 머리를 닦으며 바라보는 곳엔 한 명의 여인이 벽에 등을 기댄 채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샤워는 끝인가.”
팔장을 낀 채 등을 기대고 있던 여인이 감정의 기복이 섞여 있지 않은 목소리로 이만석에게 말했다.
“뭐... 덕분에.”
갑자기 나타난 불청객에 할 소리는 아니지만 이만석은 그렇게 말하곤 트렁크 팬티 차림으로 샴페인 한 병과 컵 하나를 들고 꺼내들고는 걸음을 옮겨 중앙 원형 탁자로 이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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