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2화 〉 82화 세력
* * *
수갑이 채워진 채 묵묵히 걸음을 옮기는 안나의 양 옆엔 두 사람이 팔을 붙든 상태로 나란히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그들의 손엔 권총이 쥐어져 있었고 정확히 안나를 향하고 있었다.
그 뿐이 아니라 언제 붙은 것인지 또 한 명의 사내가 뒤에서 안나에게 총을 겨누고 따르고 있었다.
그렇게 그들이 안나를 데리고 향한 곳은 건물의 지하실이었다.
뒤에서 따라오던 남자가 눈치를 주자 사내들이 잡고 있던 팔을 풀었다.
거기에 맞춰 손으로 거칠게 벽 쪽으로 안나의 등을 떠민 지시를 내렸던 사내가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이걸로 너의 생도 끝이구만...”
강한 힘으로 떠밀어서 인지 벽에 살짝 부딪친 안나가 천천히 몸을 돌려 자신의 이마에 총구를 겨누고 있는 이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없나.”
“......”
183정도의 훤칠한 키의 30대 초반의 남자.
검정색의 깔끔한 정장차림의 그의 얼굴을 바라보는 안나는 여전히 아무런 말없이 바라보기만 했다.
할 말이 없는 것일까. 아니면 이대로 삶을 끝내주기를 기다리는 것일까.
안나는 전혀 표정변화 없이 평소와 다름 없는 모습으로 이마에 총구를 겨누고 있는 남자의 두 눈을 직시했다.
“안나...”
그 모습에 작게 중얼거린 남자의 검지손가락에 힘이 들어가며 방아쇠가 천천히 당겨지기 시작했다.
이대로 조금만 더 힘이 들어가면 작은 소리와 함께 안나의 이마엔 구멍이 뚫리며 뇌수화 함께 피를 쏟으면서 바닥에 허물어질 것이었다.
하지만 어떻게 된 이유인지 아주 느린 속도로 서서히 방아쇠를 당기던 손가락에 힘이 풀렸다.
퍼억!
그리곤 앞으로 걸음을 옮겨 다가간 남자가 그 상태로 안나의 복부를 걷어 차버렸다.
순식간에 벽에 등이 부딪친 안나가 바닥에 쓰러지자 사내가 여전히 총구를 겨눈 채 입을 열었다.
“너는 마지막까지 알량한 자존심을 지킬 셈이냐...”
발길에 걷어 차여 바닥에 쓰러졌던 안나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녀의 표정은 여전히 변한 것 없이 차가웠고 그 모습에 사내의 입이 일그러지며 총기를 쥐고 있던 손을 그대로 휘둘러 안나의 얼굴을 가격했다.
파악!
힘이 제대로 실려 있었던 것인지 고개가 옆으로 돌아가며 안나의 몸이 잠시 휘청거렸다.
다시 고개를 돌린 안나의 입술이 찢어진 것인지 붉은 선혈이 턱으로 흘러내렸다.
“그 눈... 난 그 눈이 정말 마음에 들지 않아.”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리는 사내의 음성은 상당한 분노를 가지고 있었다.
가슴이 시리도록 차가운 저 눈빛이 마치 자신을 무시하는 것처럼 느껴져서 였을까.
그의 분노는 적지 않아 보였고 양 옆에 서서 총을 겨누고 있는 이들은 아무런 말없이 그 상황을 주시하기만 했다.
“뭘 바라는 거지.”
그때 안나의 입이 벌어지며 작은 음성이 흘러나왔다.
“뭐...?”
안나의 목소리가 작아서 일까. 아니면 갑작스럽게 흘러나온 말이어서 일까.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반문을 한 사내가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뭘 바라고 이런 멍청한 짓거리를 하는 거지.”
“네년...”
“죽여라. 날 죽이려고 이곳에 끌고 오지 않았나. 멍청하게 헛 짓거리 하지 말고 기회가 왔을 때 죽이란 말이다.”
퍽!
순간 다시금 사내의 손이 휘둘러졌고 안나의 얼굴이 옆으로 돌아갔다.
“네년이 죽고 사는 것은 네 손안에 달려있다. 네년이 헛소리를 하지 않아도 내 마음먹기에 따라 지금 바로 시체가 되어 나뒹굴 수 있다는 말이야.”
퍼억!
사내의 발이 순식간에 날아들어 안나의 복부를 또 다시 강타했다.
벽에 부딪쳐 바닥에 쓰러진 안나를 내려다보며 사내가 뒤로 한 걸음 물러서 총구를 겨누었다.
“오냐... 지금 내 손으로 끝장을 내주마.”
바닥에 쓰러진 채 자신을 올려다보는 안나의 머리를 겨누고 사내가 다시 손가락에 힘을 실어갔다.
그 행동을 차가운 시선으로 똑바로 바라보던 안나의 입가에 한 순간에 미소가 맺혔다 사라졌다.
‘웃어?’
비록 짧은 순간이었지만 사내는 그것을 놓치지 않고 본 것인지 눈동자가 살짝 떨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자신도 모르게 손가락에 힘이 풀렸던 것을 인지한 사내가 다시 방아쇠를 당기기 위해 힘주려는 듯 보였지만 총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일어나라.”
“......”
침묵을 깨고 들려온 것은 그의 총구에서 소음기를 통해 쏘아지는 소리가 아닌 그의 목소리였다.
“이대로 안식을 주는 것은 네년에겐 축복이라는 생각이 들어.”
잘 못 본 것이라 생각했지만 웃음이라 의구심을 들게 했던 그것이 그의 마음에 제대로 불을 지폈다.
“시간을 끌었다간...”
“닥쳐.”
총을 쏘지 않고 일어나라고 한 말이 걸려서 일까.
우려가 섞인 말을 채 다 이어가지 못 하고 사내의 욕설이 침묵을 지켜야했다.
“문책이 떨어져도 내가 책임질 테니 조용히해.”
사내의 분노 때문일까. 아니면 그가 안나에게 향하는 원한을 알고 있는 것일까.
“알...겠습니다.”
더는 뭐라 하지 못 하고 뒤로 한 발 물러설 수 밖에 없었다.
그러는 사이 천천히 몸을 일으킨 안나가 똑바로 사내를 바라보았다.
“이년...!”
그 순간 사내의 손이 휘둘러져 다시금 안나의 얼굴을 강타했다.
고개가 옆으로 돌아가며 피가 튀어 바닥에 흩뿌려졌는데 아무래도 입술이 더 크게 찢어진 것 같았다.
그럼에도 작은 신음소리 하나 내뱉지 않은 안나가 다시 고개를 돌려 바라보는 순간 사내의 손이 다시 날아들었다.
다시 고개가 옆으로 돌아갈 것이라 생각했던 이들의 두 눈이 크게 떠졌고 순간 당황한 빛이 연력했다.
“악!”
“뭐야?!”
순식간에 날아드는 팔을 양손을 들어 손을 잡아 자신 쪽으로 끌어 당겨 발로 걷어차면서 옆으로 몸을 날리듯 쓰러지며 왼편의 사내의 눈에 신기에 가까운 솜씨로 침을 뱉어 멎춰버리곤 손을 잡으며 빼앗아든 총기로 옆구리를 스친 총알 한 방을 쏘았던 이의 이마에 구멍을 뚫어버렸다.
푸슛!
안나가 뱉은 침이 정확히 눈에 맞으며 당황했지만 금새 손으로 닦아내며 소리가 들려온 쪽으로 총을 쏘려 한 그보다 한 발 먼저 이마에 구멍이 뚫리며 그 또한 바닥에 몸을 뉘어야했다.
말은 길었지만 이 일이 벌어지기 까지 한 순간이었다.
배를 걷어차여 바닥에 나뒹굴었던 사내가 반쯤 몸을 일으켰을 땐 어느새 자신에게 총구를 겨누고 있는 안나를 볼 수가 있었다.
“마틴... 내가 말했잖아.”
여전히 차가운 눈빛으로 자신을 내려다보는 안나를 바라보는 마틴이라 불린 사내의 뺨이 떨렸다.
“네년...”
“기회가 왔을 때 죽이라고. 멍청한 짓거리 하지 말고.”
푸슛!
순간 자신에게 뭐라고 말을 하려는지 입을 벌렸던 마틴은 이미 죽어버린 두 사람을 따라 생을 마감해야 했다.
“......”
천천히 걸음을 옮긴 안나는 자신에게 수갑을 채웠던 이의 호주머니를 뒤져 열쇠를 꺼내 풀었다.
그리곤 다시 몸을 일으킨 안나는 손으로 입가에 흘러내리는 피를 한 번 닦아내고는 입을 벌린 채 죽어있는 마틴을 힐끔 바라보았다.
그녀는 알고 있었다. 마틴이 자신에게 어떤 감정을 가지고 있었는지. 왜 그토록 자신에게 분노하고 화를 내었었는지.
그가 그녀에게 내보였던 마음. 이곳 이집트에 얼마 전에 입국한 그는 일 핑계를 되었지만 그것뿐만이 아니라는 것을 그녀는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다시 시선을 똑바로 돌린 안나는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음......”
흰머리가 듬성듬성하게 보이는 60대 중반의 투랍 대통령이 등받이에 깊숙이 등을 기대며 작은 숨소리를 내뱉었다.
리모컨을 들어 천천히 채널을 돌리는 곳마다 같은 소식이었으며 주 내용들은 리자 아마사피 총리의 저택에 침입했던 이들에 대한 내용과 이집트 정보국을 맡고 있는 모하메드 피살 소식이었다.
특히 모하메드 국장이 피살당하는 장면엔 그를 경호하는 정보국 요원들과 교전을 벌이는 모습들이 그대로 cctv에 찍혀 있었는데 그들의 복장은 무장테러 단체의 모습과 일치했다.
기습을 벌이듯 그들을 급습한 이들은 순식간에 몸을 뺀다고 했지만 cctv를 생각 못 한 것인지 서둘러 내빼는 그 모습까지 그대로 찍혔던 것이다.
이 일이 방송에 타자마자 순식간에 이집트 정국은 충격에 휩싸였고 여기저기서 여러 말들이 쏟아져 나왔다.
특히 다음날 몸을 피신 했던 리자 아마사피가 인터뷰를 거부하며 안정을 취하는 모습을 보여 이목을 더욱더 끌기도 했다.
리자 아마사피 총리가 강단이 있는 인물이라고 해도 그런 일을 겪었으니 충격이 크지 않겠냐는 말이 흘러나왔지만 그 보단 이 충격적인 사태에 대한 국민들의 불안이 더 큰 것이었고 시간이 흐를수록 시위대들에게로 번저나갔다.
‘일은 잡혔지만 마음이 편치는 않으니...’
원래대로라면 싸늘하게 죽어 있어야 할 것은 모하메드 국장이 아니라 리자 아마사피여야 했지만 그는 여전히 살아 있었다.
그리고 반대로 시신으로 돌아온 것은 합동 작전을 벌였던 이는 모하메드 국장이었다.
이를 두고 엔더슨과 이미 말을 주고받았지만 그의 마음이 시간이 지나도 좋아질리는 없었다.
조금은 걸리긴 했지만 이일을 두고 방송을 통해 발설하지 않을 것이라는 엔더스의 말이 있었는데 리자 아마사피에게선 그의 말대로 아무런 말도 나오지 않았다.
그가 바랐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엔더슨은 제대로 알고 있다고 봐야했고 말 그대로 적중했던 것이다.
3시간 앞으로 다가온 대국민담화를 두고 투랍 대통령은 광장에서 시위를 벌이는 시위대들의 모습에서 시선이 때어지지 않았다.
특히 그들 중엔 소수였지만 극단주의자들을 상징하는 기를 불태우며 화형식을 벌이는 모습도 잡혔다.
“이미 내 손을 떠난 것을...”
지지율을 하락하고 국민들은 그에서 성토를 내뱉었다. 어떻게 무마하려 했지만 오히려 시위대들이 결성되어 광장을 장악했다.
정국은 불안정 했고 그의 지지율은 나날이 떨어져만 갔다.
그래서 그가 택했던 길은 무바라크 독재타도로 인해 약해졌던 군부를 끌어 들이는 것이었다.
자리에서 물러나지 않기 위해 벌였던 일. 이제 더 이상 물리고 싶어도 자신이 어떻게 막을수 있는 상황이 아닌 것이다.
“이런 모습을 보지 않기 바랐건만...”
경호원들을 배치하고 호텔에 투숙하여 안정을 취하고 있는 리자 아마사피는 극단주의자를 상징하는 기를 화형식에 처하며 소리를 지르는 이들을 보면서 슬픈 표정을 짓고 있었다.
“가슴이 아프십니까.”
가만히 뉴스를 바라보던 리자 아마사피가 고개를 돌려 이만석을 바라보았다.
“자네라면... 막을 수 있지 않나?”
“으음...”
“나를 구해준 그 능력이라면... 신비한 그 능력이라면 이 사태를 사전에 막을 수 있지 않나?”
마음만 먹으면 대통령도 암살 할 수 있다고 하였다.
처음엔 그 말을 믿지 않았지만 그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목격하고 난 후부터는 그게 거짓이 아니라는 것을 이제 받아드리고 있었다.
자리에서 일어난 리자 아마사피 총리가 무릎을 꿇었다.
“한 번만... 제발 한 번만 나서주게.”
“일어나십시오. 총리께서 함부로 무릎을 꿇으시면 안됩니다.”
“자네가 얼마나 대단한지 아네. 그러니 이렇게 부탁하네...”
설마하니 그런 일을 벌일 줄은 몰랐다. 아무리 자신을 암살하려 했기로서니 그렇게 대놓고 무장을 하고 저택을 침입하여 죽이려 한 것은 너무 큰 충격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뭐든지 다 할 테니... 이집트를 구해주게.”
“이집트를 구해달라니... 터무니 없는 소리를 하시는 군요.”
쓴웃음을 지은 이만석이 천천히 걸음을 옮겨 아마사피 총리의 곁으로 다가갔다.
“내가 어떻게 하면...”
“조급해하지 마시죠.”
아마사피의 말을 자른 이만석이 고개를 들어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리자 아마사피 총리의 어깨를 잡아 일으켜주었다.
“곧 당신이 바라는 대로 이루어 질 테니 기다리면 되는 겁니다.”
“기다리면 된다?”
“그렇습니다... 그러니 마음 편히 이 상황을 게임이라 생각하고 즐기십시오.”
입 고리를 말아 올린 채 묘한 웃음을 짓던 이만석이 천천히 몸을 돌려 다시 자리로 돌아갔다.
그 모습을 리자 아마사피는 아무런 말도 못하고 멍하니 바라보기만 했다.
“머저리 같은 놈 때문이 일이 귀찮아졌어.”
모니터를 바라보는 엔더슨의 미간에 주름이 잡혀있었다.
그는 불만스런 표정으로 뒤에 서서 이것저것 지시를 내리며 스크린과 모니터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아무리 그녀라고 해도 전국적으로 수배령이 내려지고 얼굴이 팔린 이상 꼬리는 잡히게 되어 있어.”
마틴을 포함한 안나를 끌고 갔던 요원 둘과 문을 지키고 있던 두 명에 이어 복도에 쓰러져 있던 세 명을 포함해 총 8명이 주검으로 발견되었다.
멀리가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에 서둘러 뒤를 쫒았지만 어디에도 안나의 모습은 찾을 수가 없었다.
‘말을 들어주는 게 아니었는데...’
마지막은 자신의 손으로 끝내게 해달라던 부탁. 상황을 보고 그리해 주겠다고 약속을 했고 그가 안나에게 가지는 원망이 얼마나 큰지 알고 있어 응해주었는데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