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4화 〉 74화 행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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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석은 한국을 떠나기 전 별다른 일 없이 순조롭게 시간을 보냈다.
강원도를 석권한 후에는 사실 더 이상 자신을 건드릴 조직이나 그런 세력들은 존재하지 않는 것도 이유이기는 했다.
조직세계에 몸담은 이들 중에서 이제 이만석에 대해서 모를 이들이 없을 것이었다.
일성회와 단독으로 소란을 일으키더니 삼합회와의 분쟁이 이어서 벌어졌고 야마구찌회가 무너지는 큰 사건도 연이어 벌어져 아주 큰 일이 연속으로 터진 격이었다.
거기서 멈추지 않고 처음 소란을 일으키며 이름을 알렸던 일성회의 후계자가 되는 충격적인 소식이 퍼지자마자 직접 나서서 강원도를 잡아 버리는 일까지 벌여 떠오르는 신성이라 해도 전혀 틀릴게 없는 상황이었다.
말 그대로 대세가 한 번에 기울어 벌이는 대사건이 벌어진 것이나 다름없는 일이었다.
이제 한국 내에서 더 이상 일성회를 넘볼 조직은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원래부터 제일 큰 조직이라 입지가 세었는데 이젠 그걸 넘어 굳건히 자리를 잡게 된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정인철 회장은 전 보다 수월하게 조직을 관리 할 수 있을 것이고 내부 분쟁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조마조마한 심정이었던 이들도 임원들이 별다른 반발을 하지 않고 지나가자 힘이 실리는 분위기였다.
“여러분들을 보는 건 처음이네요.”
자리를 잡고 앉은 차이링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먼저 침묵을 깨고 입을 열었는데, 그 때까지 모두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저... 한 가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뭐죠?”
똑바로 자신을 바라보는 차이링의 시선이 마른침을 삼킨 조영무가 여전히 조금 긴장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정말로 그 삼합회의 차이링이란 말입니까?”
“조금전에 소개했지 않아요?”
“그, 그렇긴 합니다만...”
자신을 차이링이라 소개한지 얼마나 지났다고 다시 이런 질문을 한 것이 조금 부끄러웠던 것인지 조영무가 무안한 듯 말을 더듬었다.
“그이를 통해 이미 얘기도 들었다고 알고 있는데... 아닌가요?”
차이링은 이곳에 오기 전에 이미 이만석이 두 어번 강원도를 들렀다가 온 것을 알고 있다.
그 사이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얘기도 하였다는 것이다.
“예... 맞습니다. 형님이 알려주고 갔었지요.”
그이가 이만석을 가리키는 것을 안 조영무가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말해서 그때 얘기를 들을 때도 놀랐지만 이렇게 직접보니 좀 믿기지가 않아서 말입니다. 삼합회의 지부장이었던 차이링이라는 것이... 또 실종 되었다고 들었는데 형님이 데리고 있었다고 하니 저희들 한 텐 놀라운 일이지요.”
“오늘은 그저 돌아가는 행태나 인사차 들린 것이니 어렵게 볼 거 없어요. 그리고 전 이제 삼합회의 지부장이 아니니까. 그것도 신경 쓸 일이 아니죠.”
“예...”
차이링의 옆에 앉아 있는 춘배는 이들의 이런 반응이 남일 같지가 않았다.
‘나도 처음 만났을 땐 이랬었지.’
그렇게 생각하며 앉아 있는데 느닷없이 굵은 목소리가 불쑥 튀어 나왔다.
“누님... 참으로 아름다우십니다.”
고개를 돌린 춘배는 코를 벌렁거리며 입가에 웃음을 짓고 있는 이원종이 눈에 들어왔다.
“이놈아... 갑자기 누님이라 부르면 어떡해?”
그때 이원종의 옆에 앉아 있던 안영만이 작은 목소리로 나무라듯 말했다.
“그이라고 하시는 거 보니 형님과 아주 보통 사이가 아니신데 그럼 누님이시지 뭐야? 틀린 말 한 거 아니지.”
“그렇다고 해도...”
“나무라지 말아요. 전 괜찮으니까.”
미소를 지으며 말한 차이링이 이원종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이름이 어떻게 되죠?”
“이원종입니다.”
차이링이 자신을 바라보며 이름을 묻자 이원종은 곧바로 자신을 소개하며 마치 힘을 과시하듯 가슴을 부풀렸다.
“여기 진영회의 핵심적인 주먹이라 할 수 있지요.”
“누님이라는 표현 나쁘지 않았어요. 갑작스럽긴 했지만 말이죠.”
그의 행동에 차이링 또한 가벼운 말로 말을 하는데 자연스럽게 주변에서 작은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조영무는 경직되었던 분위기가 순식간에 풀려가는 것을 보고 내심 차이링에대해서 감탄을 했다.
‘원종이의 갑작스러운 말을 이용해서 자연스럽게 편한 분위기로 가져가는구나...’
처음엔 이원종의 말처럼 아름다운 외모에 놀랐다면 이번엔 분위기를 자연스럽게 이끌어가는 차이링의 면모에 놀라고 있었다.
한 순간에 분위기를 바꾸는 건 쉬운 일도 아닐뿐더러 적절한 농으로 자기 쪽으로 끌어들이는 것은 더 어려운 일인 것이다.
앞으로 이만석을 대신해서 얼마동안 차이링과 함께하게 될 터인데 조영무는 걱정했던 마음이 시간이 지나면서 완전히 지워져버렸다.
한 가지 주제를 던지고 얘기를 하는 사이에 핵심을 찾아 말을 흘리는 그녀의 언변이 참으로 대단했기 때문이다.
문뜩 자신 또한 열을 내고 있다는 것을 자각한 조영무는 걱정하지 말라던 이만석의 말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형님은 참으로 대단하시구나.’
삼합회의 지부장이라 확실히 보통의 여자가 아니었다.
거기다 주변의 시선을 단 번에 사로잡을 빼어난 미모에 능력도 갖추었으니 콧대도 높을 것이었다.
그런 여자를 사로잡은 이만석이 남자로써 참으로 대단하게 느껴졌다.
지금 돌아가는 상황만 바도 그렇다.
실질적인 보스는 조영무였지만 회의의 중심은 차이링이 주도해 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에게서 흘러나오는 기품도 가볍지 않은 것이 그림같이 휘어진 눈매와 짧은 단발의 헤어스타일은 차가우면서도 세려된 이미지를 물씬 풍겼다.
삼합회의 지부장이었던 그녀의 모습으로 완전히 돌아간 것이다.
긴 생머리의 청순한 그녀도 아름다웠지만 여자로써 조직의 세계에서 일을 하려면 가벼워 보여선 안 된다는 게 그녀의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청순하고 가냘 퍼 보이는 것이 어쩌면 더 이만석에게 어필 할 수도 있겠지만 그녀의 성격 자체가 그렇지가 않았고 여장부의 기질이 다분해 원래의 스타일로 돌아갔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만석을 위해서도 자신이 제대로 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 차이링이었다.
그게 그녀가 사랑하는 남자를 위해 표현하는 자신의 방식인 것이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이만석이 한국을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한번 더 돌아보듯 사람들을 만났는데 그 중에는 윤정호 의원도 존재했다.
“자네의 능력이 어디까지인지 모르겠어.”
“열심히 하다 보니 따라 주는 거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싱긋 미소지으며 대답하는 이만석을 보며 윤정호 의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내일 떠나는 것인가?”
“그렇죠.”
“직항인가?”
“카슈켄트를 경유해서 카이로공항에 가는겁니다.”
“음...”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 윤정호 의원이 찻잔을 들어 한 모금 마셨다.
“처음 자네를 보았을 때와 지금의 자네를 생각하면 참으로 많이 달라졌어. 자리가 사람을 바꾼다고 하는데 자네는 상황이 사람을 바꾼 격이로군.”
“어쩌면 둘 다일수도 있죠.”
처음 이만석을 보았을 때는 조금 어벙해 보이면서도 순해보였는데 이제 그런 모습은 찾아 볼 수가 없다.
“김철중 그 친구가 자네를 위해서 손을 썼더구만.”
“도움을 좀 받긴 습니다.”
물론 전적으로 이만석이 시킨 일이었지만 그걸 알 턱이 없는 윤정호 의원은 그저 놀랍기만 할 뿐이다.
“아무튼 자네 덕분에 나도 꿈을 향해 한발 짝 더 나아갈 수 있게 되었어.”
다음대 대권을 꿈꾸는 그에게 있어 잠룡 중에 한 명이자 여권에서 자신에 이어 계파를 잡고 있는 김철중 의원은 넘어야 할 상대 중에 하나였다.
그런 그가 자신을 지지하는 의사를 전화를 통해 밝혀 왔으니 이건 아주 큰일이었다.
“고맙네.”
“고마울 것 없습니다. 특별히 제가 한 일이 없는데 고마울 게 있겠습니까.”
“거기서 힘든 일 생기면 말하게. 내가 도와 줄 수 있는 일이라면 힘을 쓸 테니까.”
“그렇게 하죠.”
“하란이는 자네가 간다는 걸 알고 있나?”
“전에 만났을 얘기 했습니다.”
“그런가... 거기 가서도 바쁘더라도 한 번씩은 하란이에게 전화를 해줘... 걔한텐 자네는 특별한 사람이니.”
윤정호 의원은 진정으로 이만석에게 고마움을 느끼고 있었다.
요즘 들어 하란이가 밝은 모습으로 돌아왔고 더 이상 엇나가지 않으면서 열정적으로 돌아왔기 때문이다.
하란이가 다시 이렇게 달라질 수 있었던 것이 다 이만석 덕분이라는 걸 알고 있는 윤정호 의원은 진심으로 고마워하고 있었다.
이만석에 대해서 하란이가 상처를 입을까봐 우려를 느끼기도 했지만 이젠 달라진 그녀의 태도나 행동에서 그런 우려도 이젠 지워냈다.
그에게 있어서 여러므로 이만석은 참으로 고마운 존재다.
간접적으로 만은 은혜를 지게 된 꼴이기도 했다.
“그리고... 늦었지만 일성회의 다음 대 회장으로 올라서게 된 것을 축하하네.”
윤정호 의원은 진심으로 이만석의 앞날에 대해 축하해 주었다.
이집트의 수도 카이로는 북아프리카의 문화 경제의 중심지는 물론 아랍권에서도 그런곳 중에 한 곳으로 꼽히는 곳이다.
현대와 과거가 한 대 어울려가는 카이로는 타흐리르 광장이 존재하는데 아랍의 봄이자 이집트 민주주의의 상징으로 자리하게 되었다.
타흐리르 관장은 카이로는 이집트 민주주의의 상징으로 관광명소로도 떠올랐는데 카이로 시내의 한 가운데에 위치한데다 전 세계의 이목 또한 그 때문에 집중도 되었었다.
광장의 동쪽으로는 알아흐마르 이슬람 지구가 존재하는데 이슬람의 옛 모습이 많이 살아 있는 이곳은 옛 모스크라 할 수 있는 유서가 깊은 건물들이 몰려있는 곳이기도 했다.
그리고 쇼핑의 거리인 하르브 거리 또한 이곳에 존재하고 광장의 북쪽으로 가면 이집트의 긴 역사를 엿 볼 수 있는 그 유명한 이집트 박물관을 볼 수가 있는데 파라오의 미라나 람세스 2세의 동상 등 유명한 역사의 유물을 이곳에서 만나 볼 수가 있는 것이다.
거기다 서쪽으로 자리해 있는 나일강은 아프리카의 젖줄이라고도 불리는 곳인데 이곳의 연안에 이름난 게지라 섬과 함께 로다 섬이 자리해 있다고 볼 수 있다.
그 유명한 피라미드나 스핑크스 또한 카이로 시내에서 13km정도의 거리에 자리해 있어 이집트의 수도이자 관광명소로도 유명한 도시였다.
그런 이집트의 카이로의 타흐리르 광장은 많은 인파의 사람들이 몰려와 있었는데 대부분이 이집트의 국민이었다.
이들은 연일 이렇게 모여서 불안한 정국을 되돌리려는 시위를 벌이는 것으로써 시간이 지날 수록 분위기는 격화되는 추세였다.
게다가 이슬람극단주의자들의 테러로 인해 군부들이 나서는 상태에 이르러 그 분위기는 더욱더 악화일로를 치닫고 있는 상태였다.
그 모습을 생생히 현장에 담기위해 세계 각지에서 날아온 기자들도 많이 눈에 띄었는데 카메라를 앞에 두고 현장중계를 하는 방송국도 있었다.
20대 후반의 마에다 또한 그런 기자들 중 한 명이었는데 이곳 카이로에 온지도 어느덧 일주일이 되어가고 있었다.
이미 아랍의 봄을 통해서 한 번의 성과를 이루어낸 이집트의 국민들이 다시 들고 일어난 이일에 대해서 많은 시선이 몰려 있는 상태였다.
하지만 이런 불안한 정국을 틈타 이슬람극단주의자들의 활동과 테러가 벌어지며 군부세력까지 움직이는 상황에 이르러 상황을 좋게 볼 수만은 없는 지경에 처해 있다고 볼 수가 있었다.
‘어제와 마찬가지야.’
경찰과 실랑이를 벌이는 시위대를 보면서 마에다는 눈살을 찌푸렸는데 그도 그럴 것이 상황이 반전될 기미가 전혀 보이지도 않았다.
주변엔 기자로 보이는 이들이 제법 눈에 띄었지만 동양인으로 보이는 이는 이 주변엔 자신 하나뿐이었다.
대부분 유럽인들로 이집트 주변국의 중동인들도 있었는데 아랍어여서 제대로 알아듣기는 힘들었다.
좀 더 격화되는 분위기였지만 어제와 다를 바가 없는 상황에서 이만 자리를 뜨려 했단 마에다는 자신의 왼 편에 서있는 한 명의 동양인을 보고 의아한 듯 바라보았다.
‘아까까진 이 자리에 없었는데?’
처음 사내를 보았을 때 마에다가 느낀 것은 크다는 것이었다.
적어도 180은 넘어 보이는 키에 어깨는 딱 벌어져 있고 덩치도 작지가 않았다.
시원한 이목구비의 호남형으로 잘생긴 스타일이었다.
“처음 보는 얼굴인데... 취재차 왔나 봅니다?”
관광을 목적으로 여기에 서 있을리도 없고 이곳엔 주로 기자들만이 서있는 위치라 인상도 나쁘지 않아 먼저 다가가 입을 열었다.
해외 전문 특파원이라 마에다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영어는 자연스러웠다.
“예... 어제 도착했습니다.”
자신과 마찬가지로 해외부 기자라면 당연히 영어를 어느 정도 할 것이라 생각했는데 발음도 그렇고 듣기에도 편안했다.
“아.. 그러셨군요. 전 마에다 이치요리라고 합니다.”
“서민준입니다.”
“한국에서 오신 분이군요... 느낌상 그럴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이미 해외에서 많이 활동한 마에다라 대충 한국인과 중국인의 외모 차이를 기억하고 있었는데 그가 보기엔 서민준이라 소개한 사내의 외모가 중국보다는 한국인에 가깝다는 것을 은연중에 느끼고 있었다.
“따로 알아보았겠지만 어제 왔다고 하니 말씀드리는 건데 지금 분위기가 상당히 좋지 않습니다. 무사드 치안국장이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해서 이런 실랑이가 언제 폭력사태로 폭발할지 모를 상황이지요.”
“그렇습니까?”
“좀 더 상황을 지켜봐야 알겠지만 내가 보기엔 여기서 좋아질게 없어 보입니다.”
마에다는 서민준, 아니, 이만석이 자신의 얘기를 들어주는 것 같자 현재의 상황에 대해서 침을 튀기며 얘기했다.
그렇게 한 참을 얘기하던 그는 곧 손목시계를 바라보더니 미안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이런... 얘기를 하다 보니 길어졌네요. 전 일이 있어서 이만 가봐야겠습니다.”
“얘기 잘 들었습니다.”
“아닙니다. 오히려 시끄럽게 혼자 떠든 거 같은데 들어줘서 제가 고맙죠. 그럼 이만.”
가볍게 악수를 나누곤 물러나는 마에다를 뒤로 하고 이만석은 다시 고개를 돌려 경찰과 대치하고 있는 시위대를 바라보았다.
‘관광객들은 눈에 띄지 않는군.’
마에다의 애기처럼 타흐리르 광장의 주변엔 평소엔 자주 눈에 띌 관광객들은 하나도 볼 수가 없었다.
외국인이라 하면 보통은 기자들이거나 그와 비슷한 일을 하는 이들이니 느꼈던 그대로였다.
이곳에 입국한 것은 기자신분에다 취재차 였지만 실질적으로 기자라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지금 타흐리르 광장에 온 모습을 보면 일반 기자와 다를바가 없는 모습이기는 했다.
15분 정도 더 그렇게 지켜보던 이만석은 조용히 몸을 돌려 그렇게 타흐리르 광장에서 모습을 감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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