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3화 〉 73화 행보
* * *
데이트를 하는 시간이 즐겁지 않다면 말이 되지 않는다.
영화를 보거나, 공원을 걷거나 하는 등의 시간들이 좋기도 하지만 그런 것들 보다 이렇게 단 둘이 나란히 걸으며 둘만의 시간을 보내는 것이 어쩌면 하란이에게 더 소중한 것일지도 모른다.
“하란아.”
“응?”
잠시 벤치에 앉아 휴식을 취하는 사이 이만석이 작은 목소리로 이름을 불렀다.
그 말에 시선을 주며 대답을 하는 하란이를 보며 이만석이 다시 말을 이었다.
“나... 잠시 한국을 나가볼 생각이다.”
“한국을 나가다니... 뭐 때문인지 물어봐도 돼?”
갑작스러운 말에 순간 잠시 멈짓한 하란이 곧 입가에 작은 웃음을 지으며 이유를 물어보았다.
“큰 이유는 없어. 일성회의 일도 있고... 강원도를 다녀오면서 그런 느낌이 들었어. 이쪽세계의 일들에 대해서 녹아들어가고 있는 나 자신에 대해서 한 번 알아보고 싶다는... 그런 것 말이야.”
“나 자신에 대해... 한번 되돌아보고 오겠다는 그런 말이야?”
“그래.”
갑작스럽게 외국에 다녀온다는 이만석의 말도 놀랍기도 했지만 이런 말을 듣는 것도 처음이어서 하란은 두 어번 눈을 깜빡 거리며 이만석의 옆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천천히 손을 뻗어 이만석의 손을 감싸쥐었다.
“오빠가 그렇게 하고 싶다면... 그러도록 해.”
이번 말은 반대로 이만석이 생각지 못한 반응이어서 저도 모르게 쓴웃음을 지었다.
“조금은 당황할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네?”
“오빠가 나 자신에 대해서 알아보고 싶다고 했잖아. 그런 말도 처음 들어 보는 것이라...... 다른 소리 해서는 안 될 것이라 생각이 들었어. 그리고 무엇보다 나 하나 때문에 오빠의 앞길을 막는다는 것도 이상해.”
“그리 말해주니 고맙다.”
“고마울 것 없어. 그보다 어디로 가는 거야?”
“이집트.”
“이집트?”
유럽이나 다른 쪽으로 생각은 했는데 이집트라니 이건 의외였다.
“거긴 이번에 테러도 일어났고 좀 위험하지 않아?”
“여행가는 게 아니니까.”
이집트 정국이 불안하다는 것을 하란이도 해외뉴스를 통해서 알고 있는 상황이어서 조금은 우려스럽기는 했지만 그저 손을 꽉 쥐어 잡아주었다.
“알았어... 조심해서 다녀와. 오빠라면... 괜찮을 거라 믿으니까.”
어쩌면 이만석과 가장 오랫동안 떨어져 있어야 할지 모르는 상황이었지만 하란이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말한 것처럼 이만석을 믿고 있다는 것도 있지만 예전처럼 불안해하며 가슴을 조이는 그런 자신이 아니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나중에 한국에 돌아오면... 내기 직접 요리를 해서 오빠에게 대접할게.”
“요리를 한다고?”
“응... 요즘 전공에 집중한다고 바쁜데... 시간 쪼개서 한식요리학원에 다니고 있거든. 요즘 열정적으로 다시 배운다고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 모르겠어.”
“그래?”
“응... 최근엔 삐딱하게 생활 했어도 원래 나 노력파였거든... 어렸을 때부터 진정으로 인정받고 싶기도 했고.. 그래서...... 남들보다 더 열심히 하려고 그랬어. 지금... 다시 예전의 그 마음이 돌아온 것 같아.”
가족에 대해서 하란이가 뭔가 아픔이 있다는 것을 이제 알고 있는 이만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조심스럽게 호주머니에 손을 집어 넣은 이만석이 뭔가를 꺼내었는데 자세히 보니 작은 보석들로 장식이 되어 있는 영롱한 빛깔의 팔찌였다.
아무말 없이 하란이의 팔에 팔찌를 체워준 이만석이 가만히 그 모습을 조금 놀란 듯 바라보는 하란이를 향해 입을 열었다.
“행운의 팔찌라고 생각하면 편할 거야. 내가 없는 동안... 그게 널 지켜줄 테니까.”
“행운의... 팔찌?”
무슨 뜻으로 저런 말을 하는 것일까 생각을 한 하란이었지만 외국으로 나간다는 이만석의 작은 의미이지 않을까 라는 느낌을 받았다.
“오빠가 날 지켜준다는 생각으로... 소중히 할게.”
뭔가... 커플반지와 마찬가지로 묘한 느낌의 선물을 받은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그게 기분을 좋게 만들기도 했다.
‘저번 같은 일이 다시 일어나지 말라는 법은 없지.’
이만석은 이 팔찌가 그저 일반적인 액세서리로 선물을 한 것이 아니었다.
몸에 위해가 가해지면 자신이 심열을 기울여 새겨 넣은 마법이 발동하여 하란이를 지켜 줄 것이었다.
그럴 일은 없겠지만 만의하나 생명이 위독하거나 그런 상황이 벌어지게 될 시에 그대로 자신에게 전송되어 그 장소로 워프를 할 수 있게 좌표를 전송할 수 있는 수식어도 새겨놓았다.
하란이는 모르겠지만 정말로 자신을 지켜줄 수호의 팔찌인 것이다.
“무슨 걱정이 있겠습니까? 이렇게 저하고 장인어른이 계신데... 신분하나 만들어내는데 일도 아니지요...... 그리고 제가 또 인맥이나 능력이 아주 뛰어나서 작은 신문사 기자직함 하나 쯤은 금세 마련 할 수가 있습지요!”
번들거리는 눈으로 아주 침을 튀기며 열변을 토하는 박동구를 보며 이만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빠를 수록 좋겠지.”
“시간이 문제겠습니까... 당연히 목숨을 건다는 심정으로 발로 뛰고 움직이는 게 당연 한거 아니겠습니까? 그러면 언제라도 문제가 없는 것이지요. 안 그렇습니까 장인어른?”
“그, 그렇지...”
긴장과 어색함이 묻어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김철중은 참으로 죽을 맛이었다.
이 인간 같지 않은 이와 한 자리에 한다는 것이 그에게 너무나 고통스러웠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치 제 주인을 만난 양 꼬리를 치며 열변을 토하는 박동구가 참으로 얄미웠다.
“대한민국 국민인데 당연히 신분 없이 지낼 수가 없는 일이지요. 여권부터 시작해서 기자직함까지 아주 철저히 준비해서 실망시키는 모습하나 보이지 않고 제 힘을 다하여 능력을 보이겠습니다.”
너무나 충직한 태도를 보이는 박동구의 모습이 어떻게 보면 좀 부담스러울 수 있겠지만 얼굴에서 느껴지는 저 자부심에 대해서는 이만석은 지적하지 않고 내버려 둘 참이었다.
박동구가 왜 저렇게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가에 대해서 이만석도 짐작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제1의 심복이라는 생각.
자신이 처음으로 수하가 되었으니 당연히 서열이 제일 높다라는 것을 마음에 품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그만큼 충직한 모습을 보여 모범을 보여야 하니 저런 행동을 하는 것이다.
“진행되는 대로 바로 연락해.”
“하나부터 시작해서 어떻게 신분이 다시 보장되는가에 대해서 아주 제대로 자료를 정리해서 브리핑을 하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이만석이 말없이 눈 앞에서 모습을 감출 동안 박동구는 한 치의 어긋남 없이 예의를 차리며 그 자리를 지켰다.
“장인어른... 얘기 들은 것 같이 우리가 아주 바쁘게 움직여야 할 것 같소.”
“네놈이 말하지 않아도 다 알고 있다.”
이만석이 눈 앞에서 모습을 감추자 그제야 숨을 깊게 내쉬며 마음의 안정을 찾는 김철중이 못마땅하다는 시선으로 박동구를 바라보았다.
그 시선을 느꼈을까. 박동구의 입가에 작은 웃음이 지어지더니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흐흐흐... 그렇게 못 마땅하다고 날 바라봐도 어쩔 수 없소. 왜냐하면 내가 첫 번째로 들어간 심복이니 말이요... 그러니 그렇게 못 마땅해도 장인어른은 나보다 서열이 높을 수가 없단 말이외다.”
“네놈은...참...... 답이 없는 놈이구나.”
이놈을 왜 인재로 바라보고 사위로 들여 키웠는지 김철중은 자신이 헛살았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어허! 답이 없다니......! 제1의 심복인 나보고 그런 소리를 하는 겁니까?! 내가 한 마디만 하면 장인어른은 저번과 같이 그 끔찍한 고통을 다시 받을 지도 모르는데 말이요?”
말 그대로 이만석에게 대놓고 고자질을 하겠다는 말이었다.
그 말에 순간 김철중 의원은 등골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지만 그동안 정치인생이나 살아온 생의 연륜으로 겉으로 표하지는 않았다.
“썩... 나가거라. 이놈.”
“조금 전의 말은 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그래도 장인어른이시니 내가 이번엔 참겠소. 흐흐흐...... 나가달라고 하는데 가줘야지...... 그럼 내일부터 바빠 질 테니까 그렇게 알고 나가보겠소이다.”
서재를 빠져나가고 혼자 남은 김철중은 한 숨을 내쉬었다.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것도 아닌 것을 어쩌겠나... 열심히 해야지.”
이만석을 떠올리면 저번과 같이 그 끔찍한 경험이 떠올라 간담이 서늘해지고 소름이 돋을 지경이었다.
제 웬수덩어리 박동구가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그의 말대로 정말로 내일부터 열심히 능력껏 힘을 써야 할 것이었다.
“아니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형님?!”
눈이 함자박만하게 커진 춘배가 놀란 얼굴로 펄쩍뛰며 소리쳤다.
“어떻게 그런 곳에 형님 혼자만 가신다고 한단 말이오?! 나도 가겠습니다! 그런 위험한 곳에 형님혼자 가신다니 안됩니다...!”
이만석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춘배가 침을 튀기며 말리려 했다.
강원도의 일이 있고 난 후부터는 이젠 이만석의 사람으로 돌아선 춘배여서 안전부 내에서도 알만한 사람은 다 안다.
그도 그럴 것이 강원도로 갈 때 적극적으로 지원해서 따라나선 것이 춘배였기 때문이었다.
그 때문에 이제 춘배보다 직급이 높은 이들이라고 해도 그를 대하기 어려워하는 이들도 제법 되었다.
정인철 회장의 적극 신임을 받는데다 후계자로써 일성회의 별다른 도움없이 제 힘으로 석권하는 능력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그런 이만석의 측근으로 소문이 나있는 상태이니 당연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춘배는 그런 것들에 대해서 별다른 신경을 쓰지 않았다.
원래 성격이 그러한 것도 있었지만 그는 이만석이라는 사내에 대해서 매료되어 그를 따른다는 것만으로도 아주 기분이 좋았기 때문이다.
“형님이 그렇게 가시겠다고 하면 저도 갑니다. 형님 혼자서 가시면 위험해서 안된단 말입니다!”
“녀석... 너도 고집이 세구나.”
저 커다란 덩치에 닭 똥 같은 눈물을 흘리며 바짓가랑이를 잡을 기세여서 이만석은 쓴웃음을 지었다.
아무래도 생각이상으로 충격이 컸던 것 같아 보였다.
“예... 형님. 저 고집 있습니다! 그러니 가실 려면 저도 데려가시오!”
그러더니 바닥에 털썩 무릎을 꿇고 앉아 두 손바닥으로 다닥에 짚고 똑바로 이만석을 올려다보았다.
잠시 동안 그런 춘배를 내려다보던 이만석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거기서 눌러 살겠다는 것이 아니다. 네가 날 생각해서 걱정한다는 것은 알지만 거기엔 나혼자 다녀오는 것이 났다. 그리고 춘배 너는 이곳에서 차이링을 도와 강원도를 안정시키는데 도움을 주는 게 좋아.”
앞서 차이링에 대해서 애기를 해주었던 이만석은 꿇어 앉아 있는 춘배에게 다시 그 얘기를 상기시켜 주었다.
“형님...”
“다른 애들 보다 차이링 옆에 네가 붙어 있으면 든든할 거야.”
춘배는 이만석의 눈빛을 본건데 아무리 성을 내도 자신을 데려가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직감했다.
그래서 일까. 닭 똥 같은 눈물을 흘릴 것 같던 그의 눈에 정말로 눈물 한 두 방울이 맺히기 시작했다.
“춘배야...”
걸음을 옮겨 다가간 이만석의 그의 어깨를 힘주어 잡아 주었다.
“내가 얼마나 형님을 만나고 싶어 한지 아십니까...? 제가 일성회에 소속 되어서 그저 속으로만 앓고 있었단 말이오... 그런데 드디어 생각지도 못한 일이 벌어져서 너무 기분이 좋았었단 말입니다. 형님을 따라다닌게 짧은 시간 밖에 되지 않았지만 제가 이길에 들어선 참맛을 느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홀로 죽을 지도 모르는 위험한 곳에 가겠다고 하시다니...”
눈가에 흘러내리는 눈물을 손 으로 닦아낸 춘배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좋습니다. 내가 말린다고 가지 않을 형님이 아니시지. 하지만 저하고 한 가지 약속 하셔야 합니다.”
“뭐냐.”
“다치지 말고 꼭 살아서 돌아 오시우. 내 차이링 아가씨의 옆에 딱 부터서 지켜줄 테니까. 형님도 목숨이 위험 할 것 같으면 앞뒤 보지 말고 무조건 한국에 돌아와야 한단 말입니다.”
춘배의 심정이 어떤지 저절히 느껴지는 말이어서 이만석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마.”
“예... 형님 말대로... 따르겠습니다.”
이집트에 혼자 간다고 하는 이만석을 뜯어 말리고 싶은 춘배였지만 자신이 말릴 수 있다고 되는게 아니었다.
그게 아니라면 같이 동행해서 가고 싶었지만 그것도 안된다고 하니 너무 가슴이 아팠다.
그렇다면 이렇게 약속이라도 받아나야 조금은 위로가 될 것 같았다.
“거기서 형님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내 절대 용서하지 않을 거요.”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