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1화 〉 61화 행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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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무는 생긴 것과 다르게 눈치가 빠르고 기회가 오면 잡을 줄도 아는 사람이다.
그래서 진영회가 아직 춘천을 장학하지 못 한 시점에 흘러가는 분위기를 잃고 먼저 들어가 발판을 닦았으며 부위도 잘 맞추어서 이인자가 될 수가 있었다.
맡은 일도 곧잘 하는지라 배진호가 신임하는 심복이었는데 천성이 욕심이 많고 재물에 인식하여 최측근이라 할 수 있는 그에게 조차도 자금관리에 대해서는 일절 얘기를 꺼내지 않았다.
하지만 배진호의 곁에서 이미 진영회의 내부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전부다 배우고 익힌 것은 물론 인심도 후한 편이라, 보스라 할 수 있는 배진호보다 더욱 영향력이 강했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진영회에서 관리하는 사업장이나 업소들은 하나 둘 조영무를 거쳐서 가게 되었고 그의 비자금을 관리하고 있는 마담까지도 알아낸 판이었다.
포부와 실력으로 쌓아올린 조직이라 할 수 있었지만 배진호도 모르게 하나하나 조영무에게 천천히 장악되어 가고 있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상황이 그렇게 되니 이만석이 떠나고 난 후부터 조영무의 행동은 거칠 것이 없어졌고 마음을 먹은 순간 그의 행동은 과감해졌다.
“그 놈은 소인배다...”
진영건설의 5층 빌딩의 사장실에 앉아 있는 조영무는 양쪽으로 자리한 측근들을 바라보았다.
도합 3명의 인물이 앉아 있었는데 춘천의 업소 총지배인 맡고 있는 박태식부터 행동대장 이원종, 경호실장 안영만 등 진영회의 핵심을 맡고 있는 간부들이라고 봐도 옳았다.
“재물에 욕심이 많은 대다 측근들도 제대로 믿지도 못한다. 거기다 말은 일성회보다 더 큰 조직을 이룩하겠다고 하지만 춘천지역에 만족하고 있다는 것은 이미 조직 내에서도 그 소문이 파다한 상황이야. 인색해서 공을 세워도 돌아오는 것이 별로 없다는 것도 문제다. 그에 대한 불만이 내부에서도 많아.”
아무리 큰 공을 세워도 대부분의 성과는 배진호가 독식하고 있는 체제였다.
말 그대로 힘과 위세로 눌러서 자신만의 왕국을 이룩하여 떵떵거리고 있었던 상황이었다.
처음엔 그의 실력과 포부, 그리고 위세가 대단하여 이렇게 조직을 키울 수 있었지만 그것도 한계에 이른 시점이었다.
“차라리 잘 되었소이다. 그놈은 상대 조직의 보스를 치는 과정에 배때기에 칼을 맞고 병원에 입원했을 때도 병문안은커녕 300으로 병원비부터 시작해서 성과 금이라고 던져준 것이 전부였소. 그러면 이제부터 형님이 진영회를 이끄는 것이요?”
스포츠머리에 근육질을 자랑하는 190가까운 거구의 이원종이 생기를 띈 시선으로 질문을 던졌다.
이원종은 물론이고 모두의 시선이 조영무에게로 모아졌다.
그동안 조영무가 어떤 식으로 조직을 뒤에서 이끌어왔는지, 그리고 챙겨왔는지 여기에 있는 인물들은 다 알고 있었다.
배진호의 곁에 조영무가 없었더라면 어쩌면 벌써 불만을 품은 누군가가 반기를 들었어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내가 진영회를 맡겠지만 실질적으로 보스는 내가 아니다.”
배진호는 허영심에 차서 일성회의 정인철 회장을 보고 자신도 회장님이라 불러주는 걸 좋아했다.
“그럼 누굴 추천이라도 하겠다는 말이요?”
생각지도 못 한 말이어서 이원종이 다시 질문을 던졌다.
지금 진영회 내에서 조영무 말고는 조직을 이끌 인물은 없었기 때문이다.
그에 대해서 신임을 하고 있는 편이었고 그가 보스가 된다고 해도 반기를 들사람들은 없을 것이었다.
그만큼 배진호가 신임을 잃어가고 있다는 것이고 조영무가 일을 잘했다고 봐도 되었다.
“너희들을 불러 모으기 전에 아침에 전화 한 통화를 했다.”
“그게 누굽니까?”
총지배인 박태식이 쓰고 있는 안경을 고쳐 쓰며 호기심을 드러냈는데, 진영회의 모든 업소를 관리하는 총책임을 맡고 있는 만큼 장사수환이 뛰어났다.
거기다 연세대 경영학을 나온 그는 머리도 좋은 편이었다.
“곧 오실 태니 보면 알 수 있다. 배진호와는 비교도 안 되는 분이시다.”
“형님이 그런 식으로 말을 다 할 정도면 한 가닥 하는 인물인가 보오?”
이원종이 능글맞게 웃으며 말했는데 조영무는 더 이상 말하지 않고 작게 따라 웃을 뿐이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폰의 벨소리가 울리자 전화를 받은 배진호가 짧게 통화를 끝내고 곧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머지 사람들도 조영무가 하는 말을 듣고 그 인물이 이곳에 도착했다는 것을 알고 따라 일어섰다.
“나 참... 듣도 보도 못 한 인물을 맞이한다고 자리에서 일어나기까지 하다니.”
진영회의 행동대장으로써 그래도 대차게 지내왔던 이원종인지라 조금 실없다는 듯 문 쪽을 응시했다.
나머지 인물들도 마찬가지여서 도대체 조영무가 기다리는 인물이 누구인지 빨리 나타나기만을 기다릴 뿐이었다.
그렇게 얼마 지나지 않아 천천히 조심스럽게 문이 열렸는데 모습을 드러낸 인물은 커다란 덩치의 불곰을 연상케 하는 춘배였다.
“반갑습니다, 무형.”
“어제 그 친구로군...”
순박한 웃음을 짓는 춘배를 보며 조영무가 반갑게 맞아 주었다.
저쪽에선 배진호와 자신에 대해서 알고 왔을 태지만 이쪽에선 아직 이만석만 알았지 춘배에 대해선 몰랐던 것이다.
짧게 대화를 주고받은 춘배가 옆으로 비켜서자 호남형의 잘생긴 사내가 안으로 걸어 들어왔는데 이만석이었다.
“잘 오셨습니다, 형님.”
이만석을 보자마자 환하게 웃음 지으며 맞이하는 조영무를 보고 순간 양 옆에 서있던 진영회의 사람들이 모두 믿기지 않는 다는 듯 바라보았다.
그도 그럴 것이 생각이상으로 나이가 젊어보였고 조영무가 저렇게 예의를 차리며 진심으로 기분 좋게 맞이하는 모습도 처음 보았기 때문이다.
“인사들 해라... 이분이 바로 요즘 입담에도 많이 오르는 서민준 형님이시다.”
“서민준...?”
서민준이라는 말에 그동안 아무런 말도 없었던 경호 실장 안영만이 자신도 모르게 반문하며 눈을 크게 떴다.
“서민준이라고?!”
이원종 또한 믿기지 않는다는 듯 이만석을 바라보았다.
그도 그럴 것이 무모하게 일성회에 개겼다가 오히려 수모를 안겨준 것을 시작으로 삼합회와도 분란을 일으켜 당당히 그들을 농락한 일은 하나의 영웅담으로 통했기 때문이다.
서민준을 죽이려고 여러 킬러를 보내었는데 반대로 그들을 처리해버렸다는 것과 십령방주라는 양두라는 인물이 서민준이 때문에 왔다는 얘기 등 아주 많은 화젯거리를 몰고 다녔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제는 정인철 회장이 그의 능력을 알아보고 후계자로 삼고 싶다는 말도 했다는 얘기가 나돌아서 야마구찌회로 가려졌던 것이 다시금 화제의 중심으로 떠오른 상황이었다.
그들의 놀라는 모습을 바라보며 춘배는 가슴을 당당히 바로 피며 그대로 얼굴에 자부심을 드러냈다.
‘이분이 바로 내가 모시는 형님이시다...!’
그는 행안부 내에서도 곰과도 같은 거력으로 장사로 통하는 사내였다.
다른 건 몰라도 힘으로는 누구도 춘배를 당할 인물이 없었고 그만큼 우직하게 한 번 맡은 일은 물불가리지 않고 달려들어 이른 나이에 대리까지 승진도 했다.
처음 신위를 확인한 것은 이만석을 잡으려 함정을 파고 기습을 했을 때 였는데, 순식간에 모두를 때려눕히고 유유히 그 장소를 빠져나가는 모습이 너무도 대단해보였다.
게다가 처음으로 힘으로 자신을 누른 인물이 바로 이만석이기도 했다.
그 후로 그에 대한 얘기나 소문을 하나도 빠짐없이 찾아 들었고 삼합회와의 일이 벌어졌을 때도 멀리서나마 지켜보았다.
아마 일성회 내에서 이만석에 대한 영웅담이 빠르게 돌 수 있었던 건 춘배의 입방정이 한 몫 했을 것이 분명한 사실이었다.
그만큼 그는 이만석이라는 인물에 매료되어 있었고 이렇게 후계자에 대한 얘기가 나오고 무모하다시피 벌어진 이번 원정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나서서 따라가게 된 것이다.
이만석을 따라나선 이들중에 직급 상으로 보면 춘배가 제일 높았고 그 만큼 견제가 심하다고 보는 것도 옳았다.
그에 화가 난 춘배였지만 자신이 최측근으로 따라다닐 수 있어 내심 기분은 좋았다.
이만석의 등장으로 자연스럽게 자리가 재분배 되었는데 이만석의 최측근으로 춘배가 오른편에 앉아야 했지만, 연배로 보나 이곳의 위치로 보나 조영무가 높아서 오른쪽 자리는 그에게 양보하고 맞은편인 왼쪽에 자리했다.
그 양옆에 남은 이들이 자리하고 안았는데 조영무의 옆엔 이원종이, 춘배의 옆은 박태식, 그리고 이원종의 옆에 안영만이 자리했다.
상석에 자리한 이만석이 주변을 한번 쓱 훑어보고는 입을 열었다.
“다들 만나서 반갑다. 들어서 알겠지만 내가 서민준이다.”
처음부터 하대였는데 누구하나 그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이 없었다.
몸에서 풍기는 분위기는 물론이거니와 하대가 자연스러웠기 때문이다.
“내가 왜 이 자리에 오게 되었는지 말해주었나?”
“형님께서 말씀하시는 게 나은 것 같아 아지 아무 말 하지 않았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이만석이 다시 말을 이었다.
“나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것 같으니 두말 하지 않겠다. 그리고 내가 어떤 목적으로 진영회에 찾아 왔었는지도 알고 있을 거다.”
“우릴 발판 삼아 강원도를 석권하기 위한 것 아니요?”
이원종이 호기롭게 나섰는데 목소리는 힘이 있었고 눈빛은 생기가 띠었다.
자신의 시선을 정면으로 받는 이원종을 보며 웃음을 지은 이만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는 말이다. 난 이곳에 놀러 온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땅따먹기를 하고자 온 것도 아니다.”
“땅따먹기가 이 땅을 석권하는 것과 같은 말 아니요?”
이상하다는 듯 이원종이 재차 질문을 던지자 느닷없이 이만석의 옆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덩치만 산만한 무식한 놈아... 형님은 그런 뜻에서 한 말이 아니시다. 대도록이면 큰 피를 흘리지 않겠다는 말을 하는 거야.”
“무식? 생긴 건 곰같이 생겨 둔해 보이는 놈이 나보고 무식하다고?!”
“인마.. 형님 앞이시다... 무식한 티내지 마라.”
“아 자식이 그래도...”
능글 거리며 웃음 짓는 춘배의 모습에 이원종이 눈을 불알이며 몸을 들썩였다.
“그만.”
그때 이만석이 작게 제지하는 목소리를 냈는데 그 순간 고개가 돌아간 이원종이 무안한 표정으로 자세를 바로 했다.
그 모습을 보며 춘배가 작게 웃었는데 그와는 다르게 조영무를 포함해 박태식, 안영만은 모두 속으로 놀라고 있었다.
‘이놈이 자신도 모르게 행동거지를 바로 했다.’
조영무는 이만석과 시선이 마주치자 저도 모르게 무안함을 느끼며 행동거지를 바로 했다는 것을 알았다.
그 예로 행동거지와 다르게 조금 당혹스러워 하는 이원종의 표정을 들 수 있겠는데 자기 자신도 놀라고 있는 것 같았다.
“춘배의 말대로 강원도를 석권하러 온 것은 맞지만 난 땅따먹기를 벌이며 혈전을 벌이는 것을 원치는 않는다.”
“그렇다면 어떤 생각이신지 여쭈어 봐도 되겠습니까.”
호기심을 드러내며 박태식이 조심스럽게 질문을 던졌다.
“세계를 보면 한국 땅은 작은 편이다. 그런 곳에서 강원도 지역을 석권하기 위해 혈전을 벌이는 것은 내 성미에 맞지 않아. 그리고 이것은 하나의 발판에 지나지 않는 상황이다.”
“강원도를 석권하는게 발판이라는 말입니까?”
이해 할 수 없다는 듯이 박태식이 다시 질문을 던졌다.
“삼합회와 야마구찌회를 보면 답이 나온다 그들은 이미 자국에서 불필요한 싸움을 줄이고 세계를 바라보고 있다. 한국 땅에서도 지부를 설치해 뿌리를 내리려는 그들을 보고 있으면 아직도 안방에서 내 땅입네 설치는 꼴을 보고 있으면 웃기지도 않는 상황이다.”
“발판이라고 한 것은 그들을 보고 한 말이십니까?”
안영만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는데 얼굴은 진지했다.
“난 삼합회도 겪어보았고 야마구찌회와도 접촉해본 몸이다. 그리고 보시다시피 일성회와 많은 얘기도 오고갔던 몸이다. 너희들이 보기에 그런 내가 뭘 보고 느꼈을 것 같나. 겨우 강원도를 석권하는 것에 웅지를 품었다고 보여 지는가.”
순간 모두는 아무런 말도 못 하고 이만석을 바라보았다.
“난 같은 한국인들끼리 불필요한 싸움을 벌이지 않겠다. 쓰레기 같은 놈들이라면 즉결 처단할 것이고 인재라면 받아들여 제대로 활용 하겠다는거다.”
이만석이 하얀 이빨을 드러내며 긴장 된 표정으로 자신을 주시하는 이들의 눈을 한번씩 맞추어 주었다.
“남자로 태어났으면 세상을 넓게 볼 줄을 알아야 하는 법이다.”
어제 이만석의 신위와 기도에 압도당한 조영무는 어쩌면 이 자라면 10년 안에 큰일을 벌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그게 조직일통이라는 허망한 생각이라도 이자라면 어쩌면 일성회의 다음대 회장으로 올라서 기세를 몰아 전 지역을 장악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던 것이다.
자신이 생각해도 그 정도면 아주 그릇을 크게 잡았고 높이 보았던 것이 건만 지금 이만석은 그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얘기를 하고 있었다.
국제적으로 위세를 떨치는 삼합회와 그들과 웅지를 겨루며 최근 들어 세계적으로 그 명성을 떨치고 있는 야마구찌회를 겨냥하고 있었다.
말 그대로 한국을 기점삼아 그 두 조직과 마찬가지로 국제적으로 진출할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분은... 내 잣대로 논 할 수 있는 분이 아니시구나......’
포부랍시고 언젠간 강원도 전체를 발아래로 두겠다던 배진호는 발끝에도 못 미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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