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대에 나만이 유일한 마법사가 되었다-60화 (60/812)

〈 60화 〉 60화 응징

* * *

어떤 식으로 보는 것을 옳을까.

요즘 들어 그 세가 커진 조폭들에 대한 정부의 경고인 것일까.

아니면 야쿠자들이 아주 밉보이는 짓을 저질러 저런 피바람이 몰아 친 것인가.

그에 대해서 많은 얘기들이 오고가는 상황이었지만 크게 보자면 경고와 밉보이는 것, 그 두 가지로 갈리게 된다.

먼저 첫 번째인 정부의 경고에 대해서 나온 얘기를 들어보면 이렇다.

일성회가 결성되고 새로운 시대의 바람이 불었다고 해도 과언이 되지 않을 만큼 뒷골목의 세계는 활기를 뛰어갔고 커져갔다.

시간이 흘러가면서 일성회는 서울일대를 장악한 대조직으로 성장하는 것은 물론 한발 더 나아가 경기도지역을 석권하는 대이변을 일으키게 된다.

전국의 각 지역에 기반을 가지고 있는 크고 작은 조직들은 그런 일생회를 두고 스스로 클 수 없었을 것이라느니 정계와 손을 잡았다느니 하는 말들이 많이 흘러나왔는데, 어찌되었건 그 소문도 일성회의 입김도 날로 커지고 나서는 잠잠하게 잦아들었다.

지금에 이르러선 옛날이라면 상상도 할 수 없을 법한 대조직으로 일어섰으니 어쩌면 예의주시하고 있을 것이라는 말도 맞았다.

그에 대한 경고 차원으로 이번 공권력이 힘을 발휘한 것이 아닌가 하는 말이 나돌았고 그 시발점이 야마구찌회로 들었다.

일단 제대로 자리를 잡은 일성회보단 위세가 작지만 국제적으로 당당히 뻗치고 있는 삼합회나 그들과 웅지를 겨루기 위해 날개를 펴려는 야마구찌회의 인지도 또한 비슷했기에, 그 두조직중에 하나인 야마구찌회를 먼저 건드렸다는 말이었다.

일단 앞서 말한 것처럼 그 두 조직은 일성회의 견제덕분에 제대로 자리를 잡지 못 한 상태라 상대적으로 치기 수월했고, 여론만 잘 형성이 되면 탄탄한 지지를 받을 수 있어 힘 있게 밀어 붙일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 차원에서 안 그래도 조폭보다도 더 민감한 야쿠자들을 건드리기 쉬운 것 아니였겠냐는 말과 맞물려 야마구찌회를 뭉갰을 것이라는 말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야마구찌화가 자본을 투자한 나이스머니의 추악한 행태를 시작으로 기업들이 적자의 늪으로 돌아서게 되고 조직기반이 기를 못 쓰고 당하게 되니, 이 기세를 몰아 그대로 주변을 칠 것이라고 예상한 한 일이 생각 외로 지지부진하게 벌어지지 않아 두 번째 얘기가 흘러나오게 되었다.

이대로 야마구찌회에 이어 일성회와 삼합회에게 불똥이 튀길 것이라 보았던 이들은 눈치만 줄뿐 전혀 그들에겐 큰 위해를 가하지 않는 모습에 야마구찌회가 밉보인 것이 아니냐는 얘기가 바로 그것이었다.

그게 무엇인지 알 수는 없어도 그렇지 않다면 저런 식으로 야마구찌회를 공격 할 이유가 없으니 밉보인 것이 분명하다는 말이었다.

어떤 얘기가 사실이었든 간에 이 한 번의 사건으로 야마구찌회의 기반은 무너지게 되었고 지부장이었던 이시모토의 어이없는 죽음으로 인해 그것은 기정사실화 되어버렸다.

본국의 야마구찌회에서도 별다른 얘기가 없는 것으로 보아, 외교적 성과나 로비가 통하지 않았다는 것이고 한국의 여론도 상당히 좋지가 않아 더 그런 것 같았다.

그 불똥이 야마구찌회에서 주변으로 크게 번지지 않았다는 것에 다행으로 여겨야겠지만 얼마동안은 정계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그건 일성회도 그렇고 삼합회, 그리고 지방의 군소조직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일성회쪽에선 견제세력이 한 축이 무너진 것이나 다름없는 상황이어서 호재였고 삼합회에서는 웃을 수도, 그렇다고 울 수도 없는 애매한 상황이었다.

그러한 현실 속에서도 침착함을 잃지 않고 전두지휘하며 내부의 혼란 없이 이끌어가는 챵에 대한 인식이 아주 많이 달라졌다.

임시적으로 대행의 자리를 맡고 있다고 하지만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아무런 소란 없이 다독이고 이끌어가는 그의 능력이 의외였기 때문이다.

그런 챵의 노력으로 삼합회는 큰 소란 없이 여느 때와 같은 분위기로 흘러가고 있었는데 내부적으로 챵에대한 인지도는 높아지고 있었다.

“의외로구만...”

정인철 회장의 입가에 작은 웃음이 깃들었다.

정말로 의외라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기분이 좋아서 그런 것인지는 몰라도 그의 눈빛엔 생기가 돌고 있었다.

“제가 뵙고 싶다고 한 것이 말입니까?”

“그렇다네... 이렇게 자네가 직접 날 만나보자고 한 것이 너무나 의외야.”

눈앞에 앉아 있는 이만석을 보면서 정인철 회장은 말 그대로 생각 외라는 뜻을 그대로 내비췄다.

먼저 지금까지 이만석이 자신에게 먼저 만나자는 얘기를 할 것이라 생각지도 못 했고, 그것이 저번에 자신이 한 얘기일 것이라는 것에 놀란 것이다.

거기다 지금 같은 자숙하자는 분위기가 형성된 때에 이런 식으로 얘기를 먼저 해올 줄은 몰라서 더 그러했다.

“그래... 저번에 한 얘기에 대해서 답변을 주겠다고 했는데 생각은 해보았나?”

“먼저 하란이의 일은 알고 있습니까?”

“윤정호 의원에게 들었다네. 그 때문에 직접적으로 그렇게 나섰다는 것도 알고 있어.”

고개를 끄덕이며 말하는 모습에 이만석이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말을 이었다.

“그 일이 있고 며칠이 흐르면서 좀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그래서 말인데.. 저번 얘기에 대한 답변을 드린다면 제 대답은 수락하는 것입니다.”

“그게 정말인가?”

살짝 눈을 크게 뜨며 말하는 정인철 회장의 말속에도 웃음기가 깃들었다.

“한 가지 물어볼게 있습니다.”

“궁금한 게 있다면 다 물어보게. 대답해 줄 테니.”

“전에 회장님이 저에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그런 그릇이 되는지 못 되는지는 스스로 증명 하는 것이라고.”

“그랬지...”

당연한 애기어서 자연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는 정인철 회장이다.

후계자는 자신이 지명 할 수 있다고 해도 그 자리에 앉아도 되는가 인정을 받는 것은 스스로 증명해야 하는 일이었다.

아무리 지산이 밀어준다고 해도 주변에서 불신을 가지거나 따르지 않는다면 아무 소용이 없는 일이었다.

“그렇다면 만약 제가 그것을 증명해 보이고 조직을 장악해 나간다고 해도 아무런 이의가 없어야 될 것입니다.”

“자연스럽게 인수인계를 할 수 있으니 이의할게 뭐있나.”

스스로 능력을 보이고 힘을 내는데 따라오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에 대해서 이의를 제기하고 태클을 건다면 애초에 그런 얘기를 꺼내지도 않았을 것이었다.

“조직을 완전히 장악하고 축출한다고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축출이라...”

다음에 이어진 이만석의 말에 정인철 회장이 말끝을 흐렸다.

아무래도 좀 당황스러운 말이어서 그런 것 같았다.

“그런 상황이 벌어진다면 내 자신이 좀 많이 초라해 질 수는 있겠어. 하지만... 날 축출해낼 수 있을 정도로 조직을 장악했다면 내 눈이 절대 틀리지 않은 것이니 한 편으로는 위안을 삼을 수도 있겠지.”

자신이 생각해도 정인철 회장에겐 심한 말이라 설마하니 저런 식으로 대답할 줄은 몰라서 조금은 놀라운 일이다.

“전에도 말했지만 전 누구 밑으로 들어가는 걸 달가워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동등한 입장으로 자넬 대하게 될 거야.”

“후계자에 대해서 얘기가 시끄러워 질 수 있으니 조건을 그어 주시면 됩니다.”

“어떤 식으로 말인가...”

“강원도에 진출하려 한다고 했으니 그걸로 하면 됩니다. 접수하는데 한 달 내라는 기간으로 말입니다.”

“접수하는데 한 달 내라니... 그걸 지금 나보고 웃으라고 하는 소린가?”

어이없는 말에 정인철 회장이 눈살을 찌푸렸다.

하나의 지역을 석권하는 대만도 많은 공을 들여야 하고 그 지역 기반의 조직의 저항도 만만치가 않은 일이었다.

지금까지도 충청도 전체를 완전히 장악했다 볼 수 없는 상황인데 겨우 한 달로 석권을 한다니 이건 어처구니 없는 것을 넘어 성공 할 수 없는 무리한 얘기였다.

“그 정도 조건을 달아야 그나마 잠잠 할 수 있습니다. 거기다 최소한의 도움을 준다는 얘기도 꺼내면 금상첨화겠지요.”

“그 얘기는 못 들은 걸로 하지.”

지금 이만석이 얘기한 대로 한다면 말장난을 한 것과 다름없는 상황이 벌어지게 된다.

비웃는 이들도 있을 것이고 당연히 해프닝으로 지나버려 말장난에 놀아난 이만석은 그대로 이미지도 추락할 게 분명한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그것 보다는 충청도를 완전히 다지는 것으로 하면 어떻겠나?”

“그 정도는 약합니다. 제가 원하는 방향도 아니죠.”

“자네...”

갑자기 왜 이런 억지를 부리냐에 대해서 말하려 했지만 뒷 말이 잘 나오지 않았다.

그건 자신을 바라보는 이만석의 눈빛 때문이었다.

“그리하지.”

이 조건이 아니면 없던 얘기로 하겠다는 빛이 다분해 보였다.

그렇게 짧은 대화가 끝나고 오찬을 즐긴 후 헤어진 이만석은 돌아가는 차안에서 갑자기 웃음을 지었다.

“어떤 게 진정한 내 모습인지 나조차 모르겠구나...”

멍하고 소심하면서도 비루하게 살아갔던 예전의 자신의 모습과 지금의 자신의 모습이 무엇이 진정한 나인지 혼란을 느끼고 있었다.

옛날의 자신이었으면 가슴이 조려 어림없었을 냉정한 행동을 스스럼없이 행하고 있으니 스스로 생각해도 놀라운 일이다.

“어쩌면 지금의 나는 이만석이 아닌 정말로 서민준이 된 것일 수도 있겠군.”

자신을 인간으로 보지 않던 이들의 얼굴을 잠깐 떠올린 이만석은 곧 그 생각을 지워버렸다.

“이제부터 보면 알겠지.”

그로부터 며칠이 지난 후 일성회 내에서는 한가지의 소문이 떠돌게 되는데 그 얘기는 곧바로 아주 큰 파장을 몰고 오게 되었다.

야마구찌회의 일로 안 그래도 어수선한 때에 본사에서 시작된 이 소문은 곧바로 일성회 전체로 퍼져나갔다.

정인철 회장이 이만석을 후계자로 삼겠다고 공표했다는 것이 내용의 골자였다.

이 애기가 떠돌게 되자 당연히 무수한 얘기가 나돌게 되었고 이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성토하는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다음으로 이어진 공표에 다시 한 번 놀랄 수 밖에 없었다.

한 달 안에 최소한의 조건으로 강원도를 석권하지 못 하면 그 얘기는 없는 것으로 하겠다는 것이었다.

그 얘기가 나돌게 되자 정인철 회장의 의도에 대해서 많은 얘기가 나돌았는데 대체적으로 이해 할 수 없다는 대에 입을 모았다.

그도 그럴 것이 지역의 기반을 다지는 것은 몰라도 완전히 석권하는 것은 누가와도 무리였기 때문이다.

냉정히 말하면 이용해 먹고 버리겠다는 말과 다를 바 없는 소리였는데, 그렇다고 생각하기엔 정인철 회장이 가벼운 인물이 아닌지라 그 속내가 이해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어찌되었건 그 얘기는 조직세계 전체로 은연중에 떠도는 소문으로 퍼져나가게 되어 다시 한 번 화제의 중심으로 떠올랐다.

30대 후반쯤 되었을까.

각진 턱 선에 왼쪽 뺨의 화상으로 인한 흉터가 인상적인 남자가 양주와 안주들로 풀세팅이 되어 있는 룸으로 들어서 자리에 앉았다.

“서민준이가 온다고 합니다.”

남자를 따라 안으로 들어선 깔끔한 정장차림의 30대 초반의 넓은 어깨의 큰 덩치의 둔탁한 인상의 사내가 옆에 앉으며 입을 열었다.

그 둘을 따라 세명의 사내도 더 들어섰는데 그들은 한 쪽에 서서 대기했다.

“아무래도 정인철 그 양반 물러날 때가 멀지 않은 것 같다. 그놈을 이곳으로 보내다니.”

“소문이 사실 아닐까요?”

“발군의 실력을 인정받아 후계자로 올라섰단 얘기 말이냐?”

같잖다는 듯 말한 배진호가 자신의 심복이자 진영회의 이 인자인 조무영을 보았다.

“얘기는 부풀려지게 마련이고 삼합회에서 보낸 어쭙잖은 놈들을 처리한 것이 이렇게 와전이 된 것이지.”

“하지만 회장님, 후계자로 거론된 정도면 거짓이 아닐 수도 있지 않습니까?”

그래도 걱정이 가시지 않는 듯 말하는 조무영에게 배진호가 크게 웃음을 지었다.

그는

“기다려봐라 내가 그놈의 실체를 오늘에서야 까발려 줄 테니까.”

조무영 못지않게 장대한 기골의 배진호는 합기도 3단의 유도2단 무술 유단자로 실전싸움에도 단련이 된 싸움꾼이기도 했다.

그의 손에 잡히면 관절이 비틀려 아작 나거나 바닥에 내리꽂는 힘에 의해 척추가 다쳐 병신이 된 이들도 많았다.

싸움에 있어서는 누구에게도 안 질 자신이 있는 것이다.

거기다 진영회를 결성하고 춘천시를 완전히 장악한 그에게 있어 일성회에 이어 삼합회의 작은 분란 속에서 살아남은 일은 같잖은 것이었다.

자신도 단신이었으면 그보다 더 한 일을 해낼 수 있을 거라 여겼기 때문이다.

“아무리 그놈이 날고 긴다고 하더라도 제대로 임자를 만나지 못 해서 그런 것이지 제깟 놈이 뛰어나서 그런 게 아니야.”

배진호가 보기엔 이만석은 재수가 좋은 놈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한 사람만 동행 하실 수 있습니다.”

안으로 들어서려는 이만석의 앞을 막아선 건장한 사내가 뒤를 따르는 다섯 명을 눈짓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지금 무슨 헛소리를 허는 거야?! 네놈들은 안에서 진을 치고 있을 거 아니야!”

그때 이만석의 뒤에 있던 187정도의 딱 벌어진 어깨의 불곰을 연상케 하는 남자가 눈을 불알이며 일갈했다.

“회장님의 명이니 어쩔 수 없습니다.”

“뭐야?! 이 새끼가 지금......”

“그만.”

그대로 주먹을 날릴 기세로 앞으로 나서는 남자를 말로 막아선 이만석이 사람 좋은 웃음을 지었다.

“회장의 명이라는데 따라줘야지...”

“하지만 형님...”

분하다는 표정으로 말하는 남자에게 다시 입을 열었다.

“춘배 너하고 나 둘이서만 간다. 나머지는 여기서 대기하도록 해.”

그리고는 걸음을 옮기는데 더 이상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결국 따라나섰던 나머지 4명은 밖에서 대기해야 했고 춘배라 불린 남자만이 이만석의 뒤를 따라 안으로 들어섰다.

그렇게 두 사람은 배진호가 있는 특실로 안내를 해주는 이를 따라 걸음을 옮기면서 마치 시위를 하듯 대기하고 있는 수십 명의 인원들을 볼 수가 있어 사전에 기를 죽이기 위한 빛이 다분했다.

특실의 문 앞에도 여러 명의 인물이 대기 하고 있어 턱하니 경호하듯 지키고 있는 꼴이었다.

열어주는 문을 따라 안으로 들어선 이만석은 오른쪽 편에 서 있는 세 명의 사내와 정면에 보이는 테이블 중앙에 앉아 있는 장골의 남자, 그리고 그 옆에 앉아 있는 서글한 인상의 인물이 눈에 들어왔다.

그들이 바로 진영회의 회장인 배진호와 조용무다.

“어이쿠... 여기까지 오느라 수고가 많았소이다...”

이만석이 가까이 다가와서야 자리에서 일어난 배진호가 호탕하게 웃음을 지으며 손을 내밀었는데 명백한 무시였다.

“내가 배진호올시다.”

“서민준입니다.”

가볍게 악수를 하고 자리에 앉은 이만석을 보며 배진호가 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생각보다 나이가 어리게 보이는데... 대단하구려.”

“그렇습니까?”

“암... 대단하지. 그 일성회의 후계자가 되었는데 어찌 대단하지 않겠소?”

비아냥거리는 것과 다름없는 말에도 이만석은 기분 좋게 잔을 들었고 그에 양주를 따라주었다.

“그럼 나도 한잔 따라주시오.”

이번엔 이만석이 배진호의 잔에 양주를 따랐는데 그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는 덕상의 표정은 굳어있었다.

“자... 그러면 한 번 제대로 얘기를 나눠봅시다. 애기만 잘 풀린다면 우리 진영회가 일성회의 밑으로 들어 갈 수도 있소이다. 이건 전에도 얘기를 나누었던 내용이고 약조도 되어 있는 것이지.”

진영회는 춘천시를 중심으로 강원도 서쪽지역의 기반을 굳히고 있는 조직이었다.

강원도를 진출함에 있어 교두보로 적정한 위치를 잡고 있는 춘천은 예전부터 그 지역을 장악하고 있는 진영회와 지금까지 많은 얘기가 오고가고 있었지만 아직까지 큰 진척은 없는 상황이었다.

“약조가 되어 있단 말입니까?”

“그렇소이다... 얘기를 하러 왔다면 그 정도의 내용은 들어서 알고 있을 줄 알았는데?”

“딱히 들은 건 없어서 말입니다.”

“언질도 주지 않은 모양이요?”

무시하는 투가 다분해 보이는 말이 이어지자 이만석이 하얀 이빨을 보이며 웃었다.

“내가 주지 말라고 했지.”

“그게 무슨...?”

갑자기 말투가 달라진 이만석의 대답에 의아한 배진호가 눈을 크게 떴다.

그 순간 목을 잡고 그대로 안면을 강하게 주먹으로 내리 찍어 버렸다.

당황한 조영무를 뒤로하고 자신에게 달려드는 사내들에게 자리를 박차면서 일어난 이만석이 순식간에 한 명의 배를 걷어 차버리고 다른 한 명의 목을 후려쳤다.

남은 한명의 팔을 꺾어 버린 상태로 뒷목을 쳐서 기절시킨 후 걷어차인 놈이 이번엔 대가리를 걷어차여 바닥을 뒹굴었다.

바닥에서 몇 번 꿈틀거리더니 그걸로 끝인 것이다.

그 사이 아직도 목을 부여잡은 채 헛구역질 하는 놈마저 처리한 이만석은 파랗게 질린 얼굴로 굳어 있는 조영무와 시선이 마주쳤다.

생각지도 못한 이 갑작스러운 사고와 대단한 신위에 충격을 받은 것이다.

걸음을 옮겨 밖으로 나가는 그 잠시 동안 아직도 안면이 뭉개진 채 피를 게워내고 있는 배진호를 구석 쪽으로 걷어 차버렸다.

엉망이 된 룸 안은 깨진 술병이 나뒹굴었고 안주들도 다 엎어져 있었다.

거기다 세 명의 사내와 배진호까지 더 하면 처참한 광경이다.

“앉아라.”

어정쩡한 자세로 서있는 조영무에게 말한 이만석이 다시 편한 자세로 소파에 몸을 앉혔다.

그 옆에 춘배가 조심스럽게 몸을 앉혔는데 조금 전의 이만석의 신위에 흥분감을 감추지 못 하고 있었다.

존경과 자부심이 가득한 표정으로 춘배가 이만석의 옆에 단단히 지키고 앉아있었다.

잠시 어정쩡하게 서있던 조영무가 눈치를 보며 조심스럽게 자리에 앉았다.

“밖으로 소리쳐보았자 들리지 않았겠지만 어찌되었든 가만히 있었던 건 현명한 해동이다.”

왜 자신을 공격하지 않았는지 애기해주는 말에 조영무의 등골이 서늘해졌다.

하지만 왜 소리쳐도 들리지 않는 다는 것인지 이해가가지 않았지만 지금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오늘부로 진영회는 네가 맡는다.”

이만석의 말에 조영무이 눈을 크게 뜨며 바라보았다.

“저자는 실력은 있지만 허영심이 많고 재물에 욕심이 많아 부하들에게도 인색한 놈이다. 그런 놈의 끝은 저렇게 좋지가 않다.”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돌려 안면이 안쪽으로 함몰이 되어 뭉개진 끔찍한 모습의 배진호를 보았다가 다시 이만석을 보았다.

“나에 대한 소문을 들어보았나.”

“들었습니다.”

“내가 너한테 기회를 주겠다는 얘기다.”

“예...”

조영무가 자신도 모르게 대답을 했다.

이만석의 기세에 압도되었다는 게 옳은 표현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곤 자리에서 일어나는 이만석의 뒤를 따라 춘배가 일어섰고 조영무가 뒤를 따랐다.

걸음을 옮겨 문을 열고 밖으로 나서는 이만석에게 대기 하고 있던 사내들의 시선이 몰렸다.

“새끼들아 눈 안 깔아?!”

춘배의 뒤를 따라 나선 조영무가 눈을 불알이며 호통을 치자 사내들이 모두 고개를 숙였다.

“절대로 안으로 들어가지 마라.”

누구의 말이라고 의문을 표할까.

조영무의 말에 모두가 아무런 대답을 못 하고 뒷짐을 취한 채 고개를 숙였다.

들어올 때와는 다르게 나갈 때는 뒤에서 따라나서며 눈을 불알 이는 조영무 때문에 아무도 이만석에게 시선을 마주치지 못했다.

“이인자라고 들었는데 힘은 있었던 모양이오, 무형?”

자신보다 연배가 높은 조영무에게 춘배가 친근하게 말했다.

“형님말씀대로 실력은 있어 따르지만 부하들에게도 인색해 신임을 잃었어. 그렇지 않으면 허울뿐인 이인자였겠지.”

두 대의 승용차 중에 앞에 서있는 벤의 뒷좌석에 이만석이 올라탔다.

뒤를 이어 문을 닫아준 춘배가 조수석에 올랐고 나머지들도 각자 차에 탔다.

“내일 연락하지.”

“예...”

나란히 떠나는 두 대의 차를 보면서 조영무은 그 자리에서서 한 동안 차가 떠난 반향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아직도 룸 안에서 자신을 바라보던 이만석의 눈빛을 떠올리면 몸이 찌릿하고 가슴이 벅차올랐다.

상대를 압도하는 그런 눈빛과 기도는 처음인 것이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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