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6화 〉 56화 응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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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후반쯤 되었을까.
160중반대의 키에 까무잡잡한 피부의 외국인 조심스레 허름해 보이는 폐공장 안으로 들어섰다.
금팔찌에 금목걸이, 그리고 입술을 뚫고 피어싱까지 하여 상당히 불량해 보이는 외모였다.
그가 들어선 공장 안은 12명가량의 이들이 몰려 있었는데 그와 같이 동남아인으로 보이는 외국인들이었다.
드럼통에 불을 피우고 그 주위에 모여 서로 얘기를 주고받으며 왁자지껄하게 대화를 주고 받던 이들은 곧 안으로 들어선 사내에게 시선이 몰렸다.
“대박 건수다.”
“대박 건수라니... 무슨 말이야?”
바짝 깎은 머리에 찐한 갈색으로 염색을 한 사나운 인상의 남자가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질문을 던졌는데, 앞서 말했던 사내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 키를 가지고 있어 이중에 제일 덩치가 크다고 할 수가 있었다.
잠시 주변을 둘러 본 사내가 손가락을 하나 펴 보였다.
“백가지고 뭘 그리 호들갑을 떠는 거야?”
괜히 김샛다는 듯 중얼거리며 인상을 찡그리는 모습에 손가락을 펴보였던 사내가 곧바로 언성을 높였다.
“인마! 내가 겨우 백가지고 이렇게 너희들에게 말을 하겠냐?! 자그마치 천이라고 천!”
“천?!”
“그게 정말이냐 아닐로?”
순간 여기저기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커지며 놀란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그도 그럴 것이 요즘엔 작은 건수도 하나 잡기 힘들어 죽 쓰고 있었기 때문이다.
필리핀에서 사고를 치고 갱단에서 도망쳐 나온 놈들이 태반이라 정상적으로 생활하기 힘들어 다시 이곳 한국에서도 갱의 생활을 청산하지 못 하고 있었던 것이다.
자신들이 생활했던 잔혹한 필리핀에서의 갱생활에 비하면 이곳은 그나마 체계가 잡혀있어 양반이라 느껴져 처음에 좋아라 했는데 그게 쉬운일이 아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일성회라는 거대한 조직이 턱하니 버텨서 지역을 잡고 있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삼합회에 이어 야마구찌회까지 기회를 보고 있어 그 내막을 보면 이곳도 상당히 쉬운 곳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악명을 쌓아서 경력을 올리자는 생각으로 작은 건수부터 잡아서 행동에 옮겼는데 요즘엔 그 작은 건수마저도 죽 쓸 판이라 배가 등가죽에 다 붙을 지경이었다.
게다가 이렇게 작은 팀을 꾸려서 활동하는 이들이 자신들 뿐만이 아니어서 그 시장은 더욱더 협소하다고 할 수가 있어 더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었다.
한 번은 건수를 두고 싸움이 벌어졌는데 그 때문에 5명이나 경찰에 잡혀 들어가 최근까지 자숙하는 분위기도 가졌었다.
“의뢰자가 누군데 천을 준다고 하는 거냐?”
“거기에 대해선 확실히 알지 못 한다.”
“그럼 누군지도 모르면서 의뢰를 받았단 말이야”
“내가 거절을 했어도 카넬 놈들이 받았을 게 분명한데 어떻게 받지 않을 수가 있어?”
카넬이라는 이름이 나오자 아닐로라 불린 이에게 따졌던 사내가 더 이상 따지지 못했다.
카넬 일당들 때문에 친구들 5명을 잃었기 때문에 찢어서 씹어먹어도 시원찮을 판이었기 때문이다.
“선금으로 일단 오백을 받기로 했다. 그리고 일이 성공하면 나머지 오백을 준다는거야.”
그 중에 맨 오른쪽에 있던 둥그런 눈의 이마에 흉터가 있는 곱슬머리의 사내가 앞으로 나서며 입을 열었다.
“의뢰내용이 뭐야, 아닐로. 그 정도의 돈이라면 간단한 일은 아닐 텐데?”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아닐로가 손을 권총모양으로 만들더니 자신의 머리에 가져다대었다.
“탕!”
그러면서 히죽 웃으며 입으로 권총을 쏘는 목소리를 흉내 냈다.
그 행동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너무나도 잘 표현 한 것이어서 누구하나 다시 물어보지 않았다.
“누구 하나 죽여주는 것만으로 천을 준다니... 제대로 원한이라도 산 것인가?”
“아주 제대로 원한을 샀지. 생각해보면 원한 가질 사람이 많을지도 몰라.”
“도대체 누군데 그런 말을 하는 거야?”
처음 질문을 던졌던 덩치가 제일 큰 사내 키킨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아닐로가 곧바로 대답했다.
“서민준.”
어눌한 한국어로 이름을 말했지만 여기에 있는 이들은 다 그 이름을 알아 들을 수가 있었다.
솔직히 못 알아듣는 게 오히려 이상한 일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쪽세상에서 지내다보면 이젠 한 번쯤 들어볼 이름이었는데 그 정도로 유명해진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서민준? 그 일성회와 삼합회에 단신으로 덤벼들었던 놈 말이냐?”
“맞아.”
순간 주변이 다시 웅성거리며 어수선해지기 시작했다.
설마하니 타깃으로 지목된 인물이 화제의 중심에 떠오른 그 서민준일지 몰랐기 때문이다.
“이건 어쩌면 기회일지도 모른다.”
“기회라니?”
“만약 우리가 그 놈을 처리 한다면 대번에 우리의 명성이 전국에 퍼지게 되는 거야. 우리가 화제의 중심이 될 수도 있다고.”
“하지만 그 놈은 보통 실력이 아니라던데?”
키킨이 우려섞인 목소리로 대답을 하자 그런 질문을 해올 것을 알고 있었는지 에닐로가 고개를 까딱였다.
“따라와.”
“어딜?”
“와보면 알아.”
그러면서 몸을 돌리고 걸어가는 아닐로의 뒷모습을 잠시 바라보던 키킨이 고개를 돌렸다.
“뭔가 보여주려는 거 같은데?”
“어쩌면 서민준이를 없앨 무기일지 모르지.”
여기서 자기들끼리 얘기를 하는 것 보다는 아닐로를 따라 나가보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생각에 곧이어 일행 모두가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공장을 나선 이들은 아닐로가 있는 곳으로 향했는데 그가 서있는 곳은 자신이 타고온 낡은 구형 승용차였다.
어느새 대기하고 있던 아닐로가 동료들이 다가오자 차 트렁크를 열어 보라는 듯 옆으로 비켜서주었다.
“아니 이게...?”
차 트렁크 속의 내용물을 확인한 이들의 얼굴에 대번에 놀람이 번져나갔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이곳 한국에서는 구하기가 너무도 힘든 물건들이 들어있었기 때문이다.
“이것만 있으면 아무리 그놈이 날고 긴다고 해도 잡을 수가 있어.”
“너 도대체 이 물건들을 어디서 구한 거야?!”
흥분을 감추지 못 한 키킨이 서둘러 손을 집어넣어 조심스럽게 권총 한자루를 집어 들어 포즈를 취했다.
“햐~ 이거 정말로 오랜만에 만지는 놈인데?!”
한국에서 이놈을 손에 넣을 수 있을지 몰랐던 키킨인지라 절로 흥이 다 날 지경이었다.
그건 키킨 뿐만이 아니라 여기에 있는 이들 전부가 그러한 듯 보였다.
“아닐로 네 말대로 이것만 있으면 서민준이는 물론이고 일성회의 회장이라고 해도 처단해 버릴 수가 있는 일이지.”
필리핀에서 상대 갱단의 간부급 인물 한 명과 보스의 대가리에 총알을 박아 넣은 정적이 있던 키킨은 아직도 그 손맛을 잊지 못 하고 있었다.
그 때문에 그놈들에게 살해를 당하지 않기 위해 이곳에 도망 오게 되었는데 그 후로 한 번도 권총을 만져본 역사가 없었다.
“너희들은 나서지 마라. 내가 그놈 대갈통에 총알을 쑤셔 박아 줄 테니까.”
“키킨이 아주 흥이 올랐어...”
순간 주변에 있던 일행 등이 크게 웃음을 터트리며 박장대소를 했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총기가 아주 엄격하게 관리되는 이곳에서 먼저 선점을 해서 소지하는 자가 강자가 된다는 게 그들의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서민준이 총을 소지 하고 있을 리가 없다는 생각이어서 더욱더 그들이 웃음을 터트렸다.
“그런데 이런 좋은 물건들이 있으면 지들이 쓰면 될 것을 왜 의뢰를 하는 거지?”
“자신들의 손은 더럽히기 싫다는 거겠지. 내가 보기엔 이 일 뒤엔 중국놈들이 있을 것 같다.”
“하긴... 삼합회 놈들이 그놈에게 당했으니까 이대로 두고 보지는 않겠지.”
이미 필리핀에서도 삼합회를 겪어 보았던 그들인지라 잔혹한 손속에 대해서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게다가 서민준에게 당했다는 것도 알고 있으니 당연히 삼합회일거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내가 장담하는데 이놈을 들이미는 순간 그놈은 허튼 짓도 못하고 순순히 따라오게 되어 있다.”
주변을 둘러보며 말한 키킨이 하얀 이빨을 드러내며 다시 말을 이었다.
“필리핀에 있을 때 보스라 불렸던 놈도 그렇게 살려달라고 나에게 빌더란 말이야.”
동료들이 피라미들을 처리할 때 총구를 겨누는 그에게 살려 달라 애걸하던 그 모습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는 희열감으로 남아 있었던 것이다.
“더욱이 여기 한국에선 이놈은 더욱더 가치가 인정받는 세상이지.”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고 있는 걸까?”
이만석과 한 차례 뜨거운 시간을 보내고 그의 품안에서 잠시 잠이 들었던 차이링은, 깨어나 이만석이 침대에 걸터앉아 있는 모습을 보곤 천천히 상체를 일으켜 뒤에서 살며시 그의 목을 끌어안으며 작게 속삭였다.
“더 자도록 해.”
“꼬마아가씨 때문에 그래?”
차이링은 내일 이만석이 하란이를 만나러 간다는 것을 알고는 질문을 던졌다.
“만약 그 때문이라면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도 돼.”
천천히 목을 감고 있던 팔을 풀어 허리를 끌어안은 차이링이 그의 넓은 등에 살며시 머리를 기대었다.
“네가 날 사랑해 달라거나 그런 걸 바라지도 않아. 그저 이렇게... 곁에서 널 지켜 볼 수만 있는 거면 족하니까.”
이만석이 하란이와 사귀는 것은 물론 그녀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도 차이링은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은 하란이처럼 이성적으로 만난 사이가 아니라 적대적인 관계로 시작된 사이였다.
그리고 이곳에 온 것도 이만석이 납치를 하여 감금된 것이었으니 처음부터 지금까지 어긋난 만남이라 할 만 했다.
“그저 곁에서 지켜 볼 수 있는 조그마한 자리 하나면... 난 그걸로 족해.”
사랑하게 된 것은 자신이지 이만석이 아니었다.
그가 자신을 사랑해 달라고 바라지도 않을 것이고 그런 말을 하지도 않을 생각이었다.
그의 품에 안길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것 하나만으로도 차이링은 족했다.
‘생각보다 일찍 나왔나...’
폰을 꺼내 시간을 확인한 하란이 주변을 둘러보며 서있었다.
약속시간을 잡고 아침부터 화장을 하고 준비를 해서 집을 나섰는데 도착하고 보니 약속시간보다 30분은 더 일찍 나왔던 것이다.
‘매일같이 오빠가 먼저 와서 기다렸는데 30분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야.’
그렇게 주변을 서성이며 서있던 하란은 곧 매고 있던 백에서 손거울을 꺼내 한 번더 얼굴을 살펴보았다.
좋아하는 이성에게 예뻐 보이고 싶은 것은 여자로써 당연한 이치였다.
‘오빠는 찐하게 하는 것 보다 수수 한 게 좋다고 했으니까 괜찮을거야.’
기초화장만 하고 나온 것이 조금 걸렸던 하란이었지만 곧 전에 이만석이 해주었던 말을 떠올리고는 속으로 마음을 차분히 했다.
너무 찐한 화장보다는 한 듯, 안 한 듯 풋풋한 모습이 더 보기 좋다는 것이다.
그게 하란이에게도 잘 어울렸고 귀여운 느낌을 물씬 살릴 수 있어 수수 한 게 좋다고 말했었다.
비록 30분을 기다려야 한다지만 그에 대해 하나도 신경을 쓰거나 그런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그저 이만석과 데이트를 한다고 생각하니 그것만으로도 좋은 것이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고급스러운 외제차가 천천히 깜박이를 켜고 갓길로 들어서더니 하란이의 앞에서 천천히 멈추었다.
천천히 보조석 창문이 내려가고 그 속에 운전대를 잡고 있는 이만석의 얼굴에 하란이의 눈에 들어왔다.
“언제 도착했어? 연락하지.”
“아니야... 얼마 기다리지 않았는데 뭘... 그보다 오빠도 10분이나 일찍 왔잖아.”
활짝 웃음을 지으며 밝은 목소리로 말하는 하란이를 보고 웃음을 지은 이만석이 상체를 기우려 문을 열어주었다.
“자.. 타시죠.”
“그럴까요?”
이만석의 농담에 조신하게 화답한 하린이 다소곳하게 올라탔다.
“실망하시지 않게 오늘 하루 동안 편안히 모실 테니 레이디께서는 기분 좋게 제 에스코트를 즐겨주시면 됩니다.”
“이래봬도 저 정말로 귀하게 자란 여인이랍니다. 웬만한 걸로는 감동하지 않아요. 그런데도 절 실망시키지 않으실 자신이 있으신가요.”
이만석의 느끼한 농담에 하란이도 지지 않고 받아쳐주었다.
“물론이죠. 레이디께서 감동 할 수 있다면 설사 목숨을 걸어야하는 위험한 일이라도 할 준비가 되어 있는 게 바로 저라는 남자입니다.”
“풋!”
미소를 지으며 나긋한 목소리로 말하는 이만석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하란이 결국 웃음을 터트렸다.
“그만해 오빠...! 먹은 것도 별로 없는데도 속이 느글거리는 것 같아.”
그러면서 배를 쓰다듬는데 그 모습에 이만석이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 많이 느끼했어?”
“응! 너무 느끼해~!”
“알았어, 알았어... 앞으로 이런 장난 안칠게.”
그렇게 말한 이만석이 천천히 갓길을 빠져나가면서 음악소리의 볼륨을 좀 더 높였다.
“그럼 출발한다.”
데이트라는 것이 참으로 가슴을 설레게 하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다른 이들은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모르겠지만 하란이 한테는 그러했다.
이만석과 함께하는 이 시간들이, 이 사소한 것 하나하나들이 너무나 즐겁고 행복해 가슴을 두근거리게 해주었다.
가족들에게 받은 소외도, 차가운 시선도, 그리고 무시도 모두 잊을 수가 있는 것이다.
이만석이 예전보다 자신에게 사랑이 식었을지는 몰라도 하란이는 전혀 그런 것에 개의치 않기로 했다.
자신이 더 잘하면 되니까.
그만큼 더 위해주고, 아껴주고, 사랑해주면 되는 것이니까.
덜 사랑한다고 연인사이가 아닌 게 아니었다. 덜 위해주게 되었다고 사랑이 완전히 식었다고 할 수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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