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4화 〉 54화 응징
* * *
“날 죽일 것 같은 시선이로군?”
눈 빛 만으로도 사람을 죽일 수 있다면 김철중 의원의 시선이 딱 그러했다.
흰자위의 붉은 선들은 심 핏 줄이 터져서 붉게 번진 자국으로 상당히 살벌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만석은 그런 시선 속에서도 한껏 여유로운 목소리로 말을 하는데 위화감이 느껴질 정도였다.
“무슨 수작인 게냐.”
이건 이만석에게 한 말이 아니었다.
파랗게 질린 얼굴로 눈치를 보고 있는 박동구에게 한 소리다.
하지만 시선은 이만석에게 돌리지 않은 것이라 박동구는 자신에게 한 말인지 몰라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무슨 수작인지 물었다, 동구야...”
“그, 그게...”
그제야 자신에게 말을 한 것임을 안 박동구가 더듬으며 대답을 했지만 말이 제대로 나올 리가 없는 상황이었다.
“도대체 무슨 허튼 생각을 먹었기에 이런 개수작을 벌이는 게야.”
김철중 의원은 이만석을 끌어 들인 것이 박동구라고 생각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아무리 날고 기는 놈이라도 그 혼자서 이런 곳에 처들어 올 수 없기 때문이다.
어떤 놈이 이 대한민국에서 자신의 집에 함부로 들어 올 수 있단 말인가.
당연코 그런 놈은 없었고 미쳤다고 해도 그런 일을 저지를 놈은 없는 것이다.
한국에서 살고 싶지 않다는 가정 하에 벌일 수 있는 행위라고도 할 수 있지만 그런 일을 실제로 벌일 수는 없는 일이다.
하지만 자신의 심복이자 사위인 박동구가 적극적으로 도와준다면 그런 일이 벌어 질 수는 있었다.
“무슨 생각으로 이놈을 이곳으로 끌어 들였는지 모르겠지만 이일은 절대 조용히 넘어갈 상황이 아니야. 무슨 말이지 않겠느냐...”
“자, 장인어른......”
저 말이 하는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바로 알아들은 것일까.
미친 듯이 몸을 떠는 박동구의 얼굴에 공포가 서리기 시작했다.
“뭔가 착각을 하고 있는 모양이군.”
그 모습을 바라보는 이만석이 중얼거리는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김철중 의원이 바로 맞받아 쳤다.
“무사히 돌아갈 생각은 말아라. 어떤 꾐에 넘어가 이곳에 나타났는지 모르겠지만 이 땅에서 네놈이 발붙이고 살 길은 이제 없을 것이야.”
“공권력을 이용해서 날 매장할 생각인가... 그것도 아니면 사람을 시켜서 날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일 건가.”
하얀 이빨을 드러내며 말한 이만석이 걸음을 옮겨 김철중 의원에게 한 발 더 다갔다.
그렇게 되니 김철중 의원이 이만석의 얼굴을 바라보려면 고개를 더 치켜들어야 할 판이었다.
당연히 이만석은 오만하게 아래로 깔아보는 형국이 된다.
“하지만 그런 공권력도 지금은 소용이 없게 되겠구나. 날 죽이려고 사람을 부리려 해도 이곳을 벗어나야 가능한 일일 테고. 공권력을 이용해 날 깔아뭉개려고 해도 이곳을 벗어나야 할 수 있을 테니까.”
“이 조그만 방 안에서 실력 좀 있다고 마치 자기세상인 듯 말하는구나.”
“내가 당신을 손대지 못 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건가.”
“물론이지... 지금 네놈은 아주 큰 도박을 하고 있다. 목숨을 걸고 하는 미친 짓거리인 게지. 만약 작정을 하고 날 어떻게 한다고 해도 결국엔 네놈이 갈 길은 한가지 밖에 없을 테니 말이야.”
처음엔 갑자기 턱하니 나타난 이만석을 보고 놀람과 동시에 분노를 했던 김철중 의원이었지만 과연 정계의 거물다웠다.
어느새 침착함을 되찾아 현재 돌아가는 상황을 보고 있는 것이다.
“저 머저리 같은 놈이 어떤 꾀를 내서 손을 잡은 것인지는 모르지만 알려진 대로 한 수가 있는 놈이라면 앞으로의 일도 생각해 두었을 테지.”
김철중 의원은 현 여당의 한 계파를 이끄는 수장이자 정계의 거물이었다.
그런 인물을 무작정 입막음 하고 건드려 끝을 본다고 해도 그걸로 끝나는 게 아니었다.
이해타산이 얽혀 있는 이들의 보복이 들어올 것이고 그렇게 된다면 이만석인 이 땅에서 절대 발을 붙이고 살수가 없는 일인 것이다.
그렇게 되면 안하는 것만 못 하는 일로 죽도 밥도 안 된다는 처절한 상황에 봉착하게 되는 것과 다름없는 일이었다.
아마도 뭔가 거래를 하려거나 요구를 해올 것이 틀림이 없었다.
당연히 그 요구조건은 절대 가벼운 게 아닐 것으로 이런 식으로 접근을 해야만이 나눌 수 있는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그게 뭔지 아직 김철중 의원은 알 수가 없었다.
“나에게 뭔가 바라는 것이 있을 테니 이런 시위를 하는 것이겠지. 오냐... 그 대담성은 내가 인정을 해주마... 하지만 이대로 그 대화를 들어주기엔 저놈이 괴씸 해서 안 되겠으니 먼저 다리 한 쪽부터 아작 내고 하는 것이 바람직 할 것이야. 그걸 네놈이 해주어야겠다.”
그는 수읽기에 능한 사람이다.
어느새 자신의 페이스로 이만석을 끌어들이는 말을 함으로써 중심축을 자신이 잡으려고 했다.
그리고 그 내면에는 이만석이 자신의 말을 거절 할 리가 없을 것이라 내다보았다.
뭔가 요구 조건을 가지고 이런 일을 벌이는 작자라면 이 정도의 분위기와 눈치는 읽을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김철중 의원이 말한 것은 그저 박동구를 손봐주라는 말을 함으로써 자신이 우위에 서려는 것도 있었지만, 그걸 행함에 있어 반쯤은 자기 사람으로 받아 줄 수도 있다는 것을 내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도 김철중 의원의 시선은 어느새 박동구에게 가있었고 얼굴도 한결 편안해 보였다.
“자, 장인어른...”
뭔가 분위기가 묘하게 흘러가는 것 같이 보이자 박동구의 동공이 빠르게 흔들렸다.
그제야 장인어른이자 정계의 입문을 할 수 있도록 이끌어준 김철중이 어떤 사람인지 다시금 와 닿았기 때문이다.
아무리 능한 사람이라도 그와 대화를 주고받으면서 보이는 행동이나 말은 사람을 끌어들이는 뭔가가 있었고 또다시 그걸 내보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처음의 분노는 어느새 사라지고 없었고 이제는 현 상황을 느긋이 바라보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처음엔 이만석이 장인어른을 응징하러 온 줄은 알았지만 지금은 정말로 뭔가를 원하고 접근을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 만큼 박동구는 심적으로 아주 큰 혼란과 불안을 겪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까 전에 내가 한 말을 잊은 것인가.”
그때 가만히 듣고 있던 이만석이 입 고리를 말아 올리며 말했다.
“아까 전에 한 말이라니...?”
순간 반문을 했던 김철중 의원이 곧 이만석이 했던 말을 떠올리고는 안색이 대번에 굳어졌다.
“조건 같은 건 가져오지 않았다. 당신에게 요구 할 게 없단 말이지.”
“이런 미친놈......!”
그제야 김철중 의원은 이만석이 자신을 응징하러 왔다는 것을 알고는 경악에 찬 표정을 지었다.
말 그대로 자신을 아작 내기 위해 이곳에 찾아온 것이다.
뒷 일은 생각하지 않고 무작정 그런 행위를 벌이면 어떤 일이 뒤따라 벌어질지 알 텐데도 이런 사고를 치려 하는 것을 보니 사이코패스로 보일 정도였다.
그는 머리가 나쁘지 않다.
한 번 생각하고, 두 번 생각하여 상대를 요절내서 여기까지 성장을 하여 거물이 된 인물이 김철중 의원이었다.
이만석이 어떤 생각으로 이곳에 온 것인지 알았다고 해도 조건을 내걸면 끌어 올 수 있다고 믿었다.
그것을 말하려고 입을 열려고 하는데 순간 목이 턱하니 막히며 말이 나오지가 않았다.
“컥!”
목을 보여 잡은 채 바닥에 엎어진 김철중 의원의 안색이 대번에 붉게 변했다가 하얗게 질렸다.
숨이 턱하니 막혀서 그런 것이다.
“그 동안 그 세치 혀 바닥으로 많은 이들을 부렸겠지만 이젠 그것도 쓸모없게 되었구나.”
아무런 말도 내뱉지 못 하고 켁켁 거리며 목을 부여잡은 채 바닥에 엎어진 김철중 의원을 내려다보던 이만석이 고개를 돌려 박동구에게 시선을 주었다.
“아직도 이 자가 두려우냐.”
“......”
박동구는 바닥에 쓰러진 박동구의 모습을 믿을 수 없다는 듯 멍하니 바라보다가 이만석의 목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자신을 바라보는 표정은 인자했고 오만해 보였다.
그 무엇도 두려울 것이 없는 이의 시선이었고 제왕의 기운이 엿보였다.
“이제 두려워 할 이유가 없다.”
박동구의 시선이 다시 김철중 의원에게로 돌아갔다.
그는 아직도 자신의 목을 부여잡은 채 켁켁 거렸는데 이제 흰자를 다 내보일 판이었다.
이런 모습을 본 적이 있었던가.
그동안 절대 넘어 설 수 없을 것이라 보았던, 거대한 벽처럼 느껴지던 김철중 의원이 이렇게 바닥에 허우적거리는 모습을 볼 것이라 생각이나 했을까.
절대 그렇지 않다.
“헉헉!”
정신을 잃을 뻔한 아찔한 순간이 되어서야 숨통이 트인 김철중 의원이 격하게 숨을 몰아쉬며 호흡을 골랐다.
“이, 이놈......!”
고개를 들어 이만석을 올려다보는 김철중 의원의 눈에 분노가 서려있었다.
“포기하시지요.”
그때 옆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김철중 의원은 자신이 잘 못 들었다고 생각하며 고개를 돌렸다.
“이 분이 이곳에 들어선 순간부터 장인어른은 끝난 것이나 다름없소.”
“박동구 네놈이......!”
자신감이 가득한 표정으로 웃음 지으며 바라보는 박동구의 눈동자가 거만하게 바뀌어 있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