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2화 〉 52화 응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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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이대로 분위기가 굳혀지는 것은 아니겠지?”
이시모토가 마음에 들지 않는 다는 표정으로 인상을 살짝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그러자 왼편에 앉아 있던 민 대머리의 사내가 눈치를 보며 대답을 했는데 그 또한 좋은 표정은 아니었다.
이곳은 수유동의 7층 빌딩 나이스머니라는 회사의 안으로 야마구찌회의 자본으로 일어선 사금융회사이다.
사장실이기도한 이곳에 모여 있는 인물들은 지부장 이시모토를 필두로 보좌관 타카시, 그리고 야마다와 이세가와가 나란히 앉아 있었다.
“돌아가는 꼴을 보고 있으면 다시 예전처럼 굳혀지려는 것 같이 보여. 물론 경찰들의 움직임 때문에 일성회가 그렇게 몸을 사리고 있다고 하지만 삼합회놈들 또한 별다른 움직임이 없으니 원...”
“그놈들도 분위기를 보아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서민준이와 제법 시끄러웠으니 이젠 자중 할 때도 된 것이라 생각을 했겠지요.”
“음...”
그럴 수도 있겠지만 마음에 드는 것이 아니여서 인상이 펴질 줄을 몰랐다.
“서민준이는 어떤가?”
“그놈도 별다른 움직임은 없습니다. 다만...”
“다만 뭐?”
타카시가 잠시 이시모토의 시선을 의식하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서민준이가 또 정인철 회장을 만나러 간 것이 포착 되었습니다.”
“또 만나러가?”
혀를 차며 반문했던 이시모토의 이마에 주름이 하나 잡히더니 절로 찡그려졌다.
한 번도 모자라 두 번씩이나 만나러 갔다는 것은 상황이 좋지가 않았다.
전에 만남을 가졌을 때는 좋은 조건을 제시를 해도 그렇게 거절을 하더니 또 다시 정인철 회장을 만나러 갔다고 하니 괴심 했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그놈이 일성회 쪽으로 붙으려는 모양이지.”
“만나러 간 것만 알 뿐이지 아직 확실한 것은...”
“미행했다는 걸 눈치 챘을까?”
“거리를 두고 쫒아갔으니 알아차리진 못 했을 것입니다.”
“아니야... 장담 할 게 아니지. 그 놈은 보통내기가 아니니까. 어쩌면 알고서도 신경을 쓰지 않았을지도 몰라.”
이시모토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야마다의 안색이 굳어졌다.
“설마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만약 그렇다면 이건 우릴 무시하는 처사와 다름없는 행위입니다.”
“일성회에 이어 삼합회와의 분란속에서도 살아남은 놈이야. 그 정도의 자신감은 충만하겠지.”
“분위기가 쉽게 우리가 원하는 쪽으로 흐를 것 같지가 않습니다.”
이시모토와 이들이 이렇게 기분이 언짢은 이유 중에 하나가 바로 한국에서 흘러가는 분위기를 보면 마치 뜨겁게 달구어져 가는 가마솥과 다르지 않은 형태였다.
그도 그럴 것이 일성회의 일이 있고 난 후로 그들에게 수모를 안겨 주었다는 서민준에 대해서 관심을 드러내기 시작하더니, 그 뒤를 이어 삼합회와의 일이 벌어져서 화제의 중심으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아무리 이만석이 날고 긴다고 해도 이번만큼은 혼자서 어림없을 것이라 생각했던 이들이었지만 그들에게서도 당당히 살아남아 실력을 과시했으니 이건 놀라운 것을 넘어 대단한 일이었다.
그런 분위기를 읽은 이시모토가 이만석을 끌어들이려고 했는데 그날 딱 부러지게 거부를 하고 자리를 벗어났으니 자존심이 상당히 상하는 일이었다.
그렇다고 조건이 나쁜 것도 아닌 것이 자본은 이쪽에서 다 대주면서도 수익은 공평하게 가르기로 한 것이다.
이런 통큰 조건을 제시했는데도 과감하게 뿌리치다니 생각지도 못 했고 어처구니또한 없었다.
“이번 기회에 아예 서민준이를 제거하는 것이...”
“어떻게 말이냐.”
타카시가 조심스럽게 말은 꺼냈지만 방법을 물어오는 이시모토의 말에 별다른 대답을 하지 못 했다.
“암습을 해서 제거를 할까? 아니면 독을 이용해 그놈을 죽일까.”
그것들은 전부 삼합회 쪽에서 이용 했을 것들로 나무라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
“총기를 이용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이세가와가 생각하고 있던 바를 조심스럽게 제시했다.
“삼합회 놈들도 그 생각을 하지 못 했을까?”
“물론 그렇지는 않겠지만 일단 중요한 것은 아무리 날고 기는 놈이라고 해도 심장에 한 방 맞으면 그걸로 끝입니다.”
삼합회가 주로 상대를 암습할 때 이용 하는 것이 독이라고 하지만 총기를 이용하지 않는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들이 총을 사용했다는 증거가 나타나지 않았으니 의문인 것이다.
물론 몰래 사용 했을 수도 있겠지만 만약 정말로 마음먹고 총기를 사용 했다면 이만석이 살아서 이렇게 당당히 활보할 것이라 생각지 않았다.
그래서 이시모토도 의심쩍긴 했지만 삼합회쪽에서 왜 총기를 사용하지 않은 것인지 생각하는 것이다.
한국이 다른 나라에 비해 총기관리가 엄격하여 사용하기 꺼려진다는 것도 있긴 하지만, 이정도로 수모를 당할 정도면 삼합회쪽에서 총기를 사용해도 전혀 이상할 게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그놈들이라고 해도 엄연히 말하면 이곳은 한국이니까 말입니다.”
총기를 잘 못 사용했다가 걸리면 보통 심각한 일이 아닌 것이다.
“하지만 확실한 방법 아닙니까?”
“이세가와. 잘 못하다 일이 틀어질 수도 있다.”
야마다가 반문을 하며 나무라자 이세가와역시 무서울 게 뭐가 있냐는 듯이 다시 입을 열었다.
“후환을 남겨둘 바에야 확실해 처리해 버리는 게 났잖아? 계집마냥 몸을 사리가다 될 것도 망치는 수가 있는 법이지.”
“네놈은 앞뒤 재는 것 없이 밀어 붙이려는 그 성격을 고치지 않으면 언젠가 된통 당하게 될 거다.”
“그건 두고 볼 일이지.”
계집이라는 말에 기분이 나빠서일까 쏘아붙이는 야마다와 날을 세우는 이세가와였다.
“그만.”
하지만 그것도 이시모토의 한 마디로 인해 다시 자중하는 분위기로 변했다.
여기서 서로 얼굴을 붉히며 싸울 필요가 없는 일이었다.
“이세가와의 말대로 서민준이 그 놈은 한국에 뿌리를 내리는 데 골치께나 썩게 할 놈인건 분명하다. 확실히 제거 할 수 있다면 총기 사용도 나쁘지 않은 방법이지.”
“그렇습니다.”
이시모토가 자신의 말에 옹호하고 나서자 이세가와의 얼굴에 절로 웃음이 깃들었다.
“하지만 야마다의 말도 틀린 것이 아니다. 총기를 잘 못 사용했다가 일이 커지면 은신의 폭이 상당히 좁아 질 수가 있어.”
“맞는 말씀입니다.”
이시모토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야마다 또한 곧바로 동조하고 나섰다.
“필리핀 갱을 이용하면 어떨까요?”
“갱을 이용하자고?”
“한국으로 몰래 숨어 들어온 그 놈들은 손속이 잔인하기로 유명하지 않습니까. 충분한 만큼의 액수를 쥐어 주기만 하면 어떤 짓이든 할 놈들이지요.”
“푼돈으로 연명하는 놈들이니 한 방법이 될 수는 있겠다.”
마치 좋은 생각이라는 듯 야마다가 이번엔 이세가와에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가 생각하기에도 필리핀 갱을 이용하는 방법이 나쁘지 않은 것 같았다.
제대로 근거지 없이 무리를 지어 활동하는 그 놈들은 승냥이때와 다름없는 처지 였는데 불법체류자의 신분으로 돈만 만질 수 있다면 납치는 물론이고 제대로 한 몫 쥐어주면 총기로 살인도 할 수 있는 집단인 것이다.
“만약 실패를 하더라도 우리라고 밝혀질 일이 없으니 괜찮을 것입니다.”
“음...”
작게 숨을 내쉬는 이시모토 였지만 이쪽이라는 걸 들키지 않는다면 나쁘지 않은 방법이었다.
그리고 필리핀 갱들은 말한 것 과 같이 제대로 돈만 쥐어준다면 확실하게 처리를 하는 놈들이었다.
장인어른과의 대화가 끝나자마자 화장실로 들어선 박동구는 곧바로 문을 잠갔다.
그럼에도 잠시 주변을 둘러보며 눈치를 보더니 조심스럽게 폰을 꺼내들어 전화를 걸었다.
잠시간의 시간이 흐르고 통화음이 여러 번 들려왔다 싶은 순간 등골이 오싹하게 만드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무슨 일이지?]
“그, 그것이...”
순간 당황한 박동구가 마른침을 삼키며 호흡을 천천히 골랐다.
“그것이 드릴 말씀이 있어서 전화를 드렸습니다.”
[뭐냐.]
별 감정이 섞여 있지 않은 목소리임에도 박동구는 상당히 무섭게 들려왔다.
“아, 아무래도 장인어른께서 손을 쓸 것 같습니다.”
[손을 쓴다?]
“예... 그게 어떻게 된 것이냐하면......”
박동구는 김철중 의원과 나누었던 대화를 전부 이만석에게 일러주었다.
토씨하나 틀리지 않고 생각을 더듬으며 알려주었는데 마치 첩자의 모습과 다름없는 형국이었다.
[그러니까. 김철중 그 자가 나를 잡아드려 국보법으로 처리 할 수도 있다 이 말이냐.]
“그게 민감한 사안이라 확실치는 않습니다. 하지만 그것 말고도 방법은 많으니 손을 써서 감옥이 집어넣으려는 것은 확실 한 것 같습니다.”
[죽이려고 할 수도 있고 말이지.]
“예...”
[집에 있나?]
갑작스러운 질문에 무슨 말을 하는지 몰라 대답을 못 했던 박동구는 다시 들려오는 말에야 이해를 하곤 대답했다.
[김철중 의원이 오늘 집에 있냐고 물었어.]
“예... 있습니다.”
송골송골 이마에 맺히는 땀을 손 등으로 훔친 박동구가 이만석의 대답을 기다렸다.
[아무래도 손을 써야겠구나.]
“손을 쓴다고 하심은...”
[그곳으로 내가 가겠다는 말이다.]
“......”
순간 박동구의 안색이 파랗게 질렸다.
[잘 했다.]
“예, 예...”
곧바로 자신에게 전화를 걸어 알려준 것에 대한 칭찬이었다.
[저녁에 찾아 갈 것이니 기다려라.]
“예.”
그것으로 대화를 끝낸 박동구는 크게 호흡을 고르며 빠르게 두근거리는 마음을 안정시켰다.
‘내가 살아남으려면 이럴 수밖에 없다.’
장인어른에게 배신을 하는 행위였지만 이게 자신이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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