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1화 〉 51화 응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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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뿐이십니까.”
이만석은 야망을 품고 있는 정인철 회장의 두 눈을 직시하며 똑바로 질문을 던졌다.
과연 이 조직을 이끌어갈 사람만을 찾는 것인가를 물어보는 것이었는데, 정확히 말하면 다른 속내가 무엇이냐는 말이었다.
“사실 일성회를 현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 인제를 찾는 것이라면 조직 내에서도 얼마든지 찾을 수 있지. 내 비서실장을 맡고 있는 황석진이만 해도 그만한 재목은 돼. 하지만 그 뿐이야.”
거기까지 말한 정인철 회장이 또렷한 시선으로 이만석을 응시했다.
“조직을 현 상황을 유지는 시켜 나아갈 수 있겠지만 그 이상은 무리라는 말이네. 이번에 소탕작전을 벌이면서 내가 무엇을 느꼈는지 아나?”
“글쎄요.”
“구심점이라네. 조직을 똑바로 지탱할 구심점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지.”
“이해 할 수가 없군요, 회장님 정도면 구심점이 되지 않겠습니까. 그러니 조직이 이 정도로 방대해 질 수 있었겠지요.”
이만석은 정인철 회장이 하는 말에 의문을 가졌다.
그도 그럴 것이 일성회는 작은 조직이 아니었다.
서울은 물론이고 경기도, 그리고 충천도 일대를 잡고 있는 대조직이었기 때문이다.
현실적으로 한국에서 제일 큰 조직을 만들었다고 해도 될 사람이 정인철이라는 인물인데 조직의 구심점이 잡혀있지 않다는 것은 참으로 이해 할 수가 없는 말이었다.
“물론 그렇게 볼 수도 있겠지. 조직의 보스가 믿을 만한 사람이 아니라면 따라올 인물이 없을 테니까. 하지만 자네가 아니었다면 내부에서 아주 큰 혼란을 초래 할 수도 있었을 상황을 경험했지.”
“차이링 말이로군요.”
“그렇다네. 물론 자네로 인해 촉발 되었다고 할 수도 있었지만 그녀의 말에 동조를 하여 일어서려 했던 이들이 얼마나 있었던 것인지 솔직히 말해 많이 놀랐어. 물론 내부에 불만을 품고 있는 이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경기도 지역은 물론 서울 내에서도 그런 이들이 적지 않았다는 것은 심각하게 보아야 했을 일이었어. 그저 웃으면서 이번기회에 소탕했다고 잘 되었어라며 웃을 일이 아니란 말이네. 그녀의 말에 동조하지 않은 이들이 분명히 있었을 것이고 그렇게 하지 않았다고 해서 불만을 품지 않은 것은 절대 아니란 말이지.”
그저 조직을 키우는 것이라면 정인철 회장은 아무런 걱정을 하지 않았다.
마음만 먹는다면 조직은 키울 수가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조직을 키운다고 해서 다 능사는 아닌 것이다.
뼈대가 튼튼하지 않은 집은 조금만 강한 바람이 휘몰아쳐 와도 흔들리다 무너질 것이고, 그런 상황이라면 사분오열이 되어 결국엔 조직이 무너지어 갈라지게 될 것이었다.
만약 차이링이 바라던 대로 일이 진행 되었다면 일성회는 내분에 휩싸여 잘 못하다 큰일을 치루었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다만 이만석이 나타남으로 해서 그런 일이 빨리 일어나려 했을 뿐이었고, 시간이 더 흘렀다면 아마도 더 곪아 터졌을 것이 분명한 사실이었다.
“난 내 그릇이 어느 정도인지 잘 알고 있어. 품고 있는 꿈이 크다고 해서 그릇이 커지는 것은 아니란 말이지. 그리고 이제 나는 옛사람이 되어 가고 있어. 나 하나만을 믿고 나아가기엔 쉽지 만은 않은 상황이야. 비록 현재는 내가 승기를 잡고 있고, 삼합회와 야마구찌회가 그 뒤를 따라오는 형국이라지만 그 형세는 언제고 뒤집힐 수가 있단 말이네. 이곳이 안방이라 이정도로 이끌어 갈 수가 있었던 것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어림없었을 일이지.”
삼합회는 두 말 할 것도 없이 아시아지역을 주름잡고 있는 대조직이었다.
중국 대륙을 발판으로 세력을 확장시켜 국제적으로 그 힘이 상당히 커져 있는 상태였고, 이젠 러시아의 마피아와 유럽의 다른 조직들에게도 그 위세가 알려지고 있는 형국인 것이다.
거기에 일본의 대조직이라 할 수 있는 야마구찌회 또한 그동안 축적해온 기반으로 뻗어나가 삼합회와 자웅을 겨루어 볼 직한 힘을 길렀으니 가히 대단하다고 할 수가 있는 상황이었다.
그들에 비하면 일성회는 그렇게 큰 조직이라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이대로 현 상황을 유지하는 것에 만족하고 안주를 한다면 언제고 그들에게 먹힐 수가 있는 일이야.”
계속해서 이런 상태로만 흘러가지 않을 것이었다.
언제고 삼합회나 야마구찌회 쪽에서 반격을 하여 들어올 것이고 아홉 번을 막는 다고 쳐도 한 번의 벌어진 틈으로 인해 큰 혼란을 초례 할 수가 있는 일이었다.
수비지향적인 자세가 아니라 공격지향적인 자세로 바뀌어야 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럴려면 절대 무너지지 않을, 그리고 굳건히 버티고 맞설 수 있는 이가 조직을 이끌어야 했고 영웅담까지 흘러나오며 화제의 중심이 되어 있는 이만석이라면 그런 재목에 가까운 인물이라 할 수가 있었다.
“일성회는 급성장한 조직이라 아직 내부가 완전히 다져지지 않은 상태야. 언제고 한 번 제대로 사고가 일어나버린다면 그대로 허물어 질 수도 있는 상황이라는 말이네. 차아링은 그것을 노리고 파고들었었고.”
“그래서 절 지목한 것이란 말입니까.”
“그렇다네. 혼자서 일성회는 물론이고 삼합회를 상대로 당당히 죽지 않고 살아남은 인물. 그런 인물은 흔치않은 것은 물론 지금까지 존재하지도 않았지. 그런데 자네는 이렇게 그 두 곳의 표적이 되고도 이렇게 당당히 살아남아 활보하고 있지 않나. 자네가 원한다면 조직을 일으켜 세울 수도 있는 상황이란 말이야. 뜻을 모은다면 숫자가 어느 정도가 될지 모르겠지만 따를 사람들이 나타날 것이네. 우리 일성회 내에서도 말이지.”
이만석은 정인철 회장이 무엇을 갈구하고 있는지 이제야 어느 정도 알 수가 있을 것 같았다.
그는 어떤 외세의 힘에도 흔들리지 않을 굳건한 조직을 바라고 있었다.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 한국을 벗어나 삼합회 처럼, 그리고 야마구찌회가 그러려고 하는 것 처럼 국제적으로 나아가길 바라고 있는 것이었다.
그는 한국 땅에서만 만족하는 것이 아닌 명실 공히 세계를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
“일성회가 무너진다면 그걸 시작으로 삼합회든지, 야마구찌회라든지 그들의 힘을 빌려 세를 끌어올리려는 이들이 많이 나타날 것이네. 그렇게 된다면 외세의 힘을 빌려 이 대한민국의 땅을 석권한 것이나 다름없는 상황이니 이 얼마나 치욕적인 상황이 되겠는가?”
“그래서 구심점이 필요하다는 것입니까.”
“그렇다네. 당당히 이 땅을 석권하여 그들에 맞설 수 있는 기반을 다져 세계로 뻗어 나가는 것. 그것이 오래전부터 키워온 내 꿈이자 야망이었지.”
“제가 그럴 그릇이 된다고 보십니까?”
“장담 할 수는 없네. 어쩌면 아주 큰 도박을 벌이는 행위라 할 수가 있겠지. 하지만 내 눈이 틀렸다고 생각지 않아. 그리고 아까도 말 했지만 그것을 증명하는 것은 내가 아니라 자네야. 이 조직이 자네 것이 되느냐 마느냐는 스스로에게 달려있다는 소리지.”
거기까지 말한 정인철 회장이 더 이상 입을 열지 않은 채 이만석을 바라보았다.
“전 스스로 뛰어나다 생각지 않습니다. 그렇게 큰 웅지나 뜻을 가지고 살아온 인생도 아니죠. 만약 제 실력을 입증하여 조직을 인계받았다고 해도 회장님이 원하는 것처럼 그런 웅지를 품지도 않을지 모릅니다.”
“그 상황이 되면 조직이 무너지든, 아니면 앞으로 나아가든 자네에게 달린 것이지. 말 했지 않나. 난 도박을 하는 것이라고.”
그때 이만석이 생각을 고쳐먹고 다르게 행동하더라도 별 수 없을 것이라는 말과 다름없는 위험한 발언이었다.
그런 말을 하면서도 정인철 회장은 마치 자신과는 상관없는 이의 대화를 하는 것처럼 말을 한다.
“전 누군가에게 머리를 숙이고 들어가고 싶지 않습니다.”
“그것 또한 전에 나에게 했던 말로 인해 잘 알고 있다네. 걱정하지 않아도 돼. 후계자가 된다고 해서 내 밑으로 들어오라는 그런 얘기는 아니니까.”
“말 그대로 야망이란 말입니까.”
“이 쪽 세계에 들어서면서부터 꿈꿔오던 내 진정한 바람이기도 하지.”
그는 지금 힘을 키워 자신만의 천하를 이룩하려고 그러는 것이 아님을 깨달았다.
말 그대로 삼합회에 못지않은 대 조직으로 우뚝 일어선 일성회를 바라고 있는 것이었다.
이곳 한국을 벗어나 세계로 뻗어나가 세계를 주름잡는 그런 원대한 꿈을.
“지금 바로 결정해 달라는 소리가 아니야. 시간을 줄 테니까 잘 생각을 해보도록 해. 좋게 말하면 나처럼 맨땅에 헤딩을 할 필요가 없다는 소리와도 같지 않나? 발판은 내가 닦아 놓았으니 말이야.”
그렇게 정인철 회장과의 만남을 끝내고 다시 돌아가는 차안에서 이만석은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나를 통해 야망을 꿈꿀 수 있는 희망을 보았단 말인가.’
생각하면 할수록 어이가 없기도 하면서도 조직의 명운을 걸겠다는 것을 보면 마치 그가 품고 있는 ‘한’과도 같이 느껴졌다.
‘난 웅지를 키우거나 정인철 회장과 같이 야망을 품고 뜻을 세우려는 사람과는 거리가 멀다.’
이만석은 자신에 대해서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정인철 회장이 자신을 어떻게 보았는지는 모르지만 자신은 대업을 이룬다거나 하는 그런 풍모의 사람과는 거리가 멀었던 것이다.
아직은 더 생각을 해봐야 할 문제였고 그렇다고 이대로 쉽게 넘어 갈 일도 아니었다.
“요즘 아주 시끄러워.”
“하도 사건사고가 많다보니 그런 것 같습니다.”
“내 말은 그 뜻이 아니야.”
눈치를 보며 조심스럽게 대답했던 박동구가 눈을 가늘게 뜨며 자신을 직시하자 절로 몸이 움찔 거렸다.
“요즘 아주 바쁘게 행동하고 있다지? 내 이름까지 들먹이면서.”
“그것이...”
땀을 삐질 흘리면서 얼버무리는 박동구를 보며 김철중 의원이 다시금 말을 이었다.
“서민준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되었나?”
“시정잡배는 아닌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난놈이란 소리로군.”
“예.”
“무엇을 보고 그런 소리를 하는 거지?”
“예?”
“어떤 식으로 조사를 벌였고 무엇을 발견하여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냐고 물었어.”
그 질문 박동구는 쉽게 대답하지 못 하고 잠시 생각을 하는 듯 했다.
여기서 자신이 어떻게 대답을 하느냐에 따라 자신의 운명이 다시금 갈릴 테지만 그가 갈 방향은 한 곳밖에 없었다.
“형사를 이용해서 한 번 재려고 했었던게지?”
막 입을 열려고 했던 박동구는 갑자기 흘러나온 대답에 절로 헛숨을 들이켰다.
“그랬던 것이 일이 쉽게 풀리지 않아 서인식이라는 놈을 묻으려고 하는 것이고 말이야.”
아직 아무런 얘기도 꺼내지 않았고 그런 대화가 오간 적도 없었는데 생각지도 못 한 말을 꺼내니 절로 심장이 쫄깃해져왔다.
“어렵게 생각하지 마. 그 정도도 모른다면 내가 정계에 남아 있을 이유가 무엇 있겠나.”
쓴웃음을 지은 김철중 의원이 떨고 있는 박동구를 바라보며 다시 느긋하게 입을 열었다.
“그 정도도 되지 못 한다면 말 그대로 시정잡배인거지. 자네가 생각하는 한 수도 막아내지 못 하는 인물이 무엇이 난 놈이란 말인가.”
자신을 무시하는 발언과 다름없는 소리였지만 박동구는 뭐라 말하지 못 했다.
“하지만... 난 도구로 쓸만한 자로 원하는 것이지, 언제고 날을 세울 수 있는 범의 새끼를 원하는 것이 아니란 말이지.”
“그 말씀은...”
“배포가 있고 대담성이 있는 자인 것 같다만 가만히 생각을 해보면 윤정호와 끈이 닿아 있는 자가 아니던가? 동구야... 내가 왜 이만큼 성장을 하여 거물이 되었는지 알 수 있겠느냐.”
“제가 아둔한지라 잘 모르겠습니다.”
“완벽한 일이라도 한 번 생각하고 두 번 생각해서 돌아갈 줄 아는 성품이라 이만큼 일어 설 수 있었던 것이야. 막무가내로 일을 몰아붙인다고 다 되는 것이 아니야. 때론 돌아 갈 줄도 알아야하지.”
“예...”
“위험한 싹은 사전에 제거하고 성장해 온것이 나란 말이네. 그런 관점에서 보면 그놈은 쓸모 있는 것을 넘어 좋은 도구 일 수도 있지만 아가리를 나에게 들이 밀 수도 있다는 소리야. 윤정호와 일단 만났다는 것이 중요한 일이지.”
박동구는 김철중 의원이 무엇을 생각하는지 잘 알았다.
‘장인어른은 그분을 잡아드리려 하고 계신다.’
이건 자신에겐 아주 중대한 일로 서둘러 행동을 해야 했다.
‘내가 살려면 알려야 한다. 장인어른이 행동에 나서기 전에 내가 먼저 알려야 돼.’
이 대화가 끝나는 순간 박동구는 곧장 이만석에게 알릴 생각을 했다.
그것이 자신이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 생각했고 한 발 더 나아가 고통에 허우적 거리지 않을 수 있는 일이었다.
이미 그에겐 앞에 있는 장인어른이자 목숨을 틀어쥐고 있는 김철중 의원보다도 인간같지 않은 이만석이 더욱더 무서웠기 때문이다.
김철중은 살아 있는 권력으로 자신의 목숨을 틀어쥐고 있다지만 그는 엄연히 사람이었다.
하지만 이만석은 인간이 아니라 말 그대로 괴물인 것이다.
심적으로 압박을 하며 몰아세우는 김철중 의원보다 현실적인 고통과 말초적인 공포심을 자극하는 이만석 무서운 것이 더 당연한 이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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