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0화 〉 50화 응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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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이 흐르고 이만석은 차를 끌고 손님으로 저택을 방문하였는데, 다른 누구도 아닌 정인철 회장의 자택이었다.
한 번 초대 되어 간 적이 있었으니 이걸로 두 번째로 설마하니 다시 초대를 할 줄은 몰랐던 것이다.
갑자기 전화를 한 것도 그렇고 그 전화가 초대를 하는 것이니 의외였다.
허나 이만석은 거절하지 않고 당당히 정인철 회장의 초대에 응대를 했고 이렇게 찾아가게 되었다.
점심시간에 맞춰 도착한 이만석은 예의 그 주차장에 차를 정차시키고 경호를 서고 있는 이의 안내를 받으며 저택 안으로 들어섰다.
미리 대기하고 있었던 것인지 정인철 회장은 안으로 들어서는 이만석을 기분 좋게 맞아주었다.
“어서 오게.”
“그간 잘 계셨습니까?”
“나야 언제나 잘 지내지. 그보다 초대에 응해주어서 고맙구만. 배고플 텐데 어서 들어가지.”
정인철 회장과 함께 식당으로 향한 이만석은 가정부로 보이는 아주머니들이 분주하게 음식들을 나르는 모습을 볼 수가 있었는데 어느새 한상 푸짐하게 차려져 있었다.
하지만 그런 것들 보다는 이만석은 좀 생각을 달리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다른 무엇도 아니라 오늘은 저번처럼 일성회의 간부들이자 측근들로 보이는 이들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넓은 식탁이 좀 허전하게도 보이긴 하였지만 자신만 부른 것 같아 조금 의아하기도 했다.
“오늘은 손님이 자네 하나뿐이니 한 상 가득 차려져 있는 것이 과하게도 보일거야.”
“음식은 많이 남길지도 모르겠군요.”
“그런가? 그래도 이렇게 차려준 걸 생각해서라도 먹을 수 있을 만큼은 먹어두도록 하게. 음식이 아깝지 않겠나?”
정인철 회장의 오른쪽 보좌 석 자리에 몸을 앉힌 이만석은 그렇게 단 둘이서 조촐한 오찬을 만끽했다.
음식 하나하나가 간이 잘 배어 있었고 김치찌개도 얼큰한 것이 참으로 맛이 있었다.
하긴 이 음식을 먹는 것이 하나의 대조직을 이끄는 회장이었으니 당연히 음식 솜씨가 나쁠 리가 없었다.
식사를 하는 동안에는 별다른 대화는 없었다.
그저 안부를 묻는 것이나 현재 돌아가는 경기에 대한 듯 별 시답잖은 대화만을 한 두 번 나누었을 뿐이었다.
그렇게 식사가 끝이 나고 자리에서 일어선 이만석이 정인철 회장을 따라 서재로 향했는데, 잠시후 차 두 잔이 놓아지고 난 후에야 마주보고 앉아 있는 이만석에게 조금 진지 할 수 있는 얘기를 꺼내었다.
“삼합회와의 일은 이제 좀 정리가 되었는가?”
“특별한 접촉도 없고, 상황을 보면 그런 것 같습니다.”
이미 예상하고 있던 대답이어서 정인철 회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자네가 데리고 있는 삼합회 지부장 말이야.”
“예. 말씀하시죠.”
“어떻게 처리 할 생각인가?”
“쉽게 내릴 결정이 아니어서 아직 고심 중에 있습니다. 그 여자에게 듣기로는 자신이 죽을 지도 모른다더군요.”
“죽을지도 모른다?”
“예, 이미 자신의 효용가치는 끝이 났다고 하면서.”
“허어...”
작게 혀를 차는 정인철 회장이었지만 그런 말과는 다르게 크게 놀라는 것 같지도 않았다.
냉정 할 수도 있는 처사였지만 조직을 어떤 식으로 관리하느냐에 따라서 그곳만의 규칙과 생리가 정해지는 것이다.
당연하게도 그 방법들이 잔인 할 수 있는 것들이 존재 할 수도 있었지만 이쪽 세계가 원래 그런 잔인한 일도 벌어지는 게 냉정하다고 말 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강자만이 살아남을 수 있는 세계이고 그런 것들이 삼합회를 더욱더 강하게 만들었을지도 모를 일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언제까지 데리고 있을 수는 없는 일이니 곧 결정은 나겠지요.”
“어디에 감금을 한 것인지는 몰라도 마치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 처럼 보이는걸 보면 자네도 참 대단하구만.”
삼합회도 사라진 차이링의 흔적을 찾지 못 했고 정인철 회장도 이만석이 데리고 있다는 것만 알뿐 다른 것은 하나도 알 수가 없었다.
물론 이만석이 차이링을 데리고 있다는 것을 공식적으론 모르는 것이여서 그럴지도 모를 일이지만, 마치 없었던 사람처럼 사라진 것을 보면 아주 찾기 힘든 곳에 감금한 것 같았다.
“차가 식겠군. 들게.”
짧은 대화를 주고받은 정인철 회장이 이만석에게 차를 권했다.
잠시간의 대화가 중지가 되었고 찻잔을 든 이만석이 한 모금을 마시고 두 모금, 세 모금째 마시고 다시 내려놓았을 때 정인철 회장이 다시금 입을 열었다.
“자네는 요주의 인물이 되었어.”
“제가 말입니까.”
반문을 하며 바라보는 이만석의 모습에 쓴웃음을 지은 정인철 회장이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말을 이었다.
“우리 일성회는 물론이고 삼합회에게 표적이 되고도 살아남은 위인이 바로 자네아닌가. 듣기로는 그 쪽에서 킬러들을 보내어 자네를 없애려고도 했다는데 그들 속에서도 살아남은 것을 보면 대단하지.”
“죽지 않으려 행동 했을 뿐입니다. 그렇게 대단하다고 칭찬 받을 일이 아니지요.”
“그렇게 겸손할 필요가 없네. 십령방주인 양두라는 자까지 한국으로 입국을 했었어. 다른 이유가 있었을지 모르겠지만 정황을 보면 아마도 자네 때문에 왔을 것이라 생각이 돼.”
처음엔 왜 양두가 한국에 입국을 하였는지 정인철 회장은 의문이 들었지만 주시를 하면서 상황을 지켜보니 거기에 이만석이 관계되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도 그럴 것이 그가 돌아가고 난 후에 삼합회의 내부 소란이 잦아들었기 때문이다.
“이번 일로 인해 자네는 유명인사가 되었어. 우리 일성회내에서는 물론이고 삼합회, 그리고 야마구찌회에서도 자네를 주시하고 있을 것이네.”
차이링이 저번에 했던 말이었지만 이만석은 그런 내색을 보이지는 않고 그저 의외라는 듯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이시모토라고 하더군요.”
“이시모토?”
“야마구찌회의 지부장이라면서 자기 소개를 했던 자 말입니다.”
“벌써 그와 만남을 가졌나?”
“집 근처로 찾아와서 한 번 만났습니다.”
“허어...”
벌써 접근을 했을지 몰랐던 정인철 회장인자라 다시금 혀를 차는 목소리를 내뱉었다.
“뭔가 일을 꾸밀 것이라 생각은 했지만 조용히 접근을 했던 것이군. 그래, 그 자가 무어라고 하던가?”
“별 말은 없었습니다. 사업을 하자고 하더군요.”
“사업?”
“시장을 개척하고 저변을 넓혀서 크게 한 번 같이 일을 해보자고 했습니다. 수익은 공평하게 나누고 자금은 그 쪽에서 대겠다고 하더군요.”
“음...”
만남을 가졌다는 것도 조금 놀란 일이기는 한데 저런 말을 했다니 과감한 행동이었다.
하긴 전화를 직접 걸어 장체민과 만남을 가졌던 것을 말하곤 우호를 다지자던 사람이 뒤에선 육중환을 처리한 것을 보면 한 편으론 놀랍지도 않은 일이었다.
“회장님의 말은 틀린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 자가 저한테 찾아와서 그런 말을 한 것을 보면 말이죠.”
양두 또한 자신에게 그것과 비슷한 제의를 했다는 것을 말하면 아마도 까무러치게 놀랄 것이었다.
찻잔을 들어 다시 차를 마시는 이만석을 보면서 정인철 회장은 별 말 없이 자신도 차를 마셨다.
하지만 그것과는 다르게 속으로는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달라졌어.’
평온한 표정으로 차를 마시는 이만석이 전과는 다르다는 것을 깨달은 정인철 회장이다.
저번에 만났을 때는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며 대답을 하는 그 모습이 좀 순박해 보이기도 하고 멍해 보이기도 했는데 지금은 전혀 그런 것이 안 보였기 때문이다.
그 뿐만이 아니라 부담스러워 하던 낮 빛도 사라졌고 긴장감도 보이지가 않았다.
‘그동안 성장을 한 것인가.’
그렇게 생각 할 수 밖에 없었다.
삼합회와의 일을 겪으면서 심적으로 많이 힘들었을 것이다.
아무리 실력이 출중하다고 대단하다고 해도 혼자서 대조직을 상대 하였으니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었을 일이고, 그러면서 차츰차츰 자신을 되돌아보면서 어떤 변화가 찾아온게 틀림이 없었을 것이었다.
“전에 내가 한 말 기억하는가?”
“전에 말입니까.”
잠시 생각을 하는 듯 하던 이만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일성회에 들어오라고 한 것 말하시는군요.”
“그렇다네.”
“혹시나 다시 들어오라고 하려는 것이라면 그때 이미 답을 주었습니다.”
“그건 알고 있네.”
그때 이만석은 이쪽 세계에 관심이 없고 들어서지도 않을 것이라 말했었다.
“이쪽세계에 들어서지 않겠다고 했었지. 상황이 그때였다면 그렇게 될 수도 있었겠지.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가 않네.”
“뭐가 말입니까.”
“아직 본인은 제대로 느끼지 못 하고 있겠지만 이미 깊숙한 곳 까지 들어선 상황이라네. 삼대세력이 자네를 주시하고 있고 그들 말고도 많은 얘기들이 퍼져 나가고 있는 중이지. 그 중엔 영웅담으로 돌아다니기도 하고 존경을 하는 이들도 있다고 하더군.”
“조금 당황스러운 말이로군요.”
“안타깝게도 지금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이쪽세계에 발을 들이지 않겠다, 관심이 없다고 할 상황은 지난 것 같네. 이미 요주의 인물로 올라가 있는 판국에 그런 말을 해서 무엇 하겠나.”
“본론이 무엇입니까?”
“본론이라...”
갑작스럽게 본론을 물어오는 이만석의 말에 정인철 회장이 작게 숨을 내쉬었다.
그리곤 가만히 고개를 들어 이만석의 두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는데 자신감에 차있었고 한 편으론 야수처럽 사나워 보이기도 했다.
“변했구만,”
그렇게 말한 정인철 회장이 작게 웃음소리를 내뱉었다.
“전에 만났을 때와 다르게 확실히 변했어.”
“......”
그런 말에도 이만석은 별다른 대답은 하지 않았다.
그저 다음 말을 기다릴 뿐인 것이다.
“자네를 한 번 밀어볼 생각이야.”
“밀어본다니 무엇을 말입니까?”
순간적으로 표정을 굳힌 정인철 회장이 딱딱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도록 하지. 자네가 이 회사를, 아니, 이 조직을 과연 이끌어갈 재목이 되는가 알아볼 생각이네.”
“조금이 아니라 많이 당황스러운 말이로군요,”
뭔가 속내가 있다는 것을 느낀 이만석이었지만 이건 전혀 생각지를 못 했다.
“그 동안 내가 여러 일을 많이 겪고 살아왔지만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자네같은 사람은 처음 보았어. 아주 대단하지. 그때는 인재라고 생각은 했었지만 이정도일 줄은 몰랐지. 그리고 그 반향성을 보면 앞으로도 큰 파란을 일으킬 것이 분명해. 거기다 그런 인물의 나이가 20대라는 것이 더 놀라운 것이지.”
스스로 자신을 내뺀다고 해도 상황을 보면 그렇지가 않았다.
영웅담까지 흘러나오는 상황에서 어떤 상황이 전계될 줄 전혀 모르는 일인 것이다.
“그동안 자네를 주시하면서 여러 가지를 생각했지. 어디서 이런 자가 나온 것인가. 그리고 출신내역도 알 수 없는 이 자가 도대체 누구인가. 청와대와 관련 있는 사람이지 않을까 하는 말도 들어서 그런 복잡한 생각이 더 들었어. 사실 그 때문에 많이 망설이기도 해서 이렇게 직접 그에 대한 얘기도 듣는 것도 좋을 것 같아 내 생각을 밝힐 의향으로 자네를 초대 한 것이야.”
“청와대의 끝나풀이라니... 사실 그에 대해서 밝히기는 좀 곤란하긴 합니다. 하지만 절대 그쪽과는 관련이 없으니까 안심하셔도 됩니다.”
“어떻게 그 말을 믿지?”
“효력이 있는가는 모르겠지만 제 이름을 걸고 맹세하지요.”
“이름을 건다라...”
그러면서 가만히 바라보는 정인철 회장은 이만석의 눈빛을 보면 전혀 거짓을 말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하지만 진짜 생각지 못 한 말이로군요. 후계자라니... 저 같은 자에겐 당치도 않는 말이군요. 이 얘기가 나가는 순간 반발이 심할 것입니다.”
비꼬는 듯 말하는 이만석 이었지만 정인철 회장은 전혀 기분나빠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그건 자네가 보여주는 행동에 따라 달려있지. 과연 그 만한 그릇이 되는지는 자네가 증명할 일인거야.”
“만약 제가 청와대와 관계가 있는 자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렇다면 사람을 보지 못 하는 내 잘못이 크고, 나는 그것 밖에 안 되는 어리석은 인간이겠지.”
이만석은 이런 큰일 날 소리를 마치 자신과 관계 된 일이 아닌 것처럼 평온하게 말하는 정인철 회장의 속내가 알 수가 없었다.
다만 한 가지 느끼는 것이 있다면 지금 이 일성회를 이끌고 있는 사람이 모험이라고도 할 수 있는 큰 결심을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일성회는 그가 생을 받쳐 키워온 조직이고 당연히 목숨처럼 생각 할 것이 뻔 하기 때문이었다.
‘야망을 품고 있구나.’
자신을 바라보는 정인철 회장의 눈빛에서 이만석은 생기를 읽었다.
그 눈빛은 거대한 야망을 찾아 쫒아가는 맹수의 눈빛과도 똑같았기 때문이다
좀 더 얘기를 나누어 봐야 하겠지만 이만석은 이 정인철이라는 사람이 조직의 명운을 걸 만큼 뭔가를 크게 갈구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도 나이를 많이 먹었지.”
그렇게 말한 정인철 회장이 남아 있는 차를 단 번에 비워버리곤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강원도에 진출하려 하고는 있다지만 이대로 유지하려고 하는 대만도 쉬운 일은 아니야. 그동안 일성회에 불만을 품고 있던 이들이 적지 않았다는 것을 저번 소탕작전을 통해서 제대로 깨달았지. 또다시 그런 일들이 생기지 말라는 법이 없고 아직 충청도 지역은 완전히 다져진 게 아니야. 그래서 어찌보면 지금은 조용히 따르고 있지만 속으로는 반발심을 키워 더 불안 할 수도 있지.”
“약점이 될 수 있는 그런 얘기를 왜 저에게 하시는 겁니까.”
“젊은 피가 필요하단 말이네. 이 조직을 새롭게 이끌어갈.”
아무래도 대화가 짧게 끝날 것 같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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